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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충기 수필>
인류의 고대문명 발상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세계 고대문명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라고하여
①메소포타미아 문명, ②이집트 나일문명, ③인도의 인더스 문명, ④중국 황하(黃河) 문명의 4가지였다. 그러나 훗날 고고학자들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엄청난 규모의, 이 4개 지역 문명보다 훨씬 앞서 문명을 꽃피웠던 곳이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존의 4대 문명과 나중 밝혀진 고대문명들을 묶어 살펴보고자 한다.
◆ 메소포타미아 문명
BC 4000년 경 서남아시아의 티그리스(Tigris) 강과 유프라테스(Euphrates) 강의 유역인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남부에 정착한 수메르(Sumer)인들은 인구 7~8만 명이 거주하는 우르크(Uruk)라는 도시를 세웠다. 그 밖에도 우르(Ur), 키시(Kish), 니푸르(Nippur) 등도 발전된 도시였다.
법전 내용(쐐기문자) / 돌기둥 윗부분 / 돌기둥(2.25m)
BC 2000년경에는 바빌로니아(Babylonia) 왕국이 세워졌고 수도는 바빌론(Babylon)이었다.
그리고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바벨탑(Tower of Babel)이 있었는데 바벨(Babel)은 ‘신의 문’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도시 가운데에는 지구라트(Ziggurat:피라미드)라는 신전을 세우고 매우 발달한 문명을 이루었는데 그림 문자를 개량한 쐐기 문자로 창세(創世) 신화, 홍수, 전설 등을 기록했다.
60진법을 사용했고 태음력이 사용되었으며 점성술과 수학 등이 발달했다.
BC 1800년 경 바벨로니아의 국왕 함무라비는 법을 만들고 돌에 새겨 공포했는데 오늘날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전한다. 이것이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다.
이 법전은 282조, 8천 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2.25m의 돌기둥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한다.
기록된 문자는 그림문자보다 한 단계 발전한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쐐기문자는 점토판에 끝이 구부러진 뾰족한 첨필(尖筆)로 꾹꾹 눌러 기록하여 말린 것으로 수많은 점토판으로 만들어 기록을 보관했다.
삐죽삐죽한 글자 모양이 틈새에 끼워 박아 넣는 쐐기를 닮아서 쐐기문자(楔形<설형>文字)라고 불렀다.(楔:문설주 설, 쐐기 설)
◆ 이집트 나일문명
BC 3200년 경, 나일(Nile)강 유역에 발달했던 고대문명으로, 32개 왕조(王朝)가 이어져 왔는데 이름이 알려진 파라오(Pharaoh:임금)만도 200명 정도이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파라오들도 수없이 많아 수 백 명의 파라오가 3천여 년 간 왕권을 이어 내려왔을 것이라고 한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 아부심벨 신전 / 신전의 벽화
이집트의 중심부를 흐르는 나일강은 매년 범람해 상류의 흙을 날라다 하류에 퇴적하여 농경에 적합한 비옥한 땅이 생성되어 고대 인류가 일찍부터 정착해 살았다.
이들은 농업과 관개(灌漑)기술이 발달했고 태양력을 사용했으며, 토지측량술, 기하학, 의학 등 실용학문이 크게 발달했다.
이집트인들은 왕(파라오)을 태양신 라(Ra)의 아들이고 살아 있는 최고의 신으로 믿었으며, 사후 세계와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내세를 위하여 시신을 미라(Mummy)로 만들어 영원토록 보관했다.
관(棺) 속에는 사자의 서(死者의 書)를 함께 넣었는데 그 내용은 죽은 사람을 내세에 보호하는 주문(呪文)과 영생을 기원하는 글, 신에 대한 찬가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일강 상류 테베(Thebe)의 룩소르(Luxor) 신전과 카르나크(Karnak) 신전, 수많은 왕족 무덤이 발굴된 왕가(王家)의 골짜기, 아스완(Aswan)댐 건설로 수몰될 뻔 했던 아부심벨(Abu Simbel) 신전 등 이집트에는 유명한 유적들이 널려있다.
이집트 최대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의 대 열주실(列柱室)은 가로 100m, 세로 53m의 거대한 방으로, 23m 높이의 석주(石柱)가 134개가 늘어서 있다.
이집트의 기자(Giza)는 이집트 3대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가장 큰 쿠푸(Khufu)왕의 피라미드는 밑변 평균길이 230.4m, 높이 147m이다. 두 번 째 카프레(Khafre)왕의 피라미드는 밑변길이 216m, 높이 143m이고 남쪽 끝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피라미드는 멘카우레(Menkaure)왕의 피라미드로 밑변길이 109m, 높이 66m이다.
그 밖에 신전 입구에 세워진 하늘을 찌르는 첨탑인 오벨리스크(Obelisk), 수많은 신전과 무덤 등 수많은 유적(遺蹟)이 있고, 신전의 벽면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벽화들도 엄청나다.
룩소르 / 카르나크 신전 / 왕가의 골짜기
고대 이집트 문자에는 비석이나 무덤에 새긴 신성(神聖) 문자와 파피루스(Papyrus:종이)에 쓴 민중(民衆) 문자가 있었으며 왕을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돌에 새겨 넣은 로제타석(Rosetta Stone)도 발견되었다.
이 로제타석에 씌어있는 글자는 같은 내용을 상형(象形)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 알파벳의 3가지 언어로 기록되어 있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결정적 열쇠가 되었던 유물이다.
상형문자(象形文字)는 기호화된 문자가 나오기 전의 그림문자를 말한다.
◆ 인도 인더스 문명
BC 2500년, 인도 북부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아라비아 해로 흘러들어가는 인더스 강 유역에 걸쳐 발달하였던 문명으로 대표적 유적은 모헨조다로(Mohenjo-daro)와 하라파(Harappa)이다. 이 지역은 옛날에는 인도 영토였으나 지금은 파키스탄 영토에 소속되어있다.
인더스 문명은 이지역의 토착민이었던 드라비다인들이 건설한 도시라고 한다.
모헨조다로 유적 / 하라파 유적 / 토우(土偶)
인더스강의 하류지점에 발달했던 모헨조다로는 ‘죽은 자들의 흙무덤’이라는 의미로, 발굴하면서 치밀한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된 도시라는 것이 밝혀졌다.
배수(排水)시설이 완벽하게 설치되었는데, 먼저 주택에서 토관(土管)을 통해 하수구로 흘러내린 물은 지하의 배수로에 의해 큰 길 지하의 메인 하수도로 흐르도록 되어 있어 현대의 배수 시스템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집집마다 수세식 변소와 휴지통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직선으로 계획된 도로와 벽돌 주택, 대형 목욕탕, 창고, 시장 등을 골고루 갖췄다.
농업은 밀과 보리 등 곡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길렀으며 메소포타미아와 무역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서남아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이 조상인 아리아인들인데 토기(土器), 동기(銅器), 인장(印章), 장신구(裝身具) 등 유물이 많이 발굴 되었다. 동석(凍石:돌)에 여러 가지 동물의 그림을 그려 넣은 인장(印章:도장)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발견되어 이들이 서로 활발한 교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점토로 빚어 구워낸 소형 조상(彫像:土偶)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황소, 물소 등 동물상이 많고 주로 외국과 교역 상품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인더스강 상류 펀자브(Punjab) 지방에서 발굴된 하라파(Harappa) 유적은 모헨조다로 유적보다 조금 작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융성했던 도시로, 서쪽은 왕족이 기거하는 성채(城砦)가 있고 동쪽은 잘 설계된 일반인 주거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라파 유적은 보존 상태가 모헨조다로 유적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한다.
이 지역의 인더스 문명은 인장이나 토우에 상형(象形:그림)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아직까지도 해독이 되지 않아 이들의 실체를 밝히는데 애로가 있다고 한다.
◆ 중국 황하(黃河) 문명
BC 2500년경의 중국 문명으로, 중국 황하강 유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000~6000년경이라고 하는데 처음 나라의 형태를 갖춘 것은 기원전 2070년 우(禹)임금이 세운 하(夏)나라라고 하고 청동기 시대이다. 이어 BC 1600년 상(商)나라로 이어지는데 마지막 수도였던 은(殷)에서 많은 유물이 나와 은나라라고 칭하기도 한다.
은허(殷墟) / 갑골문(甲骨文) / 고대문자
은허 유적(殷墟遗址)에서는 왕궁터와 왕릉들, 그리고 갑골문(甲骨文)과 청동제기(靑銅祭器), 옥기(玉器)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갑골문(龜甲文)은 거북의 껍질에 명문을 새긴 것으로 점술용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양쯔강(揚子江/일명 長江) 유역에서도 수많은 고대 유적이 발굴되어 황하와 합쳐서 중국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고대 문명은 황하, 양쯔 유역이 농경지가 발달하여 고대로부터 조, 수수 등 곡식의 재배와 가축도 사육했으며, 토기, 갑골문자, 신정 정치, 농경 사회의 흔적 등 엄청난 유물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 차탈회위크(Çatalhöyük) 문명
BC 7500년~BC 5700년경의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에 번성하였던 고대문명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제임스 멜라트(James Mellaart)가 1961~1965년에 걸쳐 발굴하였는데 신석기 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주거지역 / 벽화 / 조소
◆ 히타이트(Hittite) 문명
BC 1800년, 터키의 아나톨리아(Anatolia) 평원 중북부(中北部)에 번성하였던 고대왕국 히타이트(Hittite)는 보가즈쾨이(Bogazköy)라는 터키의 작은 마을에서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1만여 점의 점토판(粘土板)이 출토되었고, 히타이트의 실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점토판(설형문자) / 히타이트 군대 / 히타이트 유적
점토판의 기록에 의하면 히타이트는 이집트 람세스 2세(Ramses II)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카데슈(Kadesh)라는 땅을 두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승부를 내지 못한 두 나라는 BC 1258년 조약을 맺고 점토판에 그 내용을 새겼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국제조약이라고 한다.
히타이트 점토판 / 카데슈 전투(이집트 벽화) / 람세스 2세
히타이트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은이나 구리와 납 등을 캐내어 주변 국가와 교역을 했다고 하며, 또한 역사상 최초로 법률 체계를 갖춘 법치 국가였다고 한다.
히타이트는 태양신을 중심으로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숭배했다.
◆ 보스니아(Bosnia) 고대 문명
동유럽 국가인 보스니아는 동쪽으로 세르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서쪽으로는 아드리아만을 건너면 이탈리아이다. 보스니아의 수도는 사라예보(Sarajevo).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기자(Giza)의 쿠푸왕 피라미드와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피라미드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집트와 멕시코 피라미드 밖에 모르지만 세계 각지에는 수많은 피라미드들이 존재한다. 피라미드는 대체로는 무덤이나 제사 의식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비소코 마을 / 피라미드 발굴모습 / 돌공(石球)
보스니아 피라미드는 수도인 사라예보(Sarajevo) 인근의 비소코(Visoko) 라는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발견되었다. 평범한 시골마을 뒤의 언덕을 그동안 모두들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산 모양이 자연산이라기보다는 각 모서리의 각도가 너무나 정확해서 사업가가 발굴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는데 지질학자와 고고학자에게 의뢰하여 감정한 결과 8천 년 전에서 1만 2천 년 전의 인공구조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인류의 역사는 1만 년 전(기원전 8천 년)에 신석기시대가 됐고, 이집트 피라미드도 4천 년 전(기원전 2천 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 보스니아의 피라미드는 연대가 무려 1만 2천 년 전(기원전 1만 년)이라고 하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산의 껍질을 벗겨내듯 수목과 토층을 걷어내고 보니 돌을 쌓고 시멘트와 비슷한 물질을 균일하게 덮어 피라미드를 축조한 것이 드러났는데, 이러한 거대 건축물은 강력한 집권체제에서만 가능하므로 이게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로 보스니아에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 피라미드는 높이가 220m 이고 멕시코의 아즈텍 피라미드와 유사했다고 한다. 이후에 2개가 더 발견되었는데, 이 3개의 피라미드는 정확히 정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고, 세 피라미드를 연결하는 3.8km의 터널 흔적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각 피라미드에 이름을 붙였는데 제일 큰 것이 태양의 피라미드(Sun Pyramid), 다음은 달 피라미드(Moon Pyramid), 또 하나는 지구 피라미드(Earth Pyramid)이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 조금 작은 또 하나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어 용(龍) 피라미드(Dragon Pyramid) 라고 했단다.
그 밖에도 발굴도중 무게가 무려 30톤이나 되는 돌공(石球)도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석구 중 가장 컸다고 한다.
이 유적을 조사한 보스니아계 미국인 고고학자인 오스마나지크(Semir Osmanagich) 박사는 정식 과학회의를 개최하였고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또, 2006년에는 보스니아의 도시 헤르체고비나 인근의 작은 산도 피라미드로 밝혀졌는데 이 피라미드에서 광속의 100억 배 속도인 테슬라 파가 발견된다는 주장도 있다.
테슬라파(Tesla 波)는 강력한 자기장 파장으로 우주인들의 교신이 아닌가 추측도 된다고...
돌공(石球)은 외계의 정보를 싣고 온 물질로 인식되어지고 있는데 코스타리카 등의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구 크기도 이와 같은 2m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돌공(石球)은 세계에서 300개 이상이 발견되었는데, 너무나 완벽한 각도의 공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인공으로 추정되며, 보스니아 석구는 이 중 제일 큰 것으로 외계인설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 미케네(Mycenae) 문명
미케네 문명은 BC 2000년,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에서 꽃피었던 고대 그리스 문명으로, 약간의 연대적 차이는 있지만 미노아(Minoa) 문명도 펠로폰네소스 반도 바로 앞에 있는 크레타(Creta) 섬에서 꽃핀 고대문명이므로 함께 묶어 설명할 수 있다.
미노아(Minoa)문명은 미노스(Minos)라는 크레타 왕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크레타 섬 크노소스(Knossos) 궁전 지하에 건축 명장(名匠) 다에달로스(Daedalos:아들이 이카루스)에 맡겨서 미궁(迷宮:Maze)을 건설했다는 왕이다.
미노스 미궁 /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
신화에 의하면 이 미궁 속에는 머리는 소(牛)고 몸은 사람의 형상인 우두인신(牛頭人身:半人半獸)이 있는데 무자비하고 잔인한 성격의 식인(食人) 괴물로 이름은 미노타우루스(Minotaur)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보면 이 괴물은 사람 인육(人肉)을 즐겨 먹었는데 미노스왕은 그리스 본토에서 젊은 남녀를 인질로 데려와 미궁 속에 집어넣어 잡아먹히게 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하러 인질 틈에 섞여 크레타로 왔는데 미노스왕의 딸인 아리아드네(Ariadne)는 첫눈에 테세우스에게 반한다.
테세우스가 미궁으로 들어가게 되자 아리아드네는 미궁을 만든 다에달로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다에달로스는 자신도 찾아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실 꾸러미를 주며 들어갈 때 풀면서 들어가고 나올 때 실을 따라 나오면 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실 꾸러미를 주었고,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실 꾸러미를 따라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일이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사건의 실마리, 단서(端緖)라고 하는데 바로 실타래를 뜻하는, 이 테세우스의 미궁탈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 섬을 탈출하는데 배가 낙소스(Naxos) 섬에 이르렀을 때 아테네 여신은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한다.
결국 테세우스는 생명의 은인인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버리고 떠난다.
아리아드네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에는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바쿠스)의 아내가 된다.
이 미노타우루스(牛頭人身)는 미노스 문명의 여러 예술품에 가장 널리 쓰인 소재이며 크노소스 궁전 벽의 채색 프레스코 화에도 그려져 있다.
이 미노스문명은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으며 중심지는 크노소스였다. 당시 궁전과 건축물들의 유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으며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적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미노아 문명 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들도 지중해 동부 전역에서 수없이 발견된다고 한다.
◆ 사라진 고대문명 무(Mu) 제국
무(MU) 제국은 약 5만 년 전 태평양 한 가운데 있었던 거대한 대륙의 나라라고 한다.
영국의 예비역 대령 처치워드(James Churchward:1851.2.27.~1936.1.4)는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서 고대 문서인 나칼 비문(점토판)을 발견하고 해독하다가 사라진 무대륙이 언급된 것을 발견하고 해독한 후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 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또, 중앙아메리카 유카탄 반도 일원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마야문명, 그 마야 유적에서 마야어로 씌어진 고대 마야의 ‘트로아노 고사본’을 해독하다가 무대륙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는 내용을 발견하는데 나칼 비문과 내용과 거의 일치하며 인도 나칼 비문보다 1만 년이나 후에 기록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티베트의 옛 사원에서 발견된 1400년 전의 고문서에서, 미얀마의 유적에서도 무 대륙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고 한다.
동서 8천 km, 남북 5천 km로 현재 태평양의 약 절반 넓이인데 인구는 약 6천 4백만으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루었던 제국이었으나 대지진과 화산의 폭발 등으로 대륙 전체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고 한다.
나칼 비문 / 무(Mu) 대륙 / 처치워드 대령
◆ 인도양의 레무리아(Lumuria)와 아틀란티스(Atlantis) 문명
레무리아(인도 신화) / 레무리아 위치 / 여우원숭이
약 2만 5천 년 전 인도양 한 가운데에는 레무리아(Lemuria)라는 거대한 대륙이 있었고, 대서양 한가운데에는 아틀란티스(Atlantis)라는 거대한 대륙이 있었다고 한다.
두 대륙에는 각각 거대한 제국(帝國)이 있었는데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두 대륙간에는 활발한 교류도 있었는데 사소한 문제로 의견의 충돌이 일어나 결국에는 핵전쟁으로까지 발전하여 두 대륙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멸망했다는 것이다.
인도양에 거대한 대륙(레무리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남인도 고대도시인 마두라이(Madurai)와 인근의 남인도 여러 지방의 전설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1864년, 영국의 동물학자 필립은 여우원숭이의 진화과정을 조사하다가 여우원숭이의 화석이 동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발견되었는데 인도(India) 서부 해안지방과 호주(Australia) 서부지역에서도 발견되자 인도양에 거대한 대륙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대륙 이름은 여우원숭이의 학명인 ‘레무르(Lemur)’에서 레무리아(Lemuria)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1912년,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가 대륙이동설을 내놓아 필립의 주장이 빛을 잃게 되었다.
아무튼지, 레무리아 대륙의 실재(實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일부가 현재의 이스터(Easter)섬, 피지(Fiji) 제도들 등이라고 한다.
아틀란티스(Atlantis)는 이집트의 고문서에도 등장하고, 특히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os)’에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던 제국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증거를 찾기 위해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 멕시코 올멕(Olmec) 문명
BC 1150년 경 멕시코의 베라크루즈(Veracruz)와 타바스코(Tabasco) 지역에 번성하였던 고대문명으로, 올멕족은 바퀴를 발명하고 공놀이를 즐겼으며 상형문자를 창안하여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 문화의 특이한 점은 엄청나게 큰 석조 인두상(人頭像)을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거대 인두상(人頭像)
두상의 크기는 높이가 1.17m에서 3.4m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큰 것은 무게가 30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거대 두상이 모두 17개나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얼굴 모습이 마야인들 보다는 두툼한 입술 등 아프리카 흑인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 연대에 따른 정리
그러면 위의 각 문명들을 연대(年代)에 따라서 나열하여 본다.
①무 제국 문명(BC 50,000)
②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 문명(BC 25,000)
③보스니아 문명(BC 10,000)
④터키/차탈회위크 문명(BC 7,500)
⑤중동/메소포타미아 문명(BC 4,000)
⑥이집트/나일 문명(BC 3,200)
⑦중국/황허양쯔 문명(BC 2,500)
⑧파키스탄/인더스 문명(BC 2,500)
⑨그리스/미케네 문명(BC 2,000)
⑩터키/히타이트 문명(BC 1,800)
⑪멕시코/올멕 문명(BC 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