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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장현종론 제17권
4. 변연기품(辯緣起品)⑥
4.6. 공간과 시간의 단위 및 세계의 주기[2]
3) 부처와 독각과 전륜왕
① 부처와 독각이 출현하는 시기
그렇다면 모든 부처와 독각(獨覺)이 세간에 출현하는 것은 겁이 증가할 때인가, 겁이 감소하는 상태에서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8만 세에서 감소하여 백 세에 이를 때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지만
독각은 증가나 감소에 관계없이 출현하며
인각유(麟角喩) 독각은 백 대겁 후에 출현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부처님의 출현]
이 주(즉 남섬부주)의 인간들 수명이 8만 세에서 점차 감소하여 마침내 수명이 최대 백 세에 이르게 되는 그 중간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출현한다.33)
어떠한 연유에서 수명이 증가하는 상태에서는 부처님께서 출현하는 일이 없는 것인가?
이때는 유정의 즐거움이 증가하여 [세상에 대한] 싫어함[厭]을 가르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며, 많은 이들이 묘행(妙行)을 행하기 때문이며, 적은 이들 만이 3도(途,지옥ㆍ아귀ㆍ방생)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백 세 이하로 감소할 때에도 부처님께서 출현하는 일이 없는 것인가?
이와 같이 수명이 짧아질 때에는 부처님께서 해야 할 바를 능히 모두 성취할 수 없기 때문으로, 이를테면 일체의 부처님들이 [그때] 세간에 출현하면 결정코 다섯 번째 분수(分壽)를 버리게 된다.
즉 선정으로부터 일어난 명행(命行)의 소의신은 그때 교화할 이들을 즐거이 관찰하지 않을뿐더러 설혹 세간에 출현하더라도 부처가 해야 할 일[佛事,즉 중생교화]이 적으니,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때에는 세간에 출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경주(經主)는 이에 대해
“5탁(濁)이 지극히 증대하여 교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출현하는 일이 없다]”고 해석하였다.34)
그러나 지금의 세간사람들도 수명이 백 년 이하로 감소하였고, 5탁이 비록 증대하였을지라도 어찌 능히 올바른 결정[正決定]에 들어 염오를 떠나 성과(聖果)를 획득하는 이가 없다고 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이들을 위해 세간에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말한 바는 잘된 해석이 아니다.
즉 [인간의 수명이] 백 년인 상태에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였을 때에도 일체의 인간들이 다 성교(聖敎)를 숭상하여 올바른 결정에 들고 염오를 떠나 성과(聖果)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백 년의 일부가 감소하였을 때에는 그러한 ‘부처가 해야 할 일’을 능히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출현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혹 백 년 이하로 감소하고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할지라도 그들의 수명이 백 년일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일부이기는 하지만 능히 성교를 숭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인데, 부처님께서 어찌 [그 같은 이유에서] 세간에 출현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백 년 이하로 감소할 경우, 교화할 유정이 극히 적어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출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앞에서 [내가] 제시한 이유, 즉 ‘부처님께서 해야 할 바를 능히 모두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출현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비록 [인간의 수명이] 백세 이하로 감소할 때 5탁은 지극히 증가하여 부처님께서 해야 할 바를 능히 모두 성취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부처님께서 해야 할 바를 능히 모두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이 직접적인 원인이지 그(즉 세친)가 설한 바(‘5탁이 지극히 증대하여 교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닌 것이다.
[5탁]
그리고 여기서 5탁이라 함은,
첫 번째는 수탁(壽濁)이며, 두 번째는 겁탁(劫濁)이며, 세 번째는 번뇌탁(煩惱濁)이며, 네 번째는 견탁(見濁)이며, 다섯 번째는 유정탁(有情濁)이다.
어째서 [목숨 등을] ‘탁(kaṣāya)’이라고 한 것인가?
지극히 비루하고 저열해지기 때문이며, [그러한 비루함 등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며, 더러운 찌꺼기[滓穢, kiṭṭa,분비물]와 같기 때문이다.
어찌 목숨과 겁과 유정의 세 탁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또한 견탁은 바로 번뇌를 본질로 하는 것이니, 5탁은 마땅히 [개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치상으로도 실로 마땅히 그러하다. 그러나 다만 다섯 가지의 쇠퇴ㆍ손상[衰損]이 지극히 증성(增盛)하는 때를 차례로 나타내기 위해 그같이 설한 것이다.
무엇을 일컬어 다섯 종류의 쇠퇴ㆍ손상이라고 한 것인가?
첫째는 수명이 쇠퇴 손상되는 것이니, 그때에는 그것이 지극히 짧아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구(資具,생활에 쓰이는 자재와 도구)가 쇠퇴 손상되는 것이니, 그때에는 광택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한 품성이 쇠퇴 손상되는 것이니, 그때의 유정은 악행을 즐기기 때문이다.
넷째는 적정(寂靜)이 쇠퇴 손상되는 것이니, 그때의 유정은 서로 상위하는 온갖 논의와 쟁론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유정 자체가 쇠퇴 손상되는 것이니, 그때의 유정은 출세간의 공덕을 성취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다섯 종류의 쇠퇴 손상이 동일하지 않음을 차례로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5탁으로 분류하게 된 것이다.
[독각(獨覺)의 출현]
독각(獨覺)은 겁이 증가하거나 감소함에 관계없이 출현한다.
그런데 모든 독각에는 두 종류의 구별이 있으니, 첫째는 부행(部行)이며, 둘째는 인각유(麟角喩)이다.
부행독각이란 일찍이 성문(聲聞)이었던 자가 뛰어난 과보를 획득하였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달리 독승(獨勝)이라고도 이름한다.35)
[이에 대해] 유여사는
“그들은 본래 이생(異生)으로서 일찍이 성문의 순결택분(順決擇分)을 닦았지만, 지금 스스로 도를 증득하였기에 ‘독승’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36)
그리고 인각유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홀로 머무는 이[獨居]를 말한다.37)
이러한 두 종류의 독각 중에서 인각유독각은 요컨대 백 대겁 동안 보리의 자량을 닦은 연후에 비로소 인각유독각을 성취한다.38) 그러나 부행독각은 백 대겁보다 적은 양의 시간동안 자량의 인(因)을 닦을지라도 독각을 성취하니, 시간상의 정해진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독각’이라는 말은 현재의 소의신[現身]으로서 지극한 가르침[至敎]을 받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도를 깨달아 스스로는 능히 조복(調伏)하였지만, 다른 이를 조복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이다].
어떠한 연유에서 ‘독각은 다른 이를 조복시키지 못한다’고 말한 것인가?
그는 능히 정법을 연설할 수 없는 이도 아닐뿐더러 그 역시 무애해(無礙解, 法ㆍ義ㆍ詞ㆍ辯의 4무애해)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또한 과거세에 들었던 제불(諸佛)의 언사를 능히 기억하여 다른 이를 위해 연설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뿐더러 아득히 먼 경계의 숙주지(宿住智)도 획득하였기 때문에 [그는 능히 다른 이를 조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자비심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유정을 포섭하기 위해 신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는] 가르침을 받을 만한 근기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니, 그때의 유정들도 역시 세간 이욕(離欲)의 대치도를 능히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같은 이치가 있을지라도 지금 여기서 헤아려 보건대, 그는 그때 [가르침을 받을 만한] 유정의 근기를 알고 견제(見諦,즉 見道) 등으로 들게 하려고 하였지만, [그 자신이] 다른 이의 가르침에 의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설하여 다른 이를 조복시키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그 밖의 [수단으로써는] 유정들을 포섭하였으니, 애써 가르침을 설하지 않더라도 신통을 나타내는 즉시 바로 성취하였던 것이다.
또한 모든 독각은 [10]력(力)과 [4]무외(無畏)를 결여하여 유아론(有我論)에 굳게 집착하는 무리들에게 무아(無我)를 설하려고 하면 문득 두려운 마음이 생겨 용렬해지니, 그래서 가르침을 설하여 다른 이를 조복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② 전륜왕이 출현하는 시기와 종류
전륜왕(轉輪王)이 세간에 출현하는 것은 언제이고, 그 종류는 몇 가지이며, 몇이서 함께 출현하는 것인가? 또한 그들은 어떠한 위엄과 어떠한 상호[相]를 갖추고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륜왕은 [인간의 수명이] 8만 세 이상일 때 출현하니
금륜(金輪)ㆍ은륜(銀輪)ㆍ동륜(銅輪)ㆍ철륜(鐵輪)의 왕이
한 주(洲)ㆍ두 주ㆍ세 주ㆍ네 주를 반대의 순서로 다스리며
홀로 출현하는 것은 부처와도 같다.
[그들은] 다른 이에 의해 모셔지고, 스스로 나아가 항복 받으며
위덕을 과시하고, 진(陣)을 펼쳐 승리하지만 남을 해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상호는 바르고 명료하고 원만하지 않으니
그래서 부처와 동등하지 않은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 주(洲,남섬부주)의 사람들 수명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때로부터 8만 세에 이르는 동안 전륜왕은 생겨나게 되는데, 8만 세 이하로 감소할 때이면 유정의 부귀 향락이 손상되고 수명이 감소하여 [그를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왕은 바퀴보배[輪寶]가 굴러 그것이 인도하는 대로 일체의 유정을 위엄으로써 항복 받기 때문에 ‘전륜왕(轉輪王,cakravartin-rāja)’이라고 이름하였다.
『시설족론』중에서는 [전륜왕에] 네 종류가 있다고 설하고 있는데, 금륜(金輪)ㆍ은륜(銀輪)ㆍ동륜(銅輪)ㆍ철륜(輪鐵)에 따른 차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순서대로 최승의 왕이고, 상품ㆍ중품ㆍ하품의 왕이며, 또한 반대의 순서대로 능히 한 주(洲)를, 두 주를, 세 주를, 네 주를 다스리는 왕이다.
즉 철륜왕은 한 주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며, 동륜왕은 두 주의 세계를, 은륜왕은 세 주의 세계를, 그리고 금륜왕은 4대주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인 것이다.39)
그런데 계경에서는 최승에 근거하여 금륜왕에 대해서만 설하고 있다.
즉 계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왕이 찰제리(刹帝利,Kṣatriya,사성계급 중 통치계급) 종족으로 태어나 관정의 지위[灑頂位,즉 灌頂의식을 거친 왕위]를 이어 받고자 보름날[十五日, 즉 포살일] 재계(齋戒)를 받을 때이면 머리와 몸을 깨끗이 씻고서 수승한 재계를 받게 되는데, 이때 높은 누대의 전각에 오르면 신하와 관리들이 그를 보필하여 좌우로 늘어서고, 동방에서는 홀연히 금륜의 보배가 나타난다.
그 바퀴는 천 개의 바퀴살을 갖고 있으며, 속의 바퀴통과 밖의 바퀴 테를 모두 갖추어 모든 상이 원만하고 청정하니, 장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미묘한 광명을 발하며 왕의 처소로 와 감응하면, 이 왕은 필시 금륜을 굴릴 왕인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전륜왕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40)
그리고 전륜왕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두 왕이 함께 생겨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계경에서도 이같이 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두 명의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동시에 세간에 출현하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니,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오로지 한분의 여래만이 세간에 출현한다. 여래에 대해 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륜왕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41)
[방론―시방세계 일불설(一佛說)]
여기서 마땅히 살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오로지 한분’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에 근거하여 말한 것인가, [시방의] 일체의 [대천]세계에 근거하여 말한 것인가?
마땅히 일체의 [대천]세계에 근거하여 설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그것과 차별될 만한 말(즉 經說)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오로지 이러한 세간에만 [근거하여] 설한 일이 없으며,
또한 어떠한 경에서도 오로지 하나의 [대천]세계에 근거하여 설한 일이 없는 것이다.
경에서 설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오로지 하나의 대천세계에 근거한 것일 뿐 일체의 [대천]세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결정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인가?42)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범왕경(梵王經)』에서
“나는 지금 이러한 삼천대천의 온갖 세계 중에서만 자재하게 전변(轉變)할 수 있다”고 설하였던가?43)
여기에는 은밀한 뜻이 있다.
은밀한 뜻이란 무엇인가?
즉 만약 세존께서 가행(加行)을 일으키지 않은 경우라면 오로지 이러한 삼천대천세계만을 능히 관찰할 뿐이지만,
만약 어느 때 세존께서 가행을 발기(發起)하였다면 가없는 무변(無邊)의 세계가 모두 불안(佛眼)의 경계가 되니, 천이통(天耳通) 등도 이러한 예에 따라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부처님께서는 그 밖의 다른 [삼천대천]세계에 대해 자재한 교화의 공능을 갖지 않았다는 것인가?
대비(大悲)를 결여하였기 때문인가, 지혜에 한계[礙]가 있기 때문인가?
만약 대비를 결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경에서는 마땅히
“여래의 비심(悲心)은 일체의 세계를 두루 덮을 만하다”고 말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또한 만약 지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경에서는 마땅히
“어떠한 이염(爾焰, jñeya, 所知 즉 알려질 대상)도 부처님의 지혜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그리고 만약 부처님의 지혜와 비심은 일체의 세계에 편재하여 한계도 없고 결여됨도 없다고 한다면, 그의 법 또한 두루 편재하여 일체의 유정을 능히 제도할 수 있다고 마땅히 설해야 할 것이니, 여래는 부사의(不思議)한 힘을 모두 갖고 있어 가없는 무변의 세계를 능히 두루 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의 널리 결택해 보아야 할 것은 『순정리론』 제32권에서와 같다.
이와 같이 앞에서 설한 네 종류의 전륜왕은 위엄으로써 모든 곳을 평정하지만 여기에도 역시 차별이 있다.
이를테면 금륜왕(金輪王)의 경우 모든 작은 나라의 왕들이 각기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모셔가니, 그들은 이와 같이 청하여 말한다.
“저희들의 국토는 넓고 풍요로우며 안은(安隱)하고 부유하여 즐겁기 그지없는 곳으로, 온갖 종류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로지 원하건대 천존(天尊)께서 친히 교칙만 내려 주신다면 저희들은 모두 천존의 신하[翼從]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은륜왕(銀輪王)이라면, 스스로 그들의 땅으로 가 자신의 위엄을 가까이서 보여주니, 그때 그들은 비로소 항복하여 신하가 된다.
만약 동륜왕(銅輪王)이라면, 그들의 나라에 이르러 위엄을 선양하고 덕을 과시하니, 그때 그들은 비로소 그를 뛰어난 왕으로 추대한다.
만약 철륜왕(鐵輪王)이라면, 역시 그들의 나라로 가 위세를 과시하고 진을 펼치는 것만으로 승리하여 [나라를] 평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일체의 전륜왕은 모두 다 남을 해치는 일이 없으며, 그들을 항복시켜 승리를 얻었을지라도 각기 그들의 처소에서 편안히 살게 하고, 10선업도(善業道)를 닦도록 권유하고 교화한다. 그래서 전륜왕이 죽으면 대개는 하늘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경에서는
“전륜왕이 세간에 출현할 때 7보(寶)를 갖고 세간에 출현한다”고 설하였다.44)
이상에서 설한 모든 전륜왕은 7보를 갖지만 다른 왕과의 차이는 오로지 그것만이 아니다. 서른두 가지의 대사(大士,부처를 말함)의 상호(相好)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차이가 있다.45)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전륜왕과 부처님[의 상호]는 무엇이 다른가?
부처님이신 대사의 상호는 각기 처하는 바가 단정하고 명료하며 원만하지만, 전륜왕의 상호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차별이 있다.
여기서 ‘처하는 바가 단정하다’고 말한 것은 불신(佛身)의 온갖 상호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침이 없이 그러한 모습으로 획득되었기 때문이며,
‘명료하다’고 말한 것은 불신의 상호가 너무나도 분명하여 능히 마음을 빼앗을 정도이기 때문이며,
‘원만하다’고 말한 것은 불신의 온갖 상호가 두루 원만하여 결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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