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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7권
21. 무상품(無想品)
그때에 자리 위에 법조보살(法造菩薩)이 있었는데,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열 가지 광명의 지혜를 말씀하심을 듣자, 기뻐 날뛰면서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댄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감히 여쭐 말씀이 있사온데, 들어 주신다 하오시면 곧 마땅히 여쭙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법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이제 대중이 구름처럼 모였으되 모두 두려운 바가 없으니, 의심나는 일이 있거든 즉시 물어라.”
그러자 법조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상념이 있다고 하고 어떤 것을 상념이 없다고 하오며,
어떤 것을 행이 있다고 하고 어떤 것을 행이 없다고 하오며,
어떤 것을 아픔이 있다고 하고 어떤 것을 아픔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법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그대의 묻는 바는 모두 부처님의 위의를 지닌 것이니,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내 마땅히 그대에게 의문을 낱낱이 분별해 주리라.”
“원컨대 즐겨 듣겠나이다.”
[상념 있음과 상념 없음]
“족성자여, 내 이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는 응당히 낱낱이 나에게 답하여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최정각자(最正覺者)는 상념이 있겠는가, 상념 없겠는가?”
“부처님이시여, 상념이 있음이니, 상념 없음이 아니나이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청정한 법신은 상념이 있겠느냐, 상념 없겠느냐?”
“부처님이시여, 청정한 법신은 상념이 있음이고, 상념 없음이 아니나이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계의 몸[戒身]ㆍ정의 몸[定身]ㆍ지혜의 몸[慧身]ㆍ해탈의 몸[解脫身]ㆍ도지견의 몸[度知見身]은 상념 있음이 되는가, 상념 없음이 되는가?”
“부처님이시여, 계의 몸ㆍ정의 몸ㆍ지혜의 몸ㆍ해탈의 몸ㆍ도지견의 몸은 모두 상념이 있음이니, 상념 없음이 아니나이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현성행(賢聖行)ㆍ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 수다원(須陀洹)으로부터 부처에게 이르기까지 상념 있음이 되겠느냐, 상념 없음이 되겠느냐?”
“부처님이시여, 일체 모든 법으로부터 부처님에게 이르기까지 모두 상념이 있음이요, 상념이 없음이 아니나이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온갖 여러 법으로부터 등정각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념이 있고 상념이 없음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어떤 것이 상념 없음인가?”
“본무(本無)의 지혜, 무여(無餘)열반의 지혜를 바로 상념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그대는 이제 이미 본무의 지혜, 무여열반의 지혜를 얻었는가?”
“아니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어떻게 본무의 지혜, 무여열반의 지혜가 상념 없음이요, 상념 있음이 아닌 걸 아는가?”
그때에 법조보살이 곧 게송으로써 답하여 아뢰었다.
옛날에 천중천(天中天)이신
여래 등정각으로부터
본무(本無)의 지혜와 무여(無餘) 열반의 길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네.
남이 없음[無生]은 남이 있음 아니고
고요하여 상념의 집착이 없음이니,
담연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아
편안하고 고요하여 일어남과 멸함이 없네.
이제 그래서 부처님께 아뢰니
본무에는 상념 있음이 없고
집착도 없어 더럽히지 못하거든
하물며 온갖 염(念)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써 법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등정각은
3세(世)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지만
온갖 법의 상념을 분별하여
오히려 근원을 다하지 못하였네.
열반은 고요하게 정하여져서
법의 성품은 헐 수가 없네.
상념은 구르고 구르지 않는 데 있지
무엇이 상념 없음이 되랴?
과거의 항하 모래 수효 부처님의
법 설하신 뜻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설사 본무의 상념 없음을 마련한들
어떻게 중생을 교화하랴?
그때에 법조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상념이 있는 것이며, 어떤 것이 상념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부처를 구하는 것은 상념이요, 부처를 이룸은 상념 없음이니라.
청정한 법신을 구하는 것은 상념이요, 청정한 법신을 얻음은 상념 없음이니라.
5분법신(分法身)을 구하는 것은 상념이요, 5분법신을 얻음은 상념 없음이니라.
4의지(意止) 등으로부터 공ㆍ무상ㆍ무원에 이르기까지, 수다원으로부터 부처에게 이르기까지 구하는 것은 상념이요, 얻음은 상념 없음이니라.”
[형상 있음과 형상 없음]
그때에 법조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청정 법신의 일체 모든 법으로부터 등정각에 이르기까지 형상이 있습니까, 형상이 없습니까?
만일 형상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의심이 없겠사오나,
만일 형상을 없다고 했을 때 구하면 상념이 있고 얻으면 상념이 없다면, 형상 없는 법은 옹호하여 지닐 수 없나이다.
어떻게 옹호하여 지니지 못할 법에 구함이 있으며 얻음이 있으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족성자여, 내 지금 그대에게 물으리라.
이 허공계는 형상이 있느냐, 형상이 없느냐?”
“부처님이시여, 이 허공계는 공함이 공한 듯해서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닙니다.”
“족성자여, 어떤 것이 공함이 공한 듯해서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닌가?”
“부처님이시여, 안팎의 법에서 형상 있으면서 형상 없고 공함이 공한 듯한 무여열반의 도(道)를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니라고 이르겠나이다.”
“어떤 것이 무여열반의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닌가?”
“허공계란 안식(眼識)이 거두는 바이오니, 이로써 본다면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닙니다.”
“안식은 공(空)인가, 공이 아닌가?”
“공이 아니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안식이 공이 아니라면, 어떻게 식으로써 공을 아는가?”
“식이 공이 아니기 때문에 아나이다.
공함이 공인 듯함은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닙니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그대의 말한 바와 같이 식으로써 식이 없음을 알면, 자못 식 없음이 있어서 식 있음을 알겠는가?”
“본무(本無)의 여래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이 본무의 여래인가?”
“머물지도 않고 변하거나 바뀌지도 않아서 법계를 헐지 않으므로 그 호칭을 본무의 여래라고 하나이다.”
“족성자여, 헐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함은, 족성자여, 과(果)로써 함이냐?”
“아니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머물지 않음이 본무의 여래가 됨을 아는가?”
“과거에는 형상이 없고, 현재에는 머물지 않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나이다.”
“그대는 이제 이 법의 성품을 이미 얻었는가?”
“아니옵나이다. 부처님이시여.”
“3세(世)의 머물고 머물지 않는 법도 모르고 어떻게 형상 있음과 형상 없음을 알겠는가?”
“부처님이시여, 지금 여쭈옵거니와,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유여(有餘)열반에 계신다고 하시나이까, 무여열반에 계신다고 하시나이까?”
“나는 이제 또한 유여열반에 있기도 하고, 또한 무여열반에 있기도 하느니라.”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유여열반에 있기도 하고 또한 무여열반에 있기도 하는 것이옵나이까?”
“나처럼 32상으로 이 색신(色身)을 이룬 것이 유여열반이요, 과거의 항하 모래 수효와 같은 온갖 부처님을 관해도 형상이 없어서 볼 수없는 것이 무여열반이니라.”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열반법계는 분별[記]할 수 있나이까, 분별할 수 없나이까?”
“족성자여, 열반법계는 분별할 수 없느니라.”
법조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열반이 분별을 떠난 무기(無記)라면 어째서 과거 항하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음을 설해서 그 이름을 무여열반이라고 부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족성자여, 그대의 말한 바처럼 이 법은 권사(權詐:방편의 거짓)라서 정해진 명호가 없다.
이른바 열반은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며,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니다.
다만 중생이 공에 집착하여 공에 물들고, 법계에 집착하여 법계에 물들어서,
형상 있음이 형상 없음에 이르는 걸 모르고, 형상 없음이 형상 있음에 이르는 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부득이 설하신 것일 뿐이니라.”
법조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공으로 하여금 공인 듯하게 해서 형상이 있기도 하고 형상이 없기도 하다고 하오면,
여래는 오늘 체(體)에 형상이 있다고 하나이까 형상이 없다고 하나이까?
가령 체(體)에 형상이 없다 하오면 오늘 여래는 아직 무여열반계에 드시지 못하였사온데, 어떻게 무여열반계의 형상 없음을 아시나이까?
만일 여래로 하여금 무여열반계의 형상 없음을 아시게 한다면, 과거의 여러 부처님도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말씀하자면 법의 성품은 항상 머물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므로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호칭을 본무(本無) 여래라고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법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의 말한 바처럼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현재와 미래에 저마다 상념이 있지 않느니라.
과거는 미래가 아니고, 미래는 과거가 아니며, 과거는 현재가 아니요, 현재는 과거가 아니니, 내가 설한 바 그 뜻도 그와 같으니라.”
법조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과거의 상념도 상념이 없고, 현재의 상념도 상념이 없고, 미래의 상념도 상념이 없는데, 다르다고 합니까, 다르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법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과거는 지금이 아니요, 지금도 현재가 아니니, 각각 다름이 있지 않느니라.”
[행 있음과 행 없음]
법조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행 있음이라 하고, 어떤 것을 행 없음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법조에게 말씀하셨다.
“청정 법신을 행이 있다고 이르고, 청정 법신을 여의면 행이 없다고 이르며,
계의 몸ㆍ정(定)의 몸ㆍ지혜의 몸ㆍ해탈의 몸ㆍ도지견(度知見)의 몸은 행이 있다고 이르고,
이를 여읜다면 행이 없다고 이르느니라.
37품의 수다원으로부터 부처에게 이르기까지는 행이 있다고 이르고, 이를 여의면 행이 없다고 이르느니라.”
법조 보살이 여쭈었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지금 행이 있음과 행이 없음을 말하시었는데,
어떤 것이 행이 있는 것이오며 어떤 것이 행이 없는 것이옵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4대(大)와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 5음(陰)은 행이 있다고 이르고,
공의 성품ㆍ법의 성품ㆍ형상 없는 성품은 행이 없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행 있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행 없음에 존재하기도 하니,
어떤 것이 행 있음에 존재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행 없음에 존재하는 것인가?
부처님이 있는 경계라면 행이 있음이요, 부처님이 없는 경계라면 행이 없음이니, 그 까닭에 행이 있으면서 행이 없다고 이르느니라.”
법조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어떤 것을 일러 부처님이 계신 경계라면 행이 있음이요, 부처님이 없는 경계라면 행이 없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법조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행에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항상 빈 못[空澤]에 존재함이요,
둘째는 허공계에 존재함이고,
셋째는 사람들 속 대적(大寂) 열반에 존재하는 것이니라.”
[의식함이 있음과 의식함이 없음]
그때에 법조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의식함이 있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의식함이 없음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보시[檀]를 행하고자 함은 의식함이 있다고 이르고, 보시하고 나서 후회함이 없음은 의식함이 없다고 이른다.
계(戒)를 익혀서 범하지 않음은 의식함이 있다고 이르고, 계의 마음이 굳어짐은 의식함이 없다고 이른다.
마음을 대지(大地)처럼 잡아서 인욕을 버리지 않음을 의식함이 있다고 이르고,
인내로 능히 대중을 화합하여 피차(彼此)를 여의지 않음을 의식함이 없다고 이른다.
법을 받들어 부지런히 하고 애초에 변하거나 후회함이 없음을 의식함이 있다고 이르고,
예전처럼 법에 나아가되 도의 근본을 저버리지 아니함을 의식함이 없다고 이른다.
비록 오래 정(定)을 얻었으나 마음이 무상(無相)에 존재함을 의식함이 있다고 이르고,
도의 근본을 헐지 않고 한뜻으로 어지럽지 않음을 의식함이 없다고 이른다.
중생을 교화 인도하되 하나의 도로써 거둠을 의식함이 있다고 이르고,
나[吾我]를 보지 않고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림을 의식함이 없다고 이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