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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 정신희유분
Posted by on 2004-12-17 오후 1:16:48
금강경18 (74. 7. 3)
第六 正信希有分
또 공부할 여가도 없고 이런데 좌우간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건 참 희한한 일이여. 스님하고 내하고 몸은 다릅니다. 이거라. 스님은 굉장한 몸이고 나는 미천한 몸이라 이 말이겠지. 그 뜻은. 그런데 성품에 있어서 다른 건 뭐 있습니까 이랬단 말이여. 여기서 오조 스님이 놀랐어. 어제 선근 말이 있었는데 좌우간 어쨌든지 전생에 말이지 어떤 선근이 심어져서 그 슬기가 말이야 아주 비상하지 않아서는 그런 말 못 나옵니다.
솔직한 말로 요새 공부한 사람들도 말이지 어떤 경우에 가서는 네가 이 놈아 부처가 될 수 있느냐 할 것 같으면 아이고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도 하고 저런 말도 하고 그러는데 그거 아니라. 몸은 스님하고 나하고 다르죠. 스님은 굉장한 분이라. 굉장한 몸이라.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굉장한 가죽주머니인데, 나는 아주 나쁜 가죽주머니지만 말이지 그 몸보다 몸을 끌고 다니는 성품에 있어서 다를 거 뭐 있습니까. 오조스님 거기서 속으로 딱 짐작했거든요. 옳지 됐다 말이지 법은 너한테 전하겠다.
거기에 굉장한 사람들이 있었거든. 신수 같은 분 굉장한 분이에요. 근데 당연히 신수한테 법이 가야 옳다 이렇게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거 아니거든. 벌써 마음을 딱 정했거든. 나중에 나 일을 시켜 주시오. 나 안 갈랍니다. 여기 있게 해주시오. 했단 말이여. 그런데 언제라도 어떠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내 성품은 이건 동요가 안 됩니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단지 그 말이에요. 그래서 방아 찧기를 팔 개월 보냈는데, 그러니까 중이 아니죠. 우리나라 말로는 총각, 머리를 안 깍았으니 총각 아니라요? 한 번도 설법 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가선 말이지 거 참 굉장합니다. 오조스님이 팔 개월 만인가 그랬죠. 내가 법을 전하겠는데 너희 시를 하나씩 써 올리라 했단 말이죠. 신수 대사 당장 못 써 올렸어요.
며칠인가 있다 썼는데 신여 보리수(身如菩提樹), 몸은 보리수고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라. 마음은 명경대나 같은데 말이지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하야 항상 닦아서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라. 티끌 안 앉도록 하겠다. 그 글은 참 잘 된 글이에요. 언뜻 보면 참 잘된 글이에요. 스승한테 못 가져가거든. 그래서 할 수 없이 난간에 떡 붙여놨는데 그 뒷날 그 글들 봤단 말이죠. 참 잘 된 글이라 말이지. 몸은 보리수요. 보리라는 건 깨달았다는 그 말이여. 깨달은 나무요 그 말인데 깨달은 자리라 그 말이지. 마음은 거울과 같다는 말이여. 그러니까 부지런히 닦아서 물사야진애라. 먼지를 안 앉도록 해서 시시근불식 때때로 닦아서 물사야진애라. 티끌을 안 앉도록 하겠다 이러했는데 그걸 떡 보더니만 일반 대중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모여서 책상 갖다 놓고 향로 갖다 놓고 촛불 켜고 그래서 그 글 앞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절을 하고 말이지. 확실히 복전을 받을 그건 있거든.
한데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 글이 어떤가. 벌써 몸이란 거 두었지 마음이란 거 두었지 부지런히 한다는 말 두었지 티끌이란 말 두었지. 전부 모습놀이라. 말은 좋은 말이여. 이 공부하는 사람들도 어떤 사람들은 참말로 모르는 사람들은 말이지 육조 대사 글보다 이 글이 더 좋다는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그건 택도 없는 소리지만. 그런데 방아를 찧고 있어. 그런데 이 양반이 힘이 모자라. 키가 적어. 우리말로 할 거 같으면 디딜방아. 발로 이리 하는 것, 디딜방아인데 힘이 모자라서 돌을 짊어지고 방아 찧기를 했어요.
여기 학생들 여기 있지만은 그리 하라 하면 공부 안 할 거여. 지옥에 가더라도 그런 공부 안 하겠다 이럴 거여. 우선 현실이 좋거든. 현실이 좋아. 좋아. 꿈같아. 후세니 뭐니 다 꿈같거든. 우선 현실이 좋아. 현실만 못하거든. 요새 학생들 그리 하라면 안 할 거다. 누가 돌 지란 것도 아냐. 자기가 돌을 짊어지고, 몸무게를 불리기 위해서 방아를 찧어. 방아를 찧는데 열댓 살 먹은 애가 지나가면서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라. 시시근불식 하여서 물사야진애라. 이리 노래를 하고 가거든. 아, 중국 사람이라 알아듣는다 말이여.
가만히 보니 그때 이미 도가 통한 글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어. 열다섯 살이나 먹은 애는 중이라. 하니까 아, 스님 그 노래, 무슨 노래입니까. 허, 너 같은 멍텅구리도 노래를 들을 줄 아느냐 말이여. 이거 오조 스님께서 법을 전하기 위해서 시를 지어오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말이지 신수 이 양반이 글을 지어서 그리 했다고. 그러냐고. 그래서 이제 난간에다 붙여 놨다 이거라.
육조가 있다가 스님 내가 여기 와서 팔 개월이 됐지만 밤낮 일만 했지 한 번도 절 경내에 들어가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날 좀 인도를 해 주시오. 나도 이 글에 예배를 드리고 복을 지을랍니다. 스님네들은 또 그런 말 들으면 다르거든. 아 그러라고. 너 같은 사람도 그래 생각하냐고 그래서 데리고 갔어요. 데리고 가서 떡 하니 보니 글을 알아야지 뭐. 까막눈인데. 모르거든. 스님 그 미안하지만 글을 한 번 읽어 주시오.
그때 장일용이란 분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도지사쯤 될까 이런 벼슬이여. 군수쯤 될까 도지사쯤 될까 이런 사람인데, 그 양반 그 글 보면서 야, 굉장한 글이다. 해싸면서 탄복을 하고 경배를 하고. 글만 봐도 경배를 하는 법이에요. 그래, 내가 읽어준다. 그래서 읽어줬어요. 턱 읽어주더니만은 아무 말도 안 해. 미안하지만 내가 게를 하나 읊을 테니 말이지 써 주면 어떻겠냐고. 아, 니 같은 사람도? 거 중 아니거든. 또 젊은 사람이고 우리말로 할 거 같으면 몽두리 총각이지. 글 할 줄 아냐고 하니까 괜히 사람을 무시하는 법 아니라고. 사람을 무시한다 할 거 같으면 죄가 많다고 이런 말 하고 거 내가 써주겠다고. 한데 또 여기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그 장일용이란 그 분이 선배인데 무슨 말을 할 거 같으냐 하면 그러면 니가 법을 받으면 나를 제도해 줄래? 이래 했어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말이지 아만상이 있어서, 보니 중도 아니지 심부름꾼이지 글도 모르지 글도 내가 설명을 해 주어야 알지. 한데 그 사람이 게를 써 달라는 그 말 한 마디인데 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나서 하는 말이 말이지 니가 말이여 만약 법을 받으면 나부터 제도해 줄래? 이랬거든. 거 공부하는 사람이란 그런 거예요. 만약 그 사람이 머리털만치라도 아만상이 있었다면 글은 써 주었을 거여. 무슨 글이 나오는가 하고 글은 써 주었을 거여. 허나 나를 제도해 달란 말은 안 했을 거여.
이런 거여.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체면이고 뭣이고 없는 거여. 어디까지라도 바로 알아야 돼. 어디까지라도.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사는데 말이지 거기 체면이 무슨 상관이 있어? 배우는데 있어서는. 육조단경에 그 말 있어요. 내가 그걸 보고 말이지 장일용이란 분이 참 굉장한 분이다. 이런 생각했어요. 보통 사람, 공부하는 사람이여. 여기 이 자리 같으면 형편없는 사람이라. 설법도 들으러 못 오는 이런 사람이지. 그런데 네가 법을 받으면 나부터 제도해 줄래? 그 사람한테 이런 해질까? 이 사람, 글 잘 하지 벼슬하지 이런 사람이야. 그런 대목이 있어요.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요.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이지.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라. 명경 또한 대가 아니거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리오. 어느 곳에 티끌이 앉으리오. 거 탁 트인 글이에요, 몸도 보리수가 아니고 마음도 명경대가 아니란 말이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앉을까 보냐. 그 때 그 글이 나와서 비로소 일반 대중들이 놀랬거든. 아이고, 우리가 말이지 혜능이 방아 찧기 한 쌀로 밥들 해 먹었거든. 아이고, 우리가 부처님이 찧은 밥을 먹은 줄을 몰랐구나. 그 말이 오조 스님한테 들어갔거든. 까딱 하면 죽이겠거든. 그래서 방에 불러 가지고 법을 전했어요.
법을 전한 것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以生起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이 마음을 내느니라. 거기서 대오했어요. 이걸로 보면 말이지 그 양반이 전생 전생부터 선근이 심어졌기 때문에 사람 몸도 받았고 그랬지만은 전생 전생에 선근이 없었다면 도저히 그리 안돼. 그러니까 거기 팔백 명 가량의 사람이 있었는데 밤낮 설법이거든. 밤낮 설법을 하는데 이 양반 거기 가서 설법 한 번도 안 들었어. 안 들었는데 대도를 받았단 말이여.
이걸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이 선근을 심는 것, 좋은 공덕행을 행하는 것, 여러분도 전생 전생부터 부처님 말씀과 마찬가지로 참 여러 부처님들에게 공양을 하고 그런 덕으로 그리 됐겠지만 말이지. 좌우간 사람의 몸도 받은 거 아니에요? 그 양반도 많은 공덕을 이루었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이 공덕행에 대해서 우리가 무관심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되요.
그런데 사람은 하나만 첨부해서 말하겠는데 복을 아낄 줄 알아야 돼. 보통 사람들, 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보통 사람들은 복을 아낄 줄 몰라. 복을 아껴야 돼. 내가 인천에서 이런 말 들었는데 어떤 분하고 무슨 얘길 하다가 국회의원 아니면 장관 대통령 이런 말 하는데, 한 번 그리 해 보시라니깐 깜짝 놀라. 내가 그런 걸 하면은 호박씨 까서 한 입에 넣는 거라요. 그런 말 들은 적 있어요. 그 때는 내가 무심히 들었는데 내가 절실히 느꼈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 참 복 아낄 줄 몰라. 복 아낄 줄 몰라. 복이 있다면 일평생 있는 줄 알거든. 후 세상에도 그대로 있는 줄 알거든. 복 아낄 줄 몰라.
우리 그런 예를 참 많이 봐요. 우리 왕가에서 연산이니 광해니 이런 사람들 복 턴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 너무 복을 써버렸어. 당대에 곤란해. 또 부자들, 내가 아는 그 양반들 다 돌아가셨지만. 자제분들도 대개 다 죽었어요. 내가 친하진 않지만 말이지. 부모가 살아 있고 할 때는 아주 잘 살았어. 잘 사는 게 아니라 천 년이나 만 년이나 갈 거같이 그러지만 부모 죽고 나더니 그리 돼버렸대. 내 이름은 말 안하겠어요. 다 죽었어. 김해에 있는 그 사람도 그렇고 진주에 있는 분도 그렇고. 그 분도 영도에서 죽지 않았어요?
좌우간 서울에도 해주댁 아들, 형편없이... 내 그러니 참, 그러니 아닌 게 아니라 복이라든지 돈이라든지 죽을 때 가져갈 것 같으면 절대로 우린 이걸 가져야 돼. 이거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는 것, 임시뿐이라 말이여. 그러나 나이 먹어 당대에 곤란을 받아.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부모가 부자인데 자식도 부자인 척하거든. 부모덕으로 돈을 모은 거지 자식의 덕으로 돈을 모은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러고 보면 미국 사람들 참 제도가 좋아. 그 사람들은 공자 맹자 안 배웠는데 어찌 그렇게 알았는지 몰라. 그 사람들은 재산 있더라도 자식들한테 그리 안 하대. 자식들한테 얼마 정하면 정한대로 다 줘 버려. 그 다음에 사회사업 다 해 버리는 거라. 케네디 같은 사람, 백만 불이라 하대. 자네들 잘 알거다. 백만 불 밖에 안 줘. 우리 한국 같으면 천만 불이나 억 불 있으면 그대로 상속하는데 그런 거 없어. 백만 불 그대로 줍니다. 아들도 백만 불 딸도 백만 불, 없으면 없는 대로.
사실로 아버지가 부자면 아버지가 부자이지 지 복으로 되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왕왕 부자집 자식들이 고생을 하는 원인이 자기 부자인 줄 안단 말이여. 착각을 해. 그래서 부모가 죽어서 몇 해쯤은 괜찮겠죠.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탕진을 해. 나중에 돈 한 푼 없이 자수성가 한 사람들보다도 말이지 고생을 한단 말이여. 그런 걸 생각을 해 본다면 말이지 이거 선근 심어야 돼요. 선근 심어야 돼요. 돈이니 재물이니, 항차 이거 하나의 환상놀이인 돈이니 재물이니 이것도 그런데 더욱 이 지혜 문제, 선근 안 심으면 절대로 갖추어지는 것 아니에요. 절대로 갖추어지는 것 아니에요.
나는 주위에 말이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 오해할라. 돈 벌지 말라 이래요. 내 말이. 큰 돈 벌지 말라 이래요. 왜 그러냐. 큰돈을 벌어놓으면 말이지 자식들에게 그만 화가 미쳐. 그러나 우리나라 김성수 씨 같은 분은 큰돈 벌어도 돼. 김성수 집안에 그 양반 작고하고 형제간에 변 선생하고 서로 친하지만 말이지 동아일보 사탕회사 방직회사, 조카 손자들까지 전부 집안이야. 그런데 서로 싸우질 안 해. 안 싸워. 근데 어째 그런지 몰라. 김성수 씨 집안은 우리 한국사람 아닌가 모르겠어. 안 싸워. 다른 데는 칠팔 할이 싸워. 싸워서 나중엔 망해 버려. 권리 주장 때문에 싸워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돈이 있으면 도리어 자식들에게 큰 불행을 가져 와.
그러기 때문에 돈 많이 벌지 말라 이래요. 대체로 돈 많이 벌라는 것이 인사여. 나는 그거 아니여. 돈 많이 벌지 말라 이래요. 왜 그러냐면 자식들이 그만 오해를 해. 돈을 벌어도 내 복으로 버는 거지 자식 복으로 버는 건 아니거든. 그럼 내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지? 하기 때문에 이거 우리나라도 상속법 개량해야 돼. 그래서 인식을 그리 시켜 버려야 돼. 가만히 생각해 봐. 이거 중대한 문제여. 부모가 살아서 영원히 같이 부모하고 영원히 잘 살면 그건 좋아. 그러면 내 말이 틀려. 언제라도 부모가 먼저 가거든. 젊은 사람이 먼저 가는 수도 있지만은.
그 돈 때문에 화근이 난다 할 거 같으면 말이지 참 곤란한 일이거든. 차라리 그 돈 때문에 화근이 난다 할 거 같으면 말이지 부모가 돈 안 버는 게 나아. 실에 있었으면. 안 벌었으면 그 사람들 정신 차려서 인생관도 달라지고 사회관도 달라질 거 아니라? 그러면 형제간에도 그런 분란이 없고 자기 자신도 그리 하겠는데 말이지 부모 죽고 나면 낭패란 말이여. 그래서 그 야단인데. 좌우간 어떻든지 거 다 선근을 못 심어서 그래. 선근을 못 심어서 그렇거든.
그럼 선근은 누가 심느냐. 선근 내가 심는 거지 남이 심는 거 아니거든. 자기 아버지가 부자면 부자 될 만큼은 선근 심었어. 아버지의 상속을 완전히 받아서 그대로 키울 수 있으면 자식들도 선근 심어야 돼. 선근 안 심으면 안돼. 선근을 심어 놓으면 괜찮아. 아버지보다 더 벌는지도 몰라. 우리나라도 그런 수가 있거든. 선근을 못 심고 빗나가 버리면 말이지 아버지 가고 나면 나중에 큰 고생을 하게 되요. 그래서 명대로 못살아.
여느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는 명대로 사는데 부자 집 자식들은 나중에 실패해 놓으면 명대로 못 살아. 갑갑증이 나서. 아마 울화가 생겨서 수명을 단축할 거여. 양산에도 큰 부자... 이렇지. 지금 아무 것도 없거든... 참 우리가 각자... 좌우간 어떻든지 여러분들이 선근을 심어도 내가 심지 남이 심어주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심어 주고 할아버지가 심어주는 거 아니여 . 부처님도 심어주지 못해. 자기의 선근은 자기가 심는 거여.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를 하는 원인이 그거여. 자기가 하는 거여. 근데 어떻든지 육조 스님이 이만큼 이리 된 것도 말이여. 전생부터 선근을 많이 심어 놓은 인연이 있어요.
물론 그 양반이 돈에 대한 복력이 없었고 부모에 대한 복력이 없었고 형제에 대한 복력도 없었고 장가를 못 갔거든. 처에 대한 복력도 없었고 친척도 없었던 모양이라. 그러니까 불행의 전매특허 자리여. 근데 슬기가 좋았단 말이지. 이거 무슨 얘기냐. 그러기 때문에 다른 건 전부 시시껄렁한 거야. 그러니까 슬기 하나 좋았기 때문에 나중에 고생도 했지. 한 십여 년 동안 고생도 했지만 말이지 동방의 큰 법을 석가세존의 법을 갖다 받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라도 지금 그 양반의 얘기를 하게 되어 있거든. 그러니까 이 슬기는 진짜고 다른 건 전부 가짜라. 가짜는 하나도 복을 못 받았어. 더욱 상놈이거든. 상놈에다가 아버지가 없지 돈이 없지 무식하지 못 났지 처자도 장가를 못 가봤으니 없고 일가친척도 없지. 가짜인 모습놀이에는 하나도 받은 것이 없어.
그러나 슬기가 좋았거든. 좋았기 때문에 나중에 그리 된 거 아니라? 슬기는 뭣이냐. 진짜 내 재산이라. 다른 건 전부 내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내 것이라. 내외간도 내 것이 아니라. 형제간도 내 것 아니라. 자식도 내 것이 아니라. 부모도 내 것이 아니라. 모습놀이 할 때 부모니 뭣이니 하지 한 번 인연 끊으면 그만이거든. 그러니까 전부 남의 것 아니라? 그러나 슬기는 지 것이거든. 이거 우리 잘 알아야 돼. 슬기.
그렇다고 해서 부모한테 효도하고 이래 해야 하지 소홀해서는 안 돼요. 어제도 그 설법했지만 윗사람 존경할 줄 알고 아랫사람 사랑해야 될 줄 알지. 그건 우리가 인법을 말하는 것이고 솔직한 말로 진짜 이 재산은 우리가 슬기 하나 뿐이여. 우리가 슬기를 닦아야 돼. 지금 여러분들이 이 설법 듣는 건 슬기 닦는 거지 다른 거 아무 것도 아니여. 그런 줄 알아 두세요. 읽어가면서 합시다.
[강송] 실로 이 법은 시공간을 여읨에 따라 (p94:1~ )
시공간, 시간과 공간, 지금 우리가 시공간을 여읜 허공으로서인 우리의 법신에 앉아야 되거든.
[강송] 시공간을 여윔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인 삼세를 뛰어넘었음으로 말미암아 어느 생이라고 하여서 따로 설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p94:1~ )
금방 말했죠. 슬기가 진짜 내 복이다 슬기가 진짜 내 재산이다. 금시 내가 이 얘기 했는데 우리가 이 몸뚱이를 위한 복을 닦는 건 아니거든. 몸뚱이는 가짜라. 실은 우리의 법신, 법신에는 돈이니 옷이니 명예니 다 소용 없어. 법신에 어디 붙은 자리가 있나? 시간 공간이 법신에 안 붙는데 돈이니 명예니 뭣이니 이런 것이 붙냐 말이여. 우선 시간도 없고 공간도 거기 붙을 자리 아니거든. 그러니 다만 거기는 무엇이 하나 붙느냐. 슬기는 붙어. 슬기 하나 뿐이여. 바로 법신 그 자체가 슬기고 슬기 그 자체가 법신이거든.
그러니까 진짜 내 재산이 아니라? 슬기가 내 재산 아니라? 이렇게 보면 돼. 어째, 보살 알겠지? 이거는 말이지 누가 가져 갈래야 가져 갈 수도 없고 줄래야 줄 수도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고 이런 거라. 그러니까 이 몸뚱이까지라도 내 것이 아니거든. 왜 그러냐. 나중에 불구덩이나 흙구덩이로 보내버리는 거여. 그러니 내 것이 아니란 말이여. 그러니까 진짜 내 것은 무엇이냐? 슬기, 우리 지혜. 이것이란 말이지.
근데 우리가 이 법신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할 때는 과거니 현재니 미래니 이것이 다 없어. 왜 그러냐. 우리의 법신 자리에 시공간이 떨어졌으니 과거 현재 미래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만 법신 자리 그거 하나뿐이라. 여긴 시공간이 다 떨어졌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이 시공간이 다 떨어진 이 자리의 진짜 보배는 슬기 하나뿐이란 말이여. 다른 거 아무 것도 없어. 슬기 하나뿐이라. 이걸 알면 돼요. 그러니까
[강송] 삼세를 뛰어넘었음으로 말미암아 어느 생이라고 하여서 따로 설정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환상계의 출몰에 휘둘리지 말고 선근을 심으면은 선인을 낳을 것이요 선인을 낳으면 선연을 이룰 것이요 선연을 이루면 선과는 가지마다 맺어지는 것이니 한 사람도 아니요 두 사람도 아니요 셋 넷 다섯 사람으로 더불어서 무수한 불자가 쏟아져 나올 것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p94:1~ )
여기 왜 한 사람 두 사람 셋 넷 다섯 사람 할 것 같으면 원문에 이리 되어 있어요. 한 부처 두 부처 세 네 부처 다섯 부처, 이렇기 때문에 일 겁 이 겁 세 겁, 이런 말도 나오고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다섯 사람 이렇게 나온 거예요.
[강송] 불자가 쏟아져 나올 것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이렇듯이 청정신자들은 아상을 여읨으로서 것은 빔과 다르지 않고 빔은 것과 다르지 않음으로 느낌 새김 거님과 알이도 그 당처가 비어서 고요적적함을 알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휘영청히 밝아서 번거롭지 않으니 천하가 태평일 것이며 (p94:6~ )
이거 전부 아상 인상 중생상 설명한 거여. 이거 것 느낌 새김 거님 알이 이거 오온이에요. 색수상행식. 이거 오온이에요. 우리가 이거이 지금 오온 뭉치에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말 한 가지에요. 이것도 하나의 것이거든. 또 우리가 망심을 일으킨다든지 좋은 생각을 일으킨다든지 이것도 하나의 것이거든. 또 느끼는 것, 뭘 받아들여. 좋으면 좋다 느끼고 나쁘면 나쁘다 느껴. 받아들여. 새김, 그래서 이래 할까 저래 할까 이걸 해 볼까 새기는 것. 것 느낌 새김 거님. 그 다음에 또 행하는 것, 느낀대로 행하거든. 좋은 느낌이 나면 좋게 행하고 나쁜 느낌이 나면 나쁘게 행하는 거라. 행, 알이, 알음알이 하는 것. 우리 몸뚱이는 이것 다섯 나(개)가 모아진 겁니다.
그러나 다섯 개가 모아진 거지만 실은 그 당처는 전부 빈 거예요. 이 당처가 전부 빈 거예요. 근데 꼭 우리 몸뚱이가 허공 중에 뜬 구름 한 가지에요. 구름이 사실 같아. 구름 있을 땐 사실이지. 그러나 나중에 어쩌다보면 저절로 없어져 버릴 때가 있어. 그와 한 가지여. 우리도 이거 사실이라. 그러나 이거 나중에 없어져 버려. 물론 지금도 없어지고 있지만은 그런데 이런 걸 우리가 모르고 이걸 참으로 아는 통에 문제가 달라져. 인생관이 달라져.
것 느낌 새김 거님 알이, 다섯 쌓임. 오온. 한문으로 말하면 오온인데 이것이 말이지 있기는 있어. 있긴 있어도 이거 전부 빈 거라 말이지. 이거 여러분들 다 있거든. 것 느낌 새김 거님 알이 다 있거든. 정신적으로 이래 다 있어요. 그러나 사실은 이거 빈 거예요. 그런데 이 빈 걸 참으로 알기 때문에 아상이 생기고 아상이 생기니 인상이 생기고 인상이 생기니 중생상이 생기고 중생상이 생기니 수자상이 생기는 거라. 다른 거 아닙니다. 이제 그걸 말할 거예요. 간단하게 넘어갑시다. 그러니까 새로 말하죠.
[강송] 한 사람 두 사람 셋 넷 다섯 사람으로부터 무수한 불자가 쏟아져 나올 건 사실이 아니겠는가. 이렇듯이 우리네 청정신자들은 아상을 여읨으로써 것은 빔과 다르지 않고 빔은 것과 다르지 않음으로 느낌 새김 거님과 알이도 그 당처가 비어서 고요 적적함을 알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휘영청이 밝아서 번거롭지 않으니 천하가 태평일 것이며 인상을 여읨으로써 사대가 (지수풍화) 본래로 허망하여 실답지 않으니 마침내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돌아가는 줄을 알았기 때문에 시시털털한 오욕락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요. (p94:5~ 11)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이제 알았단 말이죠. 알고 지금도 이 몸뚱어리 죽고 나고 죽고 나고 계속이거든요. 적혈구 백혈구.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알아버리면 생사거래에 두려울 것이 없다 그 말이에요.
[강송] 수자상을 여읨으로써 나라고 일컬으는 몸이 허망하여서 실답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끝이 없는 허공으로 더불어서 옳고 그르고 굽고 곧음이 없음에 뫼가 높고 물이 낮음은 나의 손발이요. 바람이 불고 구름이 감돎은 나의 나들이요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귐은 나의 놀음인지라 따로 상대할 삼계를 다시 어디에서 찾아보겠는가 말이다. (p94:13~ )
이거 참 어려운 말이다. 이거 납득이 잘 안 갈 거여. 우리가 요 색신에만 들어앉지 않으면은 납득이 가. 우리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딱 들어앉아 여기 딱 얽매어 놓으니 말이지. 전부 그때는 나를 인정하는 거거든. 내가 있으니 남이 있어. 이거 맞서는 것이거든. 그러나 우리의 이 본성 자리. 이건(색신) 전부 가짜거든. 이것은 스스로 변하는 것이라 말이지 또 우리의 마음 씀씀이도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는 거니까 우리의 마음도 스스로 변해. 그러나 원래 본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몸도 나투고 마음도 나투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걸 다 버려버려. 경계에 머물지 안 해.
그러하면은 이 색신으로서인 내가 아니라 허공으로서인 떡 내가 된단 말이여. 허공으로서인 내가 되면 내 몸뚱이는 어떻게 되느냐 내 몸은 바로 이 허공이 내 몸이라. 그리면 산이 높고 물이 낮고 이리 해 봤든 말이지 내 속에 있는 것이거든. 그거 내 손발이지 뭣이여. 이런 거야. 그런데 이거 실감이 잘 안 와요. 그러나 이것이 참말로 여러분이 허공으로서인 내라는 걸 딱 인정을 해 버리면, 또 과학적으로 사실 그렇거든. 지금 말하고 보고 듣고 설명하고 냄새 맡고 하는 이거 허공이거든. 지금 눈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보는데 이건 하나의 기관이지 보는 놈 따로 있거든. 코라는 기관을 통해서 냄새를 맡는데 이 맡는 놈은 따로 있거든요. 허공이 맡고 있거든.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지만 이거 허공이 말하지 내가 말하는 거 아니거든.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알 거란 말이여.
입에 성품이 없어. 물론 내 몸에 성품이 없어. 이거 허공이 이렇게 시키고 있거든. 허공, 허공신, 법신. 내 허공 허공 하는 것은 법신이라는 걸 인식시키려고 하는 말인데, 허공이라고 해도 돼. 허공신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어. 이 법신이란 허공성에다가 슬기를 둔 것이 법신이거든. 그러니까 이걸 갖다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아 진짜 내가 허공이구나 이렇게만 생각하면 금시 내가 하는 말이 납득이 가요.
그러나 그런 말 들으면서도 아 내가 듣는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 말이야 이거 안돼요. 사실 여러분이 듣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의 육신이 듣는 거 아니거든. 육신이 어떻게 듣느냔 말이야. 육신이 무슨 성품이 있는 거 아니거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듣기는 허공이 듣고 있거든요. 그러면 여러분의 허공과 내 허공이 어디 둘인가요. 이거 하나거든.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어.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없이 말하고 듣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없이 듣는 거여. 이 이치를 알아야 그만 내가 허공신이 되면서 욕계 색계 무색계가 내 손발이 돼버려.
왜 그러냐면 언제 내가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머리털 내 거지 남의 것 아니거든. 이 손 내 거지 남의 것 아니거든. 손톱 이거 내 거지 남의 것 아니거든. 이 머리털은 머리털대로 따로 있고 코는 코대로 귀는 귀대로 눈은 눈대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있긴 있어요. 근데 내가 있으니까 니가 있다 말이지. 상대 맞서. 내가 있으니 부처가 있어. 내가 있으니 산하대지가 있어. 산하대지 내 머리털 한 가지 아니에요? 내가 있으면 네가 있어. 상대 맞서. 내가 이 손이면 저 사람 건 저 손이거든. 손 이거 상대는 상대라. 그러나 이거 하나지 상대라 할 수 없거든요.
문제는 이걸 가만히 생각하면 참말로 이 몸뚱어리는 성품이 없는 거다. 제일 첫째. 성품이 없음에도 일 초 동안에 약 삼십만 마리의 적혈구 백혈구가 또 죽어 나가고 생기고 죽어 나가고 생기고 지금 현재 우리가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고 이것이 지금 이 몸뚱이거든요. 이걸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내가 뭘 하고자 하면 이 기관을 통해서 해. 뭘 보고자 하면 눈이라는 변하는 이 기관을 통해서 보고 말하려면 이 입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말하고 들으려면 이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듣는다.
이것만 확실히 여러분들이 생각해 버리면 참말로 여러분 색신에 안 들어앉아요. 색신을 그대로 쓸 따름이지 들어앉진 않거든. 그러니까 진짜는 허공 아니에요? 진짜는. 그런데 이것이 납득이 안 가. 가만히 생각하면 그럴 듯싶어. 그럴 듯싶다가도 절대로 납득이 안 가. 그러면 이거 납득이 안 가면 여러분 또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럼 우리가 이 몸 받기 전에는 무엇이던고? 몸 받기 전에는 말이지. 그 때를 한 번 생각해봐. 우리가 전생, 전생이 있기 때문에 말이지 어머니의 배를 인연으로 해서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이렇게 났는데 그러면 어머니의 배에 인연을 맺을 땐 그 땐 무엇이던고? 이걸 생각하면서 또 다시 이거 한 번 생각해 봐요. 본래 우리 소소영영한 자리는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봐요.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이거 생각해 봐요.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알려고 하면 알고 모르려고 하면 모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 무슨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봐요. 그걸 생각하면 알아. 그거 생각 딱 놓고 다른 거 생각하면 그거 몰라. 아는 것이 없어.
그러하니 여러분들이 이거 의심이 가거든 옳지 내가 전생에 전생에도 우리가 이런 몸 나투었거든. 우리 전생의 그 몸 죽어버렸단 말이지 우리 몸뚱어리는 불구덩이나 흙구덩이로 갔단 말이야. 알이, 진짜 여러분의 주인공. 이것이 어머니 배에 인연을 맺었거든. 그래서 이 몸 받은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지 내가 진짜로 어머니의 배로 하여금 인연을 맺게 한 것은 무형무색의, 빛깔도 없고 소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진짜 나로구나. 이런 생각이 나지 않아요?
이거 참 실감이 안 와요. 이거 상당히 공부한 사람도 그래도 이거 뭐, 이래 쌌소. 말을 하려고 하면 그 말이 맞다고 해. 그 말에 반대는 안 해. 근데 왜 그런 실감이 안 오나 할 것 같으면 이건 슬기가 모자라서 그렇거든. 또 슬기 슬기 해 봤든 이 슬기 당처가 빈 거네. 이런 이치를 알아버리면은 실감 가고 안 가고도 없는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진짜 여러분은 말이지. 진짜 여러분의 주인은 말이지 아무 모습도 없는 거예요. 그렇게만 아세요. 이것이 의심이 나면 내가 전생에. 전생의 여러분의 몸들은 숨이 넘어가 죽어버렸단 말이지. 초상 치뤘을 거여. 전생의 여러분의 무덤들이 아직도 많이 있을 거여. 아마 백 나(개)는 있을 거여. 우리가 못 찾아서 그렇지. 여러분들 그거 생각 안 해 봤죠. 백련화 보살, 무덤 생각해 봤소? 안 해 봤죠? 그렇지? 하하하.
“해 봤습니다.”
해 봤소? 거 굉장하구나.
그러니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우리가 과거를 무시해 버리면 오늘 설법도 필요 없는 거요. 금시 말도 필요 없는 거라. 그러나 그거 아니거든. 보고 듣고 말하는 놈은 죽을래야 죽을 것이 없어. 살래야 살 것도 없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거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말도 나오는 건데. 그러니까 이 놈은 하늘과 땅을 앞해서 있단 말이지. 왜 그러냐. 아무 것도 없으니까. 하늘과 땅은 모습이 있어. 땅은 모습이 있어. 하늘도 둥글둥글해 봬. 우리 눈동자가 둥글기 때문에 그것도 둥글게 봬. 그래서 푸르무리하게 자외선 봬. 이것도 하나의 모습 아니라?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앞해서 있단 말이야.
왜 그러냐. 모습이 없으니 이 놈이 언제부터 나왔단 말이 나올 수가 있어야지. 그러하니 하늘과 땅을 앞해서 있단 말이거든. 또 모습이 없으니 이건 언제 죽는단 말이 성립이 안돼. 죽을 게 있어야 죽지. 아, 우리가 그러한 주인공이라. 이러한 주인공인데 하늘과 땅을 앞해서 있고 하늘과 땅을 뒤로 해서 허공으로 더불어서 의젓하게 있는 이건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해서 이 놈을 무시해 버린단 말이여. 사람이 죽을 지경이란 말이야. 이것 보여 봤든 상대성, 상대성은 자꾸 변하는 법이라고 말하지 않아? 여기만 쏠리기 때문에 실감이 안와. 어째서 실감이 안 온다고 이래 쌌는데 그 자리는 실감 올 것도 없고 안 올 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이 그거거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여의어라. 경계 같은 거, 다 여기에 들어가거든. 일체 경계에 들어앉지 마라. 일체 경계란 헛거다. 헛것에 들어앉지 않으면은 그만 본래로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그 소식에 들어앉느니라. 이 말씀 아니에요? 그 소식에 턱 들어앉으면 내 몸뚱이 뭣이냐. 이거 허공이 원래 없는 것이거든. 그러면 아무것도 없단 말이지. 그만 허공 아니라? 그러면 허공 속에 있는 태양이니 지구니 산이니 돌이니 뭣이니 전부 내 수족 아니라? 이런 결론이 나는 것이여. 어때요? 대강 알겠죠? 백련화 보살은 모를 거여. 하하하. 왜 모르냐 할 것 같으면은 많이 빠졌거든. 그러나 대강 알 거여.
대광화 보살, 아시겠죠? 웃는 그 놈은 누구요. 나타나기는 이것이 나타났어. 그러나 웃는 그것은 성품이 없거든. 나타나기는 나타났는데. 그러니까 허공이란 것이 묘한 거여. 이거 알고 보면 참말로 무시 못해. 지금 아무 모습도 없는 것이 웃거든. 이 웃는 것이 여기 나타난단 말이지. 여기 성품 없는 데에 나타나. 아무 모습도 없는데 지구를 나투지 태양을 나투지 별을 나투지 구름을 나투지. 구름 같으면 수증기가 올라와서. 수증기는 어디서 나오냔 말이여. 수증기의 앞 소식에 어디 모습이 있던가? 불은 또 어디서 나오느냐. 불의 앞 소식에 어디 모습이 있던가?
그러하니 어떻든지 말이지 문제는 학생들도 대강 짐작해서 알 거야. 그러하니 어떻든지 진짜 나를 찾으라 그 말이여. 그럼 진짜 나는 무엇이냐. 찾을래야 못 찾는단 말이여. 왜 그러냐. 아무 모습이 없는 거라. 모습도 없고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는 거라. 그러니까 그대로 허공이라. 이걸을 나로 알라 그 말이여. 이것이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 보라 말이여. 생각을 해 봐서 딱하게 맞다고 하면 그걸 믿어야 돼. 믿어야 돼. 그러하면은 인생관이 달라져. 실감이 나.
만약 이것이 거짓이라면, 관념적으로 나는 믿으라는 거 아니여. 어디까지라도 과학적으로 어디까지라도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 봐서 말이지 아, 참말로 말하는 놈은 말이지 이 놈을 시켜서 말은 하지만 생각하는 그 놈, 참말로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구나. 허공에 아무 것도 없잖아? 허공이나 한가지구나. 옳지, 이걸 법신이라 하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 보라 말이여. 이것이 아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말이지 여기서 여기까지가 내고 여기서 여기까지가 니라는 말이 성립이 안 되는 것이거든.
어째 백운, 어떻나? 납득 가나?
“완전히 납득 못 하겠습니다.”
완전히란 말이 여기 들어붙나. 어디. 참 내 죽도록 설명해도. 이거 가죽주머니 여기 들어앉아서 그렇단 말이여. 지구덩어리 여기 들어앉고 집 여기 들어앉고 가죽주머니 여기 들어앉아서 그렇단 말이야.
“거기 대해서 알기는 알고 있습니다.”
알기는 알아? 그러면 실감이 안 온단 말인가? 실감이 안 오면. 그럼 네가 네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때 니 전신은 죽었거든. 니 전신은 죽었어. 알음알이, 알이, 여김. 이것이 어머니 배와 인연을 맺을 때는 무엇이던고? 아무 것도 없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비로소 이 몸을 갖다가 십이 인연으로 구성된 거야. 그땐 그렇게 생각해 봐. 그럼 과연 그렇구나. 알아져. 내 언젠가 그리 하지 않았어? 손가락을 집에 가서 까딱까딱 해 보라구. 이거 해 보았는가? 이거 물론 손가락이 이리이리 하지만 손가락 자체에 성품이 없다는 건 느그 알잖아? 성품 없거든. 이거.
이렇게 까딱까딱 시키는 것은 무형무색의 허공이 시키잖나? 허공신이 시키지 않나 말이야. 몸 신자 하나 붙이자 말이야. 그래야 우리가 알아듣거든. 허공이 시키는 거 아니라? 이렇게 해서 차차차차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이리 해 보면 나중에 탁하게 실감이 와요. 이것이 실감이 한 번 오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요. 참말로 문제가 커요. 인생관이 달라져요. 이것이 납득이 안 가면 금시 읽은 것, 이것이 소화가 안돼. 어찌 산하대지가 내 수족인고? 허공이 진짜 내 아니라? 허공성, 법성체, 법성신, 여기서 산하대지가 나왔단 말이야. 그거 내 그림자 아니라? 법성신이 법성토를 나투거든. 아무 것도 없는 그 모습이 아무 것도 없는 그 몸이 모습 있는 국토를 나투는 거야. 이거여.
그러니까 사바세계도 국토, 장엄세계도 국토, 욕계 색계 무색계도 국토, 천당 지옥도 국토거든. 이것이 법성체에서 오는 거여. 이 법성체는 아무 모습이 없어. 꼭 허공이나 한 가지라. 이걸 갖다가 학생들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단단히 알아서 잘 납득이 안 가거든 자꾸 의심을 해 보란 말이여. 의심을 해 봐서 이것이 납득이 안 가면 또 나한테 물어야 돼. 그러나 다시 물을 것이 없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한 말이 맞아. 법은 옳은 대로 배워야지 옳은 대로 안 배우면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 여기 머리털 하나만 틀려도 생사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니거든.
참말로 어떤 큰 신이 있어서 우리가 거기에 의지해서 심부름꾼이라도 된다면 그건 별 문제여. 그건 별 문제여. 하지만 부처님 그거 아니거든. 너희는 불교 공부 잘 해서 내 심부름꾼 되라 해서 팔만대장경에 말씀 해 놓은 거 없어. 절대로 없어. 깨친 그 자리가 바로 부처 자리다. 그러니 너희가 그걸 깨쳐서 부처가 되라 이렇게 말씀했지 너희 공부 잘 해서 내 심부름꾼 되라. 이런 거 없어. 될래야 될 수도 없는 거여.
그러하니 다시 말하자면 이걸 잊어버리지 말아야 돼. 허공으로서인 내, 이걸 잊어버리지 말아야 돼. 묘덕이 알겠지? 허공으로서인 내. 알제?
“네”
근데 급방 물으니까 네 하고 대답하지만 문 밖에 나가면 색신으로서인 나로 돌아간단 말이여. 어째, 알겠소? 보살님. 어떻소? 백련화 보살, 색신으로서인 백련화 보살이요 허공으로서인 백련화 보살이요? 진짜로 말해 보소. 색신 지금 변하고 있거든. 지금 현재도 변하고 있어요. 지금 생기고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거든. 지금 우리 몸이 말이지. 적혈구 백혈구가 일초 동안에 약 삼십만 마리 자꾸 변해. 그러니 이거 내라 할 수 없잖아? 그렇잖아요? 일단 이거 성품이 없는 거 아니라요? 예 하고 대답하는 그 놈은 뭐냐 할 것 같으면 입을 빌어서 대답하는 그 놈은 무엇이냐 할 것 같으면 법신이거든. 무엇이냐 할 것 같으면 법신이거든.
그런데 이것이 잘 납득이 안 가. 박 군, 어떻나? 납득 가나?
“조금 갑니다.”
조금 가? 이거는 조금 가고 많이 가고가 없어. 머리털만치만 가면 다 알아버린 거여. 원래 여기는 큰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결론이 되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든지 우리는 여기서 말이죠. 잔소리하지 말고 넘어갑시다. 어떻든지 여러분은 허공으로서인 여러분으로 알아야 돼. 어쩔 도리가 없어. 이건 마 어쩔 도리가 없어.
그러면 허공으로서인 여러분이라 하면 여러분의 진짜 그 자리, 그 자리는 바로 고요적적한 자리여. 진짜 그 자리는 바로 삼매 자리라. 멸진정 자리라. 그 자리는 아는 것도 없고 모른 것도 없어.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기 때문에 알려면 알아. 잊어버리려면 잊어 버려.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라. 그 자리는. 정도도 아니고 사도도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정도를 쓰려면 정도를 쓰고 사도를 쓰려면 사도를 쓰거든. 참 이거 자유자재라. 깨친 자리도 아니고 미한 자리도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올바른 결과를 가지면 말이지 허공으로서인 나를 생각하면 이건 깨친 자리고 색신으로서인 내다 하면 미한 자리거든. 마음대로 해. 미하려면 미하고 깨치려면 깨치고 착하려면 착하고 악하려면 악하고 알려면 알고 모르려면 모르고 그래. 이 자리가. 참 묘한 거여. 묘한 거여. 참말로 묘한 거여. 그러니까 이걸 갖다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거든요.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색신을 나퉜지만 말이지.
그러니 우리는 어떻든지 말이지 폐일언지 하고 말이지 옳지 허공으로서인 내다 이걸 한 달이나 두 달이나 늘, 아이들 군말 하듯이 이렇게 해 보세요. 남 보면, 친구가 보면 이 사람이 살짝 돌았네. 어디 설법 들으러 다니더니 살짝 돌았네. 그 말 듣도록 한 번 해 보란 말이여. 돌았다 해도 상관없어.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사는데 남 돌았다 한들 무슨 상관있느냐 말이여. 그런 거 개의할 필요 없어요. 좀 돌았다 소리 들어도 좋아.
허공으로서인 내. 허공으로서인 내. 하루 백 번만 해 보세요. 백 번만 해서 한 열흘 해 봐요. 하루 백 번 해서 열흘이면 천 번가? 해 보면 그때 실감이 와. 누가 오지 마라 해도 실감이 와. 이래서 우리의 사고방식을 한 번 휙 하게 바꿔 나야 돼. 지금 왜 그러냐. 우리가 늘 뒤바뀐 생각만 자꾸 하거든.
그러하기 때문에 무슨 옳은 말 들을 때는 그럴 듯 하다가도 그 말 딱 끝나면 또 확 뒤바꿔서 아 이건 내다 어쩌고 물론 내가 쓰니까 내라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완전히 내가 쓸 때까지는 우선은 이걸 분별을 해서 말이지 그리 한 번 다 놔야 돼. 그러니까 내 말에 무슨 이의는 없을 거여. 이의가 있다면 허공으로서의 내, 그 허공 그 없으니까 이것이 내다. 이렇게 밖에는 말할 것이 없거든. 그러니 이것은 거짓이고 허공은 진짜다 하는 걸 갖다 말이지 얘기했으니 여러분들이 실감이 어느 정도 가는지 안 가는지 이것이 문제지만 이의는 없을 거여. 확실히 알아요.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루 한 백 번씩 해봐요. 염주들 있으면 말이죠 이거 헤아리면서 하루 백 번이나 천 번이나 딱 정해 놓고 말이죠. 잠잘 때도 이불 속에 드러누워도 좋아요. 백 번 천 번 하는 거 문제 아니에요. 내 시키는 대로 하세요. 허공으로서인 내, 허공으로서인 내, 허공으로서인 내. 의미 몰라도 좋아요. 하루 백 번이나 천 번 해보세요. 한 열흘 계속 해 보세요. 계속 해 보면 실감이 온단 말이에요. 실감이 와.
왜 그러냐. 옳은 건데 어째 실감이 안 오겠나요? 옳은 말인데. 반드시 오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서 실감이 온다면 문제가 달라져. 차차차차 깊은 뜻으로서 들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허공으로서인 나기 때문에 죽을래야 죽는 것도 없고 난 것도 없잖아요. 솔직한 말로 이거 내 거 아닌 것, 가짜, 빌려쓰는 것 이까짓 거 죽든 살든 이까짓 거 무슨 상관있어요? 세상 사람들 이걸 내라고 해서 막 단장을 하고 야단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이 놈이 내기 아닌 것은 내 말을 안 듣기 때문에 내가 아니지 않나 말이여. 이건 내 말 듣는다면 내 늙지 말라면 안 늙어야 되지 않겠소? 머리 희지 말라면 희지 말아야 되는데 머리가 허연데 이거 어디 내 말 듣나요? 안 들어요. 어느 모로 보든지 이것이 내가 아니라는 건 여러분들이 알아. 내가 빌려 쓴다는 건 여러분들이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어느 정도까지 실감이 가는가 이건 그건 모르겠지만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 놈 이 놈 말이지 이 놈은 진짜 내다 하는 이걸 갖다 알기 시작하면 말이죠 문제가 달라져. 학생들 알겠지? 자 어떻든지 그렇게 생각하란 말이여.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자 차차차차 슬기가 나와. 나오는 거여. 이거 첫 문제여. 첫 문제.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 이거부터 알아야 돼. 이걸 모르고 천 년 만 년 공부했자 안된단 말이여.
왜 그러냐. 이거 모르고 딴 거 해 봤든 어떻게 돼? 지엽 문제밖엔 안 되거든. 이거 근본 문제. 이건 뿌리를 다스리는 거 아니라? 뿌리부터 다스려야 나중에 꽃도 피고 열매도 열지 말이지 가지에 들어앉아서 열매에 들어앉아서... 그거 떨어지면 어떻게 되냐 말이여. 어떻든지 근본 문제를 다뤄야 돼. 근본문제. 생사는 뭣이냐. 생사의 뿌리는 여기 있거든. 여기 달려 있거든. 근본문제에 달려 있지 생사문제가 줄기나 어디 이파리에 달려 있는 건 아니거든. 이거 절대로 알아야 돼. 그 다음에 또 한 번 읽어 봐요.
[강송] 생사거래 두려움이 없을 것이요. 수자상을 여읨으로서 나라 일컬으는 몸이 허망하여서 실답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끝이 없는 허공으로 더불어서 옳고 그르고 굽고 곧음이 없을새 뫼가 높고 물이 낮음은 나의 손발이요. 바람이 불고 구름이 감돎은 나의 나들이요,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귐은 나의 놀음인지라 따로 상대할 삼계를 다시 어디에서 찾겠는가 (p94:13~ )
여러분들이 허공으로서인 여러분의 입장이 된단 말이지 이런 기분을 가져 봐요. 가지면은 지금 우리가 색신으로 보기 때문에 니니 내니 있는데 허공으로서인 나를 걷어잡지 못해. 아무 빛깔도 없어. 다만 소소한 나, 아는 것, 소소하니 슬기만이 있단 말이지 슬기 해봤든 그것도 허공성이거든.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보아 버리면 말이지 이 온 누리의 가도 가도 끝없는 누리에 상대할 것이 없어. 그만 내 혼자뿐이라. 아무 것도 없어. 이런 기분을 여러분이 가져보란 말이여.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색신으로 돌아오면 있지. 네가 있고 내가 있고 산이 있고 물이 있고 있지.
그러나 산도 허공성, 우리 몸뚱이도 허공성, 그러기 때문에 완전한 슬기 이 놈만 딱 가지고 있어. 보는 것, 그만 아는 것 소소영영하니 아는 것. 경계에 머물지 말고 아는 것. 이 놈만 떡 가지고 있어 봐요. 내 얼굴 보지 말고 손도 보지 말고 이래서 눈이 여깄다 내 얼굴이 여깄다 이런 생각을 내지 마라 말이여. 이 얼굴, 이 머리가 무슨 생각한다 이 생각도 하지 말고 말이지 전부 방하착해 버려. 전부 방하착해서 그만 아는 것, 이 놈만 딱 가지고 있으면 온 누리에 그거 하나뿐이에요. 온 누리에 그거 하나뿐이에요. 그런 거예요. 언제라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하면 내 얼굴이 뵈는가 내 손이 뵈는가? 손 그 까짓 거 보나 안 보나 한 가지거든. 나는 없어. 딱 하게 이 몸뚱이에 머물지 않으면 몸뚱이도 싹 잊어버려. 아는 것 하나만 환하게 있어. 상대가 끊어지는 거여. 상대가. 그래서 인제 되돌아서 손도 두고 팔도 두고 삼계도 두고 헛거인 줄 알면서 친구도 두고 되돌아서 이런 거여. 다른 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강송] 상대할 삼계를 다시 어디에서 찾아보겠는가 그 말이다. 이렇듯이 사상을 이미 여의면은 곧 법눈이 밝고 투철하여서 미하고 깨침에 붙이지 아니하고 이변 삼제를 여읨으로서 스스로의 참마음인 진종묘도를 제 스스로가 깨쳐서 제 스스로가 증득하는 것이니 비로소 진노 망념 길이 여의고 스스로가 가없는 복덕을 얻기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법상도 아닌 법상도 취하지 아니하여서 항상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 법을 뗏목으로 비유하심과 같이 행할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가 자못 도에 드는 방편이기 때문이니 일단 방편에 의하여서 도에 들었다면은 그 방편은 마땅히 버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니 방편인 법도 버리려든 어찌 항차 아닌 법을 버리지 않겠는가는 말씀이시다. 이 소식에서 온갖 것을 다 놓으면 되돌아 온갖 것은 모두가 내 것이 되는 소식이니 이러니 무상도는 행하여지고 전하여 지면서 이 땅에 도가 끊어지지 않고 펴어짐을 뜻하심으로 알아두자. (p94:17~ )
이거 시간이 다 됐는데 내일 또 합시다. 모든 법이 전부 방편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저기 건너가는 데는 뗏목이 필요해. 저기까지 가는 데는 자동차가 필요해. 버스가 필요한데 말이지 집에 가면 필요 없어. 집에 가면 버스에서 내릴 줄 알아야 되지 말이지 방에 들어가도 맨날 버스 생각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지? 그와 마찬가지로 말이지 이건 내일 설명하지. 좌우간 여러분들 허공으로서인 여러분 그거 잊지 마세요. 하루한 백 번이나 천 번 그리 해 보세요. 해 보면 반드시 공덕이 있습니다. 염불 만 번 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하루 염불 만 번 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 과학적입니다.
머물지 않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방하착 해야 된다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죽을 땐 이 놈이 죽는 거 아니라요. 거기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소소영영한 그 자리 본심 그대로 가는 것이거든. 자신의 본심도 모른다는 말. 그러니 여기는 서로 토론 거리도 못 되요. 우리가 공부하는 자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