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백광현 뒷이야기 38 - 우희와 서각
결국 이명환 일행은 우희의 부골저 치료에 실패했다.
그리고 백광현은 청나라 태의에 의해 청의 궁궐로 불려왔다.
광현 :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조선 수의의 시료가 실패했다니,
허면 황비마마께서 다시 위중해지셨단 겁니까?
태의 : 그렇네! 분명 며칠간은 호전되는 듯 보였는데...
광현 : 저(疽)가 깊어진 원인,
그것이 오장육부에 있는 것이로군요.
뼈에서 시작 되 안으로 파고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오장육부의 어디선가 시작된 독이 뼈로 전이가 된 것 말입니다!
이명환의 처방도 훌륭한 처방이었다.
뼈의 한기를 다스리는 대방풍탕,
그리고 외과술을 쓰지 않아도 마치 외과술을 쓴 것과도 같은 효과를 내는 천산갑.
이 처방도 훌륭한 처방이었다.
그런데도 이명환이 실패한 이유는 병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었던 것이다.
부골저란 뼈에 생기는 종기라고 하였다.
종기라고 하는 이 병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에 대한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이명환은 부골저의 뿌리가 뼈에 있다고 보았기에 뼈를 다스리는 처방을 쓴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희의 상태는 그렇지 않았다.
우희의 뼈가 곪아가고 썩아가는 이유는 단지 뼈 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몸속 깊은 곳 오장육부에서 시작된 독기가 근골로 퍼져나온 것이었다.
근골에서 오장육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장육부에서 근골로 퍼져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희의 오장육부를 병들게 한 이유는
황제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복용해 온 서각이라는 약재 때문이었다.
자신의 체질과 맞지 않은 약을 단지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유로
장기간 복용함으로써 우희의 신장이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각은 성질이 매우 차갑다. 서각은 열독(熱毒)으로 인한 제반 병증에 쓰는 약이다.
만약 장복한다면 몸에 한독(寒毒)이 쌓이게 만든다.
그것이 우희의 신장을 병들게 하고 그 한독(寒毒)이 뼈까지 병들게 만든 것이다.
앞서 이명환이 우희의 부골저에 처방했던 아성고의 작용으로 인해
썩은 뼈에서부터 피부까지 통로가 뚫렸다.
외과술을 쓰지 않았는데도 마치 외과술을 쓴 것처럼
부골에서부터 피부까지 통로가 뚫린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부골에 쌓여있던 고름이 피부를 뚫고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름은 나오지 않고
검은 물이 피부를 뚫고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자세히 본 백광현은 원인을 알아차린 것이다.
만약 서각을 장복하게 되면 종기의 고름이 고름이 되지 못하고
썩은 물이 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종기에는 고름이 고름이 되어야 예후가 좋다.
고름이 고름이 되지 못하고 냄새나는 썩은 물이 되면 예후가 안 좋다.
서각의 부작용으로 인해 우희의 부골저 부위에서는
고름이 아닌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광현 : 신장(腎臟)이군요.
신장에 사기(邪氣)가 퍼져 그 독이 골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우희의 병을 간파한 백광현은 먼저 신장을 다스리는 치료를 한 후에
그 다음에 부골저에 대한 치료를 한 것이다.
참, 병 치료란 어렵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병을 치료함에는 반드시 그 근본을 구하라.'
(치병필구어본 治病必求於本)
뒷이야기의 뒷이야기>
혹시라도 이번 에피 보고서 어디다 대놓고 말은 못하고
그저 서각을 구할 수 없을까 몰래 알아보는 분이 생길까봐 저어되네요.
그러시면 절대 아니 되옵니다!
게다가 서각이 사랑의 묘약이라는 것은 속설로 밝혀졌다고 하니
혹여라도 관심을 가지지는 말아 주세요. ^^
(39번째 이야기 곧 이어짐)
드라마 <마의> 주인공 백광현은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의 놀라왔던 의술과 환자를 사랑했던 마음과
임금에 대한 충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행적을 그냥 묻어둘 수가 없었기에 여러 사람과 나누고자 글을 썼다.
오죽했으면 소설가도 아닌 사람이 역사소설을 직접 썼으랴...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