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기도와 야고보서의 기도가 응답이 되려면
(기도의 응답이란 요구에 대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도 응답이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이 기도와 간구대로 이루어 주심을 뜻함)
** 이 글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자면서 가족방에 올린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히스기야는 유대(이스라엘 포함)의 역대 왕들 중 한 두명 안에 들어갈만큼 여호와 앞에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에게도 중병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회개의 기도를 전합니다(사 38:1~6).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말을 듣고 벽을 향해 통곡하며 눈물의 기도를 올립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하여 15년간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왕하 20:5,6).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본인 치유는 물론, 예루살렘성도 강대국(앗수르)의 침공에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들처럼 공동체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공식적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유대 공동체에 내에서 이런 절차가 없었으므로 비공식 지도자에 불과합니다(왕족이고, 외교의 자문역을 하고 있었지만). 이사야는 유대 공동체에서 공식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그럼에도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였고, 그의 말을 들어서 순종함으로 15년 생명 연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대의 왕들은 거의 모두가 비공식으로 세운 지도자,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왕이 된 후 이사야를 유대 공동체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그를 (톱으로 썰어서?) 죽였습니다. 이사야는 희년법 순종자이지만(사 37:30, 사 61:1,2), 므낫세는 바알법 추종자이었습니다(왕하 21:2~9). 이러한 영성으로 인하여 유대는 패망하고, 백성들은 70년~140년 포로 생활로 들어갑니다(대하 36:21).
우리는 여호와 앞에 참과 거짓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하고, 신분을 떠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공식 지도자는 비공식 지도자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전언이라면, 그 말을 듣고 순종해야 기도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비공식자의 진언은 이 말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 말씀에 부합하는지 칼날 같이 예리한 영성과 지성(지혜)으로 듣고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사야처럼, 히스기야처럼 신분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기도>
야고보는 교회에서 병든 자가 있으면 이렇게 기도하라고 합니다(약 5:15:13~16).
먼저 교회가 세운 장로들을 청하라고 합니다. 장로는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합니다(이사야는 히스기야 환부에 무화과 반죽을 바름).
이것은 교회가 세운 장로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교회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장로는 목사도 장로에 해당하지만, 그런 목사도 병이 나면 장로를 청해서 기도를 구해야 합니다. 평신도는 물론 직급과 나이에 구분 없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조직은 역할이 다른 직분자는 있어도 그 직분이 계급은 아닙니다.
그다음은 서로서로 죄를 고백하고 기도해야 합니다(약 5:16).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는 죄가 사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막힌 담이 허물어집니다. 기적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의 수직적 관계는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도 진정으로 다가가서 풀어야 합니다(마 5:23~26). 그리고 나서 전심전력으로 갈급한 심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올려드린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의인의 기도가 되어 역사하는 힘을 가집니다(약 5:15,16). 야고보가 말하는 질병에 대한 치유 기적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온전한 회복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영웅 호걸, 어떤 능력자나 직분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죄사함을 받아서 영적으로 깨끗한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공동체에서 뽑아 세운 장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기 주관적 판단으로 불신하게 되면,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장로는 성도들에게 이런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자기를 쳐서 복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늘 기도를 하고 있고, 때로는 특별한 방식을 취하면서 열과 성, 시간을 투입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에서도 야고보가 말하는 내적 조건을 채워야만 바라는 응답이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기도와 치유의 응답>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치유 사역은 20회가 넘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와 의인의 간구에도 응답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치유의 은사(사역)를 위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모두 일찍 죽어야(순교해야) 했습니다. 그런 은사나 기적이 당면한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그들의 육적인 삶이 더 행복했고, 오래 살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치유의 은사가 있으며, 남의 병을 고치고 귀신도 쫓아냅니다(행 16:16~18, 19:11,12). 그러나 바울도 자기 몸의 질병(육체의 가시)은 치유받지 못했습니다(고후 12:7). 바울이 병 낫기를 위하여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이에 대한 응답은 이렇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러므로 오히려 약한 것을 기뻐하고 자랑하리니...(고후 12:9)"라고 합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치유함을 받았지만, 예수님께 나아온 자는 이방인 1명뿐입니다(눅 11~19). 질병을 치유받은 자는 10명이지만, 그리스도인은 1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병의 치유가 복음 전파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닌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죄사함을 받아서 영생을 얻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리고 살아서는 주신 기업에서 삶의 자유를 누리고(레 25:9,10, 눅 4:18,19), 나중에는 영원한 기업(하늘나라)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고, 소망입니다(히 6:12, 9:1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납니다(히 4:12,13).
*** 글의 내용에 혹시 생각이 다르거나 성경적 이해에 오류가 있으면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