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전보삼" 교수님이 관장으로 계시는 "만해 기념관" (萬海 記念館)을 찾았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선생의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尋牛莊)도 가 보았고, 망우리의 묘소(墓所)도 가 봤지만 "만해 기념관" (萬海 記念館)을 와 보기는 처음이다.
꽃 한 송이 기리는 삼월의 노래
만해 선생의 넋을 기려며 최동호
大韓 獨立 萬歲 선창한 서릿발 사나이
옥중에서 홀로 부른 침묵의 노래를
民族의 祭檀에 바치니
자유와 해방의 꽃 한 송이 붉게 타올라
나라 잃은 朝鮮의 민중들이 일어서서
함께 부를 노래가 되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亡國의 어둠을 밝혀줄 등불이 되었어라
민족의 精氣 빛나는 勇猛한 청소년들아
캄캄한 밤하늘 푸른 눈동자들아
불의의 질곡을 깨트리고
世界의 中心을 당당하게 이끌어 나아가라
겨울 설악산 서릿발 사나이가 獄中에서
홀로 부른 沈默의 노래가
民族의 聖地 남한산성에
천만 송이 붉은 꽃으로 피어나게 하여라
2021년 8월 29일
"만해 기념관" (萬海 記念館) 내부 모습.
"십우도"(十牛圖)는 "소를 찾는다"라는 뜻의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한다.
"여시산방"(如是山房) "조종현"(趙宗玄)시인이 쓴 "만해 한용운".
만해는 중이냐? 중이 아니다.
만해는 시인이냐? 시인도 아니다.
만해는 한국 사람이다. 뚜렷한 배달민족이다.
독립지사다. 항일투사다. 강철 같은 의지로, 불덩이 같은 정열로,
대쪽 같은 절조로, 고고한 자세로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최후일각까지 몸뚱이로 부딪쳤다.
마지막 숨 거둘 때까지 굳세게 결투했다.
꿋꿋하게 걸어갈 때 성역(聖域)을 밟기도 했다. 보리수의
그늘에서 바라보면 중으로도 선사(禪師)로도 보였다.
예술의 산허리에서 돌아보면 시인으로도 나타나고
소설가로도 등장했다.
만해는 어디까지나 끝까지 독립지사였다. 항일투사였다.
만해의 진면목은 생사를 뛰어넘은 사람이다.
뜨거운 배달의 얼이다.
만해는 중이다.
그러나 중이 되려고 중이 된 건 아니다.
항일투쟁하기 위해서다.
만해는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이 부러워 시인이 된건 아니다.
님을 뜨겁게 절규했기 때문이다.
만해는 웅변가다.
그저 말을 뽑낸건 아니고
심장에서 끓어 오르는 것을 피로 뱉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럴까? 그렇게 될까?
한 점 뜨거운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도사렸기 때문이다.
2004년 안개낀 가을밤에 "조종현의 만해 한용운" 을 팔달천에서 원강 이재두 삼가적다.
광각렌스로 잡은 "제1남옹성"의 모습.
李舜臣 사공삼고
(이순신)
乙支文德 마부삼어
(을지문덕)
破邪劍 높이들고
(파사검)
南船北馬 하야볼까
(남선북마)
아마도 님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당시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과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참패한
일본의 장군 "와카자키 야스하루"(脇坂 安治)가 한 말이라고 한다.
"님의 침묵" 초판본에 실린 글.
"님의 침묵"을 금판(金版)에 새겼다.
첫댓글 자주 보려고 스크랩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만해 한용원 선생을 다시 떠올려 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님의 침묵을 음미하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