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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두사람 모두 잘 못잤는지 얼굴이 부석부석하다. 그래도 동침한 사이면 인연이 깊은 사람들인데, 그냥 헤어질 수 없어 앞날의 행운을 서로 빌어주었다.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의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패션의 일번가 파리, 샤넬향수가 있고, 와인이 향기로운 나라. 그래서 여성이라면 한번쯤 프랑스를 짝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라고 해서 하루 아침에 지금의 여유롭고 자유를 누리는 세계 문화 중심국은 아니었다. 프랑스 역시 군주의 독재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다가 불과 250여년 전에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로 돌아간 나라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연합군 측의 선봉장이 되어 나치 독일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현재의 프랑스가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여고시절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프랑스 문화를 처음 접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프랑스를 짝사랑하지 않았나싶다. 그것은 불어 선생님은 우아함 그 자체였다. 거기다가 시간마다 양념으로 들려주는 프랑스라는 나라와 그 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들의 넋을 쏙 빼 놓은 것들이었다. 우리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프랑스를 막연히 동경하며 졸업을 하였으니까.
특히 프랑스를 사랑하는 대학선배가 있었다.
졸업하고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하루는 선배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거의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나가보니 낯모르는 몇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모두 나와 같은 사람(우유부단)들이다. 선배는 곧 휴직하고 파리로 유학을 떠나는데, 금전적으로 어려우니 매월 어느정도씩 도와주면 나중에 잘 되면 갚겠다는 정말 어려운(?) 부탁을 했다.
10년 넘게 벌었으니 어느정도 저축이 가능했을텐데 이것도 방학 때마다 프랑스에 사전답사 다니느라 다 써버린 상태라고 했다. 사정을 듣고보니 정말 딱했다. 그래, 무슨 분야의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느냐고 물었더니, 미디어 쪽이라고 했다. 나는 선배가 한 번도 미디어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하여 미디어 공부를 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달리 할만한게 없어서 미디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공부를 꼭 하고 싶어서 가는 유학이라면 쌍수들어 환영했을 텐데, 파리로 가기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째 좀 이상하였다. 더 쇼킹한 것은 다시 들어올 생각이 전혀없고, 할 수만 있다면 프랑스 남자 만나서 아주 눌러앉을 생각이라는 것, 어쩜 그것은 그 선배하고 딱 어울리는 일일 것이다.
나도 때로는 아이들과 평생 씨름하면서 사느니 훌훌 털어버리고 유학이라도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어쨋든 많은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인정도 1위인 교직을 그만두고 떠나는 사람들은 참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파리에서의 이틀은 쏘아 놓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동역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별 세개짜리 호텔로 들어갔다. 가격도 저렴하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보니, 넓은침대에 탁자, TV,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창문을 열자 눈부신 아침햇살이 방 안 가득히 들어왔다. 창 밖으로 크고 튼튼한 파리의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이 방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며 점심때까지 늘어지게 잤다.
8년 전에 바로 이 근처에서 3일간을 머물렀기 때문에 이 곳이 낯설지가 않았다.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이 권하는 오늘의 요리 중에서 훈제 연어에 으깬 감자와 당근이 곁들여 나오는 것을 먹었다. 부드럽고 입 안에 살살 녹는 것이 그만이었는데, 7천원 정도의 돈으로 커피까지 곁들여 마셨으니, 저렴하게 프랑스 요리를 맛본 셈이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었겠다, 날씨도 좋겠다 하여 걷기로 하였다. 파리 시내는 좁아서 전철을 타지 않아도 조금만 걸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테 섬 방면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면서 보니 예전에 이 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한적함은 사라지고, 자동차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늘어난 가게들로 복잡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좋게 변한 게 아니라 어딜 가도 사람과 자동차, 장사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이제는 사람 구경도 여행 상품으로 넣어야 할판이다.
시테 섬은 모양은 서울의 여의도와 같지만, 크기는 훨씬 작은 섬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지붕의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들의 숲을 누비다 보면 바로 눈앞에 낯이 익은 성당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노트르담이 있다. 좌우대칭으로 모양을 낸 이 성당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며,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왼쪽으로 난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장식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다. 또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따로 전망대에 오를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나는 파리를 가장 마지막 코스로 잡았지만, 누군가 내게 여행 계획을 세워달라면 가장 먼저 파리를 보라고 권할 것이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심신이 지치게 되는데, 지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줘도 심드렁해지게 마련이다. 파리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건축, 예술품, 문화상품과 볼거리가 있고, 가는 곳마다 가슴 가득 느껴지는 자유가 있으니, 가장 기력이 넘칠 때 파리를 보는 것이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를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4, 5일은 잡아야 한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하여 오랑쥬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로뎅 미술관, 퐁피두 센터 등 근 현대의 예술품들을 살펴보는데 만도 며칠이 후딱 지나갈 것이다.
또, 로코코 건축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빼놓을 수 없다. 태양 왕이라고 불리었던 루이 14세가 열과 성의를 다해 지은 궁전으로 낭비가 지나쳐 국가 재정의 파탄까지 몰고왔고, 결국은 시민들의 생활이 궁핍해져서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 곳이다. 어디 손바닥 만한 한 곳도 그대로 놔 둔 곳이 없을 정도로 모양을 내고, 사치스럽게 치장을 한 것을 보면 왜 연간 4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지 알 수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SNCF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거리에 있으므로 하루는 할당을 해두어야 한다.
그외, 에펠탑, 개선문, 샹제리제 대로, 바스티유 광장, 몽마르뜨르 언덕, 세느 강 유람 등.
이틀밖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지난번에 갔던 곳은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안갔던 곳을 몇 군데 찾아봅는 것으로 여행의 끝을 장식하기로 하였다.
내일 볼 것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빠리지엔느처럼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5시에 바스티유 계단에서 니스에서 만났던 현정이와 세희를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시간이 있었다.
노트르담을 보고 영화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던(엄격히 말하면 세트지만) 퐁뇌프 다리를 건너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 오르세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여기까지와서 루브르를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섭섭했지만, 가보지 못한 오르세 미술관이 내게는 더 급했다.
내게는 여행 내내 교과서처럼 들고 다니는 책이 한 권 있다. 배낭의 무게를 더느라 다른 책은 다 버렸지만, 이 책은 나와 끝까지 함께한 책이다. 미술 평론가 이주헌 씨가 쓴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이라는 책이다. 여행을 할 때는 속옷 한 장이라도 줄여야 여행이 즐거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속옷 무게의 몇 배나 되는 이 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덕분에 장시간 열차여행 때나, 잠이 없는 밤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은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미술관은 원래 열차역으로 지어진 것인데, 미술관으로 탈바꿈을 하였다고 한다.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역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건물이다. 표를 끊어 안으로 들어가 높이 치솟은 둥근 천장 아래에 서니 내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은은한 채광 아래서 조각품들을 둘러보고, 서둘러 회화 작품을 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마네의 '올랭피아' 다. 나신의 몸으로 침대에 누워 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하듯 자신을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는 '올랭피아'. 부끄럽지도 않은가? 내가 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르셀로나의 산츠역에 서 보았던 한 장면이 뇌리에 깊숙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프랑스의 몽펠리어로 가는 열차편을 알아보고 벤치에 앉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여행객들을 보고있었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여행의 즐거움에 잔뜩 부풀어 있는 순백색의 티없이 맑아 보이는 아가씨들. 그리고 그 옆 의자 귀퉁이에 앉아 무언가를 흐린 초점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흑인 아가씨 한 명. 이들은 일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뚱뚱하고, 내가 지금까지 본 흑인 중에서 가장 진한 검은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로 이 여자를 찍는다면 조리개를 어느 정도 열어줘야 이목구비를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옆의 너무나도 대비가 강한 백인 아가씨들과한 틀에 넣으면서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미소짓던 내 입술은 차갑게 굳어 버렸다. 흑인의 그 검은 피부에 대조되는 백인 아가씨들의 피부는 왜그렇게 더 하얗게 보이는지. 또,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는 그녀들에 비해 흑인 아가씨의 얼굴은 왜그렇게 어두운지. 왜 하나님은 피부색을 다르게 인간을 만드셨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때 가지고 있는 책에 두쪽을 차지하고 있는 마네의 '올랭피아'를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 가면 꼭 실제그림을 보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도 그때 일이었다.
이 그림은 가로가 190cm, 세로가 130cm로 실제인물의 크기로 그린 것 같다. '올랭피아' 는 창녀이지만, 눈부시게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어떤 남성으로부터 전해달라고 받은 꽃다발을 건네 주려는 흑인 하녀가 서있고, 발치에는 검은 고양이도 한마리 앉아 있다. 흑인 하녀는 얼굴이 어찌나 검은지 머리에 쓴 스카프와 눈 흰자위가 없으면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를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고 처음엔 '흑백 대비가 무척 강한 그림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실제의 작품을 대하니, 이런 마음이 든다. '올랭피아의 살결은 충분히 뽀얗고 예쁜데, 그것을 얼마나 더 강조하고 싶었으면 죄없는 흑인과 고양이를 갖다 붙였을까?' 산츠 역에 앉아 깔깔대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티없이 맑은 백인처녀들과 그 옆의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는 흑인 처녀를 마치 그 그림에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람의 미추는 살갖 한 치의 차이라는데, 언제쯤 우리네 인간들은 한 치 살갖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흑백 갈등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복이다. 같은 민족, 그 얼굴이 그 얼굴, 특별히 잘난것도, 못난것도 없는 우리민족. 한 민족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커다란 행복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우리보다 키크고, 잘생기고, 머리좋고, 피부색이 다른 소수의 민족이 우리땅에 섞여 살면서 자기들이 잘났다고 우리를 지배하고 무시한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근대의 이름 있는 화가들의 작품이 무척 많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르노와르의 '물랭 드 라 갈렛의 춤', 밀로의 비너스를 그림으로 옮긴 듯한 앵그르의 '샘' , ' 밀레의 '만종' 등. 제목만 들어도 그림이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의 진짜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사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울퉁불퉁한 붓자국, 잘못 만져 그대로 찍힌 지문 자국이라도 발견할라치면 마치 화가의 아뜰리에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작품 하나 하나를 제대로 보려면 폐관 시각 6시까지 보아도 다 못보았을 텐데 약속시각이 가까워 왔으므로 나머지는 주마간산격으로 보고 서둘러 나왔다.
시간에 쫓겨 지하철을 타고 바스티유 계단으로 가니, 세희는 없고 현정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5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아직 파리는 땡볕이다. 계단에 앉아 잠시 광장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감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니. 현정이에게 '그럼 프랑스에는 이제 감옥이 없는거지?' 하고 장난스럽게 물었떠니, 이렇게 대답했다. '왜 없겠어요.'
근처의 맥도널드에서 콜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일어났다. 여러 날 누구랑 같이 있으면 싫은데, 장시간 혼자 있다가 누군가와 함께하면 또 즐겁다. 니스에서 하룻밤을 같이 묵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우린 벌써 친구가 돼 있었다.
우리는 생루이 섬을 지나 시테 섬을 거쳐 소르본 대학생들이 휴식을 찾아 많이 온다는 뤽상부르 공원으로 갔다. 나무와 꽃으로 무척 잘 가꾸어진 이 공원은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텅텅 비어 보인다. 일과를 마치고 산책을 나온 파리 사람들과 우리같은 관광객들이 각자 자기 앉고 싶은데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 되는 곳이었다.
이 곳에는 특히 포옹하거나 열열한 키스를 하는 연인들이 많아서 우리처럼 볼거리(?)가 궁색한 국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나는 비디오 카메라로 작보 싶은 욕망을 억제하느라 혼났다. 나중에 이런 장면들만 따로 모아 놓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난 용기가 부족하다. 아니면 프로 근성이 없든지. 찍을까 말까 궁리하는 사이 번번히 포옹은 풀어져버리고, 키스는 끝이 나고 만다.
다음에 간 곳은 에펠탑이다. 에펠탑까지는 좀 멀어서 지하철을 탔다. 에펠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는데, 그 곳에서는 파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을 보자 엄두가 안나서 포기하였다. 또, 현정이가 시내가 아닌 지방에 살기 때문에 늦게까지 있을 수도 없었다.
대신 우리는 기판점에서 몇가지 음식을 사서 탑이 보이는 강변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였다. 스쳐 가는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환하게 불을 밝힌 에펠탑을 보고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마치 울이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으로 보여 덩달아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현정이는 선배 언니 집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형부는 베트남 사람이란다. 프랑스에 보금자리를 잡은 한국과 베트남 부부.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서울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