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년 5월 1일 일요일, 맑음, 8℃~23℃
*걷기- 20째 날
*레온(Leon)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
*이동거리 : 25km.
*누적거리 : 500.5km.
날짜를 보니 아내의 생일이다. 저녁에 통화라도 해 봐야겠다. 30여년 가까이 늘 함께 다니던 배낭여행이었는데 처음으로 혼자 나온 것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어제 하루 쉬었더니 발과 몸이 좀 가볍다. 기분도 새롭다.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제공해 준다.
오전 7시가 다 되어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했다. 식빵 하나에 햄, 돼지고기 하몽, 치즈 등을 올려 접어서 토마토와 야채 등과 더불어 먹는다. 따듯한 커피우유와 함께 먹으니 든든하다. 아침 7시 30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동쪽에서 해가 뜬다.
기차 역사를 가리키는 동상과 대성당의 첨탑이 해를 배경으로 검게 드러난다. 바로 옆에 있는 로마 아치 다리 밑으로는 여전히 강물이 흐른다. 거리는 조용하고 깨끗하다. 왼쪽에 쿠에베도 공원을 끼고 쿠에베도 거리를 걸어간다.
쿠에베도는 17세기의 유명한 스페인 염세주의 문학가이자 시인이란다. 귀족들에게 너무 도전적인 시를 지어 미움을 사게 되어 산 마르코스 성당 수도원에 유폐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걸어가는데 도로 중앙에 설치된 빨간 가로등이 멋진 도심이 이어진다.
현대식 건물이 양 옆에 늘어서 있다. 트로바호 델 카미노(Trobajo del Camino) 마을이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던 트로바호 델 카미노는, 20세기 중반부터 레온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레온 근교의 베드타운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보아도 레온과 트로바호 델 카미노는 마치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도시가 바뀐다는 이정표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중세에도 이 마을은 로마 시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도시의 중심에는 레온에서 활동하는 군대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카미노 도시답게 산티아고에게 봉헌된 성당과 산티아고 상, 산티아고의 십자가와 조개껍질로 장식된 성당 등이 있다. 작은 성당을 만났다. 산티아고 성당이다. 이 성당은 18세기에 만들어진 심플한 형태의 현대식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이슬람 인들을 물리치는 산티아고 상이 있다. N-120 도로와 함께 간다. 산티아고 310km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맑은 날씨다. 계속 걸어가니 바로 라 비르헨 델 카미노(La Virgen del Camino) 마을에 도착했다.
새로 닦은 도로 사이에 놓여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그리고 카미노의 성모에게 봉헌된 카미노 성모 성당이 있다. 카미노의 성모는 가족 문제, 순례에 대한 문제와 여러 기도를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해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이 마을을 찾는다.
카미노의 성모 성당(Basílica de la Virgen del Camino)을 만났다. 벽에는 철문이 있다. 성직자, 레온 성당, 카미노의 상징인 가리비, 십자가 문고리, 사자 그리고 각종 문양과 지역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수도사였던 프란시스코 코에요의 작품이다.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이다. 성당에는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락이 청동으로 만든 13개의 조각상이 있다. 이 인물들은 성모 마리아와 열 두 사도를 의미한다. 내부에는 성모의 발현으로 제작된 작가 미상의 16세기 성모상이 있다.
성모 발현 이야기를 찾아본다. 1505년 7월 2일, “엘리사벳의 성모 방문 기념 축제”에 벨리야 데 라 레이나의 목동 알바르 시몬 페르난데스가 가축을 돌보던 중 성모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성모에게 다가갔고 성모는 그에게 말했다. “도시로 가서 주교에게 알리고 이곳에 내 조각상을 보관하기 위한 성전을 세우도록 하라.
그러면 내 아들이 이 땅의 번영을 위해 이곳에 나타날 것이다.” 목동이 놀라서 대답했다. “성모님, 어떻게 하면 절 보낸 분이 성모님이라는 것을 그들이 믿겠습니까?” 그러자 성모 마리아는 목동의 새총과 작은 돌을 집어 들고 돌을 멀리 쏘아 보낸 후 말했다.
“주교와 함께 돌아오면 이 돌이 거대한 바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돌이 떨어진 자리가 나와 내 아들이 나의 조각상을 보관하도록 결정한 곳이다.” 목동이 주교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고 주교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자 모든 것이 성모가 예언한 대로 일어났다.
주교는 이곳에 우미야데로 성당(Ermita del Humilladero)을 지었다. 이 성당은 1961년엔 현대식 성당으로 재건축되어 ‘카미노의 성모 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졌단다. 또 다른 성모의 기적이야기도 있다. 카미노의 성모가 일으킨 기적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522년에 일어난 것이다.
신앙심 깊은 카스티야 출신의 노예가 있었다. 그의 이슬람교도 주인은 워낙 의심이 많아서 그가 도망갈까 의심해 밤에도 노예를 사슬에 묶어 나무 우리에 가두었다. 그러고도 믿지 못해 주인은 우리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잤다. 노예는 매일 같이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어느 날 밤, 나무 우리가 카미노의 성모 성당까지 날아가 노예와 주인을 그 앞에 내려놓았다. 노예와 주인은 기적에 감동해서 여생을 성모를 섬기며 살기로 결정했다. 오늘날에도 이 성당에는 기적의 일부였던 사슬과 나무 우리가 남아 있단다.
도심을 걸어가니 초록 벌판이 나오고 엘 칸닌 분수(Fuente "El Cañin")가 나온다. 분수라기보다 작은 연못이다. 그 앞에 순례자 형상이 만들어져 있다. 그 뒤로 포도주 저장고들이 언덕에 보인다. 좀 더 걸어간다. 10km를 오자 갈림길이다.
어느 길을 가든 오늘 저녁이 아닌 내일 저녁에 만나게 된다. 마토 가구점에서 순례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우리는 우측 길을 선택해야한다. 좌측 길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 숙소가 있는 곳을 만나지 못하고 계속 가게 되어있다.
책에는 우리 길은 회색으로, 왼쪽 길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있다. 카미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다수 있다. 우측 길은 한쪽 길은 2킬로 짧지만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는 길로 시끄럽고 산만하다. 좌측, 다른 길은 길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이다.
우리는 짧은 길을 선택했다.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습니다. 나는 그 두 길을 함께 다 가지는 못할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랜 동안 서서, 한 쪽 길이 굽어 꺾어져 내려간 곳 까지 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의 발자취가 적어서 아마 좀 더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길을 걷게 되더라도, 그 길도 다른 길과 거의 비슷해 질 것 이라고 여기면서......
그날 아침, 두 개의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다른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로 이어져 끝없이 뻗어 감으로,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에서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N-120도로 옆길을 걸어간다. 흙길로 내려가서 왼쪽 교통 표지판이 있는 곳까지 간다. 고속도로 밑에 있는 터널을 지나간다.
통로를 나와 오른쪽 로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산티아고 301.8km라는 표지석이 외롭게 서 있다. 높게 설치된 통신 탑 그리고 급수탑도 지나간다. 다시 N-120도로와 만나 함께 간다.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Valverde de la Virgen)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 마을은 우아한 물푸레나무와 상큼한 초원이 가득하고, 10세기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원래 이름은 발베르데 델 카미노였단다. 먼저 왼쪽에 Colmado "el descanso de Santiago"라는 식료품점을 만났다.
이 마을 성당(Iglesia de Santa Engracia)이 아주 압권이다. 규모가 커서 압권이 아니고 성당의 종탑에 종지기 황새의 둥지가 아주 멋지게 만들어져 있다. 오래되 보이는 성당이다. 사람의 성당이 아니고 두루미의 성당 같다. 카미노 조형물도 만들어져 있다.
책에는 이 지역이 해발 910m의 고원지대란다. 1.5km를 더 걸어가니 San Miguel del Camino마을이 나온다. 오아시스 넬레베(Oasis KneleB)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앞에는 거리 이정표가 만들어져 있다.
레온 13.6km, 아스트로가 36.7km, 비야딩고스 7.5km, 산 마틴 델 카미노 12km. 여전히 N-120도로와 함께 간다. 작은 자갈길인데 등이 뜨겁다. 산 미겔 델 카미노도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바, 레스토랑, 빵 가게가 있다.
화려한 성당과 수도원이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화려한 성당은 천상의 군대를 이끄는 대천사 미카엘의 엄격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또한 마누엘 알론소 데 카타니야의 작품으로 둥근 돌과 농기구를 사용하여 제작된 산티아고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이 십자가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네 개의 철 격자로 만들어졌다. 터벅터벅 하나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간다.
산티아고 294km 표지석이 보인다. 날씬한 철 십자가가 나타난다. 2성급 호텔(Hotel Avenida III)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 있다. 주유소도 있고 대형 트럭들이 주차해 있다. 점심때가 되지는 않았지만 호텔 식당으로 들어가 빵과 오렌지 주스(2유로)를 마시며 갈증해소를 했다.
품위가 있어 보이는 식당인데 손님이 거의 없다. 마네킹으로 순례자 모형을 만들어 놓은 카페도 있다. 도로가 휴게소 기분이 나는 곳이다. 비야딩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áramo) 마을에 이르렀다. 집들이 깨끗하고 현대식이다. 물류창고도 있다.
라 마탄자(La Matanza)라고도 알려진 마을로 드넓은 초원에 세워졌다. 이 지역에서는 벽돌과 흙으로 지은 전통가옥, 돌기둥 위를 짚으로 덮은 가옥을 볼 수 있다. 기차역 부근은 전투 왕 알폰소 1세와 그의 아내 도냐 우라카 사이에 1111년 경에 벌어진 전투가 일어난 장소다.
한데 번성했던 이 마을은 급속한 성장에 다른 도시화로, 인구가 감소되어 퇴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돌 십자가 상을 만났다. 레알 거리로 들어선다. 벽에 노란 화살표가 있고 산티아고 298km라는 글이 보인다. 시청사를 지난다.
비야딩고스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Villadangos)이다. 이 성당에는 처마와 현관에 새겨져 있는 전투 조각이 있다. 전투왕 알폰소 1세와 그의 아내 도냐 우라카 부부 사이에 일어난 전투를 묘사한 것이란다. 부부 싸움 장면이다.
성당 내부에는 흰말을 타고 달리면서 무슬림을 죽이는 산티아고와 그의 발 밑에 쓰러져 있는 무슬림과 그들의 군기를 볼 수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높게 세워진 인형이 있다. Que haiga salud(May you have health)라는 글의 씌어있다.
비야딩고스 수로를 건너니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좋다. 고목에는 큰 버섯이 붙어있다. 말굽 버섯인지, 잔나비 걸상버섯인지 잘 모르겠다. 아는 이름이 이것 밖에 없다니 웃음이 나온다. 숲길을 벗어나니 또 N-120 도로를 간다.
동그랗고 하얀 민들레 꽃씨들이 예쁘다. 핑크빛 이름 모를 꽃들도 피어있다. 넓은 벌판에는 노란 유채꽃이 가득하다. 그 뒤로 미루나무 조경 숲이 조성되어있다. 매마르고 햇볕이 따가운 직선 도로다.
우리의 목적지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 마을이다. 우리 숙소는 마을 들어가기 전 도로변에 있다. 숙소 이름은 알베르게 비에라(Albergue Vieira)이다. 정원이 넓어 보이는 단층의 허름한 숙소다.
주변에 식당이 없어 알베르게에서 식당도 운영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다. 탁자 위에는 한국 국기도 보인다. 외국 순례객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가보다. 도착 시간이 오후 2시경이다.
아직 날이 많아 짐을 정리해 올려 놓고 동네 한바퀴를 나섰다. 아무도 없는 광장에는 산티아고 순례자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성당이 함께 있다. 돌 십자가도 있다. 칼라 꽃이 싱싱하게 피어있다. 카페가 보이는데 손님이 겨우 한 명, 빈 탁자를 지키고 있다.
카페에 들어가 물(2유로)을 하나 샀다. 동네 외곽에는 태양열 전기판이 있는데 태양을 따라 해바라기 같이 천천히 빙 돌아간다. 작은 동네는 너무 조용하다. 숙소 근방에는 연보라빛 수선화꽃이 많이 피어있다.
저녁식사 주문을 받는데 메뉴가 빠에야란다. 별로 당기지 않아 먹지 않기로 했다. 가방 속에 모아 두었던 빵과 잼, 버터로 그리고 비상식량으로 간단히 해치웠다.
아내 생이이라 아내와 영상통화를 했다. 보고픈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갑다. 함께 하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는 꼭 함께 여행을 나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