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
밤이 점점 길어지는 시기라 그런지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거기에 일광절약(daylight saving) 기간이라, 한 시간이 빠르므로 오전 9 시쯤 되어야 햇살이 밝게 펴진다. 가을의 곱고 보드라운 햇살은 한낮이 되면 화씨 80 도(섭씨 26.7 도) 정도의 좀더 진하고 강한 빛으로 바뀌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드럽다. 다만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져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는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잠 자리 이불을 따스한 것으로 바꾸고, 덮었던 것은 깨끗하게 빨아 햇빛에 뽀송뽀송 말리면 좋을 때다.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운 좋게 뒷마당이 있는 집들에서 살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은 뒷마당이 넓어 잔디를 돌보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답답하지 않아 좋다. 이불 같은 큰 빨래를 할 때면 건물로 가려지지 않은 한적한 뒷마당 한 가운데에 빨래틀을 펴놓고 따사로운 햇빛과 솔솔 부는 바람에 말려보고 싶은 마음이 늘 든다. 그런데 여태 한 번도 그렇게 해 보질 못했다. 가만히 눈치를 보니 집 밖에 빨래를 너는 집이 없다. 송화 가루나 꽃가루가 너무 많이 날리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렇지 않은 때에도 다른 집 마당에 빨래가 널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불 하나 빨 것이 생겼는데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찾아가는 곳, 인터넷을 찾아가 빨랫줄 사용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로 2008 년을 이후로 나온 글들이 많았는데, 빨랫줄 사용 운동이 전개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빨랫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법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빨래를 집 밖에 널어 놓으면 가난한 모습으로 보여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과 빨래건조기를 만드는 가전제품회사나 건조기에 사용되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회사의 정치권과의 막후교섭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8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빨래를 실외에 널지 말라는 요구를 무시하던 남성이 총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연합뉴스 10.8.2010).
조금 다른 문제인데, 태양열을 이용하여 에너지 절약할 수 있다면 왜 선진국인 미국은 그걸 대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궁금해 하며 교회 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집사님은 전력회사가 태양열 사용에 대해 흔쾌히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빨랫줄 사용과 관련되어서도 비슷한 이유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위키피디아에 빨랫줄 사용에 대한 장단점이 잘 적혀 있는데 당연하면서도 재미있어서 몇 가지 옮겨보려 한다(http://en.wikipedia.org/wiki/Clothes_line).
장점으로는……
돈을 절약할 수 있다(전기요금, 빨래건조기 구입비, 섬유유연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가정에서 배출하는 온실 가스의 3 분의 1이 빨래건조기에서 나오는 것이란다).
화학 섬유유연제 없이도 신선한 새물내(clothes-line fresh)를 맡을 수 있다.
옷이 줄어들거나 구김이 가는 것, 천의 마모 정도가 덜하다.
정전기로 달라붙는 현상이 덜하다.
빨랫줄이 끊어지거나 상하여 고치는데 드는 비용이 빨래건조기가 고장 나서 고칠 때보다 훨씬 적게 든다.
단점으로는……
빨랫줄에 빨래를 너는데 시간이 걸린다.
비가 오면 빨래를 실내에 널어야 되고, 갑자기 날씨가 바뀌면 젖을 수도 있다.
빨래를 도둑 맞을 수도 있다.
흙, 꽃가루, 새똥, 자동차 오염물질 같은 것들이 묻을 수도 있다.
빨래 집게 자국이 남는다.
최근 자료에서는 빨랫줄금지법을 폐지하고 햇빛에 말릴 수 있는 권리(Right to dry)를 회복하는 법이 미국 내 19 개 주에서 통과되었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플로리다, 하와이, 일리노이, 인디애나, 루이지애나, 메인, 매릴랜드, 매사추세츠, 네바다, 뉴멕시코, 노스캐롤라이나, 오레곤, 텍사스, 버몬트, 버지니아, 위스콘신 / 시애틀 타임스 8.13.2013). 비록 내가 사는 주는 거기에 속하지 않지만 빨랫줄을 다시 사용하자는 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정부가 이러한 법을 통과시켜도 이미 빨래건조기는 생활필수품이 되었고, 마당에 내걸린 빨래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의식을 바꾸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 이불 빨래를 해놓고 집 안에서 말리며 쏟아지는 가을 햇빛이 아까운 마음이었는데 언젠가 우리 집 뒷마당에서도 빨래를 널어볼 날이 오려나, 막연하지만 그래도 기대를 해본다.
이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