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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 선생님이 게송 한 수를 말씀했는데, 우리도 이 게송을 오늘 소개한 내용의 최후인 마지막 구절로 삼겠습니다.
정념을 굳게 지키며 끊지 않고 이어간다면
상적광 중에서 시시각각 서로 만나네
만 리나 떨어져 있더라도 얼굴 마주대함과 다름없으니
사람이 물을 마셔보고 자기가 체험하는 것과 같네
堅持正念, 相續不斷. 常寂光中, 時時相見. 雖隔萬里, 無異對面. 如人飮水, 自己體驗.
“견지정념(堅持正念), 상속부단(相續不斷)”, 반드시 정념(正念)을 굳게 지키고, 서로 이어가야 합니다. 관건은 서로 이어가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찰나에 법신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 이어지는 것이 큰 어려운 일입니다. 정념을 굳게 지키고 서로 이어간다면 “상적광중(常寂光中)”에서 “시시상견(時時相見)”, 시시각각 서로 만납니다. 서로가 상적광 속에서 항상 서로 만납니다. 상적광토(常寂光土)는 극락세계의 4토 중에서 가장 높은 하나의 토로서, 법신불과 법신 대사가 거주하는 땅인데, 이를 상적광이라 합니다. 범부가 왕생하면 단지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입니다. 견혹과 사혹을 끊었다면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에 도달합니다. 무명을 깨뜨려야 비로소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에 도달합니다. 42품의 무명이 있기 때문에, 이 안은 깊고 깊습니다. 무명을 한 층 한 층 깨뜨려서, 한층을 깨뜨리면 적광(寂光)을 부분 증득[分證]할 수 있고, 전부를 깨뜨려서 청정해진 것이 바로 부처로서 궁극적인 적광토입니다. 당신이 정념을 굳게 지켜서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면 상적광 중에서 시시각각 서로 만납니다.
“수격만리(雖隔萬里), 무이대면(無異對面)”, 비록 만 리나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 선생님의 만년 시절에 시인 사방(謝芳)이 찾아왔다가 떠나갈 때 사 씨에게 말씀하기를, “우리 상적광 중에서 항상 만납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저는 여러 번 들었으며 저의 마음속에 약간의 의미가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날 저녁에 이르러서 하 선생님이 스스로 말씀했습니다, “나는 상적광토 중에서 유 거사를 만나보니 남들처럼 그렇게 초췌하지 않다.” 과연 유 거사는 누구보다도 잘 지냈습니다. 하 선생님이 “내가 그를 가지(加持)했기에 그는 남들처럼 그렇게 초췌하지 않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말씀하고는 세상에 머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한 번 말씀하고는 그분은 세상에 머물러있지 않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날 저는 오고 싶었지만 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려고 한 뒤에 저 또……, 떠나가신 날과 며칠 차이일 뿐입니다. 10일 차이인 같습니다. 그 중간이 또 한 주일이었고, 만약 제가 또 왔더라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번 말씀하고는 세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은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상적광을 앞뒤로 결합시켜 보면 이런 말씀들은 하 선생님이 확실히 무명을 깨뜨리고 적광을 부분 증득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분은 이 게송에 써 놓기를, “정념을 굳게 지키며 끊지 않고 이어간다면, 상적광 중에서 시시각각 서로 만나네. 만 리나 떨어져 있더라도 얼굴 마주대함과 다름없으니, 사람이 물을 마셔보고 자기가 체험하는 것과 같네.” 라고 했는데, 이 일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를 자기가 당연히 압니다.
하 선생님이 천진에 폐관하고 있을 때의 그 경지도 이일심(理一心)을 증득했습니다. 예전에 하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말씀한 적이 없었고 저에게는 자비로우셔서 무슨 일을 때로는 기꺼이 좀 많이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은 전혀 않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의 이 기회 인연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의 외숙부(매광희)한테서 알게 된 것입니다. 저의 외숙부와 하 선생님은 특수한 인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 선생님이 불교를 믿게 된 데는 저의 외숙부가 권하여 이끈 공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외숙부가 먼저 믿고, 하 선생님이 뒤에 믿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이가 지극히 좋았습니다. 당신이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고, 내가 문제가 있으면 당신을 찾는 사이였습니다. 이는 하 선생님이 저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두 사람이 한데 만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좀 부딪쳤습니다. 때로는 해결하지 못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했는지 추즉해 보세요. 두 사람은 만나 함께 울었습니다. 당신이 알듯이 이 사람들, 선배 세대인 사람들은 불법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겠으면 그만두어버립니다. 그렇지만 그는 울었습니다. 그가 왜 울었을까요? “이 문제를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알 수 없다면 알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에게 가서 물어볼 곳이 없다.” 어떤 사람에게 가서 물어볼 곳이 없다면,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뒷날 하 선생님이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괴로워서 울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울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런 친분이었습니다.
당시 하 선생님이 천진에서 폐관 수행했는데, 폐관에 들어간 뒤에는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땐 정말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경우처럼 팻말을 걸어놓아도 사람들을 막을 수 없는 것이, 마치 순경이 학생을 막을 수 없듯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진짜 막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여전히 뛰어 들어오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하 선생님의 그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외숙부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장래에 북경에 가서 하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외숙부가 웃으며 말씀했습니다, “네가 만나고 싶다고? 내가 너에게 말해주지 않았니? 아무도 만나주지 않고 나만 만나준다고 말이다.” 진짜 그랬습니다. 왜 저의 외숙부만은 만나주었을까요? 저의 외숙부는 권하고 이끌어 준 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함께 불법을 연구했습니다. 이런 일종의 서로를 잘 아는 피차지기[彼此相知]였습니다. 저의 외숙부도 폐를 끼치지 않았고, 주인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두 분 다 천진의 조계(租界)에서 큼직한 구운 흰 고구마를 하나 사 가지고 가서 먹으면서 질문을 하고 하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밥도 먹었고 주인에게 조금도 불편을 끼치지 않으면서 바로 이렇게 와서 하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왜 이 한 단락의 말을 끌어냈을까요? 이 단락의 말은 제가 본래 『정어(淨語)』의 서두에 쓰고 싶었지만 하 선생님이 삭제하였습니다. 하 선생님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인연은 장래에 기회가 있으면 이를 또 기록해서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중략……그래서 현재 『정어』의 서문에는 이 단락이 없습니다. 그분이 삭제한 것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 선생님의 전체 상황을 소개하겠습니다. 폐관 수행 중에 어떻게 극락세계에 도달했으며 어떻게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 설법을 들었는지, 7보 연못의 8공덕수가 어떠했는지 갖가지가 수승했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이나 갖가지 타방세계의 얼마나 많은지 모를 사람들이 극락세계에 왔는지, 갖가지가 모두 수승한 상황은 일심불란이라면 대부분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래도 다 말할 수 있는 것이만, 그 이후는 더욱 수승해서 말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일심(理一心)의 일인데, 이일심의 경지는 언어로써 분별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입을 열자마자 틀립니다. 그러므로 하 선생님이 폐관 수행할 때 이일심으로 증득하여 들어간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매 경지는 그분이 상응하려고 해도 다라니같지 않았습니다. 다라니는 수승합니다. 당신이 삼매 중에 있다면 이 삼매의 일체는 모두 현전합니다. 당신이 이를 떠나면 그것도 사라져버립니다. 이것이 삼매 중의 경지입니다. 다라니는 상관이 없어서 불상응법(不相應法)이라고 합니다. 삼매는 상응법(相應法)입니다. 당신이 청정하여 어떠어떠하여 이 삼매의 조건에 부합하면 당신은 그 삼매에 들어갑니다. 이 삼매 중의 모든 경계가 현전합니다. 당신의 심경(心境)은 그와 같지 않으면 그런 경계들이 현전하지 않습니다. 다라니는 불상응법인데 왜 불상응이라고 할까요? 다라니를 얻은 뒤에는, 당신이 번뇌하더라도 그저 번뇌하고 당신이 남을 꾸짖고 갖가지 법답지 못한 일을 하더라도 이 다라니는 잃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죽은 뒤에 당신이 무슨 몸으로 바뀌든 잃지 않습니다. 삼매는 당신이 금생에 삼매를 얻었더라도 내생에는 흔히 쇠약해지거나 아니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다라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 선생님의 이것은 여전히 삼매 경지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러서 또 나타나거나 아니면 더욱 수승해졌습니다,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만년에 이르러 그것은 이른바 “상적광 중에서 시시각각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상적광 중에서 유(劉) 거사를 보니 어떠하고, 저를 보니 어떠하고 무슨 고초를 겪겠다.”라는 그런 말씀을 했던 겁니다. 제가 받는 고초는, 제가 늘 말하는데, 제가 받는 것을 몇 개의 몫으로 나누어 몇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면, 요 몇 사람들은 아마 모두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오늘 하는 김에 좀 말하겠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지금 보면 이 모든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다들 모두 대단히 피동적입니다. 제가 백일신(白日新) 과 황복생(黃福生)을 대신해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지금의 이런 환경 속에서 피동적에서 능동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하 선생님이 말씀하였습니다, “예전에 장종창(張宗昌)이 내 집을 몰수했다.” 첫 마디가 “집을 몰수했다”입니다. “지금 장종창은 어디로 가버렸느냐?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이에 대해서 믿을 수 있다면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능동적이지만, 이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면 너는 무엇을 하든지 피동적이다.” 당시에 저는 “이 말씀은 너무나 좋습니다. 이것은 황복생과 백일신 이 사람들에게 유용할 뿐만 아니라 저와 이 모 씨조차도 다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마음이 긴요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신심이 있으면, 보세요, 지극히 미묘하니까요. 이 문화대혁명에서 다들 모두 집을 몰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 선생님은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고 첫 마디로 “내 집을 몰수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역시 모두 맞았습니다. 집을 몰수했던 저 사인방(四人幫)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감옥 속에 있지만 우리는 지금도 염불하고 있으니 이 모두가 맞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불법은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수승한 모임이 있습니다. 저는 20여 년 동안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이런 질문에 답하던 때에 하 선생님은 바로 이쪽 앉아 계셨고 저는 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하였고, 이 방안에서였습니다. 하 선생님은 처음에 저를 보시면서 말씀하기를, “이번에 나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 나는 정말로 떠나가겠다.”라고 하였는데, 그게 66년 문화대혁명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보지 않겠다. 나는 가겠다.” 이 말씀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렇다면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현재 선생님의 법은 크게 홍양되고 있다고 말입니다. 남들이 한참 곳곳에서 다들 이 무량수경(회집본을 말함―역주)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무량수경의 녹음테이프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들 염송하고 있고 다들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국내는 좀 못하고 북경은 더욱 그보다 못한, 그저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여 서로의 영향이 크기에 이런 감화는, 요컨대 불가사의합니다.
오늘 저도 부끄럽습니다. 그 주요한 까닭은 하 선생님의 이 두 단락의 법문을 기록한 필기(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않아서 감히 전부를 다룰 수 없었습니다) 중에서 중요한 것만 선택해서 공양 삼아 오늘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이 반야심경의 해석은 중요한 것은 역시 저의 외숙부의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남방의 매광희 선생님과 북방의 하련거 선생님도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되었고,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오늘 이 모임의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목전의 이런 형세에서 이런 종류의 모임은 역시 드물게 있는 것이니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년에도 이럴 수 있고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무래도 좀 근신하고 역시 근신이 필요합니다. 불법의 일은 대부분 문 걸어 닫고 자기가 닦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리는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즉, 무위법을 유위법으로 변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무루법을 유루법으로 변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열심히 공부하든 다 좋습니다. 절대로 진실하고 헛되지 않습니다.
하 선생님이 바로 성공한 하나의 본보기입니다. 예전에 저도 저의 외숙부께 묻기를, “이런 예가 있었습니까?” 하니 외숙부는 회답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저 자신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정말입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 선생님이 이 질문에 먼저 “나는 보지 않겠다.”고 말씀했고 첫 마디가 바로 “집을 몰수했다”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에서만이 아니라 선생님의 저 『무량수경』 회집(會集)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분이 만약 진정으로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을 함께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현재 다들 이렇게 믿기 때문에 인쇄하고 또 인쇄하고, 강의하고 또 강의하며 듣고 또 듣습니다. 녹음테이프를 만들었는데, 음향 전달과의 책임자에게 청해서 읽은 무량수경을 여러 사람이 싱가포르에 가지고 가서 곧바로 1천 개를 복제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우연이 아니며, 무슨 무슨 관계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한 일로서, 이런 인위적인 장애들을 바로 이와 같이 제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준 이런 분이 이 세계에 강생하여 부모가 낳은 분으로서 그렇게 성공했습니다.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만두겠지만 성공한 사람이 여기 눈앞에 있지 않은가요!
그리고 성공한 인물을, 당신이 그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보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을 다들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두 사람은 나폴레옹을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사람은 나폴레옹의 마누라이고 또 한 사람은 그의 근위병입니다. 그들은 나폴레옹이 영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뒷날 외국인이 말하기를, 가사도우미 눈에는 영웅이 없다고 했는데, 중국의 속담은 근위병 눈에는 영웅이 없다고 합니다. 무슨 전투의 영웅이라도 근위병 눈에는 모두 아주 평범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밥 먹는 등 다를 게 없기에 아주 가까운 사람은 흔히 오히려 소홀히 했습니다. 이것도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멀리서 온 스님이 경을 잘 독송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 선생님 생일을 지낼 때 제가 생일 축하 찬사를 지었습니다. 하 선생님을 다들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다들 공경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안에는 명성을 흠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존경도 존경하는 것이지만 진정으로 선생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명성을 흠모하는 것이든 진정으로 존경하는 것이든 지기(知己)이든 간에, 어쨌든 간에 접촉할 수 있기만 하면 누구나 다 얻는 복덕은 무량합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만복이 깃든다 [聞聲睹影, 萬福攸同].”라는 말이 지나친 찬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법성(法聖)이 발심하고 다들 한자리에 모여 이곳에 있는 의의가 대단히 깊습니다. 때마침 무량수경이 눈앞에서 방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물론 하 선생님이 상적광 중에서 벌써 알고 계시니 우리가 종합하여 보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은 잘 아시며, 하 선생님의 가지(加持)를 떠날 수 없기도 합니다. 요컨대 이는 하나의 수승한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승합시다. 그래서 하 선생님이 늘 탄식하여 말씀하기를, “나는 이 광산을 다 파내어서 더이상 파고 내려갈 힘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뒷날 제가 한 마디 말했습니다, “우리가 릴레이 달리기를 하지요. 계주봉을 이어받아 뒤에도 계주봉을 이어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하 선생님은 몹시 찬성하여 말씀했습니다, “릴레이 달리기 좋지.” 그러므로 오늘은 바로 우리가 다들 힘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하 선생님 불법의 깃발을 이어받아 우리가 각자의 능력을 다하여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입니다. 최대의 릴레이 이어 가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염(念)’, 외우기입니다. 어떻게 홍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이 깨닫지 못하면 남을 깨닫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깨닫기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상의 말로써 공양을 삼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여서 여러분에게 죄송합니다. 우리의 이 녹음은 여기서 멈추어도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