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의 장점 - 내가 보현행원에 빠진 이유 - 부사모게시판법당 -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 https://m.cafe.daum.net/bohhyun/HzNP/18856?searchView=Y
녹취는 법혜님이 해주셨습니다
보현행원의 장점 - 내가 보현행원에 빠진 이유작성자법혜|작성시간22.02.17|조회수45목록댓글 1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제가 보현행원에 빠진 이유는 많지만 몇 가지로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보현행원을 통해 불교의 핵심, 부처님 마음이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흔히 불교의 목표가 깨달음이나 중생제도에 있다고들 하지만 저는 이익중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보현행원에는 모든 수행자 또는 수행자 뿐 아니라 일상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1) 밝은 소망
2) 세가지 자세
무유간단/ 무유피염/ 염념상속
끊어짐 없이 꾸준히, 싫어하거나 피곤해하지 않고, 늘 밝은 생각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보현행원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공덕이 그대로 있습니다.
1) 발심(발보리심)
불교에선 발심이 아주 중요한데 행원에서 간절한 원을 세우면 그 자리가 바로 발심자리가 됩니다. 발원이 곧 발심입니다.
2) 지관 (사마타, 위파사나)
사마타와 위파사나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사띠(알아차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절한 원을 늘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사마타입니다. 삼매에 드는 것이지요. 늘 보현행원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살피게 되므로 이것이 위파사나이고 자신도 모르게 매사에 알아차림을 하고 있으니 사띠가 됩니다. 따라서 사마타/위파사나 수행을 위한 전문수련을 받지 않더라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3) 자비심이 저절로 생깁니다.
굳이 자비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보현행원 자체가 자비심을 일으킵니다. 자비, 사랑이란 것은 결국 이웃을 공경, 찬탄, 섬기는 것인데 이웃을 공경, 찬탄, 섬기면 연민과 자비가 싹트고 지혜와 자비가 저절로 생깁니다.
4) 깨달음이 저절로 옵니다.
사람들이 보현행원에 무관심한 이유 중 하나로 행원은 단지 행일 뿐이라 지혜의 완성과는 무관하지 않느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금강경에 보시면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하면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자리에서 일체 선법을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선법은 그 이름이 선법이지 선법이이 아니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무상, 무아자리가 바로 보현행원의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공경, 찬탄, 섬김의 자리는 나라는 상이 남아 있으면 잘 안되게 되어 있어요. 반대로 공경, 찬찬, 섬김을 한다는 자체가 바로 내 상이 옅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행원자체가 선법입니다. 흔히 10선법을 많이 얘기하시는데 그것만이 10선법이 아니라 일체 생명에게 이익을 주고 생명을 살리는 모든 행위가 선법입니다. 그러므로 행원 자체가 선법이 됩니다. 따로 선법을 닦을 필요가 없어요.
이것은 복 짓는 것과도 연관이 되는데 요즘은 새해 인사로 복많이 지으세요 하는 인사를 하는데 사실 우리가 본래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사실 복은 원래 있는 것이니 일부러 지을 필요가 없어요. 허공에 가득한 복을 네가 가져가 네 것으로 만들라는 덕담을 많이 한 것인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아쉽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들 복 지으려 혈안이 되어서는 어디서 복을 지을까 하시는데 이웃을 섬기고 공경 찬탄하는 것이 바로 복 짓는 것입니다.
행원을 하면 무상, 무아 자리에서 일체 선법을 닦는 것이므로 당연히 깨달음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반야라는 개념을 잘 몰랐어요. 반야라는 개념이 어려워서 옛날 중국사람들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을 말하는가? 지혜를 말하는 것인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불광사 불자님들도 그랬는지 광덕 큰스님께 반야가 무엇인지 질문을 합니다. 광덕 큰스님께선 ‘여실지견’이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지요.
여실지견이 반야의 본질을 잘 설명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럼 이 있는 그대로 보는 자리에서 보면 그 자리가 지혜와 자비의 자리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보현행원을 하니 여실지견이 오는 것입니다. 편견이 적어지고, 마음이 열리니 있는 그대로 세계가 눈앞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렇게 반야라는 개념도 행원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 큰스님께서 반야는 자비라고도 하셨고, 반야는 보현행원이란 말씀도 하셨는데 그 뜻도 알게 되었지요.
5) 경전 이해
실제로 보현행원을 하니 어려웠던 경전 내용도 그냥 이해가 잘 되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6) 그 외의 공덕
그 외에도 온갖 공덕이 다 옵니다.
- 예를 들어 하심도 저절로 됩니다.
왜냐?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하심이란 것이 원래 마음을 낮추고 자기가 작아져야 하므로 참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본래 자랑도 하고 싶어하고 자기 확대의 본능이 있지요. 그래서 키도 커지고 싶고, 아파트나 자동차도 큰 걸 갖고 싶어하고, 돈도 많이 갖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공경을 하면 내가 확대되는 겁니다. 상대가 커지는 만큼 나도 커지니 오히려 쉽습니다. 해보면 압니다. 쉬워요.
- 일상생활과 수행의 구분이 안됩니다.
생활할 때는 생활이 보현행원이고, 수행할 땐 보현행원이 됩니다. 이건 좀 어려운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 다음에 따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단지 보현행원만을 했을 뿐인데 놀라운 세계가 열리는 겁니다.
경전의 제목처럼 불가사의 해탈경계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납니다. 단지 보현행원을 했을 뿐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https://youtu.be/AhnwI3A5BtU?si=wGldKNZo9KCaguc_
첫댓글 제가 하나 착각한 게 있습니다. 그건, 보현행원을 하면서 '반야'를 알게 되었다는건데, 이는 제가 곰곰히 생각하니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반야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된 건 보현행원을 하면서 화엄경을 읽은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엔 화엄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보현행원만 공부했는데,
2000년 경에 들어 화엄경을 한글로 한번 읽었지요.
그런데 내용이 도무지 이해 안가는 곳이 많아(번역이 문제) 몇 년 뒤 이번에는 무비스님의 한문 화엄경과 대조하며 읽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극히 일부만 그렇게 했는데 아마 이때 반야에 대한 눈이 뜨인 것 같네요.
따라서 동영상 속 저의 말은 수정합니다.
(그런데 사실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음)
보현행원의 장점은 저기 나온 거 말고도 많지요. 세상이 전부 보현행원입니다.
저는 보현행원을 하면서 세상의 비밀이 풀렸(?)어요. 그리고 화엄국토가 들어왔습니다.
왜 화엄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부처님은 왜 우리에게 오셨고 무엇을 전해주려 하셨는지,
그리고 현대과학이 전해주는 우주의 비밀도.
그래서 제가 보는 한, 데이비드 봄 같은 분의 주장은 정말로 밝은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주류 과학자들은 이해를 못해서 사이비로 몰지요.
그냥 보현행원만 하면 돼요.
아무 바랄 것도 닦을 것도 없어요. 그냥 완전 원만 구족해요. 그리고 그렇게 완전 원만 구족한 자리를 찾아가면 되는 겁니다. 어떻게? 보현행원하면서요
보현행원이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 건 선오비로법해, 후수보현행해 라는 가르침이 탓이 큽니다.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먼저 안 다음에 나중에 보현의 행의 바다를 닦는다, 는 건데, 원돈성불론에서 보조스님이 고인의 말이라며 소개하지요.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알고 난 뒤 보현행해를 닦으면 비로자나불의 세계와 보현행이 따로 국밥이 됩니다. 따로 있게 돼요.
만약 비로법해를 선오 못하면 보현행해를 못 가겠지요? 그래서 이 말이 말은 멋있지만 틀린 겁니다.
비로법해가 바로 보현행해에요!
화엄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분별, 그리고 나누는 것(split)을 경계해요. 무분별인건데, 이건 아무 생각을 안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수없이 일어나는데 거기 분별을 안 내는 겁니다. 그니까 빨간 걸 보면 그냥 빨갛다, 기가 막힌 걸 보면 그냥 기가 막힌다,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화엄 관점에서는 천 개의 태양이 뜨면 그 천 개가 전부 그대로 옳아요. 그대로 빛난단 말입니다.
그런게 화엄인데 비로법해와 보현행해를 나누고 있어요. 거기다 더 기가 찬 건, 깨닫는 것과 행하는 걸 또 나눠요. 이게 말이 됩니까 화엄 관점으로 보면? 깨달음이 바로 행으로 나타나는데?
화엄강의를 보면 전부 따로 국밥입니다. 무비스님도 그러셔요. 화엄강의를 열심히 하시는데 보현행원이 없어요. 그리고 보현행원은 나중에 저 멀리 무비스님에 따르면 화엄경 80권이 아니라 81권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우리 보현행원 하러 갑시다, 라고 얘기하세요. 화엄경 다~~~ 배운 뒤에 말이지요.
화엄경은 처음부터 보현보살이 상수보살(세주묘엄품, 입법계품)로 나오듯 화엄경 전편에 걸쳐 보현행원이 안 나오는 곳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건 안 보고 맨날 딴 이야기만 하십니다. 왜 화엄경 앞 부분에도 보현보살 보현행원이 나오는지 그 이유를 생각 못하세요.
보현행원이 처음부터 완전히 나오는 게 화엄경 다른 품도 몇 개 있지만 제일 확실한게 입법계품입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실라법 시다림 숲에 500의 보살이 모이는데, 그 보살들이 모두 개.실.성.취. 보현행원 中 生, 그니까 그 많은 보살들이 모두 보현행원을 성취했고 보현행원 속에서 출생했다, 이겁니다.
보현행원은 좁게는 행원품에 나오는 10가지를 말하지만 크게는 중생을 살리고 이익되게 하는 일체의 보살행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佛行이 보현행에요!
보현행은 佛行이다! 이거, 화엄경에 직접 나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부처님 됩시다~~~ 소리는 잘해도, 우리 보현행원 합시다~~~ 라는 말씀은 안 하시죠?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말씀은 하셔도, 그냥 선언으로 끝나고 말죠? So what? 이런 말에는, 부처 다음이 없어요. 그냥 듣기 좋은 선언, 말하기 좋은 말로 끝나는 겁니다.
부처는 부처행을 해야죠. 그니까 부처님이다, 라는 말을 하셨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 는 게 나와야죠. 그런데 그런 걸 말씀하시는 분들도 기껏해야 사섭법 육바라밀... 이런 걸 가져오셔서 말씀합니다. 화엄경에 그냥 보현행원이 부처님 행이라 나와있으니 보현행원해라~ 이렇게 하시면 되는데 안 그래요.
사마타 위빠사나 기타 명상 등등, 그거 배우러 얼마나 시간 투자하고 돈 투자합니까? 그런데 그렇게 투자해서 뭔가 좀 얻은 게 있고 달라진 게 있다 칩시다. 그래서 그게 일상에서 어떤 가치를 갖나요? 내 삶을 얼마나 바꾸나요?
보현행원은 그런거 배우러 안 다녀도 저절로 지관이 이뤄져요. 행원에 대한 간절한 서원이 늘 나를 맴돌면 나는 사마타를 들어가게 됩니다. 또 세상에서 행원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때마다 위빠사나, 통찰이 일어나요. 그게 모든 문제로 전파되고요.
명상? 감사명상한다고 또 어떤 곳은 야단들이던데, 보현행원이 감사 명상입니다. 감사명상 공경명상 칭찬명상 섬김명상 참회명상이 보현행원에요. 바로 옆에 있는 걸 갖다 쓸 생각은 안하고 꼭 돈을 내고 상담을 받고 배워야만 뭐가 있는 걸로 압니다. 공짜로 나눠드리려는 사람은 바보가 돼요.
보현행원이 뛰어난 점 하나가, 사람을 바꾼다, 는 데 있어요. 검은 머리 짐승 안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거의 안 바뀝니다. 그런데 보현행원을 하면 바뀌어요! 제가 대표적(?)입니다.
공경할 줄 모르던 사람이 공경을 알게 되고, 칭찬 못하던 사람이 칭찬을 알게 되고, 자기 잘못이라고는 조금도 없던 사람이 내 잘못이 하늘을 덮고도 남음을 알게 되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게 보현행원에요!
저는 저를 알고 있는 분들께 기회 있으면 감히 자신있게 말합니다. 제가 바뀌었다고
그리고 제가 봐도 정말 바뀌었어요
옛날 사진, 예전 목소리 들으면 제 스스로가 아주 경멸(?)이 입니다.
그런 제가 남들에겐 어떻게 비쳤을까요?
그러니 제가 시비가 잦고 저를 괜스리 미워하는 분들이 많았던 건, 우연이 아니죠
저의 지난 날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내 잘못, 남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아는것 하나도 소용 없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또 아는것 하나도 소용 없습니다 남을 바꿀수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권력이 높아도, 아무리 내가 명의 소리 들어도, 병든 자식 죽어가는 이웃 하나 살리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아주 통곡이 나오지요.
그래서 대비가 내 마음에 충만하지 못하면, 고통 속의 이웃을 내 온 몸으로 같이 울지 못하면, 그리고 그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많은 돈 그 많은 지식 그 높은 권력 그 많은 수행 그 깊은 깨침도 아무 소용없는 겁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대비위수요 대비가 더욱 증장하여 초지에서 이지로, 이지에서 마침내 십지로 갑니다. 모든 게 대비의 힘이에요.
주위에 한번 보세요. 수행 깊은 분 돈 많고 권력 높고 아는 것 많은 분들 중에 정말 중생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고 아파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러니 보현행원이 위선이요 남의 일이 되고 마는 겁니다.
보현행원은 삶이 바뀌게 합니다. 내가 바뀌고 이웃이 바뀌고 환경이 바껴요.
공을 아무리 알아도, 삼매에 아무리 들어도 사실 사람은 잘 안 바뀝니다.
識이 깊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환경은 더 안 바껴요.
그러나 행원은 바꿉니다.
내가 먼저 변하고 내 이웃이 변해요.
내가 먼저 거친 마음이 바뀌고 이웃들의 거친 마음도 옅어집니다.
무엇에 의해? 행원에 의해
아픈 이웃이 있거나, 무명의 이웃이 있거나, 거친 이웃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리는 이웃이 있을 때 그들에게 보현행원을 권하고 보현행원품을 읽게 하십시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 그런 고통에 휩싸일 때 그 분들 위해 보현행원품을 읽어 드리십시오.
보현행원품은 몇 번 읽고 그런 건 없으나 기도용, 무얼 이루고자 할 때는 최소 하루 3번은 읽어야 합니다.
그에 더해 정말 긴박한 일일 때는 하루 최소 10번은 읽어 드리세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보현행원으로 보리이루리!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모바일에서도 제가 썼습니다만,
보현선생님의 원글과 댓글에서만큼 보현행원을 잘 설명하고 표현한 글은 없을듯 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우리나라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을겁 같습니다.
심지어 댓글은 절절하기조차 합니다.
제가 다른 길이 아니라 보현행원을 통해 불교에 입문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널리 전하고, 또 전해야겠습니다.
댓글은 제가 따로 정리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