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역적은 삼족을 멸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후대가 남으면 결국은 나중에 원한을 품어 복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한 세대가 사라져도 씨종자가 남아 있다면 결국은 그 존재는 이어지게 됩니다.
전쟁이 난다면 많은 것을 갖고 갈 수 없습니다.
필수적으로 단 한 가지만 챙기고 피난을 가야 합니다.
그렇게 위급상황에 딱 한 가지 챙겨야 하는 것이 바로 육해입니다.
인오술 삼합이라면 신금이 육해인데, 신금이 있다면 결국 그 씨종자를 활용하여 인오술 삼합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오는 단종은 부친 문종의 뒤를 이은 왕으로서 조선시대에 몇 안 되는 적통의 왕이었습니다.
적통이라는 것은 그 계보가 맥락을 갖고 있고, 흐름이 일관된다는 것입니다.
사주에 육해를 갖고 있다면 이렇게 적통성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불필요한 요소가 혼입이 되어 난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하는 바가 확실하고, 그 외의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반드시 원하지 않아도 취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의 경우 반드시 원하는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내가 취업하기 원하는 정도와 직장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정도가 균형이 맞는 적당한 직장에 취업하기 마련입니다.
결혼상황에서도 내가 반드시 원하는 배우자를 얻는다는 것도 사실상 아주 어렵습니다.
나의 조건과 상대방의 조건의 중간 지점에서 적당히 서로 타협하여 만나서 결혼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육해를 갖고 있다면 이렇게 적당히 타협하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됩니다.
년간에 육해가 있다면 가계도와 집단의식이 정통성을 원하고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업적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년지에 육해가 있다면 가계도가 자리 잡은 공간과 집단무의식이 정통성을 원하고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업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월간에 육해가 있다면 양심과 메타인지가 반드시 원하는 업적이 있거나 직업이 있다는 것입니다.
월지에 육해가 있다면 생존에 적합한 환경과 직업의 적합성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천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간에 육해가 있다면 나만의 생각과 사고관·가치관이 확고부동하다는 것입니다.
일지에 육해가 있다면 나의 음식 취향, 나의 배우자 취향, 나의 신체 대사가 일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취향이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육해가 있다면 내가 창조하고 싶고 생산하고 싶은 미래지향적인 지향점에 확고부동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지에 육해가 있다면 내가 창조해야 하는 공간의 조건, 구성 조건이 명확하고, 만들어 내고 싶은 세계관이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십신을 결합한다면 더욱 명확하게 그 사람의 업보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월간에 육해가 있는데 그것이 재성이라면 그 사람은 메타인지와 양심이 확고부동하여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뚜렷한데, 그것이 재성이니 돈을 버는 방식이나 배우자에 대한 상이 그런 양심의 영향을 받아서 확실한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렇게 확고부동한 취향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게 힘들 수가 있습니다.
타협이 잘 되지 않으니 세상과 괴리되고 왕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없으니 결국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육해는 전생의 업보입니다.
육해는 내가 지금 당장 삶의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힘들고 희생을 하더라도 그 힘든 희생을 통하여 미래 세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더욱 옳게 여깁니다.
전생에서부터 이번 생에는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나를 통하여 씨종자가 이어지는 매개자가 되는 역할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육해가 있다면 쉽게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원하는 씨종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끈기를 갖고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쉽게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는 삶의 방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갤샘은 계수를 축토에 담아서 묘목으로 내놓으니 교육계에서 발전하라는 암시군요.
와우~그렇게 깊은뜻이~
계수를 활용하여 을목을 기르는 업보를 품고 있는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