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성이씨 문중의 과거시험(科擧試驗) 입격자
과거시험의 꽃이라 볼 수 있는 식년시(式年試) 문과시험은 3년마다 정기적으로 봄에 열렸다.
그리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비정기 대과가 열리기도 하였다. 문과 식년시는 총 163회, 별시 583회, 합격자 수 14,991명이 되었다. 울산에는 학성 이씨 웅촌의 근오(吾)와 석진(錫晉) 두 어른과, 밀양 박씨 朴時龍(고종) 朴時奎(고종) 형제분이 대과(大科)에 합격하였다.
전주이씨 783 청주한씨 273 경주김씨 206 광주김씨 194 경주이씨 175 안동권씨 367 밀양박씨 257 반남박씨 200 광주이씨 193 파평윤씨 346 연안이씨 251 한산이씨 200 전의이씨 188 남양홍씨 331 여흥민씨 234 동래정씨 196 풍양조씨 186 안동김씨 318 연안김씨 163 풍천임씨 148 의령남씨 144 진주강씨 223-10위 청송심씨 194 평산신씨 178-20위 문화유씨 141 진주유씨 137 창녕성씨 134 김해김씨 129 풍산홍씨 127 순흥안씨 121-30위 보통 과거 합격할 때까지 한 권 한 권 떼 가면서 외우는 것을 글자 수로 환산하면 45만자라고 한다.
과거시험의 첫 번째 관문은 복시(覆試-유교 경전을 시험하는 생원시와, 시와 문장을 시험하는 진사시가 있다. 합격자에게 백패)에 응시하기 위해 예비시험이라 할 수 있는 '초시(初試)'를 거쳐야 한다. 옛 이야기에 등장하는 김초시나 박초시는 결코 공부를 대충 한 사람이 아니었다. 초시 합격자는 전국에서 700명만을 선발하였다.
복시에는 100명을 선발하였고, 대과에는 33명의 최종결선 진출자들은 모두 왕 앞에서 전시(殿試)라는 일종의 논술시험을 보게 되며, 33명은 성적순으로 갑과 3명 을과에 7명, 병과에 23명의 서열이 메겨진다. 등수 만 가릴 뿐이다.
고종 때의 '정순교'라는 인물은 85세 때에 과거에 급제했다. 무과 소과의 급제자의 경우 선달(先達)이라고 불렀다.
정조 재임 24년 동안 실시된 과거시험에는 참가자가 10만 3579명에 이르렀다. 커닝에 대한 규율도 있었다. 시험장에 책이나 문서를 들고 가면 3~6년간 시험자격이 박탈되고, 다른 부정행위 때는 곤장 100대와 징역 3년에 처해 졌다.
과거시험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될 때까지 조선의 관리를 채용하는 유일한 제도로의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