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뭉클’하는 무언가가 가슴 안에서 요동쳤다.
나는 누구를 위해 나를 불태우고 있지? 나는 나를 다 태우고 남은 내 몸둥이를 마지막 까지 누굴 위해 어떻게 써야하지?
연탄만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성찰이란 어느 한순간 어느 한단어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무심코 느꼈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힘든 것 참고 사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아이물건 하나, 아이 입에 들어갈 과자 부스러기 하나 더 산다.”라고 말하지만 난 ‘날 위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기위해 아침마다 엄마와 실갱이 했었다. 늦잠을 잤으니 당연히 바쁜 아침시간이 되었고 챙겨서 나가기도 급한데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국에 말은 밥을 쟁반에 가져와 교복을 입고 있던 내게 떠먹이던 우리엄마..
움직이며 먹으니 턱을 타고 국물이 흘렀고 나는 성질을 냈다. 다 씻은 얼굴에 짠 국물이 흐르는 것을 못 견뎌 엄마에게 화를 냈던 거다.
그렇게 키워 대학, 대학원 보내놨더니 제 꿈 펼쳐보기도 전에 시집간다고 하고 시집가서 아이 낳더니 엄마보다는 내 아이 신경 쓰느라 엄마는 또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해도 “병원 가봐..”하고 말만하고 전화도 띄엄띄엄 한다.
내가 시집올 때 나는 엄마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이 있었다.
혼수 이불세트를 살 때 엄마가 골라서 보내주셨는데 내가 색깔이 어떻다 촉감이 어떻다 하며 다시 가져가라고 나는 안 쓸 거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아빠의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나의 그 말에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우셨다고, “요즘은 엄마도 늙어 가나보다” 한다.
그 후로 이불이야기만 나오면 난 할 말없이 고개를 숙이게 되고 엄만 아직도 예쁜이불이 있으면 우리아이들것을 사서 택배로 부치신다. ‘이웃을 돕자.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 성금을 내자..’ 아무리 떠들어도 내 부모에게는 얼마나 잘하고 사는가... ‘당연히 잘 해야지’하는 건 알면서도 얼마나 실천하고 사는가..
시간이지나 이 마음을 잊을만하면 꺼내 읽고 또 꺼내 읽어야겠다.
※ 안도현작가 소개 1961년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동에서 아버지 안오성과 어머니 임홍교의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대구 아양국민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홍승우, 서정윤, 박덕규, 권태현, 하응백, 이정하 등의 선후배들을 알게 되었고, '학원문학상' 등 전국의 각종 백일장과 문예 현상공모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았다. 1980년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고, 대구에서 발간되던 통신문학지 《국시》 동인으로 박기영, 박상봉, 장정일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대학 시절 최정주, 최문수, 권강주, 정영길, 김영춘, 백학기, 이진영, 이요섭, 이정하 등 선후배들을 알게 되어 이들과 '원광문학회'를 결성하였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었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었다.1985년 2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으나, 1989년 8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 당하였다. 이후 1994년 2월까지 전교조 이리익산지회에서 일하면서 김진경, 도종환, 배창환, 조재도, 정영상, 조성순, 조현설 등과 함께 '교육문예창작회' 활동을 하였다.
첫댓글 저만 그런가요? 활자체를 좀 바꾸었으면 하는데요. 읽는데 불편하니까 독해를 하는데 지장을 받네요.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 같아요. 좋은 시 한 편이 가슴을 울리게 하네요. 세상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탄만큼만이라도 가치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이렇게도 좋은 시가 있었넹~ 인생이란 나를 불태워 남김없이 주는 것인가!! 나는 오늘도 몸 사리며 눈치보며 살고 있는데 말이지.. 나를 불태워 남김없이 주는 것!!! 과연 실천할 수 있을랑가~~
촛불처럼, 연탄 한장 처럼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중한 것, 감사한 것을 못느끼고 살 때가 참 많지요 그리고 나의 삶이,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저 바쁘게 또는 게으르게 살아갈 때가 많은데 시 한편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네요 좋은 시 와 규희샘의 삶을 나눠주신 것에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