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차 ABO 의료봉사 체험기》
부산 메리놀병원 소화기 내과 전문의 박승근

배타고 건너온 당목항에서 잠시 기다린 후 고금성당의 정응용 에밀리아노 신부님의 봉고에 올라탄 우리 일행들은 정 신부님에 의해 성당으로 가던 길을 갑자기 벗어나 ‘묘당도’라는 곳으로 이끌려 갔다.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안타깝게 순국하신 이순신 충무공의 유해를 80여 일간 잠시 안장하였던 가묘와 충무사가 있는 유적지였다. 정 신부님도 이곳에 파견 나와 처음 알게 되었다며 꼭 보여 주고 싶었다고.

오후 7시에 도착한 고금 성당에서 드디어 경희대 한방과 교수인 김종인 베드로님을 만남으로써 오후에 금일성당에서 만난 박 린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의료진들이 합류하였다.
8시 저녁 식사 후, 내일의 봉사 장소인 고금 체육관에서 밤늦게까지 안 안드레아님과 강 베드로님의 주도하에 이런 저런 의견의 조정 후 마침내 의료 세팅을 마치고 돌아온 시각이 10시 30분. 이 선생님은 벌써 곯아떨어지신 듯. “덩치가 있는 겉보기완 달리 속은 유리병같이 약합니다.”라고 엄살을 부리는 것 같더니 진짜였는가 보다. 찬물 샤워로 오늘의 땀을 씻어내고 개운한 마음으로 내일의 일정을 그려보며 피로에 쫒긴 잠을 청한다.

‘잘 자요. 김 엘리. 오늘이 우리 결혼 28주년 기념일인데 하루 종일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말 한마디 못한 채 그냥 지나가네요.’
8월 14일 일요일 아침 5시 30분. 누군가 귀 옆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에 눈이 떠졌다. ‘여긴 어디? 아이 참! 어제 밤 사제관 마룻바닥에서 이 선생님과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에 천둥 같은 코골이의 침입자를 피해 아무도 없는 조용한 이곳으로 왔었지. 하필이면 화장실 입구 좁은 복도라니.’

7시 미사.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 말씀. “불은 성령을 의미하며, 분열은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의 차이입니다. 일치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 안에서 한마음이 될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라는 신부님의 짧은 강론.

8시 30분. 체육관에 들어서니 벌써 수십 명의 주민들이 와 계신다. 다행히 에어컨이 가동되어 실내가 시원하고 관중석 스탠드가 있어 질서정연하게 앉아들 계신다.

넓은 체육관 중앙엔 배드민턴 네트가 3군데나 쳐 있는데 문 입구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일렬 순서대로 문진 탁자, 혈압 및 혈당 측정 탁자(그 앞의 벽엔 키와 몸무게 측정), 주사 맞는 바닥이 보이고, 주사 준비 탁자 그 뒤에 척추 신경과 탁자 및 바닥 침대, 그리고 그 뒤 하얀 시트로 칸막이 해놓은 내과진료실이 보인다. 제일 안쪽 시상대 역시 하얀 시트로 가려져 있는데 왼쪽 일부가 초음파실이고 오른쪽 대부분이 한방실이다. 보진 않았지만 공간이 넓기 때문에 이런 준비를 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을 테고 특히 초음파 기기 및 척추 신경과의 특수 진동 마사지 기기에 대한 전기 연결 및 커넥터 준비를 하느라 안 안드레아님과 강 베드로님께서 무진장 애를 먹었으리라.

문진은 벌써 시작하여 그 옆의 혈압 및 혈당 측정으로 연결되고 있다. 벽에는 키와 몸무게를 재는 임병우님의 모습이 여전하다. 올핸 본인의 몸무게가 좀 줄어들려나.

오늘부터 시작한 척추신경과의 바닥 침대엔 허리나 어깨, 그리고 무릎이 아프다는 분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칭 요법과 진기 진동 마사지, 그리고 조금 심한 분들껜 근육 내 침 자극 요법까지 시술을 하고 있다.

어젯밤, 엊그제 제의실 심전도 모니터 확인 중 탁자에서 넘어질 때 허리가 조금 삐꺽했는지 결리는 부위가 있다고 박 린 선생님께 얘기하였더니 잠깐 뒤로 누워 보라면서 내 머리를 위아래 양손으로 잡고 목을 홱 돌려 버린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으윽”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목 관절이 시원하면서 잘 돌아간다. 이번엔 뒤에서 다리를 교차시키면서 관절부위를 꺾는데 “아이쿠, 아이쿠야” 하며 체면 없이 신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내뱉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척추신경과는 직접 환자들의 몸을 주무르고 관절을 꺾고 잡아당기는 등의 손과 힘이 많이 들어가는 진료행위이다. 홍콩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가난한 분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계시는데, 그 멀리서 자신의 업무를 제쳐두고 우리 봉사를 위해 해마다 찾아오신다는 것이 여간한 마음가짐이 아니면 안 되리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예전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를 상당 기간 하셨는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박승근님의 의료봉사기를 카페지기가 대신 올려드립니다.
첫댓글 박선생님의 의료봉사 체험기를 읽는 동안 안신부님과 여러 봉사자님들의 노고와 사랑에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그리고 결혼 28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언제나 엘리사벳씨와 박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결혼 28주년 축하드립니다.^^
눈빛한번 볼 사이 없이 바쁜 시간, 봉사로 대신한 예쁜 사진한장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것 같습니다. ㅋ ㅋ
참여하신 모든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결혼 28주년 뒤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가슴에 감동 가득히 글을 읽었습니다...^^*
엘리씨 결혼 기념일도 휴가도 모두 봉헌하셨군요.
박선생님 허리 괜찮으셔야 할 텐데요 걱정입니다.
멀리서 봉사하러 오신 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사벳과 박선생님.
봉사하면서 보낸 아름다운 부부에게 영원한 행복과 사랑, 건강하시길 빕니다.^^
결혼 28주년을 얼굴 볼 틈도 없이 봉사하신 박선생님, 김엘리 부부님 축하드려요. 지금처럼 멋지게 뜻깊은 행복 계속 누리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