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열면 곧 어긋남이 불법(佛法) 이치다
<29>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⑤-2
[본문] 편지를 받아 읽어보니 ‘꿈에 향을 사르고 산승(山僧)의 방에 들어와서 매우 조용하눼蔑?箚� 하였습니다. 부디 꿈이라는 이해를 짓지 말고 내 방에 참으로 들어왔다고 알고 계십시오. 보지 못하였습니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습니다.
“꿈속에서 육바라밀을 설하였는데 깨어 있을 때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습니다. “이 뜻은 매우 깊어서 저는 능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회상(會上)에 미륵대사가 계시니 그대는 그분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돌(咄)!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
[강설] 이 글은 삼돌장(三咄章)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선원에서나 강원에서 이야기가 분분하던 내용이다. 삼돌(三咄)이란 대혜선사가 처음에는 수보리를 꾸짖고, 다음에는 설두(雪竇)선사를 꾸짖고, 다음에는 대혜선사 자신을 꾸짖었다. 불교에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마귀 잡는 참새, 참새 노리는 사냥꾼
사냥꾼도 옷젖는 줄 몰라…어리석은 탓
또 꿈을 비유로 들어서 현실이 꿈이라고 깨우치기도 한다. 증시랑이 꿈에 대혜선사의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있었다는 꿈 이야기를 하였다. 대혜선사는 그 점을 들어서 “꿈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참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고 알라”라고 하면서 경전에 등장한 꿈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사리불이 “꿈에 6바라밀을 설한 것이 현실과 같은가? 다른가?”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수보리는 그 답을 미륵에게 미뤘다. 그렇다면 꿈은 현실과 같은가? 다른가? 또 수보리가 미륵에게 미룬 뜻은 무엇일까? 왜 대혜선사는 수보리를 향해서 “돌(咄)!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는가? 답을 미륵에게 미룬 것이 과연 허물인가?
[본문] 설두(雪竇)선사가 말하였습니다.
“당시에 만약 그냥 놓아 보내지 않았더라면 뒤따라서 수보리를 한번 찔러 주어야 했습니다. ‘누가 미륵이라고 이름하며, 누가 미륵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곧 다 빙소와해(冰銷瓦解)하여 버렸습니다.”
돌! 설두도 또한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
[해설] 이 이야기를 뒷날 설두선사가 드러내어 거량하였다. 수보리가 “미륵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였을 때 사리불이 곧바로 수보리에게 “누가 미륵이라고 이름하며, 누가 미륵인가?”라고 꾸짖지 못한 것을 지적하여 “모든 것이 다 틀어져 버렸다(冰銷瓦解)”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대혜선사는 “설두선사의 그와 같은 소리도 역시 허물이 적지 않다”고 평하였다.
[본문] 혹 어떤 사람이 묻기를 “예컨대 증시제(曾待制)가 꿈에 운문의 방에 들어갔다라고 하였으니 일러보라. 깨어있을 때와 같은가? 다른가?”라고 한다면 운문은 곧 그 사람을 향해 말하기를 “누가 방에 들어간 사람이며, 누가 방에 들어감이 된 사람이며, 누가 꿈을 꾼 사람이며, 누가 꿈을 설명하는 사람이며, 누가 꿈이라는 이해를 짓지 아니한 사람이며, 누가 참으로 방에 들어간 사람인가?”라고 할 것이다. 돌! 또한 허물이 적지 않도다.
[강설] 이 삼돌장(三咄章)에 대해서 금산불인(金山佛印) 선사가 게송으로 평하였다. “사마귀(미륵)가 길 앞에 있는데 참새(설두)가 뒤따라 날아오네. 동산에 활을 든 사람(대혜)은 이슬에 옷이 젖는 줄 알지 못하도다(螳螂前途住 黃雀續後飛 園中挾彈子 不覺露濕衣)"라고 하였다. 세 사람 모두가 허물이 있다는 뜻으로 한 게송이다.
다시 부연하면 참새는 사마귀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그 참새를 잡으려는 사냥꾼이 있다. 그러나 그 사냥꾼 또한 자신의 옷이 이슬에 젖는 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인데, 불법의 이치는 개구즉착(開口卽着)이라 하였다. 입을 열면 곧 어긋난다는 뜻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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