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 그런데, 여기서는 뭐냐 하면 주님, 하느님, 우주의 본체께서는 공평무사하시다 이거야. 다 따뜻하게 대하시거든. 모두를 한 몸으로 대하신다는 말이지.
: 모든 이들을 공평무사하게 대하기란 참 어렵다. 개인적인 정, 서로 결이 맞는 사람에게 더 애정이 가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와 다른 이를 차별있게 사랑하지 않으신다. 누구를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 역시 나와 다른 이를 동일하게 사랑하라는 말씀과 동시에, 모든 이를 동일하게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도 들린다.
- 뭘하는 게 없는데 다 하거든. 그게 위무위라. 산이 아무것도 안 하잖아? 그렇지만 다 하잖는가?
- 다언삭궁이니 불여수중이라,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그 중을 지킴만 같지 못하다
- 작위가 바탕에 깔린 말은 하면 할수록 막히게 된다. 오히려 중을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을 모시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 위무위, 하는 것 없이도 모든 것을 다하는 것, 말을 많이할수록 오히려 안하는 것이 더 많아질 뿐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을 말하고 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말들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사람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필요없는 말들이나 칭찬, 친절을 베푸는 말을 하지만 오히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깊은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아님을 느낀다.
- 다만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모두가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끼니를 챙겨먹고,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는 등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있는 사람과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일상이 더 특별하거나 고귀한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서 우리가 같은 것을 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6장 아무리 써도 힘겹지 않다>
- 신비로운 수동성이란, 자기 긍정에 이르도록 하는 철저한 자기 부정이다.
: 나를 비워내기 위해서는, 결국 책에서 말하는 '수동성' 즉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의 감정, 자기 연민, 고집, 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수동성'을 가질 수 없다.
- 도는 막힘도 없고, 끊임도 없어서 어디에나 편만하지. 그래서 마치 항상 존재하는 어떤 것과 같다.
: 아직까지 일상을 살다가 하나님의 마음이 뚝뚝 끊길때가 있는 것 같다. 아예 '하나님' 이라는 의식 자체가 들지 않은 채 나의 일들을 감당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은 마치 도덕경의 도와 같아서 그 믿음과 생각에 막힘이 없고 끊임도 없어서 어디에나 편만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순간이든지 하나님을 기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너무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힘들 까닭이 없다. 자기가 넉넉히 질 수 있는 무게만큼만 진다면 어째서 힘이 들겠는가.
: 책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무게' 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이는 갑작스러운 부나 능력, 지위를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수험생 신분에서 합격자의 신분으로 갑자기 나의 지위가 변경되었는데, 내가 정말로 노무사라는 지위를 감당할 수 있는 힘과 관계망이 튼튼하게 잘 세워져 있는지를 반문하게 된다.
<7장 천지가 영원한 까닭은>
- 생을 사사로이 자기 것으로 하지 않기에 천지는 장구하다.
: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의 생을 사사로이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즉 욕심, 사욕으로 나의 생을 도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욕심이 너무 많다. 맛있는 것 먹어서 내 입을 즐겁게 하고 싶고, 좋은 것 입고, 좋은 곳 살고, 좋은 차 타고 싶은 사사로운 욕심이 너무나 많다. 이를 비워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없다.
- 성인은 후기신이신선이요, 외기신이신존이라, 성인은 그 몸을 뒤로 해서 앞으로 나선다
: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서 일부러 낮은 자리에 가서도 안된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 어떠한 작위나 사욕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것.
- 초연한 사, 차별이 없는 사, 대아, 너도 나 나도 나, 나도 너 너도 너
- 사적인 정에 끌려서 사랑을 하거나 자선을 베푸는 것은 오히려 깊은 자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깊은 자비심에서 나오는 행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무정해보인다.
- 사욕이 없다면 무슨 일을 하다가 뜻대로 안 돼도 크게 절망하거나 낙심할 것이 없다.
: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오히려 아벨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창세기 강의에서 선물을 준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라고 하셨다. 자꾸 내 욕심을 앞세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관철하려고 하니까 실망이 되고 낙심이 되는 것이다. 아쉬움이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라는 철순형의 말은, 결국 이런 시도들이 자꾸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라는 권면으로 다가온다.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아쉬움, 섭섭한 마음, 실망감,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8장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고유한 형태가 없다.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양을 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양을 하고 뜨거운 곳에서는 증기가 되고 추운 곳에서는 얼음이 된다.
-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면 그건 도가 아니다.
: 자기 비움을 하게 되면 물과 같이 된다. 나의 자아, 나의 성격, 내 정체성이 이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만나고 말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 제한, 혹은 소극성이 없어지게 된다.
그저 물은 자신의 작위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게 된다. 물과 같이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는다는 것은, 작위로 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물은 그저 그렇게 있게 되는 것인데, 새삼스럽게 낮은 곳에서 더 있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라는 말은 작위 또는 사욕을 가득 담고 있는 말이다. 새삼스러운 말들을 너무 많이 하고 사는 것 같다. 누구와 함께 어울리고, 어떤 곳에서 살고, 어떤 것들을 보고 느끼고 사는가에 따라서, 새삼스러운 것들이 더이상 새삼스럽지 않게 되고, 그저 거기에 있는 것과 같은 물과 같은 관계가 되리라.
- 철들다, 농부가 오랜 농사일을 하다보면 씨를 뿌릴 철, 김을 맬 철, 웃거름을 줄 철, 저장할 여러 철을 따라 농사를 짓다보면 그 철이 아예 몸에 배어서 달력같은 건 보지 않고도 농사를 훌륭히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철을 알지 못하는 것을 두고 철부지라고 한다. 도시로 갈수록 더욱 철부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