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6:1-8,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라-유월절
20.5,6, 박홍섭 목사
신16장은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 삼대 절기에 관한 규정입니다. 절기는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적용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날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 민수기에서 말씀하신 유월절 규례와 달리 오늘 신명기 본문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6,7,11,15)에서 지켜야 한다고 조금더 진전되고 강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1년에 세 차례 이 절기에 맞추어 하나님의 택하신 곳으로 오되 빈 손으로 오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16-17).
신약교회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로 성령을 주시어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신 후 더이상 절기와 날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주일에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구약의 절기와 날들이 담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미를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지금 우리가 이런 구약 절기의 의미들을 생각해야 합니까? 구원의 은혜를 바로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일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주일예배에 절기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잘 담아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유월절을 보겠습니다(1-8). 유월절은 출애굽의 구원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대력으로 정월(니산, 아빕월) 14일 저녁에 지키는데 출애굽 전날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발랐던 저녁을 기억하는 의미입니다. 보통 아빕월 10일에 유월절에 사용할 양을 준비하고(출12:3-4) 13일 저녁에는 등불을 켜서 집안의 모든 누룩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14일 저녁에는 준비한 양을 잡아 우슬초 묶음에 양의 피를 적셔서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출12:6). 그리고 유월절 식사를 하는데 이 식사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가실 때 제자들에게 베푸신 성만찬으로 성취되었고 신약교회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찬을 행하면서 이 은혜를 다시 누리고 있습니다.
유월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2:13의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는 말씀처럼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죽음으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은 오히려 구원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애굽과 똑같이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어린 양의 피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얻습니다. 은혜이죠.
유월절은 이 은혜가 믿음을 통해 주어짐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때 마지막 10번째 재앙까지는 이스라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자의 재앙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분명한 규례를 주시면서 이것을 지키도록 요구하셨습니다. 그 규례가 무엇입니까? 아빕월 열흘에 흠이 없고 점이 없는 어린 양을 식구들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준비해서 4일 동안을 집안에 두고 14일이 시작되는 저녁 해질 즈음에 이 예비 된 어린 양을 잡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양의 피를 우슬초에 묻혀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더불어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지고 급히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 전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 그 피를 믿음으로 바른 자들은 다 살 것이라 했습니다.
누가 무서운 장자의 심판 날에 오히려 구원을 얻습니까?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우설초에 묻혀 바깥에서 다 볼 수 있도록 문기둥과 인방에 발랐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유월절 어린 양이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었을 때 내 죄가 도말되고 나에게 임할 심판이 건너간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갔습니다.
양의 피 자체에 물리적 마술적 효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창세 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맺어진 언약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더불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아들이 대신 죽임을 당하게 하시고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 택한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택한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을 수 있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은 것은 어린 양의 피 자체에 마술적인 효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복된 언약과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이 대대로 유월절을 지키면서 배우고 기억해야 할 핵심이 무엇입니까? 어린 양의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를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우리의 고백과 감사의 반응으로 우리를 그 언약 안에 포함시키는 통로입니다. 사실은 믿음 자체가 은혜입니다. 믿음이 공로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린 양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이 날을 원년으로 삼게 하심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다른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나도 이 어린 양의 피가 없이는 애굽 사람들과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기억하고 매 순간을 어린 양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나 대신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은혜를 의지하고 이 복된 언약을 믿게 하신 성령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유월절의 은혜는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믿음으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린 양을 통한 출애굽의 구원은 다 된 것처럼 허리를 풀고 앉거나 누워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시작입니다. 유월절 식사를 어떻게 먹었습니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먹었습니다. 출발준비입니다. 이것은 유월절 다음 날부터 한 주간을 지키라고 하신 무교절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유월절 하루만 지키고 끝내도록 하지 않고 그 다음 날부터 한 주간을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로 지키라고 하십니다.
왜 한 주간 내내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까? 그 첫 번째 의미는 출애굽, 구원의 긴급성을 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나올 때 여행하듯이 유유자적하면서 나오지 않습니다. 뒤에서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와서 급하게 빠져나옵니다. 그 와중에 유교병, 누룩을 넣어 반죽을 발효시켜서 빵을 부드럽게 만들고 먹기 좋게 만들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교병을 만들어 먹도록 하셨습니다. 구원은 그렇게 긴박하게 애굽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유월절 어린 양을 그렇게 출발하는 자세로 먹는 것에 이어 한 주간 내내 누룩 없는 무교병을 먹으면서 그와 같은 구원의 긴박성을 더욱 심도깊게 새겨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이 늘 애굽에 대한 동경과 미련을 가졌던 것처럼 세상에 대한 동경과 미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틈만 나면 애굽을 돌아보면서 거기에는 무엇도 있었고 무엇도 있었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과거에 잘나가던 시절에 대한 막연한 미련과 동경이 있습니다.
구원의 첫 번째 여정은 죄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애굽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날 때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내 삶을 파괴시키고 망가뜨리는 것이 죄인 것을 안다면 죄에 대해 여유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긴급하게 떠나야 합니다. 말랑말랑한 빵을 먹기 위해 며칠을 기다려야 할 여유를 부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교병을 먹는 두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 없는 떡입니다. 딱딱하고 맛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떡이나 빵을 맛있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룩을 넣어서 발효를 시켜야 합니다. 발효는 다른 말로 부패의 과정입니다. 누룩이 들어가면 반죽에 누룩에 있는 부패균이 퍼져서 적당하게 발효를 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반죽이 부풀러 올라 부드럽고 맛있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적당한 부패가 빵을 부드럽게 하고 맛있게 하니까요.
여기에 우리의 삶과 비슷한 원리가 있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살 때 적당하게 부패하고 적당하게 타협하면 훨씬 삶이 부드러워지고 맛있어 지고 윤택해집니다.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무교병, 그 딱딱하고 맛없는 고난의 떡을 먹으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의 목적은 단지 이 세상에서의 윤택함과 행복이 아닙니다.
사실, 구원의 날이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지긋지긋한 죄의 권세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더군다나 나의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입니다. 마땅히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쁜 구원을 돌아보고 기념하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실컷 먹고 기뻐하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누룩을 없애라고 하십니다. 누룩 없는 맛없고 딱딱한 빵을 먹으면서 그들이 얻은 구원이 무엇을 위한 구원인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구원인지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안에서부터 부패한 본성이 순간순간 솟구쳐 나오는 존재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지금 잠시 거룩하고 깨끗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산다 해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언제 또 그 부패한 본성의 기운이 우리 삶 전체에 퍼지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절기를 지키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매 순간 무교병을 먹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부패의 요소들을 찾아서 버리고 떠나는 그런 훈련들과 생각들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특정한 기간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을, 매 순간을 그렇게 합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삶의 원리, 죄악에서 급하게 돌아서는 것, 비록 세상에서의 삶이 조금 더 편해지고 화려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맛있어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내 삶을 부패하게 하고 썩게 만드는 누룩과 같은 것을 허용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신앙여정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주님이 흘려주신 피와 찢겨주신 살을 먹고 마시는 믿음 없이 어떻게 천성을 향한 나그네와 행인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유월절 양이 되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혜, 그 주님의 은혜를 매 순간 믿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하면서 천성을 향한 믿음의 여정을 잘 달려가는 한우리 식구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