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자 파수꾼의 나팔소리2418-교단 총회장, 신학교 총장, 교수, 교회 목사들에게 나팔을 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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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십계명회복선교교회 이소자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파수꾼의 나팔소리, 교단 총회장, 신학교 총장, 교수, 교회 목사들에게 나팔을 붑니다.」입니다.
편지로 보내고,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려고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으라고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세계’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실재한 인물, 실재하는 세계’라고 말합니까?
저는 오늘 ‘기독교의 선생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어떻게 비틀어서 말하는지를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으로 말하겠습니다.
눅16장은 예수님의 비유(譬喩=比喩)의 말씀입니다. ‘비유’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닫도록 ‘실제가 아닌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상(假想)의 인물과 가상의 세계’를 비유로 무엇인가를 깨닫도록 교훈하신 말씀이 눅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눅16장은 ‘실제가 아닌 비유’라는 것을 유의하여야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시대 이후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긋난 것’은 외적인 것 때문 아닙니다. 물리적인 박해나 사람의 사상, 세상의 이데올로기, 돈, 문화, 이런 외적인 것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서 어긋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외적인 것은 시련은 있지만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고 믿으면 시련은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믿음을 단단하게 해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그래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긋나는 것은 외적인 것보다도 교회의 내적 원인 때문입니다. ‘내적’이라 함은 교회들이 ‘성경’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교회들이 실재(實在)라고 믿는 것입니다. 비유는 ‘실재도 아니고 사실도 아닌 가상’입니다. ‘가상’을 ‘실재’라고 믿고 ‘사실’로 믿으면 비유는 헛것이 되고, 그러면 그 교회는 ‘헛것’을 믿음으로 따라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성경을 오해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교훈해 주는데 사도 시대 이후 교회들이 ‘가상 인물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가상 세계’를 ‘죽은 사람의 실재하는 사후의 세계’라고 믿었습니다. 믿어버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믿어버린 교회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뱀의 거짓말’을 뒤바꾸어 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뱀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도 시대 이후 교회들이 눅16장의 ‘가상 인물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가상의 사후 세계’를 실재하는 사후 세계라고 사실로 믿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긋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상의 인물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유로 말씀하신 뜻, 비유의 목적, 비유의 교훈은 ‘사람의 구원’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무엇으로 구원되는지를 말씀하신 것인데 가상을 실재라고 믿는 교회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엉뚱하게 다른 말로 말합니다.
비유의 말씀 중에 ‘죽은 부자’와 ‘죽어서 잠든 아브라함’과의 대화는 이렇습니다.
『[눅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회개의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가상 인물의 가상의 세계’를 비유로 ‘현실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서 들음에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 ‘구원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서 들음에 있다’고 하셨는가는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복음’을 모세와 선지자들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모세)를 믿지 아니함이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경은 모두 구약성경을 가리키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세와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성경의 말씀입니다.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눅16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말씀을 깨달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눅16:29, 31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하신 ‘그 모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눅16:29, 31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하신 ‘그 선지자들’입니다.
가톨릭 신부 마틴 루터가 가톨릭 교리를 버리고 신앙을 개혁한 것은 롬1:17의 ‘복음’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틴 루터는 눅16:29, 31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하신 ‘그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교회의 강령으로 교훈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케 하려 함이라’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복음=하나님이 아들을 친히 증언하신 말씀을 모세와 선지자들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의 삶으로’ 또 ‘십자가 희생으로’ 모세와 선지자들로 증언하신 하나님의 증언을 다 이루심으로 자기를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하나님의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시대 이후 교회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증언’을 버리고 성경을 엉뚱하게 오해하여 ‘엉뚱한 예수를 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밝혀주는 말씀이 눅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사도 시대 이후 교회들이 비유 속의 ‘가상 인물의 가상 세계’를 실재하는 세계라고 믿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버리거나 형해(形骸, 모양 형, 해골 해)하여 성경을 사람의 사상으로 말하는 교회가 되었고,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유대인들이 간 길을 가는 교회입니다.
『[막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하나님의 계명’은 분명 ‘하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계명이고 복음’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여러 교파로 갈리고, 같은 교파이면서도 수많은 교단으로 갈린 것은 성경을 ‘사람의 계명’ ‘사람의 전통’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 교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사도 요한이 증언하였습니다.
『[요일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믿는 사람 안에 증거가 있다는 것)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사도 요한의 말대로이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말하지 않는 교회,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속의 ‘가상의 세계를 실재하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교회들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이렇게 말하는 자들을 ‘양의 옷을 입은 거짓 선지자’라 하셨습니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어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교회들은 ‘못된 나무’이고 ‘멸망의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들에게 속는가?’는 이들이 양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위선자를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듯이 예수님이 왜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하지 않으셨는가를 생각해보니 ‘이들이 얼굴’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성직자 모양을 내는 목사 까운을 입고 성경을 말하기 때문에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 하신 것이구나’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7:15을 이어서 16~20절로 이런 교회들을 ‘못된 나무 나쁜 열매를 맺는 교회’라고 말씀하시면 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께서 ‘모세와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친히 증언하신 그 증거의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는 것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여 주여’ 하는데도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못된 나무 나쁜 열매를 맺는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예수’를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말하는 교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언하였습니다.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눅16장 예수님의 비유의 교훈 ‘하나님이 모세와 선지자들로 친히 증언하신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교회들이 이런 교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의 교훈을 버리고 ‘가상의 인물의 가상의 세계’를 ‘실재하는 불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눅16장 비유의 말씀을 듣지 않은 유대 바리새인 선생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신 지 얼마 안 되어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것을 다시 살리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의 증언’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증언하신 복음’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의 계명’으로 성경을 말하는 신학교와 교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신학교는 사람의 말=거짓말로 신학생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하고, 교회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양의 옷’을 입고 경건의 모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말씀을 마치며 기독교인들에게 나팔을 붑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세와 선지자들로 증언하셨다’고 말하지 않는 교회, 그래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하지 않는 교회에 있지 말고 거기서 나오십시오! 하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문을 두드리시며(계3:20) 심판으로 멸망될 곳에서 나오라(계18:4)고 호소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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