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3.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전봉준은 1855년 고부(전라북도 정읍)에서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명숙(明淑), 다른 이름은 영준(永準)이며 호는 해몽(海夢)이다. 별명이었던 녹두장군(綠豆將軍)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키가 작아 붙여진 별명이다.
아버지 전창혁(全彰赫, 일명 전승록)은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욕에 저항을 하다가 조병갑의 모친상 때 부조금 2천 냥을 안 거둬 줬다는 이유로 모진 곤장을 맞게 되어 몸이 허약해지더니 이내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이 일이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과 사회개혁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스스로를 선비라고 칭하며, 농민이기도 하였다.
전봉준은 서당 훈장을 지내고 1890년 무렵 동학에 들어가 고부 지역의 동학교도를 이끄는 접주가 되었다. (異說이 있음)
이 무렵 고부 군수 조병갑은 과중한 세금을 거둬들이고, 근거 없는 죄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는 등 횡포를 일삼았다. 또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만들어 불법으로 물의 사용료를 거둬들였다.
분노한 전봉준은 1894년 농민 1천여 명을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여 빼앗긴 곡식을 되찾아 농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조병갑 등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안핵사 이용태를 보내 잘못을 시정할 것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용태 역시 못된 관리로 약속과는 달리 무자비하게 농민군을 탄압했다.
이에 전봉준은 1894년 3월 각 지역 동학 접주에게 글을 보내고 손화중, 김개남 등과 함께 동학교도와 농민 1만여 명을 모아, 동학군을 조직했다.
전봉준은 사람을 죽이지 말 것, 충효를 다해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 서양 세력과 일본을 몰아내 나라의 정치를 깨끗이 할 것, 서울로 진격하여 그릇된 정치가를 몰아낼 것 등을 주장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동학군은 전라북도 정읍 부근의 황토현에서 관군을 물리치고 부안, 정읍, 고창, 무장 등을 점령한 뒤 전주까지 나아갔다. 그러자 정부의 요청으로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이 들어와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청나라나 일본군이 조선 땅으로 들어올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농민들은 곧 정부와 협상을 하여 자신들이 점령했던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했다.
집강소는 농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고을을 다스리는 자치 기구였다. 전봉준은 정부로부터 부패한 관리의 처벌, 노비 해방 등 농민을 위한 12개 항목을 약속 받은 뒤 휴전하였다.
※ 12개의 改革 要求 事項
1.우리나라 농민들은 조정과의 원한을 씻고 나라 발전을 위해 조정과 협력한다.
2.탐관오리는 그 죄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처벌한다.
3.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린 부자들을 처벌한다.
4.못된 양반들을 징벌한다.
5.노비 문서를 없앤다.
6.광대, 백정 등의 천민을 차별하지 않는다.
7.과부도 다시 결혼할 수 있도록 한다.
8.제멋대로 만든 세금을 모두 없앤다.
9.관리는 능력에 따라 뽑는다.
10.일본과 내통하는 자는 엄벌로 다스린다.
11.그 동안 농민이 진 빛은 모두 탕감한다.
12.땅은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다.
그러나 이 무렵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점점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자 전봉준은 1894년 8월에 다시 동학 혁명을 일으켰다.
전봉준은 남도 접주가 되어 12만 병력을 이끌고, 북도 접주 손병희의 10만 명과 함께 교주 최시형의 총지휘아래 일본군에 맞섰다. 항쟁의 규모는 점점 커져 중부, 남부 전 지역과 평안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신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의 반격으로 동학군은 공주와 금구 등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순창으로 피신한 전봉준은 그 곳에서 옛 부하의 밀고로 붙잡혀 서울로 끌려와 1895년 동지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때 그의 형제들도 연좌되어 사형 당했고, 그의 후처 여산 송씨는 끌려가 노비가 되었다. 당시 전봉준의 나이는 향년 41세였다. 그는 죽음에 다달아 다음 유시(遺詩)를 남겼다.
時來天地皆同力 (때가오니 천하가 모두 힘을 같이 했건만)
運去英雄不自謀 (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할 바를 모를 내라)
愛民正義我無失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일 뿐 나에게는 과실이 없나니)
爲國丹心誰有知 (나라를 위하는 오직 한마음 그 누가 알리)
♣ 민요 파랑새와 전봉준
(1)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나무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2)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솔잎 푸르다고
이 민요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일반적인 것은 동학농민운동과 관계가 깊은 내용으로써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청포장수는 민중을 의미한다고 보는 설이 일반적이다.
첫댓글 綠豆花顚血淚城(녹두화전혈루성)-녹두꽃이 떨어진 피눈물의 성에
憤心倡義盡丹誠(분심창의진단성)-발분하여 창의함에 참된 정성 다 바쳤네.
斥邪輔國三神告(척사보국삼신고)-사악한 무리 물리처 보국하고자 함을 삼신에게 고하고
除暴安民八域明(제폭안민팔역명)-폭정을 제거하여 백성을 편안케하고자함 세상에 밝혔네
汚吏膺懲非懼卒(오리응징비구졸)-탐관오리 응징코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外夷對戰不期生(외이대전불기생)-외국 오랑캐와 싸움에 살기를 기대하지 않았네
寂然土峴長垣內(적연토현장원내)-적연한 황토현 긴 담장안에서
東學農軍聞喊聲(동학농군문함성)-동학 농민군의 함성이 들려오네.
정읍문화원에 제출 입선한 시 한구절
고향카페에 우연히 방문하게 되어 선배님을 사이버공간에서
뵙게 되어 감회가 깊습니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메뉴가 다양하지
않아서 적재적소에 올려지는지 어설프고 조심스럽네요.
많은 지도편달 바랍니다.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