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8일 수아킨. 윌리엄은 72세다. 그의 배는 97세다. 그는 21년 동안 세일링을 하고 있다.
오늘 새벽에 생쑈를 했다. 어제 오전 카카오 뱅크로 웨스트 유니온 해외 송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연습하니, Last name, First Name, Middle Name 순으로 입력하라고 나온다. 모하메드가 보내 준 여권에 MOHAMED AHMED ABAKER MOHAMED 라고 적혀 있어, 성, 이름, 중간이름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아침 모하메드를 만나 물었을 때, 그는 그대로야 순서대로 입력하면 돼. 하기에 저녁에 그대로 입력했다.
Last name : MOHAMED
First Name : AHMED ABAKER
Middle Name : MOHAMED 이렇게!
그래서 송금하고 모하메드에게 송금했다고 캡춰 사진을 보내니, 잘 못 됐단다. 뭐지? 헷갈린다. 그리고 큰일이다. 왓스앱으로 다시 물어 보니.
Last name : Abaker
First name : Mohamed
Middle Name : Ahmed 란다.
자, 이게 왜 큰일이냐면, 여기는 데이터 로밍이 안 된다. 통화는 된다. 데이터를 쓰려면 SIM 카드를 사야한다. 그래서 샀다. 이 SIM 카드는 데이터는 되지만 통화가 안 된다. 통화와 데이터를 동시에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나도 처음 겪는다. 그래서 여기 시간으로 저녁에 카카오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통화를 해야 한단다. 내 상황을 설명하고,
WU해외송금 정보수정 요청]
1. 송금일자 : 3월 27일
2. 수취국가 : 수단
3. MTCN: 000 000 000 (앱>해외송금 내역조회>WU송금추적 터치)
4. 송금금액 : 000.00 USD
5. 변경 전 정보:
Last name : MOHAMED
First Name : AHMED ABAKER
Middle Name : MOHAMED
6. 변경 후 정보:
Last name : Abaker
First name : Mohamed
Middle Name : Ahmed
이렇게 적어 보내니 맞다고 한다, 이 내용 그대로 외환 쪽에 문의하라고 하고, 외환은 한국시간 오전 9시부터 업무시작이라고 한다. 나는 이걸 해결해야 수요일 출항이 가능하다. 새벽에 자는 둥 마는 둥 깨어, 현지시각 오전 2시에 카톡을 다시 한다. 그리고 SIM 카드를 교체해 전화를 기다린다. 헉! 로밍통화가 안 된다. 수단은 로밍 불가능 지역이라고 한다. 통화가 안 되면 어째? 아내 전화는 된다. 뭐지? 그래서 아내전화로 문의 하는 사이, 10분 만에 내 전화도 로밍 된다. 뭔 상황인지 모를 일이다. 기다려야 하는 건가 보다. 어쨌든 카카오 뱅크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다른 번호를 안내한다. 젠장. 그 번호로 하니 상담자가 전화를 받는다. 통화하고, 다시 SIM 카드를 바꾸어 데이터로 카카오뱅크에 가보니 변경 안내가 나온다. 다시 내용을 입력하니 잘 접수되었다고 한다. 너무 감사한일이다. 모하메드에게 다시 캡춰해 보낸다. 아내가 핀잔준다. 좀 다 잘 알아보고 송금하지. 모하메드 때문에 욕바가지로 먹네.
욕먹고 너무 배불러서, 아내가 미역국을 끓이는 사이 엔진과 기어 점검을 한다. 이스마일리아에서 엔진 점검하고 수에즈와 수아킨까지 오는 사이 기어오일이 샜다. 찍어보니 끝에 약간 보인다. 엔진오일과 기어오일을 같이 사용하니까 오일을 보충한다. 만약 지부티까지 가서 또 샜으면 좀 더 제대로 점검해야겠다. 라고 맘을 먹지만 어떻게? 기어오일 뚜껑이 문제인가? 메카닉을 못 만나면 3~4일 항해마다 한 번씩 기어오일을 보충하자. 작은 오일 통에 기어오일을 가득 채운다. 언제든 보충할 수 있도록.
나와 같은 코스를 가는, 내 뒤에 앵커링 한 독일 배가 내일 오전 5시에 떠난다고 한다. 그도 윈디로 나와 같은 항해계획을 세운 거다. 그래서 그와 오늘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서로 큰 도움은 안 되도, 마음이라도 좀 편하지 않을까? 그도 지부티로 간다고 하니 동행이 생긴 거다.
아침 8시 선수에 줄을 걸고 이불 빨래를 말리려는데, 모하메드가 물을 가지고 왔다. 생수통에 뚜껑 딱지까지 그대론데, 어쩐지 생수 같지 않다. 일단 겉이 너무 더럽고 안에도 이물질이 보인다. 마실 물은 아니지만 정말 찝찝하다. 지부티나 오만 살랄라에서 물탱크를 싹 비워내고 다시 담아야겠다. 생활용수는 수아킨에서 담지 말고 수에즈에서 담아야 한다. 30 리터 15개 1통에 7달라다. 물 나르고 부어주는 서비스는 아주 좋다. 저걸 내가 텐더보트로 나르고 들어 올리고... 아마 하루 종일 걸리고 몸살 날 거다. 세탁물은 오후에 온단다. 나는 모하메드에게 왜 다른 선장들이 당신을 최고! 라고 하는지 알겠다며 감사를 표한다. 진심이다.
물 나르기 하는 동안, 모하메드가, 저기 미국 배 윌리엄 선장에게 가봐라, 낡은 앵커를 공짜로 준단다. 어우 엄청난 소식이다. 실은 어제 마르코가 이미 윌리엄에게 말했다고 아침에 가보라고 했다. 잘 생기고, 부지런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그 마르코 말이다. 알겠다하고 일단 독일 배에 갔다. 오전 9시 30분이다. 그는 마르코와 함께 엔진오일을 갈고 있었다. 아직 10시가 안됐다고 한다. 나는 오케이 하고 윌리엄에게 간다. 윌리엄은 나를 반겨 주었다.
월리엄의 배는 1925년도 제작된 배다. 97살 먹었다. 윌리엄은 혼자서 세계일주 중이다. 11년째라고 한다. 그의 배는 60피트 정도 되는 스쿠너다. 마스트가 두 개다. 그는 배 구경을 시켜준다. 거대한 그의 씨와나카 Seawanhaka (JFK 공항이 있는 섬의 인디안 이름) 는 나이만큼 낡았으나, 황소의 목처럼 튼튼한 목재 마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솔라 패널, 풍력 발전기, Inmarsat 위성전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집 전화처럼 사용한다고 하니 정말 부럽다. 낡았지만 장중함을 잃지 않은 거대 요트다. 그러나 흔히 남자 혼자 사는 집처럼, 책장에는 뽀얗게 먼지가 앉았고, 와인 잔은 먼지에 가려 뿌연 플라스틱처럼 보였다. 벽에는 그와 이배의 오래전 사진, 이 배의 도면이 함께 붙어 있었다. 그는 아마도 이 배와 최후까지 함께할 것 같다. 수리를 위해 열어 둔 선창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빌지는 5분 간격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다. 문득 걱정된다. 그러나 그는 노련하고 나는 신참이다. 자중하자.
그는 워커 메이커를 설치하지 않았다. 선장은 물을 아껴 써야지, 물 만든다고 기름을 써선 안 된다고 한다. 오 대단한 철학이다. 저 독일 배에는 왜 갔느냐고 물어서 내일 새벽 같이 떠날까 한다고 했다. 윌리엄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야, 벌써 떠난다고 한 게 세 번째야. 한번은 떠났다가 윈치고장으로 돌아왔고, 두 번째는 3일 만에 엔진 트러블로 돌아왔어. 그게 무슨 선장이야? 자기 배도 안 돌보고. 그러고 여기서 벌써 몇 달째야. 내가 빌려준 00 도 잊어먹었대. 저 배 바닥을 봤어? 엄청 더러워. 실내는 쓰레기통이지. 그런데 무슨 세일링을 한다고. 절대로 저자와 같이 가지마. 골칫덩이야. 아하, 또 그런 속사정이 있었네. 나는 정보에 감사한다. 윌리엄은 미국인답게 직설적이다.
너는 다음에 어디로 가니? 지부티와 오만 살라라다. 나는 2년 전에 살랄라 갔는데 아주 좋은 곳이다. 나는 3개월 있었다. 독크도 아주 좋고. 앗 잠깐만, 내 친구가 거긴 앵커밖에 안된다고 하든데? 아냐 거기 폰툰이 있어. 물과 전기, 쇼핑센터. 거기 룰루 수퍼마켓을 네 아내가 아주 좋아 할 거다. 그 쇼핑센터에 없는 게 없어.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럼 지부티만 앵커링으로 버티면 오만 살라라에서는 전기도 물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 아닌가? 쾌재다. 네 친구는 언제 살랄라에 다녀왔니? 한 10년 전. 그럼 살랄라가 바뀐걸 못 본거다. 월리엄이 다시 확인 해준다.
윌리엄은 앵커를 꺼내기 전에 마르코에게 전화한다. 마르코가 내 배의 앵커 시스템을 봤으니, 이 앵커를 설치 가능한지 여부를 알거다. 나는 초짜라는 뜻이다. 흐이구. 곧 마르코가 딸과 함께 보트를 타고 왔다. 윌리엄이 다시 배 안내를 한바탕하고 앵커를 보러 갔다. 선수 선창에 25Kg 짜리 앵커가 있다. 굉장히 길다. 이게 내 앵커 시스템에 맞을까? 그러나 마르코는 ‘아주 좋은 앵커’라고 설치해 보라고 한다. 알겠다. 그러나 내가 혼자 하기엔 무리. 오늘은 바람이 너무 강하니, 윌리엄과 마르코가 내일 오전 8시에 제네시스로 오기로 했다. 그럼 뭐가 되던 될 거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Seawanhaka의 헬리야드를 이용해 내 텐더보트에 앵커를 싣고 제네시스로 간다. 앵커를 올리려고 바우 쪽에 텐더를 붙이니, 갑판이 내 키만큼 높다. 낑낑대며 올라가 헬리야드를 풀어, 다시 헬리야드 줄을 잡고 내려가 앵커에 건다. 헬리야드에 앵커를 걸고 다시 배에 오르려니 참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앵커를 올리려니, 아내는 리나와 낮잠 중이다. 도저히 깨울 수 없다. 누군가 앵커가 배를 깨먹지 않도록 줄을 잡고, 누군가 윈치를 돌려야 한다. 방법이 없어 일단 앵커를 들어 본다. 25Kg 이라고? 죽기 살기로, 배에 닿지 않게 앵커를 끌어 올려 갑판에 두니, 머리가 핑 돈다. 그래도 혼자 해냈다.
앵커를 올리고 독일 배에 가서 ‘하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이 하인이다. 하인리히 할 때 그 하인. 그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 밤에 떠난다고 한다. 말이 다르다. 그의 배는 34피트 정도 되는데 엄청 낡았고 선저 청소를 안 해 속도가 제대로 안날 것이다. 그는 자기배가 4~5노트 밖에 속도가 안 나서 더 일찍 가기로 했단다.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팔랑귀다. 윌리엄의 말을 듣고는 그와 같이 가기가 좀 찜찜했다. 나는 역조류 때문에 어차피 내 배도 그 정도 밖에 속도가 안 날거라고 말해준다. 그도 월요일 밤까지는 지부티에 도착하기를 소망한다. 나도 그가 큰 고생 없이 지부티에 제 시간에 도착하기를 기도한다. 여기까지가 초보 부분 세계일주 항해중인 김선장이 겪는 수아킨 앵커 포인트의 오전이다. 아내가 깨면 스파게티 해줄 생각이다. 리나를 돌보는 일도 세일링 만큼 중노동이다. 한 인간의 성장을 돌보는 일 아닌가.
오후 12시 20분. 모하메드가 세탁물과 내 출국 서류를 가지고 왔다. 이제 공식적인 출국절차는 다 끝났다. 이제부터 언제라도 수단 수아킨에서 출국 가능하다. 모하메드에게 인사를 하고 한국서 오는 선장들에게 너의 연락처를 알리겠다고 한다. 모하메드는 감사 인사를 한다. 그는 일처리가 아주 깔끔하다. 그래서 편안했다. 이집트 에이전트들과 너무 큰 비교가 된다. 수단 수아킨 정리.
모하메드 수단 수아킨 +249 91 214 2678 : 왓스앱으로 연결
디젤유 : 제일 깨끗. 리터당 1.6달러 / 배달해 줌
물 : 여기는 패스. 수에즈에서 수돗물 넣을 것.
식료품 : 포트 수단까지 멀리가지 말고 바로 앞 수아킨 시장/ 택시 이용 권장/모하메드에게 물을 것.
오후 12시 40분. 월리엄에게 괜찮으면 점심 같이 하자고 내가 스파게티 끓인다고 했더니, 곧 온단다. 윌리엄에게 토마토 스파게티, 계란 프라이, 적색양배추, 이태리 빵, 물, 커피 등으로 제법 그럴싸한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앵커를 거져 주었다. 식사 대접쯤이야. 그가 바바리아 요트 컵을 아주 맘에 들어 하는 걸 보고, 아내가 바바리아 머그 한개, 바바리아 투명 잔 두개, 윌리엄이 잘 먹는 이태리 빵을 선물로 주었다. 윌리엄이 깜짝 놀란다. 한국의 선물 풍습은 세계인을 감동 시킨다. 윌리엄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들었다.
윌리엄은 72세다. 그의 배는 97세다. 그는 21년 동안 세일링을 하고 있다. 그는 북극, 남극, 세계일주 등을 합치면 지구를 세 번 돌았다고 한다. 나로선 꿈도 못 꿀 이야기다. 그는 샌디에이고 출신이고, 이후로는 배를 한 척 더 사서 한 대는 알렉산드리아, 한 대는 터어키에 두고 싶다고 한다. 그래야 셍겐조약 때문에 90일간만 유럽에 머무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유럽여행을 하다가 곧장 알렉산드리아나 터어키를 다녀오는 거다. 아내는 없냐고 하니까. 슬쩍 쓸쓸한 표정이 된다. 40년 전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와이프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그의 손자 사진을 보여준다. 가족이 그리우면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다녀온다고 한다.
그의 배에 흐르는 물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나무배라서 그렇다고 한다. 오래된 판자 사이로 물이 새는 거다. 빌지가 5분마다 뽑아낸다. 알렉산드리아에 가면 선저에 나무 틈에 뱃밥을 넣고 내부에서는 퍼티 작업을 할 거란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만약 빌지에 이상이 생기면 2~3일 이내로 배가 가라앉을 텐데 그는 태연하다. 나 같으면 잠도 못잘 상황인데. 노련한 세계일주 세일러의 경력이 빛난다. 오후 3시경, 그는 내일 오전 8시에 만나자며 떠났다. 내일 오전 마르코와 윌리엄이 도와주면 앵커 교체 작업은 쉽게 끝날거다. 거목들 사이에 서니 내 키가 커진 느낌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오전 10시경 나는 지부티로 출항한다. 오만 살랄라에 도크가 있고, 전기와 물 뭐든 다 있다는 그의 말에 희망이 샘솟는다.
며칠 배를 세워 놓고 하루 1시간 발전기만 돌렸더니 배터리가 11.9V까지 내려갔다. 발전기를 두 시간 이상 돌려야 하나보다. 아님 하니아에서 새로 교체한 배터리가 이상인가? 냉장고 두 대와 저녁에만 실내등 한두 개를 켜놓을 뿐인데, 이렇게 빨리 전력이 소모 된다고? 발전기로 돌릴 때 배터리 챠저가 수상하다. 중간에 110V 다운 트랜스가 있다. 한국가면 새것으로 교체해야겠다. 일단 문제를 알고 있으니 배터리 방전에 주의해서 시스템을 운영하자. 아내는 하루종일 선실을 청소, 정리한다.
이렇게 분주하게 출항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 30분. 수단 수아킨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간다.
첫댓글 오늘부터 실시간으로 구독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