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9:1-6, 열두 제자를 내보내심, 24.11.24, 박홍섭 목사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 다니며 많은 설교를 들었고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자신들이 이적을 행한 적은 없습니다. 이제 주님은 이들을 불러 모아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위임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도록 이스라엘의 각 고을로 내보내십니다.
누가복음은 그냥 열두 제자를 보내었다고 했는데 평행 구절인 막 6:7을 보면 둘씩 보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둘은 성경에서 객관적인 법정 증거의 가장 기본적인 숫자입니다. 둘씩 짝을 지워 보내셨다는 말은 이들을 하늘 법정의 증인으로 보내었다는 뜻입니다. 무슨 증인입니까? 그리스도의 증인, 하나님 나라의 증인, 복음의 증인입니다.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신실하게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역을 위임하심으로 주님이 떠난 이후 세상은 이들의 증언이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 막중한 소명이 이들이 터가 되어 세워진 신약교회와 성도에게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본문의 열두 제자와는 다릅니다. 이들은 그냥 제자가 아니라 사도들입니다. 주님이 이들을 어떻게 세웠습니까? 눅 6:12-13절을 보십시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지금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과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까지 주셨던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제자 중에 특별한 임무 수행을 위해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가려서 뽑은 사도들입니다.
주님을 이들을 이스라엘의 각 고을로 보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마 10:5-10을 보십시오. 주님은 이들에게 이방인의 길도 아니고 사마리아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서 천국이 가까웠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사역 범위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입니다. 제한적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라고 하셨습니까? 마 9:35-38에 보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들이 적은 때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사 우리의 대속을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시면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혈통적 육신적 정치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영적 이스라엘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아직 육적 이스라엘 안에 추수할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희어져 추수해야 할 영혼들이 이스라엘의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은 육신의 제한을 받고 있기에 이 고을 저 고을 다 다니지 못합니다. 다 추수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많은 제자 중에 열두 사도를 택하여 이들에게 권능을 주어 각 고을로 다니며 희어져 추수할 영혼들을 추수하게 하십니다.
열두 사도들에게 허락된 권능들은 이런 목적수행을 위한 한시적인 권능입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이런 목적과 더불어 성경을 기록하고 신약교회의 터가 되도록 하기 위한 특별한 기간의 한시적인 직분입니다. 주님은 이들에 의해 성경이 다 기록되고 교회의 터가 닦인 후에는 더이상 선지자와 사도라는 이 특별한 직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론에서는 사도의 직분을 항존직이 아니라 비상 직분으로 분류합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는 기적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사도들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병을 고치고 약한 것을 고치도록 하신 그때의 이적은 없습니다. 사도들이 주님께 받은 권능으로 일으킨 기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입니다. 표적은 실체를 가리키는 일종의 표지판 사인입니다. 메시아가 주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표적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귀신을 축출하며 병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이가 메시아며 그 메시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메시아가 가지고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적 나라가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번영의 나라라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도들에게 허락한 귀신축출과 병자 고침의 표적을 이제 여기에 진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있음을 선포하고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이 표적이 누구와 무엇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 성경입니다.
주님이 사도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고치는 권세를 주셨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입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해서 구원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사도들의 권능은 우리를 이 성경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입니다. 신약 성경이 완성된 이후 이 표지판은 없습니다. 사도들이 주님이 주신 표적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갔다면 이제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제자 삼기 위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보냄을 받았습니다.
신약 성도는 주님의 제자들이고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지만 사도는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선지자적인 자세로 이 땅을 살아야 하지만 선지자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받았던 모든 병을 고치고 모든 약한 것을 치료하는 권능과 죽은 자를 살리는 특별한 권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에도 선지자와 사도가 있다고 하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권능을 받은 선지자요 사도인 것처럼 행세하는 자들은 망령된 자들입니다. 그들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신약교회의 터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도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는 권능을 받았다면 우리는 사도들이 남긴 하나님의 말씀, 곧 권능의 말씀들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전하고 살아낼 때 육신의 죽음보다 더한 영혼의 죽음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함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죄가 치료되는 생명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며 죄가 치료되고 죄를 이기는 새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어남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기억해야 할 삶의 원리와 자세가 있습니다. 본문 3-5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집도 가지지 말고 차도 가지지 말고 돈도 벌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권대사로서 증인의 삶을 감당하려면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를 나의 전권대사로 보내면서 그냥 보내겠느냐 너희의 필요를 공급해줄 테니 너희는 내가 맡긴 사명에 집중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행을 위해 지팡이, 배낭, 양식, 돈, 두 벌 옷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사치품도 아닙니다. 여행의 필수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것조차 가지지 말고 오직 이들을 보내신 주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이런 모습 자체가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에서는 너무나 선명한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명에 집중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낫는 표적으로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도 하고 저것도 취하면서 목표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려고 모압 땅을 지나고 암몬 땅을 지날 때 하나님은 그 땅들을 정복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헤브론 왕 시흔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싸워서 정복하라고 했습니다. 다 정복하고 가나안에 갈 수 없습니다. 지나가야 할 것은 지나가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모압도 차지하고 암몬도 차지하고 가나안도 정복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좋게 보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보냄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을 맡길 수 있고 출세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성도는 맡기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전하고 흘려보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런 우리의 존재 이유를 기억하고 그 소명에 집중할 때 주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만나야 할 자를 만나게 하시고 도움을 받을 자에게 도움을 받게 하십니다. 주님은 열두 사도들에게 내가 그렇게 해줄 테니 너희들은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욕심을 채우려 하지 말고 너희를 영접하는 한곳에 머물면서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물론 거절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복음만 들고 다니는 거지와 같은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무시할 수 있습니다. 돈도, 지팡이도, 두 벌 옷도 없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거절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시당하고 거절당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5절이죠.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증거’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무슨 증거입니까? 이들이 복음을 거절했지만, 제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증거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까? 지금 그들이 거절하는 복음이 자신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계속 거절하면 심판밖에 없다는 증거입니다. 손에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 사실은 주님을 대신해서 왔습니다. 이들의 입에는 주님의 이름이 있고 복음이 있습니다. 이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이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이렇게 가난하고 초라한 복음 전도자들의 손에 맡겨서 사람들의 중심을 시험하십니다.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말씀은 이들의 멸망이 전도자의 책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교만에 있음을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과 용서와 기다림의 기회가 그 사람과 그 성읍에는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전파에는 이런 긴급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은혜를 복음과 함께 흘려보내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가 이 복음에 담긴 주의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영적 긴박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어 모든 죽어 있는 것들을 살립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이 복음 들고 우리의 주변과 이웃을 향하여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