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수행되어져야 하는 절대적 명령이며, 윤리는 상황에 따라 그 수행의 유형이 달라진다. 전통적인 교회는 윤리적 과제보다 선교적 과제를 더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명령으로 인식해 왔는데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하나의 과제로 만드는 것은 결국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과제를 약화시킬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선교와 윤리는 각각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에 서로 충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충돌 되는 경우 우리는 우선순위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인간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첫째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말씀 역시 두 사랑은 동급이나 우선순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윤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한다. 윤리적인 삶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적으로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서 바르게 살게 된다. 나뿐 관습과 흉악한 일들이 복음이 들어가면서 곤쳐지게 되었다. 선교의 촛점은 인류를 인간화를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선교의 사회윤리는 복음을 사회에 전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윤리로는 인간의 근본적인 영혼,생명을 살릴 수 없다. 선교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과 우리에게 말씀 하신 선교적 명령에더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는 마땅히 살아가야할 삶이다 그러므로 복음적인 삶에 따르는것이 윤리 이기에 윤리는 선교에 우선 할수없다고본다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는것이 마땅한데 선교의 새로운관점에서 윤리가 복음위에 서는것은 아니다라고 본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모두 중요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힘이 생기며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온전한 사랑이 됨을 새삼 깨달았다. 선교에는 윤리적인 과제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과 선교적 과제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며,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즉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 또는 선교를 위한 다리 , 선교후에 나타나는 열매로 인식하게 된다. 복음주이 진영은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전통적 이해를 지닌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의 통치 체험을 위한 개인적인 회심과 중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독교 윤리과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과제이다. 선교는 절대적 명령이고 윤리는 상대적인 명령이다.
기독교 윤리는 그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윤리에서 다시금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느냐? 의 질문을 해보게 된다. 온 삶을 통해 나타내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야할 이유인 것이다.
선교의 복음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에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 선교가 이뤄진 이후 실현될 수 있으며 영적 측면에서는 생명 탄생은 선교 과제이며 그 이후에 논할 수 있는 것이 윤리적 과제이다. 선교적 과제는 교회만이 할 수 있으며 윤리적인 것은 교회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선교는 절대적 명령이며 윤리는 상대적인 명령이다.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하나로 이해하는 것은 선교적 과제를 약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적 과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분명하게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윤리는 시작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며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한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기도하다 복음주의 진영은 선교의 과제와 윤리적과제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전통적 이해를 지닌다 기독교 윤리과제는 하나님의 자녀가된 우리에게 마땅히 행해야할 과제이다
이와같이 너희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사랑의 열매를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며. 실천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윤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믿지않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것, 이것을 통해 믿지 아니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며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불행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것에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 윤리적 목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의 윤리와 하나님을 믿는 윤리는 다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로써 다른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둘 다 중요 하지만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다. 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가장 귀한 이웃 사랑이 될 것이다. 기독교 윤리와 세상 윤리의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 윤리는 시작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영구적으로 돕는게 기독교 윤리의 목표이다. 윤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하늘 아버지를 알게 하고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성도들이 윤리적으로 선한 삶을 살면서 사회에서도 인정받으며 뿌리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상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에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끝없는 사랑 아가페의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줄 뿐아니라 기적이 일어난다는점. 그리고 퍼져나간다는 것 등 놀라운 사랑일것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한계가 있고 포기하게 되어 이웃에 하나님사랑을 실천해야하는 이율 깨닫게되었습니다.
복음과 윤리의 관계성과 우선순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였습니다. 우선 순위는 당연히 복음전파이며 그이후에 그 복음이 뿌리내리며 자연스럽게 나올수밖에 없는 게 윤리나 이웃사랑입니다. 같은 재료로 순서만 바뀌어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져 인간다운 인간만 강조하며 구원과 멀어진 타종교와 차이가 없어지는것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그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이라는 것이 세상윤리와 기독교 윤리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윤리적 과제와 선교적 과제는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리는 선교를 위한 다리이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과제는 교회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과제인 반면 포괄적 의미의 윤리적 과제는 교회도 할 수 있는 과제이다. 세상 어떤 기관들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교회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자체가 동일한 전도의 형태이다. 각자 우리 스스로가 윤리성을 지키고 생활에서부터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생활선교사는 곧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자라고 본다. <가장 큰 계명- 마태복음 22:36-40>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내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첫 쨰 되는 계명이다. 내 자신과 같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도 우선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교의 관점 또한 우선성을 없이하고는 올바른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기 어렵다. 기독교 윤리와 사회윤리 사이의 우선성을 포기하고 복음과 윤리가 동등한 위치에 놓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과 구별성이 왜 우리가 복음에 우선성을 두어야하 하는지 알게 해준다.
점점 변해가는 선교의 목표. 윤리를 복음화를 위한 방법이 아닌 자체가 목적으로 변하는 새로운 관점이 출현하였다. 윤리를 바라보는 에큐메니칼 관점과 복음주의 관점을 비교하며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신앙과 복음전도를 우선시 해야 한다. 윤리를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그것이 복음전도를 덮어버려선 안 될 것이다.
에큐메니칼은 선교관을 거대윤리 차원에서 보다가 점차 윤리와 선교를 분리할 수 없고 하나로 보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1975년 에큐메니칼 진영은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책임으로 통전적 관점을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생각은 여전히 에큐메니칼 선교적 관점의 목적은 전통적 관점의 선교의 관점으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윤리적인 모습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믿게 되면 가족과 이웃과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시고 그럼에도 우리는 복음을 위해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되지 않았다면 복음이 세상에 퍼지기 힘들었을 것 같다.
9주차강의에 대한 댓글 에큐메니칼진영의 선교목표를 통해 사회적 책임이란 인간적인 관점에서 모든것을 보게 한다는걸 한순간이라도 자각하지 않으면 거대한 윤리적책임론 에 쉽게 빠져갈수없는것 같다 예수님께서 윤리의란 모든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데 이것을 살짝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게함으로 이웃사랑이란 예수님의 순수한 사랑이 흩트려지게 하는 사단들의 집요한 계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과 대화가 되지않을만큼 문을 닫을수는 없고 또한 주님의 가르침 또한 그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와헌신이 필요하다
로잔이 말하는 총체적 선교는 wcc의 통전적 선교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어만 다르게 이름 붙인것은 복음전도를 목표로 하는 전통적 선교 방식이 올바르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사역은 당연히 교회에서 목표로 해야 할 일이고 세상의 일은 세상속에서 풀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써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wcc와 로잔대회에 우려와 안타까움을 느낀다
세계복음화 선교적과제는 윤리적 과제보다 우선순위는 복음전도이다 예수님의 맒씀에 근거해 볼때 하나님 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고 하셨다 윤리는 선교를위한 다리같은 역할이다 윤리적 과제는 선교적 과제와 동등하지않다 선교 가 윤리보다 우선시 되어야한다
전통적인 선교관은 윤리를 주로 작은 윤리(micro-ethics)의 차원으로 보지만 에큐매니칼 선교관은 주로 거대 윤리(macro-ethics)차원으로 보면서 이 거대윤리를 이루는 것이 곧 선교의 한 목표라고 보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를 그 시작이 하나님으로터 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윤리이다.
선교 와윤리는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지만 윤리는 선교를 잘 할수 있도록 보완해 준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 회복 즉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하여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선교는 선한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선교는 윤리 문제를 다루지 안으면 앙된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은 선교사의 말과 행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선교사들의 개인 운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학부 2년 박선석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전도이다. 선교는 하나님께 인도하는 자녀 영광이 핵심이나 지금의 전도의 중요 부분을 읽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예순님의 본질이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회가 빨라 지는 속도 마냥 인정도 칭찬도 빨리 듣고 싶은 모양이다.
허경하 타종교, 타문화가 진을 치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곧 충돌, 불화가 예견되기 마련이지만 예수님 말씀처럼 그런 상황들을 미리 염두에 두고 윤리 대신 신앙을 지켜냄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일에는 나의 전부를 쏟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선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수행되어져야 하는 절대적 명령이며, 윤리는 상황에 따라 그 수행의 유형이 달라진다. 전통적인 교회는 윤리적 과제보다 선교적 과제를 더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명령으로 인식해 왔는데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하나의 과제로 만드는 것은 결국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과제를 약화시킬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교회의 존재목적이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이시고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몰라 지옥가는 영혼들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구세주로 모셔들이는 천국복음사역을 주님이 기뻐하리라봅니다 (정인희)
선교와 윤리는 각각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에 서로 충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충돌 되는 경우 우리는 우선순위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인간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첫째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말씀 역시 두 사랑은 동급이나 우선순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윤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한다. 윤리적인 삶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적으로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서 바르게 살게 된다. 나뿐 관습과 흉악한 일들이 복음이 들어가면서 곤쳐지게 되었다. 선교의 촛점은 인류를 인간화를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선교의 사회윤리는 복음을 사회에 전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윤리로는 인간의 근본적인 영혼,생명을 살릴 수 없다. 선교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과 우리에게 말씀 하신 선교적 명령에더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는 마땅히 살아가야할 삶이다 그러므로 복음적인 삶에 따르는것이 윤리 이기에 윤리는 선교에 우선 할수없다고본다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는것이 마땅한데 선교의 새로운관점에서 윤리가 복음위에 서는것은 아니다라고 본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모두 중요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힘이 생기며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온전한 사랑이 됨을 새삼 깨달았다. 선교에는 윤리적인 과제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과 선교적 과제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며,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즉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 또는 선교를 위한 다리 , 선교후에 나타나는 열매로 인식하게 된다. 복음주이 진영은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전통적 이해를 지닌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의 통치 체험을 위한 개인적인 회심과 중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독교 윤리과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과제이다. 선교는 절대적 명령이고 윤리는 상대적인 명령이다.
기독교 윤리는 그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윤리에서 다시금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느냐? 의 질문을 해보게 된다. 온 삶을 통해 나타내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야할 이유인 것이다.
선교의 복음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에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 선교가 이뤄진 이후 실현될 수 있으며 영적 측면에서는 생명 탄생은 선교 과제이며 그 이후에 논할 수 있는 것이 윤리적 과제이다. 선교적 과제는 교회만이 할 수 있으며 윤리적인 것은 교회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선교는 절대적 명령이며 윤리는 상대적인 명령이다.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하나로 이해하는 것은 선교적 과제를 약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적 과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분명하게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윤리는 시작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며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한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기도하다 복음주의 진영은 선교의 과제와 윤리적과제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전통적 이해를 지닌다 기독교 윤리과제는 하나님의 자녀가된 우리에게 마땅히 행해야할 과제이다
이와같이 너희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사랑의 열매를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며. 실천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윤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믿지않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것, 이것을 통해 믿지 아니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며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불행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것에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 윤리적 목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의 윤리와 하나님을 믿는 윤리는 다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로써 다른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둘 다 중요 하지만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다. 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가장 귀한 이웃 사랑이 될 것이다. 기독교 윤리와 세상 윤리의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 윤리는 시작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영구적으로 돕는게 기독교 윤리의 목표이다. 윤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하늘 아버지를 알게 하고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성도들이 윤리적으로 선한 삶을 살면서 사회에서도 인정받으며 뿌리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선교의 윤리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선교 윤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에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끝없는 사랑 아가페의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줄 뿐아니라 기적이 일어난다는점. 그리고 퍼져나간다는 것 등 놀라운 사랑일것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한계가 있고 포기하게 되어 이웃에 하나님사랑을 실천해야하는 이율 깨닫게되었습니다.
복음과 윤리의 관계성과 우선순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였습니다. 우선 순위는 당연히 복음전파이며 그이후에 그 복음이 뿌리내리며 자연스럽게 나올수밖에 없는 게 윤리나 이웃사랑입니다. 같은 재료로 순서만 바뀌어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져 인간다운 인간만 강조하며 구원과 멀어진 타종교와 차이가 없어지는것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그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이라는 것이 세상윤리와 기독교 윤리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윤리적 과제와 선교적 과제는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리는 선교를 위한 다리이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과제는 교회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과제인 반면 포괄적 의미의 윤리적 과제는 교회도 할 수 있는 과제이다. 세상 어떤 기관들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교회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자체가 동일한 전도의 형태이다. 각자 우리 스스로가 윤리성을 지키고 생활에서부터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생활선교사는 곧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자라고 본다. <가장 큰 계명- 마태복음 22:36-40>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내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첫 쨰 되는 계명이다. 내 자신과 같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도 우선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교의 관점 또한 우선성을 없이하고는 올바른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기 어렵다. 기독교 윤리와 사회윤리 사이의 우선성을 포기하고 복음과 윤리가 동등한 위치에 놓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과 구별성이 왜 우리가 복음에 우선성을 두어야하 하는지 알게 해준다.
점점 변해가는 선교의 목표. 윤리를 복음화를 위한 방법이 아닌 자체가 목적으로 변하는 새로운 관점이 출현하였다. 윤리를 바라보는 에큐메니칼 관점과 복음주의 관점을 비교하며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신앙과 복음전도를 우선시 해야 한다. 윤리를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그것이 복음전도를 덮어버려선 안 될 것이다.
에큐메니칼은 선교관을 거대윤리 차원에서 보다가 점차 윤리와 선교를 분리할 수 없고 하나로 보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1975년 에큐메니칼 진영은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책임으로 통전적 관점을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생각은 여전히 에큐메니칼 선교적 관점의 목적은 전통적 관점의 선교의 관점으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윤리적인 모습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믿게 되면 가족과 이웃과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시고 그럼에도 우리는 복음을 위해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되지 않았다면 복음이 세상에 퍼지기 힘들었을 것 같다.
선교는 기본적으로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반면 윤리는 인간다운 삶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들의 삶의 문제 개선에 관심을 가진다.
9주차강의에 대한 댓글
에큐메니칼진영의 선교목표를 통해 사회적 책임이란 인간적인 관점에서 모든것을 보게 한다는걸 한순간이라도 자각하지 않으면
거대한 윤리적책임론
에 쉽게 빠져갈수없는것 같다
예수님께서 윤리의란
모든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데
이것을 살짝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게함으로
이웃사랑이란 예수님의 순수한 사랑이 흩트려지게 하는 사단들의 집요한
계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과 대화가 되지않을만큼 문을 닫을수는 없고 또한
주님의 가르침 또한 그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와헌신이
필요하다
로잔이 말하는 총체적 선교는 wcc의 통전적 선교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어만 다르게 이름 붙인것은
복음전도를 목표로 하는 전통적 선교 방식이 올바르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사역은 당연히 교회에서 목표로 해야 할 일이고 세상의 일은 세상속에서 풀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써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wcc와 로잔대회에 우려와 안타까움을 느낀다
교회만이 할수있는 선교적 과제가 교회도 할수있는 윤리적 과제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1차적 과제는 복음 전도임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세계복음화 선교적과제는 윤리적 과제보다 우선순위는 복음전도이다
예수님의 맒씀에 근거해 볼때 하나님 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고 하셨다
윤리는 선교를위한 다리같은 역할이다 윤리적 과제는 선교적 과제와 동등하지않다
선교 가 윤리보다 우선시 되어야한다
전통적인 선교관은 윤리를 주로 작은 윤리(micro-ethics)의 차원으로 보지만 에큐매니칼 선교관은 주로 거대 윤리(macro-ethics)차원으로 보면서 이 거대윤리를 이루는 것이 곧 선교의 한 목표라고 보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를 그 시작이 하나님으로터 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윤리이다.
선교 와윤리는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지만 윤리는 선교를 잘 할수 있도록 보완해 준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 회복 즉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하여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선교는 선한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선교는 윤리 문제를 다루지 안으면 앙된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은 선교사의 말과 행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선교사들의 개인 운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은선교와윤리를 사랑과도덕자비와공의의균형을 통해조화롭게이해하고실천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믿음의 실천과도덕적 행동을통해 하나니의 나라를 세상에전하는과정이어야한다고 가르친다
학부 2년 박선석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전도이다. 선교는 하나님께 인도하는 자녀 영광이 핵심이나 지금의 전도의 중요 부분을 읽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예순님의 본질이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회가 빨라 지는 속도 마냥 인정도 칭찬도 빨리 듣고 싶은 모양이다.
허경하
타종교, 타문화가 진을 치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곧 충돌, 불화가 예견되기 마련이지만 예수님 말씀처럼 그런 상황들을 미리 염두에 두고 윤리 대신 신앙을 지켜냄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일에는 나의 전부를 쏟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선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명령 하신 것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윤리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 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