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처를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2322.2025.7.27)
호6:1-11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 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 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삶을 살다가 보면 여기치 않는 일로 인하여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예기치 않게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큰 질병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들의 마음에 응어리라고 하는 것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영광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유퀴즈에서 우리나라에 대장암 수술을 많이한 명의의사가 나와서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의사가 살려 줄려고 진료하고 치료하고 하는 것이라고 말 잘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을 듣지 않고 온 환자에게는 호통을 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 있습니다. 의사 말을 말을 잘 듣고 따른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조금더 연장하여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심방을 자주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상태가 경미하여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너무 심하게 상해서 도저히 회생될 것 같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병이 너무 심해서 거의 본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져서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고 겨우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이 사람은 소생할 가망이 없어’라고들 말을 하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생명도 살려보려고 애를 쓰는 의사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르면 잘 고쳐져서 생명을 좀더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목사님들이 말씀 주실 때에 그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라오면 영적으로 충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망가질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기고 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조건없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남은 삶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어루만져 내 상처를 치유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상주감리교회가 앞으로도 정말 부흥했으면 마음입니다. 영혼 구원하는데 힘을 다했으면 합니다. 벧전1:9절‘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이라’했습니다. 전도하는 일이 최고입니다. 교회마다 전도하는 일은 잘 안되고 큰 아픈 상처들로 인하여 성장을 하지 못하고 이웃에게 덕이 안되는 일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아픈 상처들을 도려내야 합니다. 썩고 곪은 것은 도려내야 새 살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은 냄새가 문등병 환자였다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 곪아 터질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도려내기 위하여는 마취를 하기도 하고, 그냥 하기도 합니다. 아픈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상주감리교회를 위하여 정말 아픈 부분들을 과감하게 도려낼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영혼구원에 힘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히11:1절‘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했습니다. 막9:2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했습니다. 롬1: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했습니다. 욥1:21절‘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42:5절‘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23:10절‘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어려울 때에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라’는 음성을 듣고 돌아서야 합니다. 여호와께 돌아서는 것이 최선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주님이 살리시고 고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라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없이 망하고 나니까 무슨 생각이 듭니까? ‘차라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하나님이나 제대로 붙들걸’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능력을 과신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데 가면 이 정도는 못살겠나’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너무나도 똑똑하고 잘났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아무 것도 못하게 하신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떨쳐버리고 자기 길로 갔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비참한 노예 상태였습니다.
오늘 읽은 호세아서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보면 큰 상처에서 영광으로 바뀌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기원전 8세기 남북유대와 이스라엘의 복잡한 정세와 민족적 위기 가운데서 들려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게되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나며 타락과 방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두려운 지진과 메뚜기의 재앙뿐 아니라 앗수르와 애굽의 끝없는 침략속에서 고통 받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입니다. 사자와 같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없고, 새와 같이 날수도 없고, 물고기와 같이 물속을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종교가 필요했고 그것을 찾아 헤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요3: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해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로서 고통속에서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하나님이 풍요와 안식을 주면 금방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얻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자 앗수르와 애굽의 위협적인 공격 가운데서 풍전등화의 조국을 놓고 온 국민이 떨고 몸부림을 치게 되었고 고통과 죽음만이 기다리는 때에 선지자 호세아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하나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이 이 상처를 치유하시고 다시금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부르짖어 설교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일 가운데는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화가 나서 무엇인가 집어던져서 깨어지면 사람은 그것을 다시 복구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심하게 부서지고 깨어져도 하나님은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처음 깨어지기 전보다 더 완벽한 모습으로 회복시키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자처럼 물어뜯어서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항상 말씀에 순종치 않는 백성들이 망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심하게 찢어지고 망가져서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놀라운 초청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무리 심하게 깨어지고 망가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시고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까? 1절‘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주실 것임이라’ 누가 하는 말입니까?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르짖는 말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서면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치신 것은 저주와 멸망을 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치신 것입니다. 지금 사업과 가정과 여러 가지 일이 안되는 사람들은 빨리 여호와께로 돌아서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최대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최상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이 예언자의 신앙을 통하여 우리는 오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세를 가다듬고 상처투성이뿐인 싸움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끊임없는 열강들의 싸움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범한 죄의 값이기도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터진것과 맞은 것뿐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성한 곳은 한곳도 없는 상태입니다. 호세아와 같은 시대, 남쪽 유대중심으로 예언을 했던 이사야의 말에 의하면 파괴된 원두막처럼, 황폐해진 포도원같이,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하고, 터지고, 맞은 흔적뿐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남은 것은 상처의 흔적입니다. 누가 이 상처의 흔적을 싸매줄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이 아픔을 어루만져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호세아가 여호와께로 돌아가라고 부르짖는 이유는 그가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실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호5:13절‘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해서 고치지 못했습니만 하나님께로 온 상처는 하나님만이 치료하실 수가 있습니다. 민21:6-9절에 불뱀으로 이스라엘을 심판 하실 때에도 놋뱀을 만들어 하나님은 치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출15:26절에 친히 의사가 되셨고, 신32:39절에는 앞으로도 백성들을 고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서는 심령이 고침을 받고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돌아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놀라운 속도로 회복시키십니다. 2절‘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틀 후에 살리시며 삼일만에 일으키시는 분입니다.‘이틀 후에 살리시며 제삼일에 일으키신다’는 것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치료하시고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써 하나님을 알자는 것입니다. 3절‘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는 말은 너무나도 숨가쁜 초청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도 진귀한 어떤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가까운 사람을 초청할 때와 같습니다. 눈을 한 쪽에 완전히 박아 두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여호와를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어 주셔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자신이 스스로를 열어서 말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은 나타나시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타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마음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주실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기도할 마음이 있고 기도할 기회가 있을 때에는 절대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세아는 돌아서지 않으면 앗수르의 무서운 칼날로 인한 죽음과 멸망뿐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교회를 위하여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면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을 다시 경외하면 살리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돌아서라는 것은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도 했습니다. 그러나 호6:4절‘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해서 알맹이 없는 형식적인 회개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무한한 은혜를 주었는데도 효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은혜받도록 해 주었는데 결국은 그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입니다. 그들에게 인애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인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아서서 보면 아닙니다. 그들의 약속은 ‘아침 구름’과 같았습니다. 너무나 가뭄이 심한데 아침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많은 구름이 생겼으니까 오늘은 비가 오겠지’ 그러나 구름은 몇 십분을 가지 않습니다. 해가 떠오르니까 구름은 금방 사라져 버렸습니다. 구름이 아니고 아침 안개였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서‘참으로 그들에게서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호6:6절‘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양심의 가책만이 아닙니다. 도덕상의 변화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뉘우치고 어떤 결심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고 같은 것을 두 번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포함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이상 되풀이 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돌아오도록 만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찢으시기도 하고 도로 낫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치시기도 하시고 싸매주시기도 합니다. 외과의사가 예리한 메스를 가지고 환자의 살을 마구 찢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도로 꿰매어 상처를 아물게 하고 병든자가 낫게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인생 모두가 싫어하는 근심, 걱정, 눈물, 싸움, 고문, 감옥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성경은 ‘인생들이 저질러 놓은 죄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시14:3, 사56:3,시51:5)
오늘을 살아서 인생노정을 걸어가는 성도들에게도 수없이 많은 비극과 실패 상처와 아픔이 주어지게 마련입니다. 산좋고 물좋은 금수강산이 3.8선으로 나누어지고, 6.25동란으로 아까운 목숨들이 죽어서 고아가 50만, 과부가30만을 남긴 상처를 볼 수 있고, 부부간에 이혼을 하고, 이웃과 갈라지게 하고, 재산을 놓고 형제끼리 싸워 찢어지기도 하는 아픈 상처는 하나님이 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죄값으로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몰라서 당하는 억울함, 알면서도 겪어야 하는 수모, 심리적인 피해, 열등감, 일어서기 힘든 좌절감, 양심이 깨끗하지 못하고 화인맞는 양심, 무시당함 등등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상주감리교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머리아픈 사람, 가슴아픈 사람, 속상한 사람, 소화가 안되는 사람,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사람, 여러종류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왔습니다. 병든몸과 아픈 상처를 가지고 온 우리들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인자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궁휼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치료하실 것입니다. 낫게 하실 것입니다. 싸매주실 것입니다. 거룩한 주의날 복주시마 약속해서 오셨는데 말씀을 통하여 어떤 질병을 가지고 왔더라도 반드시 치유받으셔서 그 큰 상처가 영광으로 변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4:2절‘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받은 상처를 두려워 하지 맘시다. 병을 겁내지 맘시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아픈 상처를, 실패를, 겁을 내거나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맘시다. 물은 이미 엎어진 상태입니다. 일을 벌어진 상태입니다. 질병이 없는 곳에서는 건강도 없는 것입니다. 상처가 없이는 치료도 없는 것입니다. 실패없이는 성공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아픈 상처를 치유받고 영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까? 너무일을 많이 해서 지쳐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충격을 받아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있습니까? 열심히 살다가 보니 오해를 받은 것은 없습니까? 이웃관계속에서 구설수에 오르지는 않았습니까?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어떤 상처라도 괜찮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만드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를 인생의 끝장이라고 선언해 버리는 미련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실패를 보고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생의 끝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나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성도는 오늘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내일을 승리로 이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무슨일이든지 할 수 없는 사람, 곧 무능한 인간이란 딱지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아직 그때가 안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일뿐입니다. 다만 새로운 방법으로 처음부터 다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교훈일 뿐입니다.
실패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것 아닌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뿐입니다. 실패, 상처, 아픔, 좌절 이것은 인생을 살다가 보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평범한 삶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처를,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입니다. 똑같은 것도 어떤 사람은 좋게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의 아픈 상처와 성도여러분들의 아픈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벧전5:7-8절과 같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고 있는 근심, 걱정 불안이라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면 우리는 하찮은 일 가지고도 죽을 이유를 찾아서 자살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상처를 어머니로 만드는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받은 상처는 무엇인가를 시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시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런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인생과 대결해 보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상처와 실패는 성실한 인생살이의 훈장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조용히 살고 싶어도 조용히 살아지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싶어도 인생이란 실패의 골짜기를 지난 후 승리의 능선에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열심히 하니까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어떤 사람은 돈많은 것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어떤 사람은 친구와 동업을 하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상한 사건으로 상처를 받고 여러가지로 하여간에 우리 인생살이에는 평안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일 저런일을 인생길에서 부딪히는데 나만이 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온갖 욕을 다먹는다고 해도 문을 닫을 수 없는 것처럼 병원이 죽어가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병원문을 닫을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란 상처도 함께 안고 살아가는 엄숙한 노정임을 명심한다면 오늘도 내일도 진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아픈 상처를 치유받고 내일은 영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되지를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후회, 백해무익한 근심, 전혀 비생산적인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보초가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뒤에 따라오는 것은 ‘후회’라는 보초병이고, 앞에 가는 것은 ‘내일이라는 근심’입니다.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염려로 우리는 언제나 이것들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미 700년전에 성버나드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오직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상처의 노예가 되고 실패의 종이 되어서 자신을 그것들에게 맡겨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상상을 초월해서 말로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깊은 상처를 주는 인생은 되지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상처주고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도 상처를 주는 말보다는 승리를 할 수 있는 말로 위로를 하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난날의 일들을 길게 늘어놓으면서 내가 이렇게 했어 하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남은 인생을 살아며가면서는 우리는 지난날의 이야기 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새날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상처를 영광으로 바꾸는 신앙인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옛날 과거지사를 몇 년 몇월 몇일 몇시까지 읋어대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아주머니들이라고 합니다. 내일 이야기는 없고 지나간 과거 이야기만 있고 상처뿐 있지 영광이 없는 것이 안타가운 심정인 것입니다. 지난날의 과거를 종종 생각하고는 어루만지면서 운명을 저주하는 그 비극적인 태도를 이제는 바꾸셔야 합니다. 그것은 빨리 잊어버리시고 앞날의 소망을 기대하고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진정한 성도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마28:20절‘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했고, 요1:12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동행을 해 주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직장을 가도, 사업장을 가도, 학교에 가도, 우리 앞에도 뒤에도 항상 같이 동행을 하고 있으므로 지난 과거지사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지 말고 앞으로의 소망을 찾아서 힘차게 달려가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와 교회가 되셔서 어떤 것이라도 치유되고 부흥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한가지 더 말씀 드리면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상처를 치유와 성공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에 호6:1-3절을 통하여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한을 풀지 못해서 눈물을 안으로 삼키며 살아가는 성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생을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나온 구설주인지 모르지만 애태우며 가슴아파는 성도, 말 같지도 않은 말과 잘해주고도 못된 소리듣는 성도, 대접해 주고도 뺨맞는 성도, 보살펴 주고도 원망듣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 누가 이 마음을 알아주겠습니까? 우리의 이 아픈 상처를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억울한 소원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픈 곳을 싸매주시며 상한 곳을 씻어주시며 치료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밖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셨으니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는 항상 자녀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좋은 일들을 하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을 초청하셨습니다.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주님은‘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사43:1-2절‘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하셨습니다.
요14: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셨습니다. 사41:10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했습니다. 상처를 영광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시는 상주감리교회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가지셔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이제 아픈 상처를 영광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