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Piaf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는 1915년 12월 19일 프랑스 파리의 가난한 노동자 구역인 베르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고, 아버지 또한 거리의 곡예사로 길에서 묘기를 부리며 생을 꾸려나갔다. 에디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품에서 떠나 노르망디에서 유곽을 운영하는 친할머니에게 맡겨졌다. 가난 때문에 영양실조와 시력을 잃을 위기에까지 처할 정도로 에디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그녀는 14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터와 거리에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재주와 뛰어난 목소리를 알렸다.
1935년 에디트의 나이 20세 때 파리의 피갈 거리에서 노래하다 우연히 카바레 ‘제니스’의 주인 루이 르플레(Louis Leplee)의 눈에 띄었다. 루이는 150cm도 되지 않는 작은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적인 그녀의 목소리에 ‘라 몸 피아프(La Mome Piaf, 어린 참새라는 뜻)’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무대에서 혼자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루이는 체구가 작은 피아프에게 검은 드레스를 입도록 권했다. 실제로 그녀는 화려한 무대복을 구입할만한 돈이 없었지만, 너무나 유명해져서 더 이상 상복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을 때조차도 검은 색 옷을 고집했다. 에디트의 화려한 영광과 대조되는 검은 옷은 그녀의 상징이 되었다.
카바레 ‘제니스’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에디트는 단시간에 그곳의 최고 스타가 되어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에디트가 ‘제니스’에서 노래를 부른 지 7개월로 접어든 1936년 4월 루이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루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에디트는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거리로 나와야 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레몽 아소(Raymond Asso)가 나타났다. 시인이며 작사가인 아소는 발성법과 악보 보는 법, 무대 매너 등을 가르치며 루이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에디트가 뮤직홀 ABC에 설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도 바로 아소였다.
ABC 뮤지홀에서 노래를 부르던 첫날 그곳 객석에는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가 앉아 있었다. 공연 다음날 『르 피가로』지에는 콕토의 글이 실렸다. “에디트 피아프는 재능이 넘친다. 그녀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여가수이다. 피아프 이전에 피아프는 없었고, 피아프 이후에도 피아프는 없을 것이다.” 극작가이기도 한 콕토는 에디트를 무대에 세울 생각을 했다. 그가 1940년에 썼던 희곡 《냉담한 미남 Le Bel Indifferent》은 에디트를 염두해 두고 만든 것이다. 두 사람은 예술적으로 교감하며 죽는 날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에디트는 연극과 영화에서 배우로 활약했다. 또 노랫말을 쓰기도 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다. 그녀는 400여곡의 노래를 남겼는데, 그중 약 80여 곡의 노랫말을 직접 썼다. 에디트가 선택하는 단어들은 그녀만큼이나 빈약하고 단순했다. 그러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단어들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으며, 이별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것은 그의 노래가 삶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1944년 카바레 물랭루즈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자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이브 몽탕(Yves Montand)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에디트는 그의 후원자 겸 매니저 역할을 자청했다. 그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바로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이다. 에디트는 이 곡을 불과 15분 만에 만들어 화제를 뿌렸으며, 이 노래는 나중에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불렀고, 루이 암스트롱(Louis Daniel Armstrong)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브 몽탕이 그녀만큼의 인기를 얻자, 그는 에디트를 버리고 떠나갔다...

이브몽탕과 다정한 드라이브...
이브 몽탕과의 이별 뒤에 에디트는 무대에서 함께 노래할 파트너를 찾았다. 1946년 에투알 극장에서 그녀는 자신이 발굴한 아홉 명의 남성들로 이루어진 ‘샹송의 친구들(Les Compagnons de la chanson)’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건장한 외모에 쾌활하고 순수한 목소리를 지닌 이들과의 공연은 에디트의 음악세계를 더 넓게 확장시켰다. 에디트는 자신의 노래가 프랑스 밖에서도 울려 퍼지기를 기대했다. 1947년 10월 에디트는 ‘샹송의 친구들’과 미국 브로드웨이의 플레이하우스 극장 무대에 올라섰다. 그러나 미국 관객들은 그녀에게 드리운 어두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에디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1948년 1월 15일 에디트는 브로드웨이의 베르사유 무대에 올랐다. 에디트는 가난과 불행의 그늘을 걷어내고 부드러움과 당당함으로 무대를 장악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에디트는 미국 공연 중 세계 미들급 챔피언 권투 선수인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마르셀은 이미 아내가 있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벅차오르는 사랑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49년 10월 28일 에디트를 만나기 위해 파리에서 뉴욕으로 날아오던 마르셀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다. 승무원과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이 사고로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에디트는 그를 잃은 슬픔을 노랫말에 담아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슬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그녀는 점점 더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다.
에디트는 미국 공연과 《사랑의 찬가》, 《파담 파담 Padam... Padam...》 등의 대성공으로 무대에서는 화려하게 빛을 발했지만, 사생활은 힘겨웠다. 자크 필스(Jacques Pills)라는 남자를 만나 1952년 9월 15일 뉴욕에서 결혼했지만 4년 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합의했다. 이후 에디트는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와 음악적 동지애를 맺었으며, 천진난만한 그리스인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와는 다시 심장 뛰는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에디트는 연이은 교통사고와 약물 투여로 망가져 갔지만 공연은 계속되었다. 1956년 미국 카네기 홀 공연과 《파리의 하늘 아래 Sous le Ciel de Paris》, 《군중 La Foule》,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마담 피아프’는 무대 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에디트는 1962년 10월 9일 파리 16구 시청에서 테오 사라포(Theo Sarapo)와 결혼했다. 21세 연하의 젊은 청년과의 결혼을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테오는 기꺼이 그녀의 마지막 연인으로 남기를 희망했다. 에디트는 이듬해인 1963년 3월 21일 릴 오페라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공연을 가졌다. 이후 건강 악화로 남프랑스 별장에서 요양했다. 1963년 10월 11일 에디트는 남프랑스의 향수의 고장 그라스에서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교회에서는 그녀의 이혼 경력을 들어 장례식을 거부했지만,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에서 거행된 장례식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프랑스 파리 11구에 그녀를 기념하는 에디트 피아프 박물관이 있다.
대표곡으로 《종의 아이들 Les Momes de la Cloche》(1936), 《나의 외인부대 병사 Mon legionnaire》(1936), 《나는 사랑과 함께 춤을 췄어 J'ai Danse avec l'Amour》(1941),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1946), 《세 번의 종소리 Les Trois Cloches》(1946),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1949), 《파리의 기사 Le Chevalier de Paris》(1950), 《파담 파담 Padam... Padam...》(1951), 《파리의 하늘 아래 Sous Le Ciel de Paris》(1954), 《아코디언 연주자 L'Accordeoniste》(1955), 《군중 La Foule》(1957), 《주인님 Milord》(1959),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1960), 《나의 하느님 Mon Dieu》(1960), 《사랑은 해서 뭐에 쓸까? A Quoi Ca Sert L'Amour?》(1962)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디트 피아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