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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고 행복해 하는 목회자(2382.2026.9.6 교역자보건주일)
눅9:18-2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여러분이 목사님 내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주셔서 인도네시아 마나도를 갔는데 우리나라 70-80년도 같은 곳입니다. 3박5일동안 선교지에 두 교회와 마나도에 처음 들어온 교회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첫날에는 숙소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도 에어컨이 잘 안되어서 얼마나 더운지, 밤중에는 춥습니다. 그런 산속에 있는 ‘토모혼 마하나임교회’를 방문했습니다. 한국여자 선교사가 현지인 남편을 만나서 목회를 하는곳인데 그들은 찬양을 하는데 일어서서 춤을추며 아주 즐겁게 찬양을 드리고, 예배드리는 것을 아주 기쁨으로 드리고, 헌금시간에는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면서 앞으로 나가서 헌금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산골에서도 아주 열심이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에배후 밤9시에도 떡과 음료를 준비해주었습니다.
둘째날에는 ‘그라하 커이로스 마나도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찬양을 일어서서 아주 즐겁게 찬양을 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아주기쁨으로 드리고 헌금시간에도 마찬가지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가져간 수건도 잘 전달해 드렸습니다.
셋째날에는 마나도에 처음들어온 ‘시티투어 센투름 교회’를 방문하고 축복의 예수상이 있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에수상이 있는 이 마을은 부자들만이 살아서 집들도 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썬베거리를 둘러 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이 찻집이 줄비하게 잇는 곳에서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중에 은혜롭게 잘 다녀와서 오늘 강단에 설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지에서 필요한 것이 수건이라고 해서 수건도 200장 해서 가져갔습니다. 선교지에서 정말 열심히 선교하는 선교사님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일본선교대회때 만났던 인도네시아 선교사한테도 연락을 했더니 혹시라도 오시면 선교비좀 드리고 오려고 연락을 했더니 같은 인도이지만 제가 간 선교지까지는 너무 멀어서 비행기 타고 2시간 정도와야 한다고 해서 만나지는 못하고 나중에 따로 인도방문 하겠다고 하고 왔습니다. 이 마나도는 70% 기독교인들입니다. 시바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눈만 돌리면 십자가입니다. 축복하는 예수 십자가상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인들만 모이는 한인교회는 없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를 않아서 현지인들 목회하는 선교사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부터 발전하는 도시라고 합니다.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가 교역자들의 건강이 교회의 건강에 지대하기 때문에 정한 주일입니다. 교역자의 건강과 영혼이 늘 맑아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성도의 영혼을 보살피는데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해마다 건강진단을 하게하고 온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와 순종과 협력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평소에도 저와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오늘은 1년에 한 주간을 정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평상시 기도하지 못하던 분들도 이날만은 담임 목사와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또 헌금도 해서 담임목사의 건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으는 주일입니다.
교우들 중에 만나면 ‘목사님 건강하셔야 합니다’,‘무리하지 마세요’,‘이제 운동도 하셔야합니다’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교역자, 특히 담임목사의 건강 문제는 교회의 발전 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 따라 그 단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 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건강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야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건강할 수 있습니다. 교역자만 그런게 아니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안에서 행복하게 사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은 십자가를 지고도 행복해 하는 목회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지키는 ‘교역자 보건 주일’입니다. 지난 일년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먹고 자란 성도들이 목사님 사모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건주일 헌금을 해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병원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맛있는 것도 사 잡수고 하는 것인데 여러분이 지난 일년동안 받은 은혜대로, 목사님을 많이 부려먹은 사람은 많이, 적게 부려 먹은 사람은 적게라도 목사님 사모님을 섬겨보는 기회를 드려 보겠습니다. 맨날 영적인 아버지, 어머니라고 라고 하는데 아버지한테 대접할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좀 더 장기적이고 온전하게 감당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여야 함을 다짐하고 교회는 목회자의 건강을 생각하고 함께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목회자는 흔히 하나님이 건강을 책임져 주시리라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너무 방치하고, 너무 과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챙겨주어야 합니다.
딤후4:20절‘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드로비모는 바울과 함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 하여야 할 사람인데 병듦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밀레도에 머물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건강해야 주님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달 22일에 감리교단전체와 삼남연회 감독선거가 있는데 그 감독후보자 등록서류에 대학교 이상 병원에서 건강진단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도 후보였을 때 경북대병원가서 건강진단서를 위하여 검사를 하고 정신적인 검사를 하는데 문항이 얼마나 많은지 1시간 넘게 작성을 했습니다. 결과는 이상없음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잘 간수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방치하게 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고 합니다. ‘있을 때 잘해’ 하는 노랫말처럼 건강도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합니다. 교역자는 항상 헌신과 희생에 대해 설교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건강을 잘 볼보는 일이 마치 하나님께 죄송한 것처럼 여기고, 오직 사명과 헌신, 희생을 우선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적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지신의 건강을 뒤로 미루고 교회와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는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목회자의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건강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목회자는 목회활동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는 건강에 최대의 적입니다. 딤전5:23절에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권면을 합니다. 연소한 디모데가 목회하면서 사역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아서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교회는 목회자의 건강에 대한 생각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육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잘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8:24절‘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물결이 배를 덮어 뒤집힐 위험에 처하게 되는 중에도, 제자들이 아우성치며 허둥댈 때에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이 피곤 하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늘 긴장하고 대기하는 삶이 목회자의 삶입니다. 과로에는 휴식 외에 다른 처방이 없습니다.
잠17:22절‘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싸우는 것 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더 힘이 듭니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으면 목회자는 더욱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은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몸이 상하면 마음도 상하고 마음이상하면 나아가서는 영혼의 건강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요즘 웃음치료라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갈6:6절‘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부탁하기를 엡6:19절‘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능력이 없어서 기도를 부탁하였겠습니까? 더군다나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바울이 전도하여서 세우고 키운 교인들인데 그들에게 왜 기도를 부탁하였겠습니까? 기도는 상호간에 서로의 의무이며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목사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서로의 기도의 교통이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는 항상 벽이 없이 기도로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끈끈한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질문을 하신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비장한 신앙고백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이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기를 ‘예, 선지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라고도 합니다. 헤롯왕에게 목 베어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왔다고도 합니다’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아느냐? 나를 누구라고 믿고 따라 다녔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참으로 흡족해 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알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3년씩이나 동고동락 하면서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준 제자들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이 있는것을 확인하신 예수님은 비로소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1.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주권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22절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말씀하시고 또 제자들과 무리들에게도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3절‘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제자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목사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져야할 각자의 십자가가 있지만 특히 목회자가 져야 할 십자가는 여러분이 지는 십자가보다 몇 배 몇 십 배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아무나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고 싶다고 아무나 질 수 없는 것이고 또 지기 싫다고 안 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시간 목회자가 지는 십자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난과 환난과 핍박과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보다는 안전을 좋아합니다. 불안보다는 평안을 원합니다. 가시보다는 화려한 꽃을 좋아합니다. 십자가보다는 면류관을 더 좋아합니다. 책망보다는 칭찬을 좋아합니다. 회개하라는 말보다는 축복 받으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23절‘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가사는 것입니다. 갈2:20절‘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했습니다.
목사는 누구에게나 약자입니다. 목사는 조금만 잘못을 하여도 이것이 큰 화제 거리가 됩니다. 용납이 안 됩니다. 이해를 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그럴 수가 있느냐’하면서 목사를 신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도 약합니다. 교회에서 집사가 뭐래도, 권사가 뭐래도, 아니면 평신도가 뭐래도, 질수밖에 없는 것이 목사입니다. 목사는 할 말이 있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변명도 못합니다. 이것이 목사입니다. 아무리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① 교인들은 목사에게 큰소리 버럭 버럭 질러도 목사는 조금만 크게 소리 내도 혈기 부린다고 합니다. ② 또 툭하면 우리 목사님은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③ 주택 문턱이 높아서 주택을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④ 툭하면 교회 안 나간다고 합니다. ⑤ 툭하면 다른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을 들을 때 목사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이와 같은 행동이나 생각조차도 한 번도 하신 일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당한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이렇게 5대의회가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서울에서 큰 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농촌교회로 담임을 왔는데 사모님은 서울에서 꽃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면서 주말에만 교회에 내려와 주일을 지키고는 또 올라가곤 하였는데 교회 성도들이 모두가 잘 이해를 해 주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회 때가 되어서 목사님이 교회 권사님에게 ‘권사님! 연회하고 오겠습니다’하고 말을 하자 그 권사님이 안색이 싹 변하드니 하시는 말씀이 혼자서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하시며 주머니에서 돈 만원을 주시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연회에 참석하여 3일간의 연회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니까 교회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그 권사님이 교인들에게 우리 목사님 연애하러 서울에 가셨다고 소문을 내서 한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2.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죽을 각오로 순교의 믿음으로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 24절‘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위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바로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입니다.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는 뜻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오자병법에서 글귀인데 이순신 장군께서 전투에 임하기 전 그 의미를 변형하여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과 같이 모든 조선 수군이 한 마음이 되어 죽기를 각오하고 왜구들과 싸웠을 때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당시 조선 수군은 13척의 배로 배수진을 치고 목숨 바쳐 싸웠고 330척의 왜군함을 물리쳤습니다. 이 전투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정벌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이 치열한 전투가 바로 명량대첩입니다. 이와 같은 희생과 용기가 왜적으로부터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순신 장군과 같은 믿음과 신념은 하나님의 역사에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면 세상에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시련과 고난가운데서도 이겨 낼 힘이 있고 나아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 두려울 지라도 만물의 주관자 예수님을 믿고 목숨 바칠 각오로 순종할 때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자유와 기쁨이 넘치고 나아가 하늘나라의 큰 상급이 있습니다.
특히 복음과 진리를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 바쳐 헌신하는 자들은 잠깐 동안 시련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예수님을 소외시키고 예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을 고집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며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 보다 세상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세상의 기쁨을 위해서,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결국 심판 받아 죽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또한 세상에서 온 힘과 노력으로 부귀영화를 얻은 사람들, 심지어 천하를 얻은 사람일 지라도 그 기쁨은 유한하며 모든 것이 헛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 또한 결국 빈손으로 죽게 되고, 진정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 길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십자가 길만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이요,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온전하게 십자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깊이 발견하고 그 사랑을 깊이 신뢰하고 믿을 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그리고 십자가 길 후에 오는 부활과 영광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누가 주었습니까?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또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누가 살려 주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받쳐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우리의 생명을 버리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얻으리라’이 믿음 때문에 스데반이 돌무더기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기쁨으로 순교를 하였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모두 기쁨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세계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처음 복음이 전파되면서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교사가 순교의 피를 흘렸고,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도 장차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부끄러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눅9:26절‘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10:33절‘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잠시 시험에 빠져서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였다가 얼마나 가슴 치며 방성대곡하고 회개하였습니까? 그런데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은 세 번이 무엇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주님을 부인하고 예수를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고 예수를 전파해야 합니다.
3.목회자는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하겠습니까?
목회자는 십자가를 눈물로 져야 합니다. 저는 가끔씩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에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지고 가셨는데 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이 어찌 십자가를 웃으면서 지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눈물 없이 질 수 없는 길이요 또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에 반대를 하시다가 옥중에서 순교를 하신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눈물 없이 못가는길 피- 없이 못가는길, 영문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아 멘.
십자가의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며 희생의 길입니다. 눈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골고다를 올라가는 심정으로 울며 울며 천국을 향하여 쉬지 말고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목회자는 십자가를 감사한 마음으로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의 구령 사업에 동참하는 축복된 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짜증과 불평과 원망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어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원망을 하시던가요? 불평을 하시던가요? 그래서 목회는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이나 원망 없이 인내하면서 하늘의 상급만을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빌4:6절‘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했습니다.
목회자는 십자가를 기도로 지고 가야 합니다. 눅22:40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놓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시고 예수님도 친히 엎드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질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교회에 충성하는 것 본 일이 있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래도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충성도 하고, 봉사도 하고, 감사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주일성수도 하고, 전도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십자가는 주님의 권능으로 져야 하고, 주님의 권능은 성령이 임할 때 선물로 주시는 것이며,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약5:13절‘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기도는 능력을 받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을 받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회자는 십자가를 죽음으로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죽을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생의 구원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요10:15절‘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종 된 목사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하였고 고전 15:31절에는 ‘나는 매일 죽노라’ 고 하였습니다. 행14:22절에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아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시 일어나 바울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지는 것이며 철저하게 자기를 죽이는 자라야 온전하게 승리의 십자가를 감당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십자가는 골고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지고 눈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지고 갈 때 주님의 뜻을 이루는 충성된 주님의 종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근간에 와서 교인들과 목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교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목사 배척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을 합니다. 말세의 한 징조라고 생각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생각하기를 상주감리교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지 않을 것이고 또 있을 수도 없다고 말하고 믿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찮은 일이라도 목사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동안도 여러분들이 부족한 저와 집사람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여 주신 것을 잘 압니다. 그 기도 때문에 제가 오늘까지 목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교역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부족한 저를 위하여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받은 복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며 살면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65:13절‘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10절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넉넉히 대어 주시고, 단비로 싹을 키워 주시고, 오곡 백과가 풍성한 풍년을 주시니 기쁘고 즐겁게 주님을 찬양한다는 내용입니다.
시128편에 보면‘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성도의 행복이 무엇인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세상의 것들을 많이 얻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주신 복과 평강을 헤아려 보고 늘 주님을 찬양하며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협력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신앙생활입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은 오늘 한 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목회자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 준다면, 목회자인 저는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목회자에게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여러분이 주안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저는 행복한 목회자가 되고, 여러분은 행복한 성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에 여러분이 받을 상급과 목사가 받을 상급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받을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꼭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마10:41절‘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제가 밥사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대우 잘 받으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아시고, 오해 없으시기 바라며, 한 심령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1년 중 단 한번 지키는 ‘교역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과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고 협력하는 성도가 되어서 이 종이 받을 상급을 모두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부족한 저와 사모님를 향하여‘사랑’합니다. 외쳐주시기를 바랍니다.--목사님..사모님..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