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A. 클라크"(Charles Allen Clark, 곽안련 1878.11.17-1961.5,26)
"클라크" 선교사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나 미네소타 대학과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1902)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02년 9월 22일, 미국 북 장로회 선교사로 뉴욕 출신의 부인 "마벨"(Mabel Craft Crark)과 함께 내한했다.
"클라크" 선교사는 서울에서 승동교회 제2대 교역자로(제1대는 "S.F.무어:Samuel Forman Moore)봉직하였다.(1906~1924)
청년 면려회(勉勵會)를 조직하여 한국의 계급 관념과 남녀의 차별 제도를 개선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이 무렵 어린 세 자녀를 잃게되어 양화진 등에 안장하였다.
그 후 평양 신학교 교수(1916)로 활동하며 실천 신학을 강의하고, 한국 교계의 목회자를 양성했다.
1939년에는 평양 신학교 교장서리를 맡아 신사참배에 저항하다가 폐교당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회계(1916), 부회장(1917), 경충 노회장 등으로 봉직했다.
1930년 1월부터 기독교 교육과 아동을 위한 "종교 교육"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1937년 "욥기", "시편"의 주석을 편찬하고, "잠언", "전도서", "아가서", "로마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갈라디아서"로 계속 성경의 주석서를 발행했다.
그는 뛰어난 저술가로 1918~1940년까지 "신학지남"(神學指南)의 발행인과
편집인을 역임했고 50여권의 신학서적을 저술했다
또한 경기 양평의 고읍, 상십리, 묘곡, 고송, 용문동, 마배교회(1913-1915)와,
광주의 신사리교회(1912) 등에서 동사목사로 시무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였으며, 일제에 의하여 "세계 평화 기도문 사건"(1941)으로
강제 추방될 때까지 40년 동안 젊음과 인생의 황금기를 한국과 한국인을 위하여 힘써 일한 선교사이다.
1961년 5월26일 오클라호마에서 소천할 때 동료 선교사들은 그를 다음과 같이 추모했다.
"한국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하여 클라크 박사만큼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공헌을 성취하는 특권을 누린 사람은 없다"
이처럼 그는 선교사로, 목회자로, 신학자로, 성경주석가로, 저술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여 초기 한국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부인 "마벨"(Mabel C. Crark)은 1946년 미국에서 별세하였다.
"클라크" 선교사의 두 아들 "버튼"(Burton)과 "고든"(Gordon)은
홍역과 장티푸스로 두 살과 한 살때 일찍 죽어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1903년에 태어난 "클라크" 선교사의 첫 번째 아이 "버튼 W. 클라크"(Burton winthrop Clark : 1903-1904)는 1904년 12월 성홍열로 목숨을 잃었고,
이듬해인 1905년에 태어난 "고든 N. 클라크"(Gordon Neil Clark : 1905-1905) 또한 소화 기능의 문제로 6개월 만에 숨을 거두었다.
"클라크" 선교사는 이들을 포함해 세 아들을 병으로 잃었다.
선교사 "찰스 알렌 클라크"(Charles Allen Clark) 2세의 묘역 B22-23
맏아들 "버튼 W 클라크"(Clark, Burton winthrop, 1903.4.3-1904.12.21)
둘째 아들 "고든 N 클라크"(Clark, Gordon Neil, 1905.4.6-1905.10.29)
그런 가운데 16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웠다.
이후 "클라크" 선교사는 1남 1녀(넷째 딸과 다섯째 아들)를 두었는데, 두 자녀 모두 아버지와 같이 한국선교에 헌신했다.
서울에서 출생한 "클라크" 선교사의 아들 "알렌 D. 클라크"(Allen DeGray Clark. 곽안전, 1908-1990)은
1933년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해 만주 홍경 선교지부에서 활동하다가
1936년 청주 선교지부로 이전해 농촌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1941년 일제에 의해 추방돼 콜롬비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53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청주에서 활동했다.
1954년부터 1965년까지 장로회신학교에서 강의하고, 피어선성경학교 교장 및
대한성서공회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73년 정년퇴임 후 귀국했다.
"클라크" 선교사의 딸 "캐더린 E. 클라크"(Katherine Edith Clark. 곽가전, 1919-2002) 또한
1947년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해 경북 안동에서 의류구제품 배급을 담당했으며,
한국전쟁으로 일본으로 피신했다가 1953년 대구 선교지부로 전임해 대구 계명대학 설립에 참여했다.
1954년 계명기독학원 초대 이사로 선임돼 활동하다가 1968년 귀국했다.
"클라크" 선교사 가족의 기념비.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이 써있다.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but that you do justice,
love kindness, and walk humbly with your God.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으니,
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 주님과 함께 행하며 사는 것이다.” Micah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