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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매화마을 봄을 피우다 .
이재익 / 소답자한 제72호에서
☞ 본 카페 <앨범/ 전남> 에 자세한 사진있으니, 참고바람
‘칼바람에 울음을 베어 먹는’(겨울여자/ 정대구) 겨울은 지나갔나 싶었는데, 며칠 전 꽃샘추위가 몰아쳐 성급하게 베란다로 내다 둔 파키라 넓은 잎이 동해를 입었다. 오늘 봄을 맞으러 섬진강가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로 갔다. 평일에도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느낌으로는 매화는 3월 16일 현재 한 5~10% 정도 밖에 피지 않았다.
매화마을 입구 섬진강변에 정자가 하나 있다. 이곳에 임진왜란 직후에 도청창이란 군사용 창고가 있었고, 1705년 숙종 때 섬진진이라는 작은 군사 주둔지인 진이 설치됐으나, 1895년에 폐쇄됐다. 당시 수군장교 별장의 기념비 대좌였던 두꺼비상 4개만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홍쌍리가>와 <청매실 농원> 큰 비석이 나란히 있어 처음에는 두 집인 줄 알았는데, 같은 집이었네. 정원에서도 두꺼비상을 봤다. 이 마을의 상징적 동물이 두꺼비다. 섬진강이라는 명칭은 고려초에도 사용했지만, 고려말 우왕 11년, 1385년, 왜구들이 노략질해 왔을 때, 많은 두꺼비 무리들이 울부짖자 왜구들이 이 지역을 피해 갔다하여 두꺼비 섬(蟾)자를 의미있게 쓰게 되었다한다.
섬진강변 백운산 동쪽 자락끝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광양 매화마을은 원래 매화 군락지가 아니었으나, 시아버지 고 김오천 옹이 1917년부터 매화재배를 시작하며 매화마을로 개척했고, 며느리 홍쌍리(70)씨의 노고가 개척에 큰 역할을 했다 한다. ‘홍쌍리 매실家’(등록은 청매실농원)의 매실 생산은 전국 최고수준이다. 생산량이 2011년 기준 3,544M/T(가공량은 320M/T. 1M/T는 1,000kg)이며, 연매출액은 42억 원 정도, 전국 생산량 거의 10% 수준이다. 전통옹기 장독 3,000여 개를 보유하고 매실제품은 30여 종을 생산한다.
홍쌍리씨는 1960년대 후반에 시집왔고, 시아버지가 일군 재배지는 원래 145만㎡(43만여 평) 규모였으나 남편이 잘못 투자해 80% 이상을 날려 현재의 16만5,000㎡(5만여 평) 면적으로 줄었다한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 쪽은 박경리의 <토지>의 소설속의 최 참판 댁으로 유명한 하동 악양이다. 행사시에 섬진강에 일시적으로 부교를 설치하여 건너 다니기도 한다. 며칠전 3월 14일에 광양매화문화관을 개관했다. 단원 김홍도 매화도를 크게 확대해서 붙여둔 실내 벽앞에서 기념 촬영도 했다. 문화원 앞 가설무대에서 우리춤과 농악이 흥겹게 공연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영화와 드라마도 여러 편 촬영됐다. ‘첫사랑’(1993년), ‘취화선’(2002년), ‘바람의 파이터’(2004년), ‘천년학’(2006년) 등 영화, ‘다모’(2003년), ‘돌아온 일지매’(2009년) 등의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했다.
매화꽃 피는 한 달 동안 10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다. 이 마을에는 많은 시비가 있고 봄맞이와 매화 마을 분위기가 온통 시적 감흥으로 넘치는 곳이다.
조선 전기 성리학자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이 매화를 노래한 ‘雪梅’란 詩碑도 있다. ‘엄동에 너를 보니/ 차마 뜰 수 없어// 눈 내린 남은 밤을/ 하얗게 새웠구나!// 선비집 가난이야/ 오래된 일이지만// 네 다시 와주어서/ 다시 맑음 얻었네라’
오늘의 분위기를 다른 시인들의 시편중에서 구절을 활용하여 몇 줄 더 적어 본다. 관광객들 ‘떠밀려오는 깔깔거림을 주워 한참이나, / 오랫동안 더불어 논다/ (웃음의 잔해 / 이동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많은 음식점이 있고 ‘칼국수는 알다시피/ 몸이 길고 국물이 넓은 음식이다.’ (드넓은 국수, 정병근) 나는 여기서 노란 복수초를 처음 만났다,
참 깜찍해서 처음엔 조화인줄 알고 확인하느라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온통 매화꽃밭, 그래도 ‘아-나는 꽃이다/ 배고픈 꽃이다/ 나비 보다는 빛이 그리운 꽃이다/ 그래서 빛에게 미안한 꽃이다/ 빛은 죄를 말하지 않지만/ 나는 늘 빛에게 죄송스럽다 ’(빛에게 빚지다, 박남희)
여긴 이렇게 평화로운데 이 시간에도 서울 대로에선 멀쩡한 땅이 꺼지는 싱크홀에 불안감을 준다. ‘너는 생각이 너무 깊다/ / 멀쩡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멀쩡함인가. (싱크홀, 강연호) ‘길은 많아도 갈 길은 많지 않다/ / 여자 목소리 시키는 대로 돌아왔다/ / 네비게이션 심부름 다녀왔구나 싶다/ (심부름을 다녀오다, 복효근) 집에 올 때도 네비게이션 잘 켜고 편하게 돌아왔다. 좋은 길 좋은 곳에서 하루를 즐겁고 복된 하루를 보냈다.
가을 겨울 동안 최악의 가뭄으로 회동수원지 상현마을 앞 가까운 곳 수원의 물이 바닥을 드러내 보였다. 곧 3월 18일에 봄비가 왔다.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40~50mm 왔는데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55억짜리 봄비라는 보도를 봤다. 꽃이 얼마나 더많이 피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또 떨어졌을까? ‘비소리가 참 이쁘다/ 비 소리 마중나온 지렁이도 이쁘다. / 그런데 알 수 없는/ 비바람 소리가/ 알 수 없는 곳까지 머얼리 뻗어 있다.’ (여섯 살짜리 인생/ 김성춘) 목련은 피고있고, 벚꽃 봉오리가 처녀 젖가슴처럼 터질듯 부풀어있다. 매화마을에서 내가 만난 시비들을 이번호에서 정리해봤다. 내가 못보고 놓친 것들은 할 수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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