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35. 네팔 카트만두 계곡
부처님 혜안인가… 스와얌 언덕 ‘세계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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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얌부드나트 대탑> |
사진설명: 네팔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스와얌부드나트 대탑. 4면에 그려진 '세계의 눈'이 인상적이다. |
네팔은 사실 불교와 가장 인연이 깊은 나라다. 타라이 지방 룸비니에서 부처님이 태어났고, 부처님이 살아 있을 당시 네팔엔 이미 불교가 전파됐기 때문이다. 쉬라바스티(기원정사 있는 곳)를 거쳐 룸비니에 참배한 뒤, 취재팀은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그 때가 2002년 3월20일. 룸비니에서 차를 타고 새벽에 출발했는데, 카트만두 시내에 들어오니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2700여 사원 시가지에 산재
다음날 간단한 조식을 마친 뒤 카트만두 시내 높은 곳에 위치한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에 올라갔다. 산 정상에 사원이 있어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선본사(갓바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도 그랬고, 계단 주변에 나무들이 있는 모양도 비슷했다. 한 계단 마다 불교 용품 파는 상인들이 앉아 있다 우리를 잡았다. 30분을 실랑이 하며 올라가니 매표소가 보였다. 입장권을 사고 경내에 들어가니 중앙의 커다란 탑에 그려진 눈이 - ‘세계의 눈’이 먼저 보였다. 아주 인상적인 눈이었는데, 볼수록 흡인되는 것 같았다. 시내도 한 눈에 들어왔다.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에서 내려다 본 카트만두 시가지 전체는 마치 사찰 같았다. 2700여개의 사원(힌두교 사원 포함)이 시내에 펼쳐져 있다고 안내인이 설명했다. 카트만두 계곡이 성지(聖地)로 추앙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들은 하늘의 별처럼 벌려있고, 탑들은 기러기 행렬처럼 많다”는 ‘사사성장(寺寺星張) 탑탑안행(塔塔雁行)’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카트만두’의 의미가 ‘목조의 절’이란 이유를 알만했다. 네팔인들에게도 카트만두는 동경과 귀의의 대상이다. 네팔 사람들마저 카트만두에 가는 것을 “네팔로 간다”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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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탑> |
사진설명: 스와얌부드나트 사원엔 소형 탑들이 많다. 한 원숭이가 소형탑에 오르고 있다. |
전형적인 산악지역인 네팔에서 몇 안 되는 분지의 하나로 꼽히는 카트만두. 바구마티강과 비슈느마티강에 둘러쌓인 카트만두엔 불교가 언제 전래됐을까. 전설에 의하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여러 곳을 순례하던 중 쉬라바스티의 제타바나(기원정사)에서 이곳 카트만두 계곡으로 들어왔다. 계곡 동쪽에 위치한 만주스리(文殊) 동산에 머물며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이 있는 ‘스와얌 언덕’에 많은 예경을 했다.
취재팀이 지금 앉아 있는 스와얌 부드나트가 바로 부처님이 멀리서 예배한 곳이라고 한다. 카트만두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을 네팔인들은 ‘심부(Simbhu)’라 부른다. 지면에서 90m나 솟아오른 언덕 위에 우뚝 세워져, 사방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다. 사원 한쪽 구석 바위에 새겨진 명문에는 이미 5세기경부터 사원이 존재했다고 적혀있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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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위치도> |
사원 중앙엔 ‘세계의 눈’이 그려진 스투파가 우뚝 서있는데, 계단을 올라온 많은 사람들은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탑에 삼배부터 올리고 있었다. 관광객이든 내국인이든 모두들 그렇게 했다. 높이 15m인 스와얌 부드나트 스투파의 하단부에는 ‘가르바’(중심 또는 자궁이라는 의미)라 불리는, 흰색으로 칠해진 반구체의 기단이 놓여있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우주 창조를 상징한다.
기단 위엔 ‘토라나’라는 금으로 도금된 사면체가 있고, 차례로 원추형의 덮개, ‘츄라마니’로 불리는 금으로 도금된 종(鐘)이 자리 잡고 있다. 토라나의 각 면에 ‘세계의 눈’ 혹은 ‘지혜의 눈’으로 불리는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다. 각 눈 밑에는 코 대신 ‘1’이란 아라비아 숫자를 새겨놓았는데, 이는 “진리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있어,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화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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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켜진 소탑 옆의 동자승> |
사진설명: 스와얌부드나트의 불켜진 소형탑 옆에 있는 동자승. 무엇을 보고 있을까. |
스와얌 부드나트를 내려와 카트만두 시내에서 유명한 ‘부드나트 스투파’로 갔다. 카트만두 동쪽 약 8km지점인 고가르나와 상쿠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데, 높이 40m로 세계 최대의 스투파로 평가된다. ‘카샤 스투파’로 불려지기도 하는 ‘부두나트 스투파’는 설립에 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전설들을 갖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부드나트는 순례 차 이곳에 왔다 입적한 티벳 고승 카샤의 유해(遺骸)를 담은 작은 기단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반면 부처님의 뼈 사리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고 설명하는 기록도 있다. 기원에 대해 불분명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지만 스투파엔 지금도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 온다. 우리가 간 그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고 있었다. 티벳에서 온 스님들과 불자들이 특히 많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경통(經筒)을 들고 스투파 주변을 돌며 ‘옴마니파드훔’을 암송했다.
스투파 돌며 ‘옴마니파드훔’ 암송
여러 전설과 달리 원래 부드나트 스투파는 ‘소마’(달의 신)와 다라(多羅) 사이에서 생겨난 지혜의 신이자, 〈리그베다〉 중 찬가(讚歌)의 저자이기도 한 부다(물의 신)를 위해 지어진 곳. 카트만두 계곡의 모든 기운이 합해지는, 지형적 만다라의 중심부가 바로 이곳이라고 참배하던 티벳스님이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네 개의 방형 기단부 위에 세워진 부두나트는 밀교의 만다라 구성을 취한 것이라, 세계의 지형적·우주적 상징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자체에 우주의 구성요소인 오대(五大)를 표현해 놓았는데 팔면체의 기단부는 지대(地大), 반구형의 토라나는 수대(水大), 토라나 위에 놓여진 삼각의 탑부는 화대(火大), 원반형의 보개는 풍대(風大), 꼭대기에 놓여진 첨탑은 공대(空大)를 각각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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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얌 부드나트에서 기도하는 네팔 불자> |
부드나트를 빠져 나오는데 시내가 갑자기 캄캄해졌다. 동시에 소나기가 내렸다. 마침 차를 타고 있어 다행이었는데,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이리저리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물은 삽시간에 불어나 저지대 집들은 침수되고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대피하는 중이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기 1시간. 갑자기 햇볕이 대지를 비추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변화무쌍한 일기였다. 네팔인들은 신앙을 중시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네팔 사람들이 믿는 신의 숫자를 아느냐”고 안내인이 물었다. 눈만 멀뚱거렸다.
안내인에 따르면 네팔인들이 믿는 신의 수는 세계 인구 보다 많은 3백30억이나 된다. 때문에 그들에겐 신앙이 생활의 전부다. ‘사바에 핀 한 송이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카트만두.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자신들이 바로 신이고 부처임을 잊은 것은 아닐까. 순식간에 소나기가 오고 순식간에 햇볕이 쨍쨍거리는 카트만두 시내가 신·인간·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네팔 = 조병활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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