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4개국여행기-11
로마 유적지(2)
벤츠를 타고 코스메딘 성모 마리아 성당 입구에있는 "진실의입(Bocca Della Verita)"
에 왔다. 기원 전 4세기 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진실의 입은 바다의 신
트리톤의 얼굴을 담고있으며 "진실의 입"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 신의 입에 손을 집어
넣고 거짓말을하면 입을 다물어 손을 먹어 버린다는 전설 때문이라고한다.
진실의 입은 지름 1.5m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가면이다.
여기가 유명하게 된것은 코스메딘 성당이 유명 하기도 하지만 영화 "로마의 휴일"
의 촬영지로 그레고리 팩이 손을 넣고 손이 빠지지 않는 연기를하고 오드리 햅번이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있다고하는데(나는 이 영화를 봤지만 너무 오래되어 장면을
기억 못하겠음) 그 영화 이후 더욱 유명 해지고 세계의 관광객이 로마에 오면 꼭
들리는 필수 코스로 되어버렸다. 코스메딘 성당은 본래 고대 로마 시장 자리로
3세기에 순교한 성인 발렌티노의 유골을 모셔와 12세기 경에 건축한 성당이며
발렌타인테이도 발렌티노가 순교한 2월 14일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고 생각해 연인들의 수호신으로 여기게되었다. 오늘 날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도 그 뿌리가 바로 여기에있다.
진실의 입이 로마시대의 하수구 뚜겅이라는 말도있는데 맞는 건지 아닌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도 알 길도 없다.
폼을 잡았지만 안 어울리네.
손을 넣어도 손을 잘라 먹지 않는 걸보니까 내가 많은 거짓말 안하고 살아왔나?
우린 캄피돌리오(Piazza Campidoglio) 언덕으로 올라갔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시대에
가장 신성한 언덕으로 제우스 신전이 있었다. 캄피돌리오 뜻은 영웅 아물루스의 머리라는 뜻인
"카프트올라"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수도, 최고, 으뜸이란 말인 Capital의 어원이기도하다.
오랜 세월동안 황폐해 있었다가 미켈란 젤로에 의해 재 탄생한 언덕이며 광장이다.
미켈란 젤로에 의해 설계된 계단, 광장, 건물은 지금도 미적 감각을 느낄 수있는 아름다운
설계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광장 가운데에는 로마 5현의 황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이있다. 중세 초반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 할 때 로마 황제들의
기마상들을 우상이라하여 다 철거하고 녹여서 건축 자재로 썼지만 당시 이 기마상이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라고 알고있었기 때문에 남겨 두었다고한다.
이로서 로마 황제의 기마상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게 되었다. 이 기마상이 1400년 후반
바티칸 사서에 의해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으로 밝혀졌으며 본래 요한 성당에 있던것을 1538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요청으로 미켈란 젤로가 설계한 이곳으로 옮겨졌다.
언덕으로 올라오는 계단인 코르도나타 계단(미켈란젤로) 끝에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록스 신상이 서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해서 세개의 건물 중 우측 건물인
콘세르바토리궁과 좌측 건물인 누오보궁은 현재 고대 유적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고있고
광장 정면의 세나토리오 궁은 현재 로마시청으로 쓰고있다. 건물안 박물관도 가 보고싶었으나
시간 관계상 들어 가보지 못하고 언덕 아래 보이는 "포로로마노"를 한 눈에 볼수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광장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캄피돌리오 계단에서 본 캄피돌리오
계단 끝 양 쪽의 제우스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록스 신상
캄피도리오 광장과 오른 쪽 건물 콘세르 바토리 궁
캄피돌리오 광장 왼쪽 건물 누오보 궁
포로로마노(Foro Romano)는 로마 광장이란 뜻이며 로마의 긴 역사 중심지였다.
포로(Foro)는 포럼(Forum)으로 공공 장소를 뜻하며 포럼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다.
수도 로마에 개설된 최초의 포룸이며 원로원의 사당, 신전, 공회당, 생활시설들이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후293년 까지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 였다가
로마가 동서롤 분열되고 수도가 라벤나로 옮겨 지면서 4세기 말 이민족 고트족의
침입과 약탈로 파괴되고 서 로마 제국이 멸망 후에는 방치되어 토사에 묻혀버렸다.
발굴은 19세 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지금도 발굴 중이다.
발굴된 포로로마에는 기원전 670년 건축하고 303년에 보수한 공화정 시대의 자문기관이며
실질적인 통치기구인 원로원, 이스라엘을 점령한 것을 기념한 티투스의 개선문,
기원전 6세기에 지은 베스타신전과 성화가 6명의 무녀에 의해 천년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베스타 무녀의 집, 기원후 203년 로마황제 즉위 10주년 기념 및 두 아들과 전쟁
승리 기념으로 세운 아프리카 출신 세베루스 개선문, 율리우스 카이샤르 신전,
주피터의 아버지인 사투르누스 신전, 집회나 로마 웅변가들의 연설장소인 로스트라 연단,
기원전 54년 건축되고 로마법이 만들어 진 곳인 바실리카폴리아, 가장 기둥이 많이
남아있는 사투르누스 신전 등이 있다.
포로로마노 우측 1시 방향 숲이 많은 곳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 세베루스 개선문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
사투르누스 신전
* 일부 이미지는 빌려 온 것임
다음 코스는 팔라티노 언덕(Monte Palatino). 팔라타노 언덕은 로마의 7개 언덕 중 가장
오래 전에 역사 속으로 들어 온 언덕이며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장소이다.
로마의 이름도 로물루스에서 유래되었다고한다.
또한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궁궐을 짓고 저택도 지은 곳이다.
그 후 여러 황제의 궁과 집터, 그리고 노예들의 훈련등이 이루어진 명실 상부한 로마의 초기
황제와 귀족들이 살던 곳이다. 현재도 발굴 중에 있다고한다.
마차 경기장에서 본 팔라티노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궁궐 터
팔라티노 언덕 남쪽 노예학교
도미티아누스 황궁의 체육 운동시설
도미티우스 황궁내 연못자리
분수가 있던 곳
언덕 정상의 궁터
2대왕 티베리우스의 궁전터
팔라티노 언덕의 궁터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부인 리비아 살던 집터
마차 경기장 너머 언덕에서 본 팔라티노 언덕
마차 경기장과 팔라티노 언덕
당시 황제와 귀족들은 마차 경기를 즐겨 봤다고 함.
벤허 영화에서 본 그런 마차경주를하던 곳.
기념사진 한장!! 많이 늙었네!
이제 로마에서의 마지막 관광지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콜로세움이 있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우선 개선문으로 갔다. 개선문(Acro di Constantino)은 코롤세움
입구에있어 콜로세움의문으로 보이기도한다. 개선문은 로마에서 가장 큰 문으로
312년 콘스탄 티누스 황제가세운 문으로 높이21m, 넓이25m, 폭7m이며
아치 문 3개가 있으며 중앙 아치는높이12m이고 양 옆의 문은 7m이다. 312년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그의 라이벌인 막센티우스를 이긴 기념으로
세웠다고한다. 전투를 앞둔 전날 밤하늘의 계시를 받았는데 꿈에서 반드시 이기리라는
문구가 새겨진 반짝이는십자가를 받았는데 전투에서 이기고 기독교로 개종 했다고한다.
그 간 개선문은 방치 되어있다가 1804년에서야 복원하였다. 개선 문에 붙어있는
부조물은 로마 유적지에서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을 가져와끼워 붙혔다고한다.
콘스탄 티누승ㅢ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콘스탄 티누스의 개선문과 콜로세움
이제 로마에서의 마지막 콜로세움에 왔다.
콜로세움(Colosseum)은 기원 후 70년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10년 후인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에 의하여 완공하였다.
직경 긴쪽이 188m, 직경 짧은 쪽이156m, 둘레527m의 타원형으로 외벽 높이48m
의 4층 구조로 되어있고 76개의 출입구로 5만명의 관중 수용이 가능하다.
1층은 이오니아식, 2층은 도리아식, 3층은코린트식이며 대리석으로 건축되었고
용도는 로마 시민에게 여흥을 제공하기 위하여서다 . 중세 해상 전투 재연,
고전극 상영 무대, 검투사끼리 싸우게 하든지, 검투사와 호랑이 등과 싸우게
하여 전쟁포로와 제국의 반역자들을 공개 처형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검투사 중에서는 로마 공화정과 싸운 노예계급으로 우리가 영화를 통하여
잘 아는 스파르타쿠스가 대표적이다. 검투경기는 399년 공식적으로
금지 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이 중세 때는 교회로 쓰이다가 그 후 로마 두
가문인 프란지파네 가문과 안니발리 가문의 요쇄로 이용되기도했다.
세월이 흘러 건물이 손상을 입고 지진의 피해와 사람들이 돌을 훔쳐다가
개인 용도로 이용하는 바람에 지금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20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 봐도 너무 복잡하고 과학적인 설계일진대
당시 로마의 건축이 얼마나 발전되어 있었는가를 짐작케한다.
콜로세움
로마여! 아듀!!
로마의 여행을 모두 마쳤다. 허전하다 쓸쓸한 감도든다.
로마 자체가 박물관이거늘 나는 로마를 얼마나 보았을까? 우리 나이로는최소 한도로
한달은 봐야만 봤다고 할 것 같은데 고작 하루에 보고나니 허전 할 수 밖에...
젊었더라면 배낭 메고 다시 오고 싶은데 그런 찬스는 영원히 올 수가 없고...
그 많은 성당, 그 많은 박물관들! 로마의 4대 성당 중 성베드로 성당 한곳만 갔으니
과연 내가 로마에 갔다 왔다고 할 자격이 있는가?
그래도 위안하자.
안 가본 사람도 많지 않은가! 로마의 냄새도 맡았고, 스파케티도 먹었고, 젤라또도
먹었고, 미켈란 젤로도 만났고, 라파엘도 만났고, 최후의 심판도 봤고, 최후의 만찬도 봤고,
피에타도 봤고, 나오콘 상도 봤고, 토르소도 만났고..그리고.... 많이 봤네.
패키지로 왔으니 내 욕심대로 다 할 수는 없겠지. 내일은 피렌체와 베니치아를 가야한다.
우린 내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한식으로 배 불리고 숙소행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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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분 폼납니다~~
그옛날 ..
진실의입앞에서..
일행중 5~6살 애기가 손을 넣어보라니깐 안넣든기억이나네요..
그 꼬맹이가 무슨 거짖말을 했길래 ^^
오늘도 방문 하셨군요. 좋은 작품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행기 끝나고 나면 영상시도 만들어 볼게요.
좋은 사진도 많으실건데.. 기대합니다..
그동안 화수분님의 유럽여행기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고급스럽게 글을 잘쓰실수있을까..
누구나 좋은 곳에여행하면서
보고느끼는것은 비슷하지만..
이렇게 느낀점을 글로 표현한다는거는
여려운데..프로이십니다.
유명 여행작가 분들이 쓴글보다 더 감동입니다..
요즈음 유럽여핼기 볼려구 자주들어옵니다..
여행기 쓰시느라 힘드시지요^^
저는 오늘도 비오는날~~
대리만족 하면서 옛날을 회상해보면서.
감사합니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이 어렵네요
여행 중 메모 한 것을 토대로하여 기억을 더듬고 또한 사진이 증명용(?) 사진이 많아 올리기가
거북 스러울 때가 많아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가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