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용운초등학교
용운동의 본래이름은 용방이었어요.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 龍坊, 즉 용의 마을이지요. 마을의 형상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을 닮아서 그렇게 붙였답니다.
대전대 6호관 북동쪽에 있는 봉우리가 용두산이예요. 그래서 그 아래 대전대 밖에 있는 공원 이름이 용수(龍首)골 어린이공원이예요. 바로 용의 머리 부분이지요. 대전대학교와 연결되는 대룡초등학교 뒷산이 용의 등날, 즉 용날이 되고,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있지만 예전엔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와룡(臥龍)리라 불리웠대요. 대룡초등학교는 바로 이 용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에 있어요. 이렇듯 용방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 용방 마을 입구 용운천 옆 들판을 예부터 구름들 즉 雲坪이라 했어요. 그것은 정조때 학자 運坪 송능상이 출생한 곳이라 하여 그의 호를 따서 구름들이라 붙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한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원래 호(號)라는 것은 대게 그가 사는 곳에서 따오거나, 예를 들면 퇴계이황은 그가 사는 마을 토계리에서, 율곡이이는 그가 살던 파주 율곡리에서, 토정 이지함은 그가 살던 한강 가 흙집 토정에서 따왔고요.
또는 그가 추구하는 그 무엇을 호로 삼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열려실 이긍익,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단원 김홍도 등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것이나,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등에서 따오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그가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쓰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송강 정철은 담양에 송강천 옆에 있는 송강정에서, 면앙정 송순은 그가 지은 면앙정 정자에서 따왔거든요.
그렇다면 구름들 즉 운평이라는 이름 또한 운평 송능상이 태어난 곳이라 그곳을 구름들이라 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곳을 구름들이 불러왔기에 그곳에서 태어난 송능상이 자기 고향인 구름들을 한자로 차용하여 운평이라 하고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개발로 인하여 산도 깍이고, 들도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용운천도 좁아져 수량도 줄어들었지만 그 옛날엔 제법 산림도 울창하고 골도 깊었던 곳이다 보니 밤과 낮 온도차로 인해 구름들엔 아침안개가 마치 구름처럼 자욱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붙여진 이름 구름들. 이를 한자로 운평(雲坪). 참 멋진 이름이지요.
이런 용방마을과 구름들이 나중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방의 龍과 구름들(雲坪)의 雲자를 합쳐 龍雲洞으로 불리우게 되었어요.
대전대룡초등학교
대룡초등학교는 앞의 용운초등학교에서 말한 대로 용방에 사는 커다란 용(大龍)에서 유래되었어요. 이곳 용방에는 커다란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잖아요.
※ 옛사람들의 또 다른 이름 號와 字
호(號) - 호는 조상이 지어준 자신의 본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서 시작되었는데요.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러한 호는 자신이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 부르기고 하는데,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로 나누기도 해요. 아호는 주로 시.문.서.화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호(추사, 단원, 혜원, 오원, 원교, 석봉 등)를 이르고, 당호는 본래 집의 호를 말하는데 주로 그 집의 주인에게 붙이는 경우(면앙정, 송강, 소쇄처사 등)가 많아요.
옛 사람들은 이 호를 짓는데 4가지 기준을 가지고 지었다네요.
첫째, 소처이호(所處以號) - 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를,
둘째, 소지이호(所志以號) -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을,
셋째, 소우이호(所遇以號) -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넷째, 소축이호(所蓄以號) - 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을 호로 삼았답니다.
이러한 호는 스스로 짓기도 하고 부모나 스승, 친구들이 지어주기도해요. 또한 사람에 따라 평생 한 가지 호만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한사람이 여러 가지 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면 김정희는 가장 많이 알려진 추사 말고도 완당, 병거사, 시암, 괴파, 노융, 예당, 노구, 호경금강, 아미타, 방외도인, 무용도인, 설우도인 등 생각나는 대로 구사하여 100여개의 호를 사용하기도 했어요.
이밖에 높은 벼슬을 한 사람에게 생전에 임금이 내리는 봉호(封號), 사후에 내라는 시호(諡號)가 있고, 임금에게는 왕호(王號)를 부여하고 죽으면 시호를 붙이는데 묘호(廟號)라고도 해요. 또한 임금에게는 무덤에 따로 능호(陵號)도 붙여요.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은 英陵이라하고 효종대왕릉을 寧陵이라 하잖아요. 이것이 능호예요.
그런데 이러한 호는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나 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도 호나 자를 사용하기는 하나, 어버이나 스승이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는 실명을 사용하였어요.
자(字) - 자는 주로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을 말해요. 이는 실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리는 풍속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지금도 당사자 앞에서 그 실명을 부르는 것을 피하고 대신 직책이나 직위를 부르잖아요. 부장님, 과장님 뭐 이렇게.
그래서 옛날에는 웬만큼 글자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실명이 아닌 자나 호를 하나쯤은 갖고 있었어요.
예기(禮記)에 의하면,‘남자는 20세에 성년이 되어 관례를 마치고 성인이 되면 자가 붙고, 여자는 15세로 결혼하게 되어 비녀를 꽂으면 또한 자가 붙는다. 여자의 자에는 흔히 자매의 차례를 나타내는 백(伯), 중(仲), 숙(叔), 계(季)를 붙이는 데 지나지 않으나, 남자의 자에는 흔히 그 실명과 의미상의 관련이 있는 자가 붙고, 다시 그 위에 형제의 차례를 나타내는 백,중,숙,계의 글자나 남자의 미칭인 자를 붙이는 일이 많다. 또한, 흔히 형제간의 자에는 같은 한 글자를 넣어 지어서 그들이 같은 형제인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쓰여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옛사람들을 부를 때, 자보다는 그 벼슬이름이나 호로 많이 불러요. 세종대왕을 예로 들면, 세종은 왕호요, 이름은 도, 자는 원정, 봉호는 충녕, 시호는 장헌, 능호는 영릉이예요. 그런데 우리는 세종대왕이라하지 원정이라 하지 않잖아요. 아! 왕이라 그렇다고요? 그럼 이순신 장군은 어떨까요? 이순신의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예요. 우리는 이순신장군을 부를 때 여해라고 하지 않고 충무공 또는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부르지요? 아마 이순신의 자가 여해인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