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 포크 가수, 방송 DJ로 남자 중 고등학생들의 우상으로까지 군림했던 만년 소녀가수 김인순, 35세의 한창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세월이 정지한 듯 밝고 푸르른 여고생 이미지의 흔적은 지워지질 않는 가수입니다.
대마초 파동으로 흉흉했던 1975년 12월에 인기가요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은 바로 '여고졸업반'(장제훈 작사·정민섭 작곡)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가사가 내용도 짧고 형식도 단순한 곡이지만 워낙 히트한 곡이었기 때문에 마치 한 시절의 스냅 사진을 보는 듯한 곡입니다.
김인순은 1953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은행 간부였던 부친 김오봉과 모친 홍성길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윤택한 집안의 늦둥이로 태어난 김인순은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쉬움이란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인순은 '88 서울올림픽'으로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던 1988년 어느 날 그녀는 인천 가좌동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비운을 겪습니다.
인천시내 모 업소 출연후 승용차를 타고 경인고속도로를 통해 귀가하던 중 과속으로 달리던 7.5톤 트럭이 그녀의 승용차를 들이 받은 것입니다. 아무튼 늘 여고생같은 푸르름과 더불어 재주가 비범했던 만능 탤런트 가수 김인순, 허망하게 짧은 세상을 등진 비운의 가수이지만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멜로디들은 70년대를 기억하는 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김인순은 뺑뺑이 돌리기 전 시절 최고의 명문이화여고 재학 때부터 통기타 가수로서 재능을 보였다. 지금이야 학생들이 고1부터 새벽부터 야자까지 공부로 잡아 돌리지만 그 시절은 꿈과 낭만이 있던 시절이니 명문이화여고도 음악 시간을 중요시 하였고, 교내행사를 하면 인근 남학교에서도 원정관람을 왔었다. 대학도 포기하고 일찍이 포크소리꾼으로 자질을 보인 그녀는 1973년 데뷔하면서 " 하양 나비" ( 김정호의 하얀 나비 아님) "언니의 일기"로 이름을 알리다가 1975년 "여고 졸업반"으로 톱가수 반열에 오른다. mbc-tv 변웅전의 금주의 인기가요 연 5주 그랑프리를 차지 하였다 (그때 5번 1위를 하면 그 곡은 1위에서는 자동으로 명예 퇴진하였다)
또한 김인순은 맑고 고운 목소리로 하이틴의 대명사였으며 라디오 진행 솜씨도 좋아서 구 tbc 라디오 음악 프로 " 팝송 다이얼"의 진행을 맡아 인기도 끌었다. 임예진, 이덕화 , 전영록, 얄개 이승현, 강주희, 한유정 , 진유영, 손창호 등 70년대 중반 하이틴 영화에는 언제나 김인순의 낭낭한 목소리가 늘 배경에 깔렸다.
"푸른 교실" "선생님 안녕" 남자가수 장재훈과 듀엣으로 부른 "소녀의 기도"도 청소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내가 고딩 때 밴드부를 할때도 학생 행사를 하면 늘 인근 여학교 소녀들로부터 김인순 노래 들을 꼭 연주와 노래 신청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나운서와 결혼하여 자녀도 두었던 김인순은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 하였다가 다시 노래를 했는데 1988년 스케줄을 마치고 이동하던 도중 경인고속도로에서 교통 사고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요절을 하였다. 그녀보다 조금 선배들인 세시봉 멤버들이 아직도 왕성한 활동과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면 그녀의 요절이 참으로 안타깝다. 세월도 가고 사람도 간다지만 그녀의 노래는 아직도 사람의 가슴에 남아있다.(펌)
김인순 - 여고졸업반
이 세상 모두 우리거라면 이 세상 전부 사랑이라면 날아 가고파 뛰어 들고파 하지만 우리는 여고 졸업반
아무도 몰라 누구도 몰라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
뒤돌아 보면 그리운 시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시간 돌아 가고파 사랑 하고파 아~ 잊지못할 여고 졸업반
아무도 몰라 누구도 몰라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
뒤돌아보면 그리운 시절 생각해보면 아쉬운 시간 돌아 가고파 사랑 하고파 아~ 잊지못할 여고 졸업반 아~ 잊지못할 여고 졸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