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도청 앞을 지나서 출근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화가 나는 걸 애써 참는다. 다름 아닌 두 사람 때문이다. 하나는 전직 도지사이고 다른 하나는 현직 도지사이다. 전직 도지사는 야권 후보임에도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그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도지사에 당선되면 반드시 임기를 채우겠노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대권에 눈이 멀어 중도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의 도지사가 들어섰고 진주의료원 폐업, 무상급식 중단 등 일련의 독선적인 행정으로 도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일당 800원을 받고 현대중공업에서 경비를 했기 때문에 없는 자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을 보면 허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도 나는 아내의 차를 타고 도청 앞을 지났다.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경상남도가 전국에서 최초로 다음 달부터 무상급식을 중단하고, 남는 예산을 서민 자녀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데 쓰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교육청은 다음 달부터 무상급식을 유상급식으로 전환한다면서 관련 안내문을 다음달 1일 각급 학교를 통해 가정으로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무상 급식 혜택을 받아온 초·중·고 학생 28만 명 가운데 저소득층 자녀 6만여 명을 제외한 21만 9천 명이 급식비를 내게 됐다. 경남도와 시·군은 남은 예산 643억 원을 저소득층 학생의 참고서 구입비 등 교육 지원에 쓰기로 하고, 학생 1명 당 연간 50만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라고 언론이 보도했다.
“시벌, 이러니 내가 열을 안 받겠냐고?”
“아니, 아침부터 무슨 욕이에요?”
“아니 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중단했다지 않아? 그것도 전국에서 최초로. 아휴, 쪽팔려!”
“저도 알고 있어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학생 1명당 연간 50만원을 지원한다지요?”
“그렇다는구먼.”
“쿠폰으로 주게 되면 문제가 많아요. 애들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돈으로 바꿔서 오락실에도 가고 과자도 사먹고 그런데요. 그것도 깡을 해서요. 가령 4000원짜리 식권이면 3000원을 받는 식으로요. 상급생이나 동네 불량배들에게 뺏기기도 한데요. 저는 그래요.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의 노령연금을 주듯 아이들에게도 몇 만원씩 용돈을 주면 좋겠어요.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이잖아요.”
“녹색당이라는 곳에서 비판 성명을 냈더군. 도지사는 한 끼 2만8000원 하는 간담회 밥값부터 개인 돈으로 내라는 거야"
“그런 성명서도 있었어요?”
“학교는 공공시설이며 학생은 음식점 손님이 아니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헌법이 명시하고 있다, 도지사는 학교에 책걸상, 강당, 스쿨존 시설 등을 설치할 때도 돈 내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만일 급식이 교육에 속하지 않는다고 우기겠다면 홍 지사는 업무추진비 카드부터 없애라고 주장했어. 녹색당에 따르면 도지사가 지난해 쓴 업무추진비는 총 2억2683만원이고 이 중 도지사실 물품비나 화환 및 화분 구입비, 격려금 등을 제외한 간담회비는 6655만7000원이었다는 거지. 이는 식사, 부식, 음료 대접에 들어갔을 비용으로 참석 인원 수를 감안하면 한 끼에 2만8477원으로 나온다는 거야. 시벌, 이러니 내가 욕이 안 나오겠어?”
“충분히 이해는 하겠는데요. 그래도 욕은 하지 말아야지요.”
“그래야지. 그런데 말이야. 때로는 욕을 하면 화가 풀리더라고."
“방송에 나와서 누가 말하더라고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화를 내는 건 너무 정상적이다. 근데 이게 지나치거나 파괴적이거나 자주 있거나 하면 문제가 된다. 화가 너무 폭발적이게 되면 결과는 아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라, 라고 말이지요.”
“문제는 그게 어렵다는 거지.”
“그분이 CALM 모델을 소개하더라고요. C는 Change, 변화를 해야 한다, 너무 변하지 않아서 갈등이 오는 경우가 많다.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고요. A는 Accept 받아들여라, 받아들여야지, 너무 저항하다가 갈등이 오고 분노가 오고 감정이 폭발한다는 거지요. L은 Let go, 놓아버려라, 어떤 생각이나 어떤 일에 매달리면 이게 또 스트레스가 된다. M은 Managable lifestyle, 자기생활, 스타일을 관리해라, 쉽게 말해서 잘 자고, 잘 먹고, 담배 피우지 말고, 술 적당히 먹고, 적절하게 운동하고, 이런 게 스트레스 관리라는 거죠."
“좋은 말이군. 화가 좀 가라앉기는 하는데… 하지만 도지사의 행정은 너무 독선적이야. 누군가 그러더군. 그런 식으로 일을 한다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과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싸움 붙여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큰 정치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이야.”
짧은 출근시간이지만 아내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세상이 하 수상해서 그런지 평소에 하지 않던 정치 이야기까지 하고 말았다. 물론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까지 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인격의 미성숙을 탓하며 법원가족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아내는 법원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다시 집을 향했다. 빨강색 ‘티볼리’ 자동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완연한 봄바람이 나를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