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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회의 빈 체제 의 성립 | 빈 회의 개최(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 1814~15) :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사후 수습을 위하여 빈에서 개최되었음 →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말살하고, 전통적인 구체제로 돌아가려고 하였음 → 빈 체제(1815~1845)는 빈 회의의 결과 성립된 유럽의 국제 질서를 말한다. → 유럽의 정치적 상황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음(복고주의 = 정통주의) → 프랑스혁명, 혁명전쟁, 나폴레옹 전쟁의 성과를 모두 부정하고, 앙시앵 레짐(구제도)으로 유럽이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내거는 동시에 각국의 주권을 본래의 주권자(왕)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결과 프랑스와 에스파냐에는 부르봉 왕가가 재현하고, 독일 제영방(諸領邦), 스위스도 옛 상태로 돌아갔다. → 정치적 의미에서 복고주의란 유럽의 왕정복고(王政復古), 즉 혁명이나 쿠데타 등으로 인해 폐지되었던 왕정이 부활되는 일을 말한다. → 빈 체제는 유럽의 자유주의 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하였으며, 이를 위해 신성동맹(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4국동맹(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 등 대(對) 프랑스 전쟁을 이끌었던 네 나라가 1815년 빈 체제의 유지를 위해 체결한 동맹이다. 나중에 프랑스가 가입하여 5국동맹이 되었다)이 결성되었다. → ‘빈 회의’를 계기로 형성된 유럽의 새로운 질서를,‘빈 체제’라 하고, 빈 체제는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질서는 국왕 중심의 질서를 말한다. 국왕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막아야(탄압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빈 체제’아래서는 ‘시민 중심’에서 ‘왕 중심’으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
자유주의 자유 + 권리 |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이 정치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힘에 의한 억압이나 부담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사상이다. 집단에 의한 통제보다는 개인의 자발성을 우선시하며, 국가와 사회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성을 꽃피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사상이다. 17~18세기에 주로 유럽의 신흥 시민 계급에 의하여 주장된 시민적ㆍ경제적 자유와 민주적인 여러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이다. 로크, 루소, 벤담, 밀 등이 주창하였으며,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
프랑스 자유주의 운동 | 빈 체제로 성립된, 부르봉 왕조(王朝.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전제정치(專制政治. 군주독재. 주권의 운용이 임금의 독단에 맡겨진 정치제도)와 자유주의 운동 탄압(의회 해산, 언론의 자유 억압, 부르주아의 선거권 박탈) → 국왕 샤를 10세는 프랑스 혁명의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동생으로서, 1824년 루이 18세(절대왕정으로의 복귀 단념)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입헌정치를 인정하지 않고, 구제도(왕정)에로의 복귀를 원하여 극단적인 반동정책(反動政策)을 실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르주아와 세력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반대는 높아짐 → 혁명에 성공(1830.7) → 샤를 10세(루이 16세와 루이18세의 남동생)는 영국으로 도망 → 루이 필립(시민국왕 :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했던 왕)이 즉위 → 1830년 7월에 시민들의 항거로 왕을 바꾼 이 사건을 ‘7월 혁명’이라고 한다. 7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제 헌법이 마련됨 → 루이 필립의 변심(가난한 노동자들은 무시하고, 돈이 많은 시민들에게만 선거권을 줌 = 재산의 소유 정도에 따라 선거권을 줌) → 1848년 2월 노동자들과 중소시민들이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킴. 이를 ‘2월 혁명’이라고 한다. 루이 필립은 영국으로 망명감 → ‘2월 혁명’으로, 왕정은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 프랑스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은 ‘빈 체제’를 붕괴시켰다. → 다시 말해 오스트리아에 영향을 주어, 메테르니히는 추방되었다. * 프랑스 혁명(1차 공화정) → 빈 체제(왕정) → 7월 혁명(입헌군주제) → 2월 혁명(2차 공화정) →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의 조카)은 대통령 재직 중,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붕괴시키고 황제에 즉위함(2차 제정. 帝政) →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9월 새롭게 급부상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폐위 당했고, 프랑스에는 제3공화정이 들어서게 되었다. |
영국 자유주의 운동 |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혁명적인 방법을 통해 자유주의를 성취해 나간 것과는 달리, 영국은 18~19세기에 걸친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의회에 의한 점진적 개혁으로 자유주의가 발전했다. →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대 되었다. → 심사령(심사율)을 폐지(1825) 하여, 개신교도들에게 공직 진출의 길을 열어 줌(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함) → 가톨릭 해방령(1829. 가톨릭교도 차별 철폐)을 제정하여, 가톨릭교도들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였다. ⇒ 종교의 자유 인정. * 심사령은 1673년 영국에서 비국교도(영국 국교회의 교리와 의식을 따르지 않던 신도. 영국 국교회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공직 취임을 금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률이다. * 공장법을 제정하여 어린이와 부녀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였다. 공장법은 영국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 조건을 시정하기 위하여 시행된 법률이다. * 선거법을 개정(1832)하여 부패 선거구를 폐지하고, 신흥상공계층(도시상공업자)에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 이로써 신흥 상공 시민층(도시 상공업 계층)까지 참정권(參政權. 국민이 국가 기관의 구성원으로서 정치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 확대되었다. → 그러나 선거법 개정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1838년 ‘보통선거, 비밀투표’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 노동자들의 선거권 요구.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 요구)을 전개하였다(1838~1848) → 이 운동은 비록 실패하였으나, 휘그당과 토리당이 각각 자유당과 보수당이라는 대중 정당으로 개편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양당 정치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후 지속적인 선거법 개정을 통하여, 농민 · 노동자 계층까지 선거권(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 참정권)이 확대되었다. * 차티스트(Chartist)는 1838~1848년 영국에서 노동자층을 주체로 한 정치적 권리, 특히 보통 선거권의 획득을 목표로 싸운 참정권 운동가를 말한다. * 선거법 개정으로 참정권을 획득한 신흥상공계층(산업자본가)은 경제적으로, 자유주의 경제체제(자유방임주의)의 수립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 곡물법(영국 국내의 지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입한 식량에 높은 세금을 내게 한 법.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법. 곡물법은 지주에게는 유리하나, 신흥상공업자나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한 제도였다) 폐지, 항해법(영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반드시 상품을 생산한 국가나 영국의 배로만 상품을 실어 나르게 한 법) 폐지 → 곡물법과 항해법의 폐지로 자유로운 무역이 가능해져, 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확립되었다. ⇒ 이러한 개혁이 바탕이 되어,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라고 하는 영국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림. ⇒ 대영제국(해외 진출 활발) * 자유방임주의(自由放任主義) : 상대방의 행동 따위를 자유의사에 맡기는 주의를 말하다. 각 개인의 경제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경제 사상 및 정책이다. * 빈 체제에 대한 반발 : 프랑스(7월 혁명, 2월 혁명), 영국(심사령 폐지, 차티스트 운동, 곡물법과 항해법 폐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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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 안으로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밖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주의와 주장을 민족족의라고 한다. →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 요구가 자유주의라면, 민족의 자유와 권리 보장 요구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 민족을 으뜸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상이다. 족 공동체의 정치적 통일, 독립, 번영· 발전을 추구하는 집단 의지나 노력이다. → 영국과 프랑스의 자유주의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민족주의 운동(1830~1870년대)의 형태로 나타나다. | |
민족주의 확산 | 이탈리아의 통일 |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롬바르디아, 베네치아, 로마교황령, 사르데냐, 시칠리아 등)로 분열되어 있었고, 그 중 북부 이탈리아의 대부분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에 → 마치니는 ‘청년 이탈리아 당(1832)’을 세우고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오스트리아의 간섭으로 실패하였다 → 이후 통일 운동은 사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 프랑스 2월 혁명 이후, 사르데냐의 재상 카보우르는,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을 육성하고, 군대를 개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나폴레옹 3세)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탈리아의 중부와 북부를 통합하였다 → 이후,‘청년 이탈리아 당’의 가리발디가 나중에(1860)‘붉은 셔츠당 ’이라는 의용군을 조직하여,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정복하였다(남부 이탈리아의 통합). 그는 하나의 이탈리아 공화국 건설을 희망하여, 이를 위해 사르데냐 왕에게 헌납함으로써,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고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루어졌다(1861. 로마와 베네치아 제외) → 이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프로이센 편에 가담하여 승리함으로써, 로마와 베네치아까지 점령하여 오늘날의 통일을 완성하였다(1870). ⇒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일종으로,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것’이라는 뜻. 분열되었던 이탈리아의 통일(우리 민족은 하나)에 파스타가 있었다. |
독일의 통일 | 프랑스 동쪽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38개의 작은 주(소국)들이 ‘독일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 독일 연방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관세동맹을 맺었다. 이것이 독일 통일의 첫걸음이다. 독일 연방 내에서는 국가 간의 관세를 없애고,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통일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경제적 통일 달성) →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독일을 이루기 위해, 군비(군사적 준비. 전쟁 수행 준비)를 확장하는 등의 <철혈정책>을 실시하였다. → 철혈정책은 프로이센의 수상(재상) 비스마르크가 제창한 무력에 의한 독일의 통일정책이다. ‘독일의 통일은 연설이 아니라 철(무기)과 피(전투)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군비 증강에 힘쓴 결과, 우세한 무력(군사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 민족의 염원이었던 통일을 달성하였다. → 오스트리아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북독일 연방’이 결성되었고, 그 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자, 독일 남부의 여러 나라가 북독일 연방에 들어옴 → 통일 독일 건설 → 비스마르크의 요청으로,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이 독일의 황제가 됨(빌헬름 1세. ) → 독일 제국 수립(1871) → 하지만 실권은 비스마르크에게 있었고, 통일 후 20년 동안을 독일 제국의 재상으로 지내며,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이 되는데 기여함 → 오늘날 독일 성립의 중심에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있었다. | |
19세기 유럽 문화 |
① 과학 ․ 기술의 발달 ∙ 물리학과 기술학 : X선의 발견(뢴트겐), 라듐 발견(퀴리 부부), 전구 발명(에디슨), 발전기의 원리 발견(페러데이) ∙ 화학 : 다이너마이트(노벨) ∙ 생물학 : 진화론(다윈), 유전 법칙(멘델) ∙ 전신(모스), 전화(벨) ⇒ 특히 다윈의 진화론은 우수한 집단이 열등한 집단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주었다.
② 인문 과학과 사회 과학 ∙ 철학 ▷마르크스 :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허 바흐의 유물론 계승→ 유물 사관 성립 ▷콩트 : 실증주의 철학 → 근대 사회학의 기초 확립 ▷벤담 : 공리주의 철학,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 자유주의 개혁에 사상적 기반 ∙ 역사 : 랑케 → 과학적인 근대 역사학 확립
③ 문학과 예술 ∙ 낭만주의 (19세기 전반) : 계몽사상(이성 중시) 비판,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 강조, 반이성주의, 개인의 존엄성 강조,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 중시 → 이성보다 감성 (헤겔, 위고, 들라크루아, 슈베르트 등 ) ▷배경 : 개인감정과 전통 중시, 민족주의와 결합, 역사학의 발달 자극(랑케) ▷ 문학 독일 : 괴테, 실러, 하이네, 노발리스 프랑스 : 위고 영국 : 워즈워스, 바이런 ▷ 음악 : 슈베르트, 바그너, 슈만, 쇼팽 ▷ 철학 : 칸트(순수 이성 비판), 피히테, 헤겔(변증법) ▷ 경제 : 리스트 ∙ 현실주의 (19세기 후반) ― 산업사회의 발달과 사회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등장. 과학 발달의 영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 ▷ 문학 : 사실주의, 자연주의 사조 프랑스 :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모파상, 영국 : 디킨스, 러시아 :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 미술 : 사실주의 ─ 밀레(만종), 쿠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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