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23] 영국으로 떠나는 북극곰 '통키', 동물원 동물들도 은퇴할 수 있을까
한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북극곰 통키는 기나긴 좁은 동물원 생활을 마치고 보다 넓은 야생공원으로 이주한다. 출처 에버랜드
한국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북극곰이 오는 11월 영국의 요크셔야생공원으로 옮겨진다. 20여 년간 에버랜드의 좁고 단조로운 우리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북극곰 통키가 마침내 보다 안락한 노후를 위해 이주한다는 소식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70살이 넘은 고령이 된 통키는 삶의 마감을 목전에 앞두고서 비로소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전시 목적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도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동물권 단체들의 오랜 주장이 마침내 받아들여진 결과다.
영국 요크셔야생공원의 북극곰. 출처 요크셔야생공원 홈페이지 캡쳐
영국 언론에서는 통키의 이주 소식을 전하며 그가 마침내 ‘은퇴’한다며 축하해주었다. 요크셔야생공원의 북극곰 전용 거주구역의 면적은 4만㎡ 정도로, 이는 축구장 5개가 조금 넘는 규모이다. 에버랜드에 비할 바는 못될 만큼 넓긴 하지만 현재 이곳에 4마리 북극곰이 거주하고 있으며 통키가 오는 11월 이주하게 되면 모두 다섯 마리로 늘어나기 때문에 야생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놓고 있다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야생 북극곰들은 매일 5km 이상을 돌아다니며 바다사자나 고래 사체 등을 사냥해 먹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이 깊은 호수 등을 갖추고 있으며 전시가 목적인 일반 동물원과는 달리 북극곰의 거주를 목적으로 한 자연환경이 마련되어 있기에 현재 북극곰의 인공거주시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괜찮은 곳이다.
무엇보다 통키의 이주가 전시동물의 은퇴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현재 해외에서는 동물원 수족관 사육동물의 은퇴를 준비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항상 인간에게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그저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동물들을 이주시키려는 노력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국립 볼티모어 수족관은 전시중인 대서양 큰돌고래 8마리를 2020년까지 모두 플로리다주 키제도에 마련된 바다쉼터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좁은 수족관에서 살아왔던 돌고래들이 은퇴 후 자연으로 회귀해 편히 쉴 수 있도록 바다와 인접한 폐광산 또는 석호에 쉼터를 만들고자 관련 절차를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이 예산으로 수족관 측은 150억 원의 예산을 마련해놓았다.
영국에서는 이미 흰고래 벨루가들을 위한 바다쉼터 건립이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수족관 대기업 멀린사가 WDC라는 고래보호단체와 협력하여 아이슬란드 베스트만 제도 앞바다에 바다쉼터를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벨루가 두마리, 리틀화이트와 리틀그레이의 바다쉼터 방류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사진 출처 멀린사가 운영하는 전세계 수족관 Sea Life 홈페이지
중국 상하이 수족관에서 사육중인 준준, 리틀그레이, 리틀화이트 등 세 마리의 암컷 벨루가들이 바다쉼터로 이주하게 된다. 이곳은 영화 프리윌리의 주인공 범고래 케이코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자연적응 훈련을 받고 야생으로 방류된 곳이어서 고래류 생태관광으로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캐나다 역시 수족관의 범고래들이 은퇴하면 바다 한 쪽에 쉼터를 만들어 지낼 수 있게 하는 ‘웨일 생츄어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북극곰은 고래류와 마찬가지로 해양포유류로 분류된다. 북극곰은 바다에 들어가 수영할 때는 바다사자와 마찬가지로 콧구멍을 닫은 채 잠수한다. 차가운 물속에서도 부력을 유지하며 체온을 유지해주는 두꺼운 지방층과 털을 갖고 있으며, 그리고 바다수영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앞발 덕분에 물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 곰이지만 북극의 바다와 얼음에 의존해 살아가며 주로 바다를 중심으로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해양동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해양포유류보호법에 의거해 북극곰을 보호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만 북극곰이야말로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얼음 위에서 해양동물을 사냥하며 살아온 북극곰의 서식처 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 통키의 이주는 변화하고 있는 동물원, 수족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키가 살고 있는 에버랜드는 1970년대 건립 당시에는 250톤 규모의 전용풀을 갖춘 최신시설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의 기준에서는 이곳은 너무나 좁다. 아열대로 변하는 한국의 기후도 북극곰에게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전시에만 초점을 맞춘 사육시설의 구조적 환경은 북극곰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와 정형행동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이제 동물원은 전시만을 목적으로 두던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종 보전과 동물복지 그리고 생태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 동물을 감금한다는 비판에 대응해야 했고, 사람들의 높아진 기준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복지에 대해 높아진 사람들의 관심만큼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동물원과 수족관이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먼저 ‘전시부적합종’에 대해서는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또는 야생과 비슷한 조건을 마련해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극곰, 돌고래, 코끼리, 유인원 등이 그 대상이다. 통키처럼 다른 전시부적합 동물들도 숨통이 트이는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