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苑
說
>
‘不忍人之心’하는 마음은 아무리 악인이라고 하여도 일순간 ‘아이고 어쩌나~’하는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발현되어 선행을 베풀게 된다. 사람은 이와 같이 누구나 다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전쟁용 무기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방어로 시작된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겨야 한다. 그러다보니 위정자는 더 잘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도록 독려한다.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不仁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을 받고 그 직분(職分)에 깊이 빠지는 순간부터 사람을 얼마나 더 잘 죽일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더욱 날카롭고 정교한 무기를 만들게 된다. 오늘날 대량살상무기가 바로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갑옷이나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공격용 무기로부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튼튼한 방어용 갑옷과 방패를 만들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이 더 어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얼굴의 ‘살상’과 ‘방어’라는 양면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되어 모든 사람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갈라 서로 대치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각자의 이익을 탐하게 만든다. 맹자의 仁者無敵은 바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만드는 것이고 그 단초를 ‘不忍人之心’에 두고 위정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것이다.
◇ 術不可不愼
건물의 기둥이 흔들려 곧 무너져 내릴 지경이 되었다면 어찌 해야 할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빨리 빠져 나와야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우왕좌왕하며 허둥댄다면 건물이 무너져 내려 깔려죽는 상황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군자는 위태롭고 험난한 상황에 맞닥뜨릴수록 침착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크게 위태로운 상황을 건너야 할 때 삼가고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나타낸 『주역』의 澤風大過괘(
) 初爻에서 周公은 제사를 지냄에 강신주(降神酒)를 부을 때와 같은 정성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藉用白茅니 无咎하니라(흰 띠풀을 써서 술을 부으니 허물이 없다.)”라고 표현했는데, 공자는 이를 “苟錯諸地라도 而可矣어늘 藉之用茅하니 何咎之有리오 愼之至也라 夫茅之爲物이 薄而用은 可重也니 愼斯術也하여 以往이면 其无所失矣리라
(저 땅에 두더라도 괜찮거늘 茅沙 -모사는 강신주를 붓는 그릇으로, 깨끗한 모래를 담아 그 위에 흰 띠풀을 정갈하게 꽂아놓은 것 - 를 쓰니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삼감의 지극함이라. 무릇 띠풀의 물건 됨이 하찮은 데도 씀은 중하게 했으니 그 방법을 삼가서 이로써 나간다면 그 잃는 바가 없으리라.)”고 했다.
大過의 상황일수록 공자는 ‘愼斯術’의 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강조했다. 맹자는 이를 戰國時代라는 크게 위태로운 시대적 상황에 적용해 ‘術不可不愼’라 했다. 상대방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기 때문에 나는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대처하게 된다면 矢人과 函人의 결과만 낳은 것이다. 이른바 楚나라 사람의 矛盾(창과 방패)이 되고 만다. 양혜왕 상편 제2장에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한다(君子 遠庖廚也)”고 했듯이 위정자가 가려서 거처할 곳은 仁이라는 집이다.
사람이 살 집을 구하는 데 습기 찬 하류(下流)를 택하거나 불선(不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택할 사람은 없다. 어리석지 않은 이상 오두막집을 짓더라도 양지바른 쪽을 택할 것이고, 되도록이면 좋은 이웃이 있는 곳을 가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곳이 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仁을 ‘사람의 편안한 집(人之安宅)’이라 했고, 작위(爵位)로 표현한다면 ‘하늘의 높은 벼슬(天之尊爵)’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다 베풀어져 있고, 누구나 올라가면 다 존경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에 仁을 ‘天之尊爵’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그런 벼슬자리를 아무도 막지 않았는데 不仁한 짓을 하는 것은 결국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지혜롭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림당할 것은 뻔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즐겁고 기쁘게 하지만, 부림당하는 것은 누구나 부끄러워한다.
사람이 되어 어질지도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하다면 예의가 없게 되어 다른 사람의 호령을 들어가며 부림당하게 된다. 전국시대 당시의 위정자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人爵 중 가장 높은 벼슬인 제후나 왕이 되어 먼저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불인한 짓을 하니 상대의 적국이 틈을 보아 공격해 들어온다. 원치 않더라도 전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부림을 당하는 것이고 人役이 되는 것이다. 당시의 제후들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 곧 주변국들에게 부림당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하여 부림당한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기에 부림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맹자의 풍자이다. 활이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활과 화살로 사람들을 죽이기에 그 일을 부끄러워하듯, 적어도 제후들은 이런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부림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어진 정치를 베풀어야 한다. 어진 정치는 모두가 心服하고 悅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남 탓을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이켜 반성하라고 하면서 활쏘기에 비유했다. 맹자의 “仁者는 如射하니 射者는 正己而後에 發하여 發而不中이라도 不怨勝己者요 反求諸己而已矣니라”는 공자의 “射有似乎君子하니 失諸正鵠이오 反求諸其身이니라(활을 쏘는 것은 군자와 같음이 있으니 정곡을 놓치고 돌이켜 그 몸에서 구하느니라. - 『중용』 제14장)”에서 나온 말이다. 射는 ‘몸 신(身)’과 ‘헤아릴 촌(寸)’으로 구성된 글자로 활을 쏜다는 것은 곧 자기 몸을 바르게 헤아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갖춰야 할 六藝 가운데 하나로 ‘활쏘기(射)’를 둔 것이다.
출처 : 孟子易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