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 사랑 연주회
최 방식
세월의 수레바퀴는 멈출 줄 모르고 돌고 돌아 어느새 한 해의 끝물이다. 올해는 마음도 분위기도 쓸쓸한 2024년 12월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송은 아기울음 그치듯 오래전에 거리에서 그쳐버렸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세모의 길모퉁이에서 따뜻한 손길을 살며시 내미는 단소사랑 송년음악회의 초대장에 슬며시 손을 잡았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날 참석하겠다고 승낙을 했다. 어쩌면 성미가 급하다고 여길 줄 모르겠으나 이 나이에 송년잔치에 초대해 주는 것만도 고마워 성탄절 선물이라고 생각되었다.
단소 사랑 프로그램을 보면서 음악 전공자도 아닌데 다들 편히 쉬고 싶은 나이에 시간을 내어 배우는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시력은 어떤가? 악보 보기도 어려웠을 텐데,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렸을 것을, 수차례 반복하며 연습하고 늦깎이로 단소를 접한 시니어들의 노력과 용기를 생각하니 강단이 있는 분들로 생각 되었다.
단소는 대한민국의 전통 관악기로 세로로 부는 관악기다. 이름에 걸맞게 작은 악기로 세로로 부는 관악기중 가장 짧단다. 악기의 특징처럼 호흡을 모우고 입술로 불어내는 소리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소리가 다듬어지면 애절하고 간결함이 묻어있다. 주로 거문고,가야금,세피리,대금,장구,양금과 함께 줄풍류(실내악)에 자주 편성하고 악기소리 보다 노랫소리가 주가 되는 가곡, 가사, 시조의 반주악기로 사용된다고 적혀있다.
12월23일, 오늘은 성탄절을 앞둔 단소사랑 송년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어제는 올 해들어 제일 추웠는데, 오늘은 바람도 없고 날씨도 청명하고 어제보다 따뜻하다. 일행 몇 분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객석도 많지 않은 아담하고 작은 공연장이었다. 무대의 앞자리에 앉으니 무대와 가까워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팜플렛을 보니 오늘 연주할 곡명이 잘 알고 있는 곡이어서 연주자와 객석이 공감하며 하나가 될 수 있음에 기대가 되었다. 언젠가 참석했던 음악회에서 알지 못하는 곡을 여러 곡을 듣느라 하품을 하며 지루한 시간이 된 적이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밝아지자 한복을 입은 단소 지도자가 연주곡을 설명하고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갈고 닦은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연주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단번에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연륜이지만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서니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젊었을 때나 똑같은 느낌이리라.
호흡을 가다듬고 석고상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긴장된 짧은 시간이 흐르고 순간 피아니스트가 정적을 깨는 첫 음을 넣자 일제히 하나같이 가락을 연주했다. 지휘자가 없어도 하나가 되어 잔잔한 물결같이 부드러운 음이 밀려왔다. 여러 곡을 연주하는 동안 끊어질듯 이어지고, 추임새도 없는 국악의 새로운 선율이 가슴을 적신다. 바빌론의 강을 연주를 할 때는 국악의 풍류를 떠나 서양의 풍류가 감도는 새로운 장르를 만나기도 했다.
단소연주는 사물놀이처럼 곡이나 역할이 확실하거나 요란하지도 않고 봄바람처럼 은은하게 부는 순풍이다. 어둠이 깔린 저녁이나 고요한 밤중에 애절한 가락으로 이어질듯 끊어질듯 들려야 제 맛인 것 같다. 가야금이나 꽹과리가 없어도 연주는 고요하게 때로는 물결치듯 이어지는 국악의 장르다.
많은 악기가 모인 합주에는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지만 여기에는 연주자가 지휘자요 지휘자가 연주자다.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반복적인 연습으로 음을 맞추는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지도자 선생님께 악보를 보여 달라고 했다. 악보는 오선지가 아닌 세로로 한자와 부호가 써진 원고지처럼 보였는데, 생전 처음 보는 악보를 보니 단소 배우기가 만만찮아 보였다.
단원들은 단소와 함께 한 세월이 10년이 되었단다. 강산도 변할 시간이 지났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평소 잘 접하지 못한 생소한 악기와 씨름하면서 열정과 인내로 임했다. 약간의 음 이탈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지만 그 연세에 그것은 애교요 양념이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꽃도 흔들리면서 피고, 프로들도 실수를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앞으로 노력하며 즐기면서 수련을 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성황리에 송연연주회를 마친 배 태원 단소지도자 외 단원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악기하나쯤 다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지 아는 사람은 안다. 가정에서 식구들이 악기하나를 다룰 줄 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일 것이다.
연주회의 악기를 보니 문득 옛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사람들은 살면서 아픈 기억 하나쯤은 가슴에 묻고 산다고 한다. 내색하지 않고 내면 깊숙이 감추고 싶은 사건이 있다. 50년 넘게 깊이 잠자고 있던 이별하고 싶은 추억의 사건을 소환해 본다.
고등학교시절 옆집의 한 해 후배와 함께 기타에 심취되어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밤낮으로 시간만 나면 기타를 배운다고 코드를 짚어가며 골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띵동 거리며 보냈다.
어느 날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아끼고 애지중지 여기던 기타가 무참히 허리가 잘린 채 두 동강으로 부러져 기타 줄을 감고 비참하게 장작더미 위에 버려져 있었다. 갑자기 날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그때 그 감정은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울분이 치솟아 한 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고, 억울함과 허탈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아 이틀 동안 방안에 들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지냈다.
어머니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틈만 나면 베짱이처럼 기타를 켜고 있으니 장래에 딴따라 밖에 되지 못한다고 이미 여러 번 경고를 했다.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 장래를 망치는 기타를 원수처럼 여기고 무자비하게 부셔 버렸던 것이다.
아마 이 당시 어머니가 기타를 부셔버리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더라면 음악의 재능을 살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바꾸어졌을지 하나님만이 아시는 사건이다.
알고 보면 나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음악이 우리에게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큰지 말로 설명을 다 못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음악은 영원하다는 노래도 있다.
오늘 단소사랑 연주회에 초청에 감사하며 처음으로 접하는 새로운 국악의 향기였다.
첫댓글 단소와 작가님의 성향이 비슷한것 같습니다
음악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선사하는 삶의 양념같은것 같습니다
그시절
통기타 열풍으로 거의가 기타를 가지고 있었을겁니다
전부가 배짱이 되지는 않았으니 모친의 아들에 대한 기대가
누구보다 컷기때문이였을겁니다.
나이를 먹어가니 요란함보다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이 좋아집니다
아직은 국악보다 클래식이 좋아서
운전 할때 클래식 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국악도 가끔 들어봐야겠어요.
저 역시 아직 국악은 변방에 있는 것 같습니다.
흘러간 팝송이 좋고 트롯이 좋습니다.
저 역시 올 해는 국악도 즐겨 들어야 하는데
노력해 보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