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송한시랑적조주서.(1)
夫天之降大任於人也必先使之勞其筋骨餓其體膚行拂亂其所爲增益其所不能然後擧而委之大事使之而立法於當世垂憲於萬代也若是者何哉蓋其心以爲惟如此然後其操心也危其慮患也深達可以行於天下矣是故舜大聖人也耕于歷山然後爲法於天下可傳於後世文王周公大聖人也囚于羑里居于東郊然後妙契六畫而繫以卦爻制禮作樂永傳于後焉孔孟之鶉居鵒(鷇)食卒老于行然後刪詩書定禮樂拒詖行息邪說大明吾道以爲萬世之所宗夫皇天之所以生我大德惠我斯民夫豈偶然哉前聖之所以任斯道者亦豈偶然哉然亦安知其必然乎聊以吾子之行卜之也孟軻氏言曰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吾以爲天下之治亂候於吾道之明暗耳蓋天之生此大道必因人而行也堯舜行之於上周公明之於下而使其君子得聞大道之要其小人得蒙至治之澤天下萬民同歸於仁及周之衰異端蜂起邪說誣民充塞乎仁義而孟氏反經辭而闢之廓如也則吾道之明自若矣自茲以還歷秦歷漢天下之言不歸于楊墨則入于佛老紛紛擾擾民無所向逮至我朝佛老尤盛房杜姚宋左右明主而不能救之天其不欲明道乎何吾道之衰若是其甚乎天之欲喪斯文也則已矣如欲未喪斯文也則當今之時舍子其誰歟況乎否往泰來天道之常也吾道之否未有甚於此時異端之興未有甚於此時以其時考之則吾道之明異端之衰豈不在於今日乎安知夫天不使子動心忍性然後任斯道之責乎然則今子之行非貶也謫也非子之禍也吾道之幸而生民之福也得不與羑里東郊不遇而行同其事乎事旣同於前聖吾不知前聖之道非子任之而伊誰歟今子之謫也不知者以爲誹謗明主招其君之過而欲以爲名者也其知者以爲韓子則賢矣吾君明矣闢佛則忠矣不幸而不得志於有司爭短賈誼於文帝而使黜長沙矣吾以爲是皆不知者昔周之時成王爲君召公爲相而周公居東則非君之不明也非相之不賢也非周公之不肖而然也況孔孟周流天下去魯去齊之梁之滕豈天下之君皆不明也豈孔孟之智不能使其主待之以禮哉然而若是其窮者天欲使斯人將任其責故使其困於心橫於慮而後作也橫於慮而後作也況得時而濟世則又奚暇脩其辭以明其道哉以此而知吾子之貶也亦猶周公之居東文王之羑里孔孟之不遇也其居東者天也不遇者天也終能任斯道者天也今子之行亦非天乎庸詎知天不哀子之窮而以周公孔孟之道任之於子乎其能任之者命也得之不得亦莫非命也而抑將盡吾心焉耳抑將修身而竢命耳其於天也何可必哉吾子勉乎哉吾以吾子之行此於周公以周公之道望於吾子而若夫成功則天也吾於子何以哉吾子勉乎哉繼孔孟不傳之道而明之一身傳之萬世以塞乎在天之責不亦幸甚乎若夫因一摧折自毀其道則非吾之望也吾於是道其所以在天者以解其志云
무릇 하늘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몸에 시련을 주어 고생을 시키고 몸을 굶주리게 만들며 하고자 하는 일을 혼란해지게 만들고 그가 능숙하지 못한 곳을 늘려서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런 다음에야 그에게 큰일을 맡겨서 한 시대를 바로잡는 올바른 법을 세워 영원히 전해지도록 만드니 그렇게 하는 것은 어째서 인가?
대개 그 마음을 이와 같이 단련시키면 그 다음부터는 위험에 대비하여 조심하게 되고 어려움에 대한 사려가 깊어지게 되므로 통달하여 올바른 일을 천하에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2)
그렇기 때문에, 순임금은 큰 성인이지만 역산에서 밭갈이를 하고나서야 천하에 올바른 법을 세워서 후세에 전하게 되었으며,
문왕과 주공 또한 큰 성인지이만 유리에서 감금되어 고통을 받고 동교에서 살면서 고생을 한 다음 육획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여 『주역』의 괘와 효를 설명하였고, 예절을 제정하고 음악을 만들어 영원히 후세에 전수하였다.
공자나 맹자도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는 고생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시경』과 『서경』을 정비하고 예절과 음악을 바르게 하였으며 행실에서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을 가지게 하고 사설을 불식시켜 유교를 크게 밝히시므로 영원히 전해지게 될 유교를 만들게 되신 것이다.
무릇 하늘이 우리의 큰 성인을 내어 주신 것은 우리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니 어찌 이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옛날 성인들이 유교를 만드신 것 또한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하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애오라지 우리들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맹자님 말씀에 가라사대;
인류의 역사가 있어 온 지 오래 되었는데 그 동안 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 어지러워졌느니라.(3)
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어지러운 천하를 다스리기 위하여 유교가 밝고 어두움을 가려주길 기다릴 뿐이로다.
대개 하늘이 이와 같은 큰 도리를 만드심은 반드시 사람이 그것을 따르도록 하기 위한 까닭이니 요임금과 순임금은 위에서 그것을 행하였고, 주공은 아래에서 그것을 밝히었으니 군자로 하여금 큰 도리의 요소를 들을 수 있게 하고, 소인배들이 가르침을 얻어 다스림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다함께 어진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주나라가 쇠퇴함으로 인하여 이단이 일어서고 사설이 난무하여 백성들을 속이므로 인의가 꽉 막혀버리지 않았는가?
맹자께서 다시 경전의 말씀을 되돌려 살려 내시기를 갇혀있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넓게 펼친 것처럼 하시므로 유교가 스스로 밝아지게 되었도다.
이로부터 돌이켜보면 진나라를 거치고 한나라를 거치면서 천하의 가르침이 양자와 묵자로 인하여 올바른 곳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니 불교와 도교로 흘러가게 되었으므로 근심이 가득하여 분분한 백성들이 의지할 방향을 찾지 못하게 되었는데 당나라에 이르러 불교와 도교는 더욱 왕성하여져서 방현령, 두여회, 요숭, 송경 같은 훌륭한 재상들이 나와 밝은 임금을 좌우에서 보필하였으나 그래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었으니 하늘이 우리 유교를 버리시려고 하신 것인가?
어찌 우리 유학의 쇠퇴함이 이와 같이 심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분명 하늘이 유학자를 버리려고 하신 것일 것이다.
유학자를 버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시대에 있어서 선생을 버리고 그 누구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
하물며 막힘은 가고 태평함은 오라. 라고 하였으니 하늘의 떳떳한 도리인 것이다.
유교가 거부 된 것이 그때보다 심했던 때가 없었으며 이단이 융성하게 일어난 것이 그때보다 심했던 때는 없었다.
그 때를 상고하여 보면 유교의 밝음으로 인하여 이단이 쇠퇴하게 된 것이 어찌 지금뿐이라고 할 수 있게겠는가?
어찌 알겠는가?
무릇 하늘이 선생의 마음 씀과 참아냄을 받아주지 않았다가 그러고 난 후 유교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기려고 그리한 것인지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선생의 행실은 폄하된 것이 아니며 벌을 받는 것은 선생이 화를 당한 것이 아니고 우리 유교의 행운이요 백성들의 복인 것이다.
문왕과 주공도 어쩔 수 없이 유리에 유폐되고 동교에서 살면서 고생을 하고 난 다음에야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상황은 옛날 성인들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는 옛날 성인들의 도리를 알 수 없으니 선생에게 그 일을 맞기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 그 일을 맞길 것인가?
지금 선생이 처벌을 받는 것을 두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밝은 임금이 잘못한 것이라고 비방할 것이며 임금께서 잘못을 초래하였다고 그것을 명분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잘 아는 사람은 선생은 어진 분이시며 우리 임금께서도 밝은 군주이시고 불교를 배척해야 한다고 말씀 올리는 것은 충신의 행실이다.
불행하게도 유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가의는 한나라 문제와 약간 다툰 일로 인하여 멀리 장사로 쫓겨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일들은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옛날 주나라 때 성왕은 임금이 되고 소공은 재상이 되었는데 주공은 동교에서 살았으나 임금이 밝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며 재상이 어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주공이 못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하물며 공자나 맹자께서도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노나라로 가고 제나라로 가고 양나라와 등나라로 돌아다닌 것이 어찌 천하의 임금들이 모두 밝지 못해서 그렇고 어찌 공자와 맹자의 지혜로 임금들이 예로서 대우하도록 만들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이와 같이 곤궁하게 된 것은 하늘이 이 분들에게 장차 중요한 임무를 책임지게 하기 위하여 그 마음으로 하여금 곤궁에 빠지도록 만들고 걱정거리를 준 다음 그렇게 만든 것인데 하물며 때를 만나 세상을 구제하려고 한다면 어느 겨를에 몸을 수양하고 그런 평판을 얻어 천하에 그 도리를 밝힐 수 있을 것인가?
이것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선생께서 벌을 받는 것은 마치 주공이 동교에서 살았고 문왕이 유리에 감금되었으며 공자와 맹자가 등용되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주공이 동교에서 살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요 공자와 맹자가 등용되지 못한 것도 하늘의 뜻이며 마침내 유교의 책임을 맡아 이루어 내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인데 지금 선생이 떠나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리요.
어찌 알겠는가 하늘이 선생의 곤궁함은 애달파 하지 않으면서 주공, 공자, 맹자에게 맡긴 임무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임무를 이루어 내야하는 것이 주어진 운명이라면 이루어 내고 이루어 내지 못하고 또한 주어진 운명이 아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 우리가 마음을 다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몸을 수양하여 운명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어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선생은 피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선생께서 행하신바가 주공이 행하신 바와 같고 주공의 도리를 가지고서 우리 선생을 바라볼 수 있는데, 만약 선생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으로 되어버리면 우리 선생은 어찌된다는 말인가?
우리 선생은 피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공자와 맹자가 전하지 아니한 도를 이어서 자기 한 몸으로 밝히고 영원히 후세에 전한다면 하늘이 책임질 부분은 막혀버리지 않는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것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좌절한다면 스스로 그 도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 도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
(1) 送韓侍郞謫潮州序. 시랑 한유가 죄를 받아 조주로 좌천되어 가는 것을 송별하는 서문. 한유는 황제가 불사리(佛舍利)를 모시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간언(諫言)하다가 시랑 벼슬에서 광동성 조주 자사로 좌천되었다. 적(謫)은 귀양을 간다는 뜻이다.
(2) 『맹자』<고자하>의 “맹자가 말하기를 ‘순임금은 밭에서 일하다가 기용되었고, 부열은 성벽 쌓는 노역을 하다가 등용되었으며, 교력은 생선과 소금 장사를 하다가 등용되었고, 관이오는 옥관에서 잡혀 있다가 등용되었으며,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등용이 되었고, 백리해는 시정에서 장사를 하다가 등용되었다. 그들이 그러했던 이유는 하늘이 그들에게 큰일을 맡기는 명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히고 그들의 근골을 수고롭게 만들며 육체를 굶주리게 만들고 그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서 그들이 하는 것이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드는데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고 자기의 성질을 참아서 그들이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리하는 것이다.’(孟子曰舜發於畎畝之中傳說擧於版築之間膠鬲擧於魚鹽之中管夷吾擧於士孫叔敖擧於海百里奚擧於市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志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爲所以動心忍性曾益其所不能)”를 인용한 것이다.
(3) 『맹자』<등문공하>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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