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동의 기억-화장품 판매원을 했던 정지순(여, 1937년생)씨
2020.10.10.
1960년부터 원평동 옛 평택읍사무소 터에서 살았다. 남편은 젊어서 벌목 및 목재상을 했고, 정씨는 화장품 판매원을 했다.
원평동에는 언제부터 사셨어요?
우리가 1960년부터 살았슈.
이주하게 된 동기는?
그냥 여기 저기 이사다니다가 온 거지 뭐. 우리 바깥양반이 산일을 했어. 산에서 벌목한 나무 가져다가 좋은 건 목재소에 주고 나머지는 제재소에 주고. 솔가지하고 나쁜 것들은 그릇가마에도 가져다주고.
사업규모는 어땠어요?
제법 크게 했슈. 트럭에다 싣고 다니고 그랬으니께. 산에서 일해 갖고 돈 벌어서 이 집 샀어요. 방이 세 개, 마루가 있고 제법 괜찮은 집이었지.
어르신은 살림만 했어요?
나는 화장품을 팔았슈. 젊을 때 했는디 한 18년 했나.
그럼 1970년대네요?
아마 그럴 꺼여.
당시 화장품은 어떻게 팔았어요?
평택역 앞에 대리점이 있었슈. 쥬단학 같은 거. 거기서 물건을 떼다가 집집마다 돌아댕기매 팔았지.
그렇게 팔면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돼요?
한 20만원은 벌었나. 우리 바깥양반 벌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내가 벌어야 집안 용돈을 썼지. 애들 학비도 내야하고. 우리 큰아들이 서강대학교를 졸업했시유. 대우조선 이사까지 지냈지.
바깥어르신은 생존해 계세요?
3년 적에 저 세상으로 갔슈. 바깥양반이 직장을 들락거려서 직업이 일정치 않았지. 내가 화장품 수금하고 늦게 돌아오면 바람피웠다고 트집 잡고.... 6.25 때 군대 가는 바람에 죽어서는 대전 호국원에 들어갔는디. 그래두 지금도 연금이 조금씩 나와서 내가 사는 디는 지장 없지.
자녀는 몇 명을 뒀어요?
딸 하나에 아들 셋.
다복하시네요. 아들 많이 낳았다고 시부모님 사랑 받았겠어요?
우리 딸은 국민핵교까지 가르쳤지만 아들 셋은 다들 대학교 나왔슈. 큰아들은 서강대학교, 둘째는 충남대학교, 셋째는 오산전문대학. 내가 밖으로 장사 다니니께 우리 딸이 살림하느라 고생 많았지.
며느리는 잘 들어왔어요?
우리 막내가 늦게까지 장가를 못 갔슈. 그러다가 베트남에서 처녀 하나를 구해다 결혼했는디 참 잘해. 싹싹하고 일도 잘하고 알뜰하고. 얼마 전에 아파트 큰 데로 이사 갔어. 딸 하나 두고 사는디 그 애가 중학교 다니면서 공부 잘 해.
옛날에 원평동 사람들은 주로 직업이 뭐였어요?
여기야 회사 다니는 사람, 농사하는 사람 많았지 뭐. 옛날에 거리에 말마차가 많이 댕겼다구. 역에서 짐도 싣고 이것저것 다 날랐어. 통복지하도 있는디가 땡땡거린디 그 옆에 여관 있는디에는 대장간이 있었고. 마차바퀴 만들고 농기구 만들어서 팔고 그랬지. 우리가 처음 이사올 때는 지하도도 없었슈. 땡땡거리 넘어 다녔지. 역 있는디 있었던 육교는 1970년대나 생겼지.
결혼은 몇 살에 하셨어요?
22살.
바깥어르신 함자는?
서기철. 나보다 네 살(1933년생) 많았슈.
친정은 어디세요?
저기 세교동, 우리 바깥양반은 반제리. 우리 동네 노인네가 중매했는디 우리 집에서 맛선 봤지. 맛선 보고 사진찍자고 해서 찍고, 넉 달 뒤에 혼례 올리고.
좀 빨리 결혼했네요.
우리 시어머니 자리가 그렇게 서두르더라고. 우리 바깥양반이 5남매 막내인디 어릴 때 시아버지가 죽고 그래서 빨리 서둘렀나봐.
패물은 좋은 거 받았어요?
금쌍가락지. 시댁이 괜찮게 살았거든. 우리 친정(세교동 은실)도 아주 어렵지는 않고. 우리 마당에서 혼례 올리고 하룻밤 자고 시댁에서 살았지 뭐.
시집살이는 안 했어요?
시어머니하고 큰동서하고 3년을 같이 살았는디 시집살이는 많이 안 했어.
바깥어르신은 뭐 했어요?
농사지었지 뭐. 그러다가 세간나고. 시댁에서 평택동에 작은 집하나 사주더라고. 고생은 많이 안 했지. 나중에 논 팔고 살림하고, 남편이 벌은 것으로 애들 가르치고. 우리 남편도 집안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슈.
산판일 하고 다니면 바람피우지는 않았어요. 그런 경우가 많던데요?
왜요. 한 번은 산에 다녀 왔는디 어떤 처녀가 따라왔어. 우리 바깥양반이 키가 좀 작았는디 그래도 좋다고 그래.
어떻게 했어요?
잘 달래서 돌려보냈지 어떡해. 살림 차리게 할 수도 없고. 과부도 한 명 쫓아왔네. 아이구...
자녀들은 잘 사세요?
우리 딸이 잘해요. 결혼해서 천안에 사는디 명절 때도 시댁에 안 가고 나한티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