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 김영은 [난초밭에 정자를 짓고-- 蘭田設亭] 회고록
난정蘭亭 김영은金榮銀 선생은 1930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고, 통영수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2년 입대를 하여 1953년 한국전쟁에 참전을 했으며, 육군을 제대한 후, 1955년부터 1988년까지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셨다. 1988년 교육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하고, 궁도회, 그라운드골프 창립, 통영수산학교 동문회 조직, 68 친목회, 거제신협 등, 여러 사회단체에 참여를 했고, 현재 87세로 윤금낭 여사와 함께 슬하에 4남 2녀를 둔 원로로서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의 생활을 하고 있다.
[난초밭에 정자를 짓고--蘭田設亭]은 김영은 선생의 회고록이며, 어떻게 보면 평범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사회를 떠받치는 건강한 시민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일제식민치하에서 조선어 말살정책과 수많은 수탈과 그 참상을 목격했고, 더욱이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로서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에 내려와서는 집 없는 자의 서러움과 그 한을 겪기도 했고, 모진 병마와 싸우면서 현모양처의 전형인 윤금낭 여사의 내조 아래 4남 2녀의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기도 했다. 교육구청 교육세 징수원으로서의 삶의 애환도 담겨 있고, 경남 고현에서 거제상고 인가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뛰어다닌 열정도 담겨 있다. 어렸을 때부터의 치통과 폐종양, 공포증과 우울증, 그리고 노이로제와 대상포진 등의 투병생활도 담겨 있고, 부모형제와 친구들과 아내와 아이들과의 생활도 담겨 있다. 어느 누구보다 근면성실했던 윤금낭 여사의 덕택에 궁핍하지 않게 살았던 살림살이의 행복도 담겨 있고, 거제도의 지역유지로서 궁도회와 그라운드골프 창립, 통영수산학교 동문회 조직과 68 친목회 등을 조직하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선조묘 이장과 망치 재실을 꾸미고 유자밭을 가꾸던 이야기도 담겨 있고, 이제는 노년의 건강관리로서 오토바이를 타고 공원으로 가 운동도 하고, 사랑가, 사철가, 쑥대머리, 유행가, 백세 시대 등을 노래하기도 한다. 제9장 [꽃구름 속 호랑나비]는 10여년 전 출간한 아내 윤금낭 여사의 회고록을 발췌하여 수록했다.
목차
제1장 잘 먹으며 한 세상
1. 까탈스런 나의 입맛/ 2. 투병과 인생의 고비/ 3. 직장과 나의 살림/ 4. 생활철학과 성격//
제2장 국민학교까지
1. 어린 시절과 나의 가정/ 2. 당시 풍습과 고향 망치/
3. 가정교육과 나의 형님들//
제3장 학창시절
1. 초등학교/ 2. 통영수산학교/
제4장 군대와 결혼
1. 입대와 제주훈련소/ 2. 전쟁터/ 3. 결혼과 제대//
제5장 직장생활과 나의 가정
1. 구조라초등학교/ 2. 교육구청 교육세 징수원/ 3. 총무처 시험과 고현중학교/ 4. 하청중. 하청농고/ 5. 그 외 학교 근무//
제6장 투병생활과 건강운동
1. 어렸을 때의 치통/ 2. 폐종양/ 3. 대상포진/ 4. 위장병/ 5. 건강관리//
제7장 친척과 아름다운 인연
1. 큰형수님/ 2. 나의 처남 윤종태/ 3. 조카 성호/ 4. 하숙생활/ 5. 아름다운 인연들/ 6. 최근의 생활//
제8장 살림살이와 여러 가지 활동
1. 살림살이/ 2. 동창회와 사회단체/ 3. 문중과 기타//
제 9장 꽃구름 속 노랑나비
표4의 글
이제 우리 나이로 여든일곱 살이다. 요즈음은 백세시대라고들 하지만, 나는 옛날 사람이다. 많이 산 편이다. 이제 머리와 몸도 쇠잔해 졌다. 여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촛불이 다 타면 결국 꺼지듯이 나도 그렇게 꺼져 가고 있다.
누구나 짧던 길던 한 세상을 산다. 각자의 환경과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복으로. 그러나 삶이란 결국에는 뻔한 것이어서, 나의 삶을 책으로 기록하여 남긴다는 것 자체가 한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분들에게 송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어머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18살 위이신 큰형님의 지도로 한 세상을 살았다. 열심히 산 아내 덕분에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4남 2녀의 일가를 이루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 분들을 이 책에 다 기록하지 못하여 죄송하고도 안타깝다. 나 또한 소소한 것들은 내 나름의 선의를 베푼 것도 많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자랑할 일이랴!
----[머릿말] 부분
중공군이 대거참여 하였기 때문에 밤이면 적군의 공격이 있을까 두려워하면서 밤이면 죽었다 하고, 낮이면 비행기 덕택으로 살았다고 숨을 쉬곤 하였다.
----본문 [전투생활] 부분
보초 서고 잠을 새고 보니 인근에 시체가 많아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본문 [백암산] 부분
만약에 내가 죽고 나면, 아이들 다섯을 어찌할 것인가?, 아이 두고 남의 집에 갈 것인가? 망상증이 심하여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노이로제 공항장애] 부분
경기민요를 주로 하는데, 그 외에 까투리타령, 몽금포타령, 춘향전의 사랑가, 사철가, 쑥대머리, 유행가, 백세시대 등을 약 1시간 가량 산이 떠나가도록 크게 노래한다. 크게 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작은 폐를 가지고 있으므로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투병생활과 건강운동]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