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뒤늦게야 능력을 인정받은 개런드는 1919년 11월에 스프링필드 아머리 조병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개런드는 기관총 대신 보병 라이플 설계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기관총을 설계하던 그의 머릿속에는 기존의 소총과는 확연히 다른 총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바로 반자동 라이플이었다. 사실 미군은 1차대전당시 M1903이나 M1917 같은 볼트액션 라이플을 사용하며 반자동 라이플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개런드의 구상은 시류에 딱...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엔필드 M1917 라이플
개런드는 1930년에 독창적인 노리쇠 회전식 폐쇄기구(Rotating Bolt) 를 이용하는 가스압 작동식 반자동 라이플 특허를 신청하고 2년뒤에 미국 특허를 따는데 성공한다. 당시 개런드는 조병창의 수석 민간 엔지니어였다. 그런데 그가 구상중인 라이플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암적인 존재는 군수뇌부로 이뤄진 '조병창 위원회'였다. 뜬금없이 전차 승무원이나 보병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총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질 않나...엎친데 덮친 격으로 개런드는 구닥다리 M1903 라이플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기관총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병창의 황당한 요구와도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스프링필드 M1903 라이플
앞서, 다른 총기 설계자들과는 달리 개런드의 유명세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개런드 자신이 평~~~생, 군소속이 이닌 민간 연구원으로 총을 개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약점 때문에 개런드 라이플이 미군 제식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개런드는 몇차례 수난을 격어야 했다. 개런드는 자신의 라이플에 사용할 탄으로는 .30-06탄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이 탄환은 이미 1차대전때 써먹던 M1903이나 M1907 볼트액션 라이플에도 사용됐기 때문에 재고량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나는 입대신 M1과 총알로 말한다..."
미군 제식 라이플 트라이얼에서 개런드 라이플은 일단 '펜치'를 먹는다. 당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는 .30 구경탄에 지연폭발화약과 뇌관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개런드 라이플의 시스템과는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총기 설계자 존 페더슨은 색다른 주장으로 자신의 반자동 라이플을 홍보하며 주목받았다.
".30-06탄은 반자동 라이플용으로는 너무 쎈거 아냐?"
페더슨은 .276 (7 X 53mm)탄을 사용했는데 이게 의외로 먹혀들어갔다. 실제로 돼지와 염소를 대상으로 .276탄과 .30-06탄을 테스트하면서 .276탄의 효용성이 입증되자 위원회에서는 .276탄을 제식탄으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런드에게도 .30-06탄 대신 .276탄을 사용하는 총기로 '둔갑'시켜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 4년동안 개런드와 페더슨의 라이플을 비롯해서 몇가지 민수용 라이플까지 미군 제식소총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 그런데 초기에 주목받았던 페더슨 라이플은 조기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된다. 윤활제가 뿌려진 탄을 사용해야 제대로 동작하는 구조라 청소를 제대로 안해주면 총 내부에 먼지와 이물질이 덕지덕지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차츰 잊혀져가던 개런드 라이플을 주목한 사람은 바로 장본인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었다. 이 양반은 차세대 군용 라이플에도 .30-06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는데, 사실 군 내부적으로도 소총과 기관총에 동일규격의 탄환을 사용하길 바랐기 때문에 맥아더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맥아더 장군(1880 ~ 1964)
미 의회에서도 .276탄의 제조 예산을 삭제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개런드 라이플은 오리지널 .30-06탄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개런드가 자신의 총을 .30-06버전으로 다시 만들지 않았다면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에 상당한 고역을 치렀을 지도 모른다. 개런드 라이플이 대전내내 너무도 맹활약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어쨌건, 여러 테스트를 거친 끝에 1936년이 돼서야 개런드 라이플은 30여년간 미군 제식으로 사용되던 스프링필드 M1903 라이플의 뒤를 이어 .30구경 M1 라이플이란 제식명칭으로 미군 제식 라이플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민간 사격장에서의 M1 개런드
개런드 라이플의 제원을 살펴보자. 무게는 약 4.5Kg이었고 장탄수는 8발로 로테이팅 볼트의 가스압 작동식이며 기존의 미군제식 볼트액션식 라이플과 위력은 동일했다. 버뜨...연사속도는 볼트액션방식에 비해 2배이상 빨랐다. 물론 초기에 지급된 개런드 라이플은 잼현상이 자주 발생해서 미의회에 보고되어 1939년에 가스 포트 시스템을 변경했으며, 덕분에 반자동 사격시의 잼 현상은 해결을 볼수 있었다.

가스 시스템의 구조변경. 좌측은 오리지널인 1932년, 우측은 개량된 1939년 개런드의 특허 도면. 오리지널 M1의 경우 총구쪽에 익스텐션을 통해 가스가 유입되는 구조였으나 신뢰성이 떨어져서
개량형은 총구쪽에 구멍을 뚫어 가스 포트를 통해 가스가 유입되도록 변경되었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그 무시무시한 공업 생산능력을 풀 가동, 스프링필드 아머리 조병창과 '윈체스터사'등에서 전쟁 기간중 찍어낸 개런드 라이플은 무려 400만정에 달한다.

2차대전당시 독일군의 주력라이플은 5연발 볼트액션식인 KAR-98K였다.
M1 개런드 라이플의 최대 장점은 역시 반자동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개런드 라이플이 대활약한 2차대전 당시 반자동 라이플을 사병들에게 제식으로 지급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게다가 장탄수마저 8발로 당시의 일반적인 볼트액션식 라이플보다 3발정도 많았다. 물론 자잘한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건 M1 개런드가 맹활약 했던 시대의 기준으로는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 군용 라이플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참호전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반자동 방식의 개런드 라이플이 당시 독일군 제식이었던 볼트액션식 KAR98K보다 훨씬 유리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개런드 라이플은 신뢰성과 명중률, 내구성등 모든 면에서 병사들의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진흙구덩이에 처박거나 비를 쫄딱 맞거나 얼어서 오줌을 내리 깔기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쏴도 멀쩡하게 작동했다. 전용 클립에 8발의 .30-06탄이 끼워진채 총에 수납되는데 클립 없이는 장전할 수 없다.
찰캉...옆에서 필자가 직접 지켜본 장면.(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했던 소품)
물론 단점도 없지 않았는데...마지막 탄을 발사하면 클립은 방출되고 노리쇠는 오픈된 상태에서 멈추는데, 문제는 클립 방출시 요란한 소리가 나서 적에게 '탄 비었소...' 라고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또한 탄을 모두 발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클립을 교환하는 것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으며, 클립을 끼워 넣으면서 충격을 주면 볼트가 풀려 엄지손가락을 찧는 사고도 빈번했다. 총알이 오락가락 하는 마당에 엄지 하나가 대수겠냐만, 재장전할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면 총을 다루는 입장에서도 꽤나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M1 개런드 클립과 장전 모습
그리고 4.5Kg에 이르는 막강한 무게도 고역이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개런드 라이플은 역대 미군 군용 라이플중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위력은 5.56mm탄을 쓰는 현재의 M16의 2배요....스코프를 얹으면 저격총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명중률이 좋았고, 일단 튼튼하기 때문에, 2차대전중 발지 대전투에서부터 오키나와 전투에까지 이 총은 미군 병사들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였다.
M1 개런드 라이플 사격 동영상. 맞으면 정말 '간다'는 말이 가슴에 확 와닿는다.
숙련된 사수라면 8발 클립으로 순식간에 8명의 적군을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경우도 흔해서 2차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개런드 한방이면 누구든 넉다운'이라고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병사들이 사용하는 라이플의 성능과 신뢰성은 보병의 전투능력뿐 아니라 군 전체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므로, 개런드 라이플이 아니었다면 2차대전당시 미군의 전쟁사를 다시 써야 했을 정도였다는 말도 과장된 것은 아니라 하겠다.

M1 개런드 모델건(허드슨)
개런드 라이플의 진가를 알아본 맥아더 장군은 2차대전중 개런드 라이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개런드 라이플은 어떤 환경에서도 고장없이 작동했다.
진흙과 먼지로 뒤덥힌 참호 안에서 일주일 이상 청소한번 없이 쏴도 개런드 라이플은 끄덕 없었다."
개런드 라이플은 2전쟁기간중에도 약간의 개량이 더해질 예정이었으나 테스트 단계에서 중지되었다. 1945년에는 M1C와 M1D와 같은 스나이퍼 버전이 등장했고 바렐을 6인치(152mm)까지 줄인 컴팩트형도 전후에 극소수 만들어지기도 했다.

M1C(상) M1D(하) 스나이퍼 라이플
어쨌건 개런드 라이플 덕분에 전쟁도 승리로 장식할수 있었으니, 설계자한테 상을 좀 주는게 도리일 터. 하지만 정작 개런드는 자신의 라이플을 '민수용으로 팔아먹을 수 있는 권리'외에는 군으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보기가 딱했는지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그에게 금일봉 10만달러를 지급하려고도 했으나 미의회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개런드는 금전적인 면에선 그닥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1941과 1943년에 걸쳐 의회 훈장을 받으며 그간의 설움을 두방에 걸쳐 씻어내는 기쁨을 누리고 1953년에 은퇴를 했다.

2차대전 당시 유럽에서 M1 개런드 라이플로 무장한 미군 보병과 셔먼 전차
2차대전이 끝나자 M1 개런드의 생산은 일단 중단된다. 잉여 생산품은 해외로 원조되기도 했고 덴마크와 이탈리아로 라이센스 생산권이 팔려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6.25가 터지자 1952년부터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재생산은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해링턴 & 리차드슨, 인터내셔널 하베스터사 등에서 1956년까지 진행됐다. 2차 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것까지 합하면 M1 개런드 라이플의 총 생산량은 540만정에 달한다. 그리고 1957년에 .30-06탄보다 약간 짧은 7.62x51mm NATO탄을 사용하는 M14가 미군의 새로운 제식라이플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M14와 그 후의 M16의 경우 초기 물량이 딸려 M1 개런드가 땜빵으로 약간 쓰이기도 했으며 베트남전 초기에까지 개런드 라이플로 무장한 미군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베트남전 당시 사용되던 M1 개런드 라이플
나중에 M1은 미국 방위군용으로 쓰여졌고 정규군의 훈련용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남은 재고들은 민수용으로 판매됐다. 아직까지도 극소수의 M1 개런드는 미군 의장대에서 예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70년대 초까지 제식 라이플로 사용되었고, 이탈리아와 덴마크, 프랑스에서도 사용되었다. 미국인들에게 개런드 라이플은 1911피스톨 이상으로 상징적인 총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소장용이나 사격용으로 계속 제조되고 있다.

스프링필드 아머리의 개런드 라이플 리프로덕션 모델(클릭하면 확대)
앞서 언급했드시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직계인 스프링필드 아머리사에서는 M1개런드 라이플의 복각모델을 오리지널 스펙대로 만들고 있다. 특이한 점은 개런드 라이플에 사용하는 .30-06탄 외에도 7.62mm NATO탄을 사용하는 모델도 만들어 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짜피 7.62mm X 51mm NATO탄이 .30-06탄의 탄피 길이만 줄인 디자인이기 때문에 몇군데 손만 보면 개런드 라이플에도 7.62mm 탄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7.62x51mm NATO탄(좌)과 오리지널 .30-06탄이 끼워진 클립.
탄피의 길이, 즉 장약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2차세계대전, 6.25, 베트남전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전쟁에 대한 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라이플의 교전거리는 400m 이내라는 결론을 얻고 결국 7.62mm X 51mm 탄을 대신해 벨기에의 5.56mm SS109탄을 새로운 NATO 표준탄으로 선정했다는 얘기는 이미 여러차례 건넷의 기사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라이플의 개념도 '묵직한 훅' 대신 '빠른 잽'으로 변해 갔지만 여전히 강력한 총에 대한 아련한 미련은 계속되는지...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저격수 잭슨 일병의 손에 땀을 쥐게 하던 저격씬에 '사나이 로망'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으신 듯 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잭슨 일병의 저격씬. 다들 항문이 조여오는 기분을 느끼셨을 장면
영화 초반부부터 침착하고 용감한 캐릭터로 영화사에 남을 만한 명연을 펼치며 원샷 원킬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잭슨 일병이 사용하던 라이플은 스프링필드 M1903A4 모델로, 스프링필드 M1903의 스나이퍼 버전인데 개런드 라이플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진행하기 전에 빼놓을 수 없는 명총이 바로 M1903 시리즈이다. 다음 시간에는 M1903과 M1 개런드에 대한 좀더 디테일한 모습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스나이퍼인 잭슨이 사용하던 M1903A4와
업헴이 사용하는 M1 개런드 라이플
Part 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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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갈수록 흥미진진이네 이거 아~
어우 재밌네 이거...ㅋㅋㅋ
벌써 기다려 지네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한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