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하늘이 제왕에게 대통(大統)을 부여할 때는 반드시 제왕을 상징하는
부서(符瑞)를 내린다. 그러한 까닭에 고대의 제왕들은 천구(天球)ㆍ대패(大貝)ㆍ적도(赤刀)와 같이 실제 사용할 수도 없는 물건을 애지중지
보관하면서 조회(朝會)나 대례(大禮)를 행할 때면 어김없이 행사장에 진열해 놓고 자신의 권위를 과시한다. 심지어 죽도 끓이지 못하는
구정(九鼎)과 연주도 할 수 없는 석고(石鼓)를 종묘와 태학에 비치하여 나라의 대통을 전하는 징표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전통은 자신의 의복과
신발을 대대로 전하는 유가(儒家)의 풍습과 같은 성격을 가지면서도 의미상으로는 더욱 중대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세종대왕이
만든 금속활자야말로 역대 임금이 대대로 전해온 부서라고 이를 만하다.
* 천구(天球), 대패(大貝), 적도(赤刀), 구정(九鼎), 석고(石鼓)는 모두 제왕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천구는 옛날
옹주(雍州)에서 공물로 바쳤다고 하는 하늘빛의 구슬, 대패는 백옥처럼 광택이 나는 큼직한 바닷조개, 적도는 주나라 무왕(武王)이 폭군인 은나라
주왕(紂王)을 죽일 때 사용한 붉은 칠을 한 칼, 구정은 우왕(禹王)이 구주(九州)의 쇠를 모아 만든 아홉 개의 솥, 석고는 주나라
선왕(宣王)의 업적을 북 모양의 돌에 새긴 것을 가리킨다.
[원문]
天將以大統付畀帝王,
必假器物以爲之符瑞. 故天球ㆍ大貝ㆍ赤刀之屬, 是固無與於實用, 而古先帝王藏之甚謹, 守之甚嚴, 朝會大禮必列于陛庭. 至於九鼎之不能饘粥者,
石鼓之不能響節者, 亦必安于廟學, 以爲傳國之寶. 是與儒家衣履之傳, 其事則一, 而其義較大也. 若我國家世宗朝所鑄活字, 其殆傳國之符瑞乎!
- 서명응(徐命膺, 1716~1787),
『보만재집(保晚齋集)』권8,「규장자서기(奎章字瑞記)」 |
첫댓글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금속활자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겻이 아니라 이 밖에 그 활자가 어떻게 활용되었는가가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