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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가 있는 사람이 되라.
성경본문 : 잠언 29: 18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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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우 목사
1. 서론 - 방자하면 죽는다.
오늘 성경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여기서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남을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것이 없이 제멋대로 구는 행동, 한마디로 건방지다 그런 뜻입니다. 건방진 사람들은 자기 생각만 하지 남의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경거망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제력도 없고 이런 사람은 신중함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방자함, 경거망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6월이면 우리 나라에서 월드컵이 시작이 됩니다. 이 월드컵을 위해서 우리 나라 경기장 잘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로 잘 만들었는가 하면 세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경기장이 없다 할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 속에 월드컵을 치르면서 `이젠 다 됐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축구 경기장은 됐는데, 아직까지도 우리들이 무질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프로야구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한번 보셨습니까? 난 아직 한번도 못봤습니다. 이 프로야구를 보려면 많은 돈이 듭니다. 또 가서 음식도 사먹고 간식도 하고 응원도구도 사고, 돈이 꽤 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프로야구장에 못갑니다. 좀 있는 사람들이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있는 사람 하면 사람이 좀 괜찮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경기를 보고 난 다음에 그 경기장을 들여다보면 그 경기장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합니다. 어디서 그렇게 쓰레기가 많은지,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가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걱정하는 겁니다. 아무리 경기장이 잘되면 뭐합니까? 그 안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질서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제가 어느 화장실을 들어갔습니다. 너무 너무 잘해놨습니다. 그래서 나오면서 그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분에게 여기 너무 너무 잘해놓았다, 감사하다, 그랬더니 이분이 저에게 하는 한마디가 이것입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몇 일이나 간다구요" 그러니까 좋은 것을 좋게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월드컵 앞두고 경찰들이 비상이 걸렸습니다. 왜냐면 홀리건이라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축구 팬입니다.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축구를 좋아는 하는데 이 축구 때문에 자기의 감정을 조절하지를 못합니다. 술을 먹고 패싸움을 하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생길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경찰에서 얼마나 준비를 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의 관광객들이 왜 더 많이 오지 않느냐? 우리 나라에 볼거리가 없다? 여러분, 우리 나라에 볼거리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중국의 북경만 가더라도 중국의 임금이 살던 집이 자금성인데, 그 자금성이 얼마나 큰 지 아십니까? 우리 나라의 양반집은 99칸입니다. 임금님이 사는 집은 999칸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왕이 살던 집은 9,999칸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방은 작지만 중국 사람들의 방은 큽니다. 그러니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제가 북경에 하루 묵은 적이 있는데, 그 자금성 구경가자고 했더니 지금 피곤한데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는데 반나절이 걸립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우리 나라의 대원군이 자금성에 잡혀갔다, 이 잡혀가서 그 자금성의 규모만 봐도 겁에 질리게 되어 있습니다. 엄청납니다.
여러분, 대만에 가보세요. 대만 박물관에는 몇 십년을 봐도 다 못 볼 그런 보물들이 있다는 겁니다. 장개석 정부가 대만으로 피난을 가면서 자금성에 있는 보물들을 다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볼거리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 찾아오는 이유는 볼거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볼거리 없는 것은 그렇게 염려 안해도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관광을 다니는 이유는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 보고 싶어서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뭘 먹고 사는지,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사실 그런 것이 보고 싶고 사람 만나고 싶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이태원에 살아서 좀 압니다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남대문, 동대문에 사람들이 많이 간다, 뺏겼다, 이태원 올 사람들이 다 그곳으로 간다, 합니다. 그런데 이젠 거기도 안 간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거기 가면 100원짜리가 한국말 하면 100원이고, 외국말 하면 200원이 되고 300원이 된다는 겁니다.
볼거리가 보러 온 것이 아니고 사람 보러 왔는데, 이렇게 사람 속여 먹는 사람들, 이렇게 방자한 사람들, 이렇게 건방진 사람들, 이렇게 제멋대로인 사람들 두 번 다시 보고 싶습니까? 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만나는 그 자체가 부담입니다. 이태원이 왜 갔느냐? 우리가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자하다고 하는 것, 이것은 오는 관광객들 다 내쫓는 일입니다.
나는 요즘 정치를 보면서도 느낍니다. 원칙이 없습니다. 여러분, 대통령 누가 뽑았습니까? 왜 대통령 됐습니까? 왜 국회의원 됐습니까? 백성들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일 하겠다고 된 사람들이, 부정부패에 자기만 생각하고 삽니다. 세상에 이런 방자함이 어디 있습니까? 백성을 위해 살아야할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 문제 아닙니까?
신문에 어떤 분이 이런 글을 투고했습니다. "세상이 병드는 이유"라는 제목이었는데, 한국 자녀교육에 대한 염려를 쓴 것입니다.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 도덕 지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고 사는 얘기가 있다. [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라고 한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어디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우리 나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남에게 기죽지 말아라] 바로 이 말을 들으며 우리 아이들은 자란다."
[남에게 기죽지 말라] 이것은 실력을 갖추란 얘기 아니겠습니까? 남보다 실력을 갖추어라 그런데 그 실력 가지고 무엇하고 있습니까? 기죽이지 말라니까 학생이 선생님을 향해 삿대질을 합니다. 엊그저깨는 학생이 선생님을 칼로 찔렀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덤벼들고 사장에게 큰 소리 치는 직원들, 자동차 접촉사고 나면 누가 잘했냐 따지기 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큰 소리부터 하고 싸우고 합니다. 외국에 나가면 뭘 그렇게 큰 소리 치고 많이 사는지 싹쓸이 안하면 직성이 안풀립니다.
난 이분의 글이 맞다 틀리다 그런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분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남에게 기죽지 잘라]는 것, 실력을 키우라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한 교육이 자칫 경거망동, 안하무인, 자기이기주의 , 철면피 등과 같은 방자함으로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신문에 보니까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살인사건이 났습니다. 자기 친구 괴롭힌다고 공부하는 중에 다른 학생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문제는 이 살인을 한 학생이라는 사실입니다. 불량학생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평범한 아이들을 이렇게 키웠습니다. "기죽지 말라"고 "기죽으면 안된다"고...... 이것이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요즘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기죽지 말라"고 했더니 학교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죽지 말라"고 했더니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 이 "방자"의 원어는 "아파라"입니다. "아파라"의 뜻은 벌거벗다, 멸망하다 입니다. 벌거벗는 것이 무엇입니까? 입은 것이 벗겨진다는 것입니다. 방자하면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을 보십시오. 많은 백성들 가운데 단 한사람, 임금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출세를 했습니까? 그런데 방자하니까, 안하무인이니까, 하나님의 뜻을 안지키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있는 것 다 벗겨버리셨습니다. 자손들의 것까지도 벗기셨습니다.
여러분 잘아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의 목자였을 때, 결혼을 했습니다. 자식까지 낳아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생이 출세를 해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광야의 목자로 있을 때는 그 부인, 얼굴 새까만 부인,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고 보니까 격에 안맞는 겁니다. 그래선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결혼을 했냐` 면서 과거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동생과 부인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조금 출세하니까 방자해졌습니다. 그래서 비난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만 두시겠습니까? 그래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방자하면 하나님이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벌거벗기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멸망시키십니다.
여러분, 얍살롬 보십시오.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조금 힘이 있고 남이 알아주니까 아버지를 쫓아냅니다. 하나님이 가만 두시겠습니까? 그 자신까지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방자한 것은 원칙이,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2. 본론 - 방자하지 않으려면 묵시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묵시를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묵시를 가져야 방자히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묵시가 무엇입니까? 묵시라는 말을 사람들은 꿈, 야망, 희망 이렇게 해석합니다.
1) 묵시는 꿈이 아니다.
그런데 묵시는 꿈이 아닙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허황된 얘기를 하면 그 사람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야, 꿈깨" 합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꿈은 꼭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살아 보겠다고 미국에 가는 사람 보고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국에 꿈을 가집니다. 그런데 미국에 간 사람 가운데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은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하나, 그들이 위안하는 것은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킨다 이것 하나 가지고 위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육이 얼마나 잘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페더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글 가운데 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소년이 5달러짜리 지페를 주웠습니다. 지금 5달러는 7,000원 밖에 안하지만 지금부터 60년 전에 5달러는 대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7만원, 70만원정도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치 있는 돈을 줍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땅만 보고 사는 겁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땅만 보고 살아 가지고 얻은 것이 단추가 29,519개, 머리 핀이 54,172개, 수천 개의 동전도 주웠다고 합니다. 그는 그것 가지고 잘살아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했습니다.
그것 줍느라고 그보다 더 좋은 것들을 못보고 살았습니다. 푸른 하늘도 못보고, 봄여름가을겨울도 못보고, 사람도 못보고 살았습니다. 그냥 그것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은혜가 있고,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그리 생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너무나 많으니까.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세계3위가 되었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이혼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냐 하면 하루에 370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엄청나게 이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 `황혼이혼`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 70넘은 노인들이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직장 다니다 퇴직한 중년 남성이 이혼 당하고서 하는 말이 "내가 잘못한 무엇이 있느냐? 돈 벌어다 줘, 직장에 충실해... 단하나 잘못한 것 있다면 쉬는 날도 일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뿐인데... 그게 뭐 나 잘 살자고 한거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 이혼을 당하는 것입니다. 능력 없으니까 쫓겨나는 것입니다.
난 이런 사람 가리켜서 넝마주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돈 버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은 우리를 편리하게 하지만, 그것이 행복은 아닌 것입니다. 돈 버는 일 외에도 해야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한국에 `코리안 드림`가지고 온 사람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합니다. 꿈은 망상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이런 망상이나 꿈과는 다른 것입니다.
2) 묵시는 야망과도 다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묵시와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망은 철저한 이기주의입니다. 야망은 자기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 여인천하 보셨습니까? 제국의 아침, 태조 왕건, 명성왕후.... 나는 밤잠이 많아 가지고 보면서 너무 늦은 기간에 하니까 보면서도 소화가 잘 안됩니다. 잘 못 봅니다. 가끔 보면 단 한편만 봐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야망 가진 사람들의 행태입니다. 자기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왕 자리 지키기 위해서 피를 나눈 형제 자매까지 다 죽이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부모하고도 싸웁니다.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것이 야망입니다.
이 야망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세우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도 죽이는 것입니다. 꿈을 쫓으면 패가망신합니다. 다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망의 노예가 되면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묵시를 자기의 꿈과 야망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20세기에 들어서 교회가 회개해야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기독교회가 많은 숫자를 점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슬람교가 얼마나 대단하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왜 그렇게 좋은 신앙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고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묵시와 꿈과 야망을 혼돈해서 그렇습니다. 특히 묵시를 야망과 동일시해서 그렇습니다.
`땅을 정복하라` 그랬더니 있는 힘 가지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정복해요? 아프리카 가서 땅을 정복하고 흑인들을 노예로 팔아먹습니다. 미국 가서 인디언들 죽이고 땅 뺏고 큰 소리 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거기는 십자가가 있고, 성경이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억지로 예수 믿게 합니다. 그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보니까 우리는 오늘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산당입니다. 공산당이 왜 생겼습니까? 불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때문에 생겼습니다. 묵시를 야망과 동일시하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방자한 사람들 때문에.
3)묵시는 하나님의 희망이다.
그러면 묵시는 무엇을 얘기하고 있습니까? 묵시는 하나님의 희망이다. 묵시를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희망을 내 희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이나 야망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나에게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꿈이고, 내가 이루려고 했던 것이 야망입니다. 그러나 묵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묵시와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같은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을 내 희망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태어나게 하셨으니까 태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만 하고 우리를 방치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향한 분명한 계획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 그 하나님의 희망 그것을 내 것으로 삼고 살면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일반 사병으로 들어간 사람이 별을 두 개 달았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경찰에서 말단 순경이 별 두 개인 치안감이 되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이 성희구라고 하는 분입니다.
이분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했는데, 장로 피택을 받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노회에 가서 시험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찰서에 인사이동이 있는데, 군대로 말하면 대령인데, 별을 다는 승진 기회가 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선의 서장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장으로 나가는 날과 장로고시를 치르는 날이 같은 날로 정해져 버렸습니다.
둘 중의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이날까지 살게 한 것도 하나님이신데, 내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겨야지` 하고는 장로고시를 보러 가고 승진 기회지만 안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선배들도 동료들도 후배들도 다 조롱을 했습니다. `장로고시는 다음에 치뤄도 되지, 교회직분이 뭐 그렇게 귀하다 그러느냐`
그런데 이 분은 장로직분을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로 임직을 받고 봉사를 잘하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일이니까 그 분이 발령을 받은 곳이 강동이라고하는 변두리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안에 제일 한복판이 중부경찰서였습니다. 이 중부경찰서에 부임해서 서장으로 일하고 있던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부임해서 보니까 경목실은 있는데, 스님들이 포교하는 경승실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승실을 만들어서 경찰서 안에 목탁소리가 들리게 했습니다. 나는 이 분의 종교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교라는 것이 자기 정성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중부서 안에서 미용실에 강도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강도사건이 한번 생기고 끝나면 문제가 없을텐데 이것이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처음의 초동수사에서 이것을 은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일어나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왜 초동수사 때 제대로 못했느냐 문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들였던 그 자리에서 3개월만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임명을 해야될 터인데, 인사이동한지 3개월밖에 안되었습니다. 어떻게 또다시 인사이동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승진해야 될 사람 가운데 승진 못한 사람을 찾아보니 비난받던 성장로님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부경찰서 서장이 되었습니다. 변두리 서장 되어야 될 사람이 하나님의 임직을 귀하게 여기니까 하나님이 그를 높이셔서 중부경찰서 서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 잘 믿는 분이 오면 그 관내 안에 문제가 없어야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자마나 문제가 생긴 겁니다.
무슨 문제인가 하면 성균관대학교에서 데모하던 여학생이 분신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부경찰서 옆 백병원에 와서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데 끊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부 입장에서 보면 연쇄강도 살인사건보다 데모하는 것이 더 피곤한 일인 겁니다.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믿는 서장이 있는데 문제가 생기는 겁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서장이 자기가 서장으로 발령을 받고 중부경찰서로 오다가, 바로 옆에 영락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부하들이 다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분이 차를 교회 앞에 세워놓고는 교회수위실에 가서는 `내가 오늘 중부경찰서의 서장으로 부임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기도실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부하들은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이 서장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와서 일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를 어떻게나 잘 해결하시는 지 이것 때문에 그는 또 승진의 기회를 얻어가기로 별 하나에서 별 두 개 달고 대구지방경찰청의 청장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퇴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지키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묵시라고 하는 것은 내 꿈, 내 야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계획입니다. 거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업가가 사업에 실패를 했습니다. 다시 시작을 하려고 하는데, 돌이켜 보니까 빚진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이 무언인가 하면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이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사업 잘해보겠다고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 생각이 나서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빚부터 갚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 빚부터 갚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업을 과거보다 더 번성케 해서 놀라운 축복의 사업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 안에 살면 복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시간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바이어를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더 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합니까? "사람의 지혜로움이 하나님의 어리석음보다 못하고 인간의 강함이 하나님의 약함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복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좋은 땅과 산지를 놓고 봤을 때, 얼마든지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산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조카 롯은 좋은 땅을 차지했지만 거기에서 유황불로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높이시는 사람, 그것이 묵시를 가지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희망을 내 희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흔히 꿈 그러면 요셉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열심히 살았더니 하나님 축복 받았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려서 요셉이 꾼 꿈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형제들이 자기한테 절하고, 두 번째는 부모와 형제들이 자기한테 절하는 꿈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죄수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자기 인생의 목표를 자기가 꾸었던 꿈에 두었더라면 아마 노예로 팔렸을 때나 죄수로 끌려갔을 때에 그는 이렇게 얘기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내 꿈은 이것인데 왜 안 이루어주십니까?` 그것 때문에 속상해서 술을 마셨든지 마약을 했든지 자살을 했든지 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42장 9절에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식구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을 찾아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보면서 그가 비로소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요셉은 아버지 품을 떠나서 애굽의 노예로 살면서 한번도 자기가 꾸었던 꿈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요셉이 그 애굽에서 노예에서, 죄수에서 절망을 딛고 국무총리가 되었냐 그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바라는 꿈과 야망을 인생의 목표, 희망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계획과 뜻을 자신의 희망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그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만약에 요셉이 찬송을 불렀러라면 이런 찬송 아니겠습니까?
<1.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키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2.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앞에 엎드리니
나의 속맘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3.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4.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언제나 그의 비전은 내 꿈이 아니고, 내 희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희망을 내 희망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노예로 살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였다,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였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란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의 묵시는 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희망을 내 희망으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 일은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할렐루야!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묵시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셉은 애굽의 종이 되었을 때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주어진 사명을 다했습니다.
보디발이라고 하는 큰 사람의 집에서 재무관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 그는 애굽이라고 하는 큰 나라, 당대에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그런 나라의 큰 집에서 정치교육을 받았으니 그는 지금으로 따지면 하버드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애굽에 팔려갔을 때에, 감옥에 죄수로 있을 때에 이런 하나님이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단지 하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런 어려움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꿈이나 야망은 되는 것 같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희망은 꼭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을 내 희망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실패나 성공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 하나님의 성공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나님의 성공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남에 살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교육을 못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 때 하나님 우리의 자녀들을 복되게 하시고 은혜로 함께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묵시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여러분, 오페라 가수 가운데 핼버턴 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자기 친구들은 데려와서 노는데, 그 대화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국회의원하고 친해` 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가 `우리 아버지는 시장하고 친해` 하며 으쓱거렸답니다. 자기 아들은 무슨 얘기할까? 얼마나 이 아버지가 미안하겠습니까? 그랬더니 이 아들이 `야,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하고 친해` 했답니다. 하나님하고 친하게 지내면 하나님이 높이실 줄로 믿습니다.
1)겸손하다.
묵시를 가진 사람의 특징이 2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 높이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2) 의지한다.
25절 말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네가 나한테 복 주냐 하나님이 내게 복 주지` 하나님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다.
26절,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어려운 일 당하면 사람 찾아다니시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4)정직하다.
27절,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한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믿음 안에서 묵시를 가지고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를 칭찬하고 높일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합니다. 악인들은 우리가 믿음 안에 사는 것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 우리를 높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미국에 유명한 부흥사 가운데 무디 목사님이 있는데, 삼천 명 앞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날 따라 더욱 은혜가 있었습니다. 마이크가 없던 시절의 삼 천명이니까 숫자만도 굉장합니다. 열변을 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어느 저명한 대학 교수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몰라서 그러셨겠지만 제가 보건데 영문법적으로 설교의 틀린 부분이 열여섯 부분이었습니다."
이 무디 선생이 화를 내면서 "은혜만 받으면 됐지, 뭘 그러냐?"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십니까? 제가 배운 게 많이 없어서 많이 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무식해서 하나님 말씀 전하는대도 이렇게 틀리는 것이 많 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가지고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내가 선생님한테 한가지 묻겠습니다. 선생님을 그렇게 똑똑하고 지식이 많고 그렇게 명예가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그것 가지고 뭐 하는데 사용하십니까?"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가지고 무슨 일에 사용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지고 겸손하고, 하나님 더 의지하고, 하나님 증거하는 일에 사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좀 틀리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용하는데. 뭐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 대단하게 생각 안하십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방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희망,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어저깨 우리 나라 축구 대표팀이 코스타리카하고 축구경기를 했습니다. 2대 0으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축구경기 전에 한 신문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우리 2부 예배 드리는 청년들이 주보를 만들면서 여기다 글을 썼습니다.
제목이 "이천수도...."였습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이천수가 유럽 전지훈련에서 부상을 당했고, 지금도 월드컵 40여일 앞뒀는데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이 월드컵 축구에서 공격수로서 아주 큰 일을 해야될 젊은이인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했더니 이 이천수가 의외로 담담하게 이렇게 얘기를 한겁니다. "난 믿는 게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이천수가 원래 불교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불교인인 이천수를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최태욱이라는 겁니다. 이 최태욱은 선수들 안에서 전도사로 통한답니다. 그래서 이천수를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했는데, 이날 코스타리카 전을 바로 앞둔 이 시간에도 "나는 요즘 마태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14일에는 재활훈련과 팀의 단체행동 때문에 교회를 가진 못했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때 한 팬이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랬더니 이천수가 특유의 사인을 하고 날짜를 쓴 다음에 십자가와 예수라고 하는 영어단어 지저스(jesus)를 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부터 내 사인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이천수의 개인의 능력자가 아니라 예수 믿는 이천수,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이천수가 되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이 축구단안의 축구선수 가운데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누구냐 전도사라는 최태욱이 있고, 그 다음에 송종국, 이영표, 차두리, 현영민, 이 사람들이 기도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두골 넣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 수 믿는 우리 아들들이 두골을 다 넣었습니다. 나는 이들이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를 떠나서 이들이 축구 대표선수가 됐으면 보통 방자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의지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겁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비난도 받습니다. 그래도 한 골 넣고 뛰어와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4. 결론
묵시를 나의 희망으로, 인생의 목표로 삼아 잘 사는 인생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 하나님의 희망을 내 희망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이 높이시고 하나님이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신앙의 인격, 방자하면 안됩니다. 겸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