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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의 손
성경본문 : 에스라 8:21-23
21.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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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지순례는 정말 평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좋은 사람들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버스 기사 야신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금년 30이 된 총각 기사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운전을 잘 하던지요? 터키만을 12박 13일 동안 순례하는 동안 주로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높은 산악 지대를 지났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대 평원도 지났습니다. 바닷가도 지났습니다. 복잡한 시내도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사고가 없었습니다.
GPS도 없었으면서 정확하게 길을 찾았습니다. 우리 일행을 정말 편안하게 해 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급정거를 해서 불안하다든지 너무 멀리 차를 대서 힘들다든지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 대부분이 운전기사 때문에 여행이 참 순적했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운전 참 잘한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들을 했습니다. 정말 운전기사 덕에 여행이 참 평안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바로 여행과 같습니다. 태어나서 세상 떠날 때까지 기나긴 인생길을 여행합니다. 그런데 이 인생 여정이 누가 운전대를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내가 내 인생 여정의 운전대를 잡으면 불안합니다.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여러 차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기도 불안합니다. 나보다 나을지는 몰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생 여정의 운전대를 잡으시면 달라집니다. 평안합니다. 우리가 갈 길을 정확하게 찾아주십니다. 도중에 불안한 일도 없습니다. 안정감이 있고 신뢰가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분의 손을 철저하게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던 사람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에스라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도전과 교훈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바랐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란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려고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에스라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이 지금과 앞으로도 도와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에스라는 1:1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귀환하게 된 원인과 저들이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된 원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이진 않는 하나님의 손이 섭리 가운데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돌려보내게 하셨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재건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와 보면 에스라가 2차 포로귀환을 감행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1차 포로 귀환 결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성전은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속에 성전은 아직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뜻 밖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허락한 정도가 아닙니다.
7: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에스라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7: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왕이 그 필요한 모든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2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 사람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에스라가 돌아갈 때 크고 작은 여러 나라와 고을을 지날 텐데 그 때 조공을 받거나 세금을 받지 말라고 엄히 명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서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재정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에스라는 참 재미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7:9을 보면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라는 지금 하나님의 손이 능력있게 역사하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하신 손으로 친히 역사의 운전대를 잡으셔서 이끌어 가시는 것을 소름끼치도록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그 하나님의 손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목사님께서 목회 도중에 어떤 문제 때문에 크게 낙심한 일이 있었답니다. ‘이제 목사 사표내고 목회를 그만두고 말리라' 마음속에 굳게 다짐했답니다.
비몽사몽 가운데 환상을 보게 되었답니다. 당신이 무척이나 험한 길을 걷고 있더랍니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오른 쪽으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세우더랍니다. 또 한참 가다가 왼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니까 다시 큰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주더랍니다. 또 죽을 힘을 다해서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쓰러지려 하니까 그 때는 두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주더랍니다.
그렇게 험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번쩍 눈을 떴는데 바로 환상이더랍니다. 이 환상 속에서 깨달았답니다. "목회는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구나.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그리고 이후로 더욱 힘을 내서 목회를 하게 되었고 영락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부흥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우리 혼자 걷는 것이 아닙니다.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소망 중에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의 도움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손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만 의지했습니다.
우선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군사를 보내서 경호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돕기로 굳게 마음 먹은 상태입니다. 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함께 데려가라 한 상태입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도 내어 줄 태세입니다. 이제 일행의 안전과 경호를 위해 군인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또 많은 재물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경호하려고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모르는 왕에게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했었다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에게 여행길에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군사를 보내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에스라가 왕에게 군사를 보내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면 왕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혹시 에스라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믿는다고 말했던 고백과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동이 달라서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뿐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당신의 백성을 지켜줄 능력이 없는 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만일 왕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이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이제 갓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나오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의 강력한 권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번 나와 봤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처음이냐고 물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작심하고 교회를 본격적으로 다녀본 일이 있었답니다.
그러면 왜 그 마음을 바꾸었냐고 물었습니다. 안타까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때 동업을 하던 어떤 교회 장로님의 전도를 받아서 교회를 다니게 됐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 장로님이 자기에게 부채를 떠넘기고 잠적해 버렸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교회를 다닐 수가 없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의지한다면 그 꼴이 무엇입니까? 그게 올바른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굶으면 굶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지켜주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붙여주셨다고 강변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최선을 다해 활용하여 도움을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강변을 하기도 합니다.
왕상 17장을 보면 엘리야가 가뭄에 죽을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순종했습니다. 그곳에서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날랐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순종했습니다. 거기서 한 과부를 만나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를 찾아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돈 땅 사르밧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때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펴십니다. 우리는 이럴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내게 붙여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자기가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자기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의도하고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자기가 일을 저질러 놓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붙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게 하셨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인내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성급하게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도에 몰입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은 것입니다.
우선 금식했습니다. 왜 금식했을까요? 하나님 앞에 간절함을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철저한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길을 하나님의 손으로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번 성지순례 기간 중 밧모섬을 순례했습니다. 그 중에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동굴을 찾았습니다. 2000년 전 사도 요한이 기도하던 그 동굴,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밧모섬에 유배당해서 왔습니다. 이미 나이가 80이 넘었기 때문에 몸을 거동키가 힘이 든 상황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요한의 수발을 들도록 요한의 제자 푸로코로스를 보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매일같이 푸로코로스의 등에 업혀 언덕 위의 이 동굴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몰입했습니다. 그 기도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 기도하면 이런 자세입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머리를 바위 바닥에 댔습니다. 그리고 오른 손을 들어 바위를 잡았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기도로 그 모진 박해를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기도에 몰입하는 요한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옆 자리에서 그 모습을 흉내 내 보았습니다.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철저하게 마음이 낮아지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감동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 그야말로 원 없이 기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걸고 기도에 몰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만 의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3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철저하게 기도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을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붙잡았다가도 쉽게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기도에 몰입해 보십시오. 그분의 능하신 손을 붙잡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