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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태양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태양의 고마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해 아래서 자기 일에만 분주할 뿐입니다.
(시 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기만 하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줄로 생각하였던 엘리멜렉과 요나 처럼 오늘도 교회를 벗어나기만 하면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압이나 다시스와 같은 세상으로 내려가서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모압 사람이기 때문에 구태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여도 조상 대대로 믿던 종교를 자유롭게 믿으면서 얼마든지 세상 풍습을 따라 자기 멋대로 살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모압이라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갖기 쉬운 것처럼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잘되고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앙의 세상을 버리고 신앙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때로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낙심하고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축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비로소 만사 형통이 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 밭에 가게 하소서
룻이 친정으로 돌아가서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의 안락함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시모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두 가지 원동력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나오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룻이 그와 같은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베들레헴에 당도하였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연약한 룻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었습니다. 젊고 건강하고 재산이 많은 남편 대신 나이 많은 늙고 빈털털이가 된 룻에게는 그를 얕보는 사람들의 희롱과 이방인에 대한 냉대. 시모의 건강과 배고픔을 해결해야만 하는 생계 걱정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룻은 앉아서 수넴 여인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든지 굶어 죽든지 아니면 사람에게 동정을 구걸하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들이 때로 걸어간 길이며 또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때로 통과해야 할 좁은 길이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 나의 처지가 룻과 같다면 어느 길을 선택해야만 할까요?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 중에 선택해야만 하는 바른 길이 어떤 것인지 룻의 모습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여기서 유력하다는 말은 베들레헴에서 소문난 부자라는 뜻으로 나오미가 마음만 먹으면 남편의 친족 중에 잘사는 사람들이 있기 떄문에 얼마든지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모압의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 온 룻, 친정을 버리고 나오미를 따라 온 룻이 겨우 이삭을 주어야만 살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가혹한 시련처럼 여겨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룻은 자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삶이 어렵고 힘들 때 룻처럼 친척의 도움이나 요행스런 기적이 아니라 내가 가서 땀 흘려 성실하게 일하면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밭을 찾아 나서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 밭의 주인이 되는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일하지 않고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비록 이삭을 줍는 천한 일을 할지라도 밭으로 나가서 일할 때 그 일하는 현장에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 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2. 은혜를 입으면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서 약속의 땅 베들레헴에 돌아왔으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가 아니라 이삭을 줍지 아니하면 끼니가 걱정스러운 가난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아니하고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이삭 줍기를 자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곡식 이삭 줍기에 대한 규례를 정해 놓으셨는데 (레 19: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레 19: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하신 말씀처럼 마음 만 먹으면 추수하는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합법적으로 주워 가난한 자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신 24: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룻은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시모 나오미에게 효성을 다할 수 만 있다면 그것이 비록 이삭을 줍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며 이삭을 줍는 일을 부자 친척에게 동정 받는 것보다 더 떳떳하게 생각하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마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오늘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야만 선한 일을 할수 있고 하나님의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노력대신 요행의 기적이나 남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삭 줍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룻은 그 이삭 줍는 일조차도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라고 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 줍겠다는 가난한 마음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사는 자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직접 떨어지는 경우보다는 사람을 통하여 더 많이 경험하게 되며 크고 위대한 것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찮은 작은 것을 통해서 임함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성도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요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조차도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함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불신하고 자신의 노력만으로 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와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만을 기대하는 기복주의도 진정한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좋아하는 찬송 중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어제나 오늘도 변찮고 보호해 주시네 라고 한 것처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비단 믿는 자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신 불신을 막론하고 하늘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베풀어주시지만 문제는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자는 오로지 믿는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은혜, 일이 잘 풀려질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오늘도 교만한 자는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일을 성취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교만한 자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성도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허락하시면 성공할수 있다고 겸손히 고백하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진정한 성공이 있습니다.
3. 우연 같은 하나님의 인도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이삭을 줍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가다가보니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룻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기독교에는 우연이나 자연이나 숙명이라는 말은 없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결과는 인간의 계획대로가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은혜를 구한 룻이 보아스에 밭에 이르렀을 때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룻이 이삭을 줍는 하찮은 일조차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가겠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와 같은 룻의 소원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룻에게 여러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1) 인도하심의 복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이삭을 줍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가다가보니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시펀 52펀 8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자하리로다'라고 약속하셨고 잠언 s장 5, s절에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보호하심의 복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2 : 8)고 말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에게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2 : 9)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신자가 하니님의 뜻 안에 있을 때 그는 주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증에 만날 큰 도움 이시라'(시편 46 : I). 우리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힘주실 것이 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3) 풍성한 양식의 복
보아스는 그녀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룻 2: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룻 2: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라고 한 말씀처럼 많은 것을 가지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보아스의 밭에 이삭을 주으러 갔던 룻은 결국 그 밭의 안 주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받게 되는 복이 무엇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는 인간적인 동정이나 계산된 호의가 아니었으며 여호와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룻에게 보상이었습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 부모와 고국을 떠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온 일
2)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일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전한 상을 주실 것을 축원하였습니다.
룻은 빈 손으로 여호와께 돌아왔으나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배부르게 먹게 하셨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정하셨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권면과 위로와 경고로 다가 오시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굴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노예가 아니라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하루에 주어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룻처럼 우연한 발길을 움직여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하시는 가운 그 분의 섭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줄 알 때 교만하게 되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몰인정한 사람이 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믿음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는 인생의 모든 것에 풍성하여지며 근본 문제도 해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되 모든 삶을 인도하시어 형통하게 하시며 구원의 복을 내려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더 큰 은혜를 받지 못하며 심판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기를 원하여 피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는 선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신령한 복만이 아니라 육신의 복도 주신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한다" 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룻의 발길을 보아스 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계심을 믿고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람보다 더 신뢰하는 믿음의 성도는 만사가 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이루어짐을 믿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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