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1-10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라 / 황광민 목사
옛날 이스르엘에는 나봇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포도원을 갖고 있었는데 아합왕의 궁 근처에 있었습니다. 아합왕의 원궁은 사마리아에 있었고 이스르엘에는 별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합이 나봇에게 포도원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자 포도원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대신 돈으로 주든지, 더 좋은 포도원을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아합왕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왕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신념을 갖고 거절했습니다. 나봇은 조상의 유산인 땅을 파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이유로 팔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왕은 마음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는 아합왕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단지 화가 나고 분하여 궁에 돌아와서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합은 자초지동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봇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세벨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그까짓 일로 고민하고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나봇의 포도원을 임금의 것으로 만들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성읍의 장로와 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앉히고, 건달 두 사람으로 증인을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증언하게 하여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위의 본문이야기 속에는 4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나봇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합같은 사람입니다. 셋째는 이세벨로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과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 권력의 시녀 노릇하는 줏대 없는 사람들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
나봇은 포도원을 팔라는 아합왕의 요청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거절하였습니다. 왕이 거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주든지 더 좋은 포도원을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고 거절하였습니다.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봇이 아합에게 이르되 내 조상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는 여호와께서 금하실 찌로다” 아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려는 나봇의 당연한 저항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이를 자손 대대로 지키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팔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려면 나봇과 같은 결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노아가 그렇고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모든 동물들의 암수 한 쌍씩 넣어야 하는 큰 규모의 배였습니다. 하루 이틀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 조선소를 운영하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러한 노아와 더불어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들로 표현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라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행위를 믿음의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모험이었습니다.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랐습니다.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레이니시는 에모리대학의 총장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일화가 있습니다. 에모리대학교의 교수시절에 그는 30분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중에 혼자 햇볕을 쬐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척 쓸쓸해 보였습니다. 레이니씨의 마음에는 노인을 섬기라는 성령의 감동이 왔습니다. 무척 바쁜데 어떻게 저 노인을 섬기라는 것인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 노인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차도 같이 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노인은 코카콜라 회사의 전 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주식의 3%를 레이니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고마운 교수에게 은혜를 크게 갚았습니다. 레이니는 그 돈을 학교에 기부하였고 후에 이사회에서는 그를 총장으로 추대했던 것입니다.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랐던 사람에게 하나님은 귀한 것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뜻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
아합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포기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뜻과 자신의 욕심 사이에서 갈등으로 인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인하여 고민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 점을 잘 지적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육체의 소욕 사이에서 갈등으로 인하여 고민하면서 자신을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낼 수 있는지를 토로한 바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갈등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과 자신의 소욕이 충돌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것인지, 아니면 피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단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8-39절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순종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갈등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이세벨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거짓과 술수를 이용했습니다. 그녀는 고민하는 아합왕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로 하여금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이라 하였습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죄명을 씌워 죽였습니다. 금식까지 선포하고 그럴듯하게 위장하였습니다.
이세벨은 무서운 여인이었습니다. 나봇은 이세벨의 술수 앞에서 무력하게 죽었습니다. 이세벨이 승리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은 예후를 들어 아합의 집을 쳤고 이세벨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사람이 갚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갚으셨습니다. 이세벨이 무섭고 강한 여인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거짓과 술수를 쓰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도 많이 있는데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개중에는 목사와 장로들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별별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도금한 납덩이를 금덩이라고 속여 수억대의 돈을 갈취한 사기꾼이 있습니다. 송파구 삼전동의 정 모 씨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25㎏짜리 납덩이를 도금하여 금괴처럼 만들어 금도매상을 운영하는 하모씨를 찾아가 진짜 금값의 절반에 팔았습니다. 하씨는 너무 싸니까 출처도 묻지 않고 몇 개 더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기꾼 정씨는 10개가 더 있다며 선금조로 1억 2천 5백만원을 받고는 줄행랑을 쳤습니다.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서울 변두리 어느 복개천 공사장에서 밤이면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복개천 밑에서 들려왔습니다. 순찰 중이던 순경이 하루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밑으로 내려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리는 철근을 뽑기 위하여 콘크리트를 치는 망치소리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복개천의 철근을 뽑아내면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순경은 두 사람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알아보니 한두 달 가량 그렇게 철근을 뽑아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순경이 매일 밤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수요일과 일요일 밤에는 안했다고 대답했답니다. 수요일 밤과 주일 밤에는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말해서 창피를 당했습니다. 돈만 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또 이런 사람들 주위에는 침묵하는 하수인들이 있습니다.
이세벨의 지시에 따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으로 누명을 씌워 죽게 만든 장로들과 귀인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악을 보고도 침묵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악을 주도하는 사람이나 그 하수인이나 똑같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의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