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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며 기도하며 지키며 기다리라
성경본문 : 유다서 1:20-21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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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 목사
성경 스물일곱 권 가운데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유다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성경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은 유다서는 내용이 아주 풍부한 성경입니다. 유다서는 한 장, 스물다섯 절, 단어는 456개밖에 안 되는 짧은 성경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성서학자가 출판사의 부탁으로 유다서의 주석을 집필한 다음에 그 책의 머리말에 '유다서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라고 썼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유다서의 중심구절인데 짧은 말씀이지만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네 개의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세우며, 기도하며, 지키며, 기다리라 - 네 개의 단어를 통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입니다. 영어성경에서 이 말씀을 찾아보면 building up, praying, looking for, 두 번째 단어를 빼놓고는 모두 'ing'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자신을 믿음 위에 세워야하며, 오늘, 성령으로 기도해야 하며, 오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하며,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합니다.
내일도 계속해서 세워야하고, 기도해야 하고, 자신을 지켜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첫째, 우리들은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먼저 감사해야합니다.
그 앞의 18절과 19절을 보면 파괴하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보세요.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마지막 때에는 경건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9절을 보세요.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분열을 일으키는 자는 화평을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파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습니다.
계속되고 있는 대형 테러, 북한의 핵 시설 재가동, 모두 평화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은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복제인간을 만들었고 앞으로 계속해서 만들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는 사람들은 라엘리언이라는 종교단체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사람은 외계에서 왔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파괴하는 사람들에 속하지 않고 세우는 사람 편에 선 것을 감사하며 믿음의 기초 위에 영적인 집을 계속해서 세워 나가야합니다.
"너희의 지극한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거룩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우는 영적인 집, 경건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해야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까지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마치 탑을 쌓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일층은 덕의 층, 이층은 지식의 층, 마지막 일곱째 층은 사랑의 층, 믿음의 탑은 이렇게 쌓아올린 칠층탑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 믿음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 기초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기초를 둔 영적인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신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그 위에 행함이라는 집을 지어나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바른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라는 특정인물이 아니라 이런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22절까지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우리를 지어지고 있는 집에 비교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2장 6절과 7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믿음에 기초를 둘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2장 5절에서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하고 말하고 6절 이하에서 계속해서 건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산 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 돌, 산에 있는 돌〔山石〕이 아니고 '살아있는 돌'이라는 뜻입니다. 한자로는 '활석'(活石)이라고 합니다.
그냥 돌은 있는 그 자리에서 깨지고 풍화작용을 겪는데 산 돌인 우리는 믿음이 계속해서 자라야합니다.
교회도 산 돌입니다.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자기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호를 산 돌이라고 했는데 그는 살아있는 사랑의 실천자로 그 이름이 오래 전해질 것입니다.
산 돌은 영어로는 'Livingstone'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을 생각하게 됩니다. 리빙스턴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리빙스턴은 아홉 살 때부터 공장에서 직공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대단히 좋은 집안이어서 그의 부모는 아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기에 힘썼습니다. 리빙스턴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베드로전서의 이 말씀에서 왔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산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도 여럿 있습니다. 1992년판 「기독교대회연감」의 '한국교ㅗ회사전'에 14개의 산돌교회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더 많아졌겠지요..
성경은 우리를 산 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죽은 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 여러분, 2002년이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살아온 해였나, 혹시 세운 집을 허물며 살아온 해는 아니었나. 알기 쉽게 말하면 믿음의 본전을 까먹은 해는 아니었나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03년은 거룩한 믿음 위에 영적인 집을 튼튼하게, 아름답게 쉬지 않고 지어 가는 해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때는 멋대로 기도하고 어느 때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서는 공동서신의 하나인데 사도가 기록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성경들은 대부분 앞에 '사도인 나 아무개가 이 편지를 보낸다' 이렇게 밝히고 있는데 유다서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다서의 가르침을 좀 가볍게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말씀드린 것과 같이 유다서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유다서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이 편지의 기록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동생들이 있었습니다(마6:3). 예수님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히 마리아가 계속해서 출산하고 평범한 주부로 산 여자가 아니고 계속해서 동정녀였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들이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아니고 사촌형제들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셨고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예수님을 믿었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이 내 안에 있어서 그 성령의 감화와 인도로 입밖으로 나오는 간구와 찬양과 감사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감옥에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내가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엡6:19). 이런 기도가 성령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에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는데 이것은 성령으로 한 기도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됩니다.
여러분 기도를 시작할 때 먼저 '성령님, 나의 기도를 도와주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였습니다(눅22:44).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기도생활에서 최고의 스승이며 기도의 동반자입니다..
기도는 성령과 결합될 때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풍성하게 응답됩니다.
여러분, 2002년, 자신의 기도생활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약4:3).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이기적인 기도는 성령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2002년 나의 기도생활에서 이와 같은 모습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2003년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해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야합니다.
자기를 지킨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방어입니다.
성경 원문 풀이를 보니까 여기 "지키라"(테레사테)는 말은 제2부정과거 능동태 긴급의 명령형이라고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아주 절박한 상태에서 내리는 급한 명령입니다.
그 때 이단의 교회 침투가 심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를 주로 괴롭힌 이단은 영지주의라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유다서는 이 영지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쉘클레(Schelkle)라는 신학자는 유다서를 '반이단적 삐라'라고 했고 노흐(Knoch)는 '투쟁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이단들의 침투가 너무 심해서 유다는 다급하게, 그리고 강하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단들과 일부러 싸우려고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싸우다가 당하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저 흔들리지 않고, 유혹을 이기며 바른 믿음을 잘 지키기는 것이 이단에 대응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단들은 믿는 사람들을 함락시키기 위한 전문교육을 강하게 실시합니다.
제가 20여 년 전쯤에 마포지방에 있는 생명샘교회의 임시설교목사를 반년쯤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지금은 밝은빛 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 교회가 망원동에 안쪽에 있었는데 늦지 않도록 조금 일찍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정류장에서 그 교회의 예배 시간까지 기다립니다. 임시 설교목사는 손님인데 손님이 너무 일찍 가면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들어가는데 정류장 뒤에 이층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이층에 여호와의 증인이 세 들어 있었고 그 시간이 설교 시간인지 교인들을 가르치는 시간인지 강사가 열심히 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밖에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건 일종의 특공대 훈련입니다. '교인들의 집에 찾아가서 이런 논리로 굴복시켜라, 이렇게 나오면 이렇게 해라' 하는 것입니다.
여섯 달 가량 매주 그 시간에 10분, 또는 20분씩 그들의 주장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얻은 결론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얻은 것은 '이단들은 싸워서 이길 상대가 아니고 지켜서 이길 상대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믿음을 잘 지키면 이단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하는데 반대로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 세속의 좋지 않은 것들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어야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 요즘 신앙인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존재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장 5절에서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써서 그것에서 벗어납니다. 한 때는 좋았으나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지 깨닫습니다.
둘째 아들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평안과 안정을 얻습니다.
자기를 지키라는 것은 방어를 말하면서 동시에 절제를 의미합니다. 자기의 위치와 분수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다가 지옥에 떨어진 천사가 있습니다. 루시퍼이지요 우리말 성경에는 계명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14장에 그 일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14:12∼15).
여러분 자기의 처지, 자기의 분수를 잘 지켜 루시퍼처럼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절제하는 일에 모범을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고전9;27).
런던 신학대학 출입문 위에는 "믿음을 지킴으로써 내가 지켜지도다"라는 말이 써있는데 유명한 설교가 스퍼르전이 써 놓은 글이라고 합니다.
믿음을 지킴으로 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또 남을 지킬 수 있습니다.
넷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합니다.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믿음으로 이기는 교회인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를 보세요.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기다리다가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온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안나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며 섬기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변호사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변호사는 화려한 직업인 것 같지만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재판정에 나가서 자기가 맡은 사건의 재판 차례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루해서 견딜 수 없었는데 나중에는 기다리는 시간을 잘 이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들으면서 '아, 이런 경우도 있구나!' '이 사건의 변호사는 이런 이론으로 변호하는구나' '아,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변호하면 효과적이겠는데…' 이렇게 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실력 있는 변호사로 알려지더라는 것입니다.
잘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에 배우는 사람이 좋은 신앙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도 기다려야 합니다. 언제인가는 이뤄주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도서 2장 13절에서 우리는 복스러운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복스러운 소망입니다.
교회 부흥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혼인집에 간 주인을 기다리는 종과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이 밤늦은 시간에 돌아와 문을 두드려도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종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눅12:35∼38).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3장 1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도 기다려야 합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이라는 교회연합기구가 있는데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었습니다. 어제 축전을 보내면서 축하한다는 말 뒤에 '목사님의 임기 안에 통일이 이뤄지기 바랍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통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달라는 당부입니다.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 라는 말로 오늘의 권면과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성경에서는 간곡한 권면을 할 때 이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기 위해 힘쓰신 줄로 믿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에 힘쓰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힘쓰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며 살아온 줄로 믿습니다.
그것의 상급이 좋은 믿음의 집으로, 풍성한 응답으로, 정결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더욱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는 일에 모범을 보이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