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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2: 1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 요일 2: 2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
제 2 장 : 빛 가운데 행하는 성도의 삶
1.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1: 1-6 )
①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②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③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④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⑥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 1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사도 요한은 본 서신에서 교인들을 '자녀들아'라고 자주 불렀다(2: 1, 12, 28; 3: 7; 4: 4; 5: 21). 그의 언어는 그의 나이가 많았고 교인들에 대한 사랑도 많았음을 보인다. 따라서 그는 본 서신에서 교인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도 여러 번 불렀다(2: 7; 3: 2; 4: 1, 7, 11).
요한은 본 절에서 본 서신을 쓰는 목적을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교훈과 책망을 받아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 딤후 3: 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원하신다.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나의 자녀들아'(테크니아 무)는 신약에서 본 절에서만 나타난다. 이것을 수신자들을 향한 요한의 자비롭고 따뜻한 사랑을 암시한다((Stott, Smalley).
'이것을'이 가리키는 것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 1: 6-10을 가리킨다.
Ⓑ 1장 전체를 가리킨다.
Ⓒ 본서 전체를 가리킨다.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앞서 1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1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보고 듣고 만지며 계속적으로 사귐이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죄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과의 사귐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당시 영지주의자처럼 사귐이나 사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Barker).
요한은 본문에서 본서 전체의 기록 목적이 사귐을 지속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사귐을 지속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사귐을 유지하며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제시한다.
2]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죄를 범하면'(하마르테)는 상반절의 '하마르테테'(죄를 범치)와 마찬가지로 부정과거 시상이다. 이는 범죄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 된 행위들'을 나타낸다.
'대언자'(파라클레토스)는 문자적으로 '돕기 위해 곁에 부름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위로자 또는 옹호자'를 가리킨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 요 14: 16, 26 - ⑯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 15: 26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요 16: 7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본 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존전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중보하심을 시사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파라클레토스'로서의 '성령'과 본 절에 나타난 '파라클레토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 행 16: 7 -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 롬 8: 9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빌 1: 19 -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요 14: 16에서는 '또 다른 보혜사'라고 되어 있어 예수께서 '파라클레토스'이심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Smalley).
'파라클레토스'이신 성령께서는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중보하시는 분이시며 '파라클레토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하나님 존전에서 그리스도인의 죄를 중보 하신다(Stott).
3]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예순 크리스톤 디카이온'은 문자적으로 '의로운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디카이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존전에서 중보 사역을 행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셔서 흠이 없고 깨끗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상에서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셨다.
예수의 이러한 의로움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유하게 되며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롭지 못한 모습을 깨끗하게 하신다.
* 롬 3: 26 -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표현이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부정하던 예수의 인간되심을 강하게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된 인간이심을 나타내어 죄인들을 중보하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드러낸다.
4] 우리의 대언자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고 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신령한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죄는 가만히 어둠 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부르짖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 59: 12은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고 했고, 민 32: 23에서는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했으며, 계 18: 5에서 이르시기를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고 했다.
공중 권세를 잡고 죄악을 다스리는 사탄은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자이다. 욥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욥에 대하여 사탄은 하나님께 욥을 참소하였다. 이 참소자가 계 12: 10을 보면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라고 했다. 참소자는 인류의 종말에 가서 미가엘 천사에 의해 하늘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납니다.
그러나 사탄의 이같은 참소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신 후에는 우리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제동이 걸린 것이다.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도록 방패가 되어주신다.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가 있다’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누가라고 밝힌 대상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롬 8: 33-34에서도 사도 바울은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의 대언자는 누구인가?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인이시다. 죄악의 대명사가 되는 사탄의 참소는 의인의 간구 앞에 견딜 수 없다. 하나님은 의인의 손을 들어주신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변호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언은 적법한 변론이다. 왜냐? 그분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기에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사실만 선언하신다면 사탄이 아무리 그럴듯한 참소로 우리를 정죄하여도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분이 우리의 대언자로 지금도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우리는 이 비밀을 슥 3: 1이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탄이 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참소를 할 때,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면서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노라’고 하시며 사탄을 향하여 ‘내가 너를 책망하노라’고 견책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은 그가 이루신 속죄와 그가 가지신 의로인하여 우리를 부족함이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신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만하면 되는 것이다. 이 죄를 자백하지 않고 감추면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된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죄를 어떻게 대언하실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성령을 탄식시키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 입고 이 분만 붙잡고 의지하고 순종한다면 사탄의 송사나 그 어떤 참소도 이길 수 있다.
요일 2: 2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 -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본문은 앞 절에서 언급된 '의로우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사역을 행하실 수 있는 자격으로서 '화목제물'임을 제시한다.
'화목제물(힐라스모스)'은 '유화(宥和)제물(propitiation)', 즉 우리의 죄들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제거시키는 제물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 25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했다.
'유화'라는 것이 성경적 속죄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한 유화제물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만 위할 뿐 아니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유화제물이 되셨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 29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 3: 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셨다.
물론 여기에서 '세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세상의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성도들을 위해 계속 변호하시는 것은 그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근거한 것이다.
1] 그(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죄'(톤 하마르티온)은 복수형이다. 이는 범죄의 행위들을 가리킨다.
'화목 제물'(힐라스모스)는 제의적인 용어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속죄'(expiation)를 의미한다. (Westcott, Dodd).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한 제사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속죄의 근원이 된다.
(2) '달램'(propitiation)을 의미한다. (Hill).
이 해석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의 대상이 되셔서 희생 제사를 받으신다.
이 두 해석은 서로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다. (Barker, Smalley, Stott, Law). 구약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희생 제사를 제정하심으로 속죄의 길을 여셨을 뿐만 아니라 그 희생 제사를 제정하심으로 속죄의 길을 여셨으며 그 희생 제사를 받으셨다.
* 레 16: 34 - 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또한 신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믿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 롬 3: 21-26 -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즉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셔서 속죄의 수단을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희생을 통하여 원수 되었던 인간과 자신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
(3) 화목제물은 무엇인가?
① 예배자가 하나님과 화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드리는 구약시대의 희생제물을 말한다. (레 3 장)
화목제(히, 쉘렘)는 평강, 친교라는 의미이다.
이 같은 의미대로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교를 나눔으로써 평강을 얻은 자는 누구든지 언제라도 드릴 수 있는 자원제(자원제)였다. 화목제의 제물은 바치는 자의 형편에 따라 소나 양, 염소를 제물로 드렸다.
② 예배자는 화목제물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물고 올바른 관계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③ 하나님은 자신과 우리 죄인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는 화목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실 때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비로소 화목이 이루어졌다.
2]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속죄 사역은 그리스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온'(홀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가 인류 전체에서 미친 것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 4: 42 -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3] 우리의 화목 제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셨다고 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화목 제물이 필요합니까? 화목(和睦)이라는 말의 뜻은 서로가 틈이나서 멀어졌던 관계가 다시 가까워져 뜻이 맞고 정다움을 말한다. 기독교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과의 화목을 기초로하여 세워진 종교이다.
(1) 화목의 필요성
사람의 조상이였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화목이 깨어졌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화목의 조건을 주셨다. 그 말씀이 창 2: 16-17에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
아담은 하나님이 명하신 조건 아래서 하나님과 화목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아담과 하나님의 이런 관계는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도 아담과 똑같이 적용되었다. 하나님과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화목은 영원히 불가능하여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화목의 상실은 곧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화목의 방법을 제시하신 하나님께서 깨어진 화목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다. 이것은 소망이 없던 인간에게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장애를 없애고 화목을 실현시키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은 시급한 일이다. 왜냐하면 화목하지 못한 모든 영혼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받기 때문이다. 욥은 22: 21에서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롬 5: 17에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고 하였고 고후 5: 20에서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했다.
(2) 구약과 신약의 화목 제물
① 하나님과의 화목은 제물로만이 가능했다.
죄의 사함이 없이는 화목이 불가능했으므로 제물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구약시대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므로 이 시대에는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어야 할 속죄 제물이 죗값으로 피를 흘리게하는 방법으로 짐승을 제물로 삼았다. 송아지나 양의 피로써 화목 제물로 삼아 사죄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었다. 히 9: 13-14의 말씀대로 짐승의 피가 인간의 죄를 정결하게 하였고 거룩하게 하였으므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 수 있었다.
* 히 9: 13-14 –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② 그러나 이런 방법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한 제물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은 짐승의 피로 화목하는 방법이 아니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에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 화목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일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롬 5: 10에서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하고, 골 1: 22에서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했다.
* 롬 5: 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화목 제물이 되시려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다.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뤘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화목 제물의 사명을이루셨다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님이 이루신 화목의 혜택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이 이뤄졌다. 그러므로 이 같은 대언자가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한 믿음으로 사탄과 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