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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벧전 1: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서 론
우리는 이제 공동서신의 두 번째 서신을 접하게 된다. 베드로의 첫 보통 서신(The First General Epistle of Peter, KJV)으로 명명된 본 서신은 공공 서신 중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내용으로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밀접한 사도였던 신앙과 위로와 교훈으로 가득한 이 서신의 가치를 온전하게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위해 경건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귀중한 격려와 소망을 주는 데 본서만큼 가치가 있는 책은 없다고 본다.
(1) 저자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Peter)이다(1: 1). 그는 고난의 문제를 다루면서 본 서신의 내용을 실루아노에게 불러주어 대서(代書)하였거나 번역하게 하였다(5: 12).
본서는 1세기 말엽부터 교회들이 베드로 사도의 첫 편지로 인정해 왔다. 로마 교회의 교부 클레멘트, 또 폴리갑, 이레나이우스, 터툴리안 그리고 3세기의 오리겐에게 이르기까지 베드로전서가 베드로 사도의 것임을 의심치 않고 그 내용을 공공연하게 인용했다.
그럼에도 몇몇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의혹을 제기한다. 첫째, 본서에 사용된 헬라어가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고상하다는 것이요, 본서의 내용이 바울 사도의 사상과 흡사하다는 것이며, 본서에서 다루는 고난과 박해는 베드로 사도가 순교하기 전에는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헬라어 문제는 본서 5: 12에서 밝혔듯이 실루아노가 대필했음이 분명하며, 그는 바울의 중요한 동반자로서(행 15: 40. 행 16: 19) 바울에게 깊은 신학적인 영향을 받았기에 베드로 사도의 말도 바울처럼 표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언약과 교훈을 직접 체험한 사도로서 그분의 죽음, 고난, 부활, 승천, 재림의 언약도 직접 목도한 사도이기에 바울서신의 교리들을 산 경험으로 말할 수 있는 사도이다.
박해와 고난 문제는 네로 황제가 다스리던 주후 62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위기를 느낄 만큼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임박하는 말세적인 박해를 통해 모든 성도에게 박해와 고난에 대비한 신앙 무장을 강조했다.
이 편지는 하나님은 종종 우리들에게 고난과 곤경을 통하여 성도들을 강하게 하시고 성도가 받은 증거를 굳건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고난에 의하여 정련된 믿음이 어떻게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지 깨닫기를 원한다면 이 편지를 읽기 바란다.
(2) 기록 시기
대개의 학자들은 본서가 로마 제국의 대박해 시기 중 어느 한 시기의 직전이나 초기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본서의 분위기나 표현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벧전 4: 7) 또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 17)라는 표현은 베드로는 종말적인 대환란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베드로 사도는 주후 68년경 대박해 기간 중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네로 황제에 의한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는 주후 64년경부터이다.
그 당시 네로는 기독교를 불법 단체로 간주하고 로마 각처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로부터 냉대와 불이익을 당했었으며 누구나 대대적인 박해가 닥칠 것을 예견했고, 교회의 위기가 도래하게 될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본서는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온 주후 63-64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3) 기록 장소
본서에 기록한 장소가 언급되어 있는데, 즉 바벨론에 있는 교회(벧전 5: 13)에서 기록하여 보낸다는 구절이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어디인가? 중세의 에라스무스, 칼빈 등은 유브라데 강 유역의 유대인 정착지인 바벨론이라고 추정했다. 또 이집트 카이로 근처인 앗시리아인 정착지가 바벨론으로 불리워졌으므로 그 곳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는 바벨론은 당시 로마를 상징하는 기독교의 보편적인 은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계14: 8. 계 17: 5). 구전에 의하면 베드로는 말년에 20여 년간 로마에서 활동하다가 주후 64년 늦여름 네로의 분노의 희생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본서가 로마에서 기록된 것임에 유력하다.
(4) 기록 목적과 수신자
본서는 임박한 박해로 인한 삶의 시련에 대한 신앙 무장을 위해 쓰였다. 물론 그 대상은 로마 안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베드로전서의 위대한 점은 다가올 박해를 소극적으로 맞을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박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영광스러운 것이요, 그 상급으로 영생 복락을 맞이하게 되는 축복임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에게 힘과 위안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본서는 격려의 서신 또는 소망의 서신으로 부른다.
서신의 수신자는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하였다. 그들은 주로 소아시아 지방에 살았던 이방인 성도들이었다. 베드로전서 2: 10은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라 하였고, 4: 3에서는 '[너희가]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 하였다.
(5) 특징
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벧전 1: 2은 본서의 주제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을 강조한다.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신 성부, 고난과 영광에 참예하게 해주신 성자, 그리고 위로의 성령에 관한 내용이 본서 전체에 흐른다.
②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관한 자세
고난은 곧 닥칠 것이나 한시적이다. 그 고난으로 교회와 성도들은 더욱 견고케 될 것(벧전 5: 11)이며 고난으로 성도들은 더욱 성화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위대한 고난의 증인인 베드로 사도의 빛나는 교훈은 고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다. 즉 고난으로 삶의 종말이 올지라도 성도의 본분과 사명을 더 열심히 감당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선을 행하며, 열심히 봉사하며, 더 뜨겁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벧전 4: 7-11). 이와 같은 자세는 오직 고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를 본받음으로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다(벧전 2: 18-25). 그러므로 본서는 종말의 때에 행할 성도의 신앙 윤리의 지침서의 가치도 지닌다.
(6) 개관
①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 1: 1 – 12 )
② 산 소망을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권면( 1: 13 – 2: 10 )
③ 산 소망이 나타나는 생활영역( 2: 11 – 3: 12 )
④ 고난과 시련에 대한 권면(3: 13 – 22 )
⑤ 고난의 영적 의미( 4: 1 – 19 )
⑥ 지도자들에 대한 권면(5: 1 – 11 )
⑦ 문안과 축도 (5: 12 – 14 )
제 1 장 : 성도의 소망과 성화
1. 문안인사 ( 1: 1 – 2 )
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②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전 1: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한다. '사도'는 주께서 친히 택하여 세우신 자들로 열두 제자들과 바울을 가리킨다.
* 눅 6: 13 -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 롬 1: 1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여 전도하며 권능을 받아 병자들을 고쳤던 자들이었다.
* 마 10: 1 -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막 3: 14-15 - ⑭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⑮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 이러라.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나그네들에게 편지했다. 위의 지역들은 오늘날 터키 지역이다. 그는 2: 11에서도 성도를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우리의 본향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역대상에 보면, 다윗은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다(대상 29: 15).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는 베드로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 호칭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전파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사도로서의 베드로 자신의 권위와 존엄을 나타낸다.
* 마 16: 18-19 - ⑱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⑲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막 3: 16 -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 요 1: 42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요 21: 15-19 - ⑮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⑯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⑰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⑱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⑲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 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는 아람어에서 '바위'를 의미하는 '케파'를 헬라어로 명명한 별명이다. 베드로의 히브리 이름은 '시므온'이었을 것이며 헬라어로는 '시몬'이었다.
* 행 15: 14 -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 벧후 1: 1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본문에 언급된 다섯 지역은 모두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터키 타우루스 산맥(Taurus Mountains)의 북쪽에 해당하는 로마 지역이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보다 많은 지역에 그리스도인이 거주하였다.
* 행 16: 6-8 - ⑥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⑦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⑧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그러나 본서에서 다섯 지역만 언급되었으며 '본도'와 '비두니아'가 동일 지역에 대한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언급된 것에 대해 혹자는 이 편지를 소지한 실루아노(5: 12)가 심방한 지역이었다고 주장한다(Hort, Robertson).
이 견해에 따르면 실루아노가 배를 타고 흑해를 지나 본도에 입성하여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를 거쳐 비두니아를 통과해 로마로 항해해 갔기 때문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지명이 각기 따로 언급되었으며 본서 수신자들이 사는 지역도 이 다섯 곳만 언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단지 추정에 불과하며 본문에 특별히 다른 언급이 없으므로 단정하기 어렵다(Michaels).
'흩어진 나그네'(파레피데모이스 디아스포라스)에는 관사가 없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의미하며 '파레피데모이'는 '어떤 지역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당시 네로 황제(A. D.54-68)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임을 인식하였을 것이다(Stibbs).
'나그네'라는 표현은 수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다니는 입장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안식처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나라임을 인식하고 순례하는 자임을 암시한다(Blum).
그러므로 흩어진 나그네는 오늘날의 터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신자들을 의미한다. 그들 중 일부는 박해를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이방 사회에서 나그네처럼 환난을 겪고 있었다.